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책을 읽으면서 제법 책장에 쌓여가는 책의 권수를 보며 혼자 씨익 웃는다. 이것은 뿌듯한 웃음이어야 하건만, 어째 웃음의 농도는 점점 짙은색이 되는 것 같다. 썩은 미소가 된다는 것이다.
책의 권수가 쌓이면 뭘하나?
읽어도 읽어도 아는 게 더 없는 것 같고, 더 헷갈리는 것 같다.
이론의 관념이 생활에 접목되어 경험의 토대가 되길 원한다.
그러려고 읽기 시작했는데 나의 경험들은 늘 부끄럽고 몇몇 주변 사람들과 나눈 대화 속에서 개념들이 빙빙돌기만 하여 막상 입 밖으로 나오진 않는다. 왜 그럴까? 늘 고민스럽다.
두어 달은 그래서 심적으로 좀 힘들었고, 회의감이 들었고, 자존심도 팍 상했다.
왜 그럴까? 또 고민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나는 상대와의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론서들을 읽어 왔던 것일까? 조금 반성했다.
그리고 이론서가 이해하기 어려웠다면 좀 더 단계를 낮춰 기초를 닦아나가야 했던 게 아닐까? 반성도 들더라.
하지만 여성주의 책은 기초가 없는 것 같다.
똑똑한 여성들이 쓴 책들이 대부분이어 그냥 바로 직진인 느낌이다.
리더님은 읽다 보면 아! 예전에 읽어봤던 부분이네. 그런 느낌을 받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런 적이 아주 없진 않았지만, 눈에 익긴 하지만 팍 와닿지 않으니 돌아서면 문장들이 이내 흩어진다.
어쨌거나 그래도 읽는다.
읽다보면 한 달 전보다는 조금 나아져 있을 것이라 믿고 그냥 단순무식하게 읽는다.
(부디 나아져야 할텐데...)
책의 저자 슐라미스 파이어스톤(한 가지 나아져 가는 건 여성주의 책 작가 이름을 한 명씩 알아간다는 것이다. 이번 책의 작가는 작명을 누가 했는지 한 번 들으면 잘 잊혀지지 않아 기억하기 쉽다. 파이어스톤.... 불꽃바위?!!!!)은 시카고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아직 책을 많이 읽진 않았지만) 그래서일까? 아주 오래전에 쓴 책이라는데 읽으면서 그 시절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 신선한 충격을 주는 장면들이 있었다.
<성의 변증법> 이 책은 그녀가 25세에 저술한 책이다.
이 한 권으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제2물결 페미니즘의 선구적 이론가로 급부상하였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그리고 창의적인 특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이론들이었나, 무척 당차다는 느낌을 받았다.
1장은 지난주에 읽었다. 와...재밌다! 하며 읽었건만 정리를 하려고 밑줄긋기한 부분만 다시 훑어 보는데
아니???.....나 제대로 읽긴 했던가?
일주일만에 새롭게 읽는 책이 된 것이다.
다시 읽으니 좀 어렵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암튼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만 인용해 본다.
그래서 경제적 계급의 철폐를 보장하기 위하여 피지배계급(프롤레타리아트)의 봉기와, 일시적 독재로 생산수단에 대한 점유를 요구하듯이, 성적 계급의 철폐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피지배계급(여성)의 봉기와 생식조절에 대한 점유가 요구된다. 여성들에게 신체에 대한 소유권을 완전히 되돌려 주는 것뿐 아니라, 인간 생식능력 조절에 대한 (일시적) 점유, 그리고 출산과 양육에 관한 사회제도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인구 생물학도 요구된다. 또한 사회주의 혁명의 최종 목적이 경제적 계급 특권의 철폐뿐만 아니라 경제적 계급 구분 그 자체를 철폐하는 것이듯이, 페미니스트 혁명의 최종 목적은 최초의 페미니스트 운동의 목표와 달리 남성 특권의 철폐뿐만 아니라 성 구분 그 자체를 철폐하는 것이어야 한다.(25쪽)
페미니스트 운동의 목표는 남성 특권의 철폐와 성 구분 자체를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권리를 요구하여 평등을 되찾는 것이 최종 목표인 줄 알았으나, 파이어스톤은 철폐 즉 앞에 있었던 규칙과 관습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적 계급의 철폐를 위해서는 여성들에게 생식조절에 대한 점유, 출산과 양육에 관한 사회제도가 바뀌어야 할 것이고, 인구 생물학에 대한 점유도 요구되어지는 것같다.
