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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의 산책 - 요나의 요리일기
요나 지음 / 어라운드 / 2018년 10월
평점 :
예전에는 요리책이란 책은 내게 있어, 아이들 그림책 같은 느낌이 들어, 음식 사진을 보면서 아주 그냥 신나게 보았다면(그림의 떡이라 생각했었기에 입에 침을 가득 담고), 요즘 읽게 되는 요리책들은 한 권의 에세이집을 읽고 있는 듯하여, 그 중 이 책 네 권도 좀 천천히 읽어 보게 되었다.
이 책들은 2013 년 봄부터 2016 년 가을까지 매거진 어라운드라는 잡지에 요리 코너 부분인 ‘재료의 산책‘ 이란 제목으로 제철 채소 재료 하나를 주제로 정하여, 요리사인 작가가 그 재료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으로 소개하고, 세 가지 정도의 연관된 요리를 연구하여 레시피를 공개한 자료들을 모아 각 계절별로 네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처음엔 각 권 2 만 원인가? 가격에 놀랐지만 각 권 5 천 원이고 시리즈 전체가 2 만 원인 셈인데, 요즘 다른 요리책들도 다 그정도의 가격으로 책정되어 있는 걸 보면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런데 읽을수록 묘하게 빠져드는 구석들이 있어 최근 읽은 책들 중 참 이쁜 책이구나! 싶었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 또는 타고난 요리 천재들(요리에 취미가 샘솟는 사람들?)을 지켜보면 나와는 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예전에는 요리에 관심 자체가 없다 보니 그 다르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었다. 그야말로 좀 둔하고, 무심한 편이었다.
음식은 배만 채우면 된다는 사고관을 가지고 살았었다.
헌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 밥을 차려주면서 음식을 못하고, 두려워 하고 있는 내모습이 참 한심했었는데 주변에 요리를 잘하고, 즐기는 사람들을 지켜 보면서 아!! 뭐지? 하며 지켜 보니, 뇌 구조 자체가 다른 건지? 재료 하나를 같이 쳐다 보고 있건만, 생각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령 애호박 하나를 같이 쳐다 보면서 나는 저 큰 걸 하나 사면 언제 다 먹지? 된장국을 도대체 몇 번을 끓여야 할까? 살까?말까?(나는 부끄럽지만 애호박은 된장국에만 넣는 재료로 알고 있었다.그것밖에 할줄 몰랐었...) 하고 있는데, 곁에서 애호박 안사고 뭐하냐고 재촉한다. 저걸 사면 문드러져 반은 버린다고 하니 지인은 너무 놀라더라! 애호박 하나로 볶아서 나물도 해먹고, 구워서 전도 해먹고, 국에도 넣어 먹고, 볶음밥에도 다져 넣고...한 개로도 모자라는 재료라고 했다. 재료 하나를 보면 몇 가지의 해먹을 만한 요리가 생각난다는 것을 알고는 감탄했었던 게 한 15 년은 되었다. 지금은 뭐 나도 경력이 좀 붙었는지 장을 보러 갔는데, 애호박 가격이 껑충 뛰어 있으면 헐!! 미쳤어~미쳤어~ 되뇌이거나, 혹시나 1+1 할인되어 붙어 있으면 잽싸게 장바구니에 담는 연륜이 생기긴 했다.
좀 아쉽다면 부지런하지 못하여 잽싸게 담아 장을 봐왔지만 제때 음식을 하지 못해, 지금도 재료들이 오래되어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는 습관은 여전하여, 나 왜 이럴까? 반성하는 연륜도 때때별로 지극하다.
그러니까 요즘 느끼는 요리 천재들은 음식 재료들을 바라볼 때 그냥 당근이면 당근! 오이면 오이! 나처럼 이렇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자식들 쳐다보 듯, 애정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깻잎을 먹는 걸 너무나 사랑하지만, 한 장, 한 장 씻는 걸 너무나 귀찮아 해서 생깻잎을 보면 한숨이 먼저 나온다. 부추전은 냄새만 맡아도 무조건 입에 침이 고이고 냄새 나는 진원지를 찾느라 고개가 미어캣이 되는데도 부추를 한 개, 한 개 다듬어 씻을 걸 생각하면, 부추 한 다발을 사려다가 다시 내려 놓고 온다.
가지도 어릴 적 집마당 텃밭에서 바로 따서 먹던 생가지 맛을 잊지 못해 먹으려고 사려다가도 가지나물 만들기에 실패를 너무 많이 해서 나물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 때문에 또 내려 놓곤 한다.
그래서 나는 장을 보러 가면 지금도 여러 이유로 인해 재료들을 들었다, 놨다를 열심히 반복하며 팔운동만 하고 있다.
나는 재료를 쳐다 보면 다듬고, 씻고, 데치고 이러한 번거로운 조리과정이 먼저 떠올라 재료들을 실상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봐지지 않던데, 요리 천재들은 그저 재료들을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더란 말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솥밥 관련 책에서도 어떤 여자 요리사는 연근을 좋아해서 연근 솥밥 짓는다고 연근을 써는데, 연근의 구멍 난 모습만 보면 웃음이 난다는 대목을 읽고, 절로 아~~ 감탄했다.
연근을 보고 뭐가 그리 웃음이 날까? 나도 얼마 있다 연근을 사다가 썰어 보았는데 그리 웃음이 나질 않아 어디가 웃음 포인트였던 건가? 이리 저리 구멍을 살펴 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인 것이구나!
이 작은 네 권의 책을 읽으면서 그것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재료를 애정어리게 그리고 소중하게 여겨 음식을 한다면, 그 음식이 바로 최상의 요리가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최상의 요리가 나올만한 것이, 책 중간 중간 실린 요리사 작가의 부엌 풍경들이 연구소를 방불케 한다.
내가 갖고 싶은 모든 것들이 내 손 닿는 곳에 죄다 있는 듯한 그런 부엌 사진을 좋아하는데 아~~감탄 또 감탄스러웠다.
(그러고 보면 나는 좀 정리정돈을 잘 못해서인지, 정리정돈 된 사진보다 내츄럴? 한 풍경을 좋아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책을 읽는데 <겨울의 일기> 에서 스물 일곱 번째 재료인 시금치가 나왔는데, 시금치를 보면 압도적인 푸르름이란 대목에서 또 뜨끔하여 냉장고에서 일주일을 넘게 방치하여 그 압도적인 푸르름이 자꾸 고개를 숙이는 푸르름으로 만들어 놓아버렸음을 반성하며 시금치를 당장 꺼내, 애써 사랑스러운 손길로 다듬어 보았다. 책에서 소개된 요리는 시금치 페스토를 만들어 맛나게 시금치 페스토 파스타 요리와 시금치 유자 된장 무침 나물이 소개되어 있어 군침 돌지만, 시금치 페스토를 만들기엔 아직 실력이 모자라고, 유자 된장이 없어 안되겠어서 일단 모두 패쓰하고, 평소 내가 만들던 식의 시금치 나물 무침과 시금치 된장국으로 얼른 만들어 끼니를 해결하였다.
역시 뽀빠이를 모르는 아이들이어서인지 시금치 나물을 좋아하지 않아 나만 자꾸 먹곤 있지만, 일단 버리지 않아 다행이다.
이게 다 요리책 덕분이다.
이젠 좀 음식을 할 때, 마음가짐부터 고쳐 먹고 요리해야지!
다짐하건만, 좀 쉽진 않다.
그래도 노력해야겠지!
그러려면 요리책도 부지런히 읽어야할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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