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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 편지 ㅣ 창비청소년시선 5
복효근 지음 / 창비교육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
어둠이 한기처럼 스며들고
배 속에 붕어 새끼 두어 마리 요동을 칠 때
학교 앞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데
먼저 와 기다리던 선재가
내가 멘 책가방 지퍼가 열렸다며 닫아 주었다.
아무도 없는 집 썰렁한 내 방까지
붕어빵 냄새가 따라왔다.
학교에서 받은 우유 꺼내려 가방을 여는데
아직 온기가 식지 않은 종이봉투에
붕어가 다섯 마리
내 열여섯 세상에
가장 따뜻했던 저녁
창비 청소년 시선 중 복효근 시인이 썼다는 제목은 <운동장 편지>라는 시집이다.
아이가 앞부분 두어 편을 읽다가 수면모드로 돌입하고 있길래
요즘 청소년들이 읽는 시집은 어떤 책인가 궁금하여 읽게 되었다.
특히 제일 앞의 시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 이란 시가 가장 단내나는 따뜻한 시여서 마음에 들었는데 교과서에 실린 시라고 한다.
어쩌면 아이들은 교과서가 아닌 시집을 통해 이 시를 접한 것이 좀 안타깝게 여겨지기도 했다. 분명 시를 조각 조각 잘게 찢어 해체하여, 내포하는 그 뜻을 암기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냥 이 따뜻한 시 한 편만 교과서에서 만난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안도감이 돈다.
왜냐하면 시집의 제 2부 ‘열 여섯 가을에‘ 란 소제목을 달고 있는 꼭지에 실린 시들은 조금 뜨악하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대목들이 많아 의아스러웠기 때문이다.
사춘기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내밀한 성적인 호기심과 수치심을 숨기기 보다 드러내고자 하는 과감함이 깃든 시라고 가정하고 읽긴 하였으나, 내 좁은 식견으로 몇 편의 시들은 솔직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시인에 대해 잘 모르겠어서, 사실 오늘 처음 읽은 책이기도 하여 일단 별 세 개를 달았고, 살짝 의문점을 남긴 책으로 기억하련다.
암튼,
그나저나 첫 시를 읽으니 붕어빵이란 단어를 읽자마자
갑자기 이 깊은 밤에 붕어빵 냄새가 나는 듯 하고,
먹고 싶어졌다.
식욕 땡기던 가을은 물러갔건만 주전부리 땡기던 식욕을 같이 가져가진 않았나 보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하려는데 주전부리 식욕은 이제 전투적인 태세를 취하려는 듯 하여 실로 당황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