제 2물결 페미니즘의 선구적 이론가로 급부상 할만 했단 강한 느낌이 이미 1장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인간 존재 사이에 생식기의 차이는 더 이상 문화적으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방해받지 않는 범성애로의 회귀 -프로이트의 ‘다형 도착‘- 가 아마도 이성-동성-양성의 성성을 대신할 것이다.)
양성 모두를 위한 단성에 의한 종족의 생식은(적어도 선택의 여지가 있는) 인공생식으로 대치될 것이다.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아이들은 양쪽 성에서 동등하게, 혹은 두 성 중에서 어느 성에라도 상관없이 태어난다. 아이가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것(거꾸로의 경우에도)은 대개 다른 소집단 사람들에게 상당히 짧은 기간 동안 의존하는 것으로 대체될 것이고, 육체적인 힘에 있어 어른들보다 열등한 것은 문화적으로 보상될 것이다. 노동분업은(사이버네틱스[인공두뇌]를 통해) 노동을 완전히 철폐함으로써 종식될 것이다. 그리하여 생물학적 가족의 압제는 붕괴될 것이다.) (25쪽)
아주 옛날에 본 영화 중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남자 몸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좌충우돌 내용의 코믹 영화가 떠올랐다. 학창시절에 본 것 같았는데 암튼 남자가 아이를 낳는다는 게 내겐 완전 쇼킹했었다. 그래서 양쪽 성에서 아이를 동등하게 낳는다는 대목을 읽자마자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상황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더 이상 저출산으로 오로지 여성들만을 몰아세워 아이를 낳는 기계 취급을 하는 일이 덜 일어나지 않겠나? 싶다.
파이어스톤은 제법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주장한다.
2장의 ‘미국의 페미니즘‘ 편은 급진적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에 기초한 계급 제도의 투쟁과 그리고 페미니스트 혁명과 미국의 정치적 운동가들의 관점 이야기가 설명되어 있다.
관념적인 문장들이 몇 개 와 닿아 인용해 본다.
급진적 페미니즘은 페미니스트 문제들을 여성들의 최우선적인 문제로 볼 뿐만 아니라 더 큰 혁명적 분석에서 중심적인 것으로 본다. 급진적인 페미니즘은 현존하는 좌파의 분석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너무 급진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63쪽)
급진적 문제점들을 파악할 시엔 외부적인 것이 우선이 아니라 중심적인 문제를 급진적 혁명의 제 1순위에 둔다는 말일 것이다.
페미니스트 운동은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효과적으로 결합시킨 최초의 것이다. 이것은 관계의 새로운 방식 즉 새로운 정치적 방식을 발달시키고 있고 결과적으로 -언제나 여성적 특권인- 개인적인 것과 공적인 것, 개인적인 것과 ‘외부 세계‘를 이해시키는 것, 그 외부 세계를 개인의 감정과 감각으로 복귀시키기 위한 방식을 발달시키고 있다.(64쪽)
개인적 정치학의 설명에선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두 가지를 결합시킨 것이 페미니스트 운동이라고 한다. 개인적인 것을 합치시키는 것이 더군다나 여성적 특권이란 것을 외부 세계로 이해시킨다는 것...이것은 조금 헷갈리고 의문도 몇가지 생긴다.
개인적인 것의 범위가 모호하다.
암튼 그동안 생각해왔던 것들과 조금 다른 주장들이 있어 읽으면서 많이 놀라는 중이다.
마치 정희진 선생님 매거진을 들으며 놀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아마도 읽으면서 계속 더 놀라게 될 것 같다.
![](https://image.aladin.co.kr/product/8297/22/cover150/899468221x_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