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나다 - 첨단 패션과 유행의 탄생
조안 드잔 지음, 최은정 옮김 / 지안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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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나다'의 뜻이 뭘까, 다시 생각해보지만 대충 꿰차입고 보석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향수조차 몇년전것을 쓰고 바닥내려고 뿌리는 (그것도 여름에만 생각나면 쓰는) 나로서는 도무지 이 책이 술술 읽히지 않았다.
이 책의 부제는 '첨단 패션과 유행의 탄생'이 아니던가. 어쩜 그리 나와는 쌩판 다른지!

이 책은 들어가면서부터 대놓고 '럭셔리'를 외쳐대고 있다. 들어가며 '럭셔리한 생활'에 대해 줄줄 늘어놓더니 럭셔리 라이프의 절정을 보여주고 나가면서는 지상 최고의 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고가의 가구와 지나치게 화려한 인테리어, 초호화판으로 차려진 식탁...1700년 신임대법관의 부인 퐁샤르트랭 백작 부인이 선보인 연회는 요즘말로 쉽게 얘기하자면 돈자랑 파티,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런데 저자는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 '퐁샤르트랭 부인의 우아하고 화려하며 세련된 스타일의 연회는 오늘날 유명 인사들의 부인들이 보더라도 절로 감탄할 정도이다. 이는 베르사유 시대에 만들어진 호사스런 삶의 기준이 지금까지 여전히 통용된다는 증거일 것이다'(331).
호사스런 삶의 기준이 여전히 통용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면 나는 그가 말하는 '첨단 패션과 유행'을 엿먹으라고 던져버리겠다. 

아니 그런데 왜 말이 점점 더 험해지는 것인가. 책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고 럭셔리를 비난하고 있다니.
그렇지만 어쩔건가. 이 책을 읽은 느낌을 얘기하려하면 노동으로 세상을 움직여나간 수많은 민중들은 안중에도 없이 럭셔리한 생활로 사치만을 일삼은 프랑스의 귀족들에 대한 반발만드는데.  
이 책은 17-18세기의 프랑스 미시사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되겠지만  요리, 패션, 인테리어, 파티에 이르기까지 호사스러운 명품과 첨단 패션의 선구자가 태양왕 루이 14세라고 목이 터져라 찬양하고 프랑스 최고를 강조, 또 강조하고 있다는 것에는 사실 약간 꼬여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적어도 내게는.

그 옛날 태양왕이라 일컬어지는 루이14세가 프랑스를 말아먹던 (ㅡ,.ㅡ) 17세기에도,
다이아몬드를 사치스럽게 몸에 달고 다니던 사람들이 있었고.
루이 14세는 다이아몬드 옷이 너무 무거워서 밥을 먹고는 바로 뛰어나가서 옷을 갈아입었다나?
그 당시 다이아몬드를 캐던 인도의 노동자들은 요즘의 아프리카 광산 노동자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겨우 천쪼가리 하나만 걸치고 혹사를 당했으며, 다이아몬드를 훔치려는 조짐만 보여도 눈알을 빼는 고문을 당했다. 무서운것들!

벌써 아주 오래전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배웠던 것들이 - 물론 구체적으로는 하나도 안떠오르지만 - 떠오른다.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배운 복식사에서도 왕과 양반의 옷차림새를 배우긴 했지만 당시 백성들의 의복 변천사도 아울러 배웠던 기억이 있다.
내가 기대한 미시사는 그런 것이었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해 강한 배신감이 느껴지고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첫느낌이 갈수록 증폭되어 나도 모르게 한마디 툭 튀어나오고 만다. 럭셔리? 개뿔은-!!

<스타일 나다 - 첨단 패션과 유행의 탄생>은 어쩌면 그냥 가볍게, 호화롭고 사치스런 '그들'의 생활을 흘려가며 읽으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 한마디면 되는 것을... 안그렇겠는가.
이 책, 스타일 나다 어떻냐고? 내 스타일 아냐!
이건 첨단 패션과 유행과 아주 거리가 먼 나의 질투어린 항변이 아니다. 최고의 패션과 유행이 소수의 가진자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것이 최고이며 여전히 그 호화로움이 현재에도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저자에게 나의 어떤 말이 통할것인가. 그냥 한마디만 하자.
럭셔리 라이프? 개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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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 1 - 초원의 바람
장룽 지음, 송하진 옮김 / 동방미디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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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에서는 풀과 초원이 가장 큰 생명체이고, 나머지는 전부 작은 생명체에 불과해. 작은 생명체들은 큰 생명체에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늑대와 사람조차도 작은 생명체에 속하지. 그래서 풀을 먹어치우는 것은 고기를 잡아먹는 것보다 더 나쁜 해악이야. 너는 가젤이 가련하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혹시 풀은 가련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
-78-79쪽

풀은 큰 생명체라고 하지만 그 일생은 가장 보잘것없고 고될 뿐이야. 누구든 그것을 밟을 수도 먹을 수도 깨물 수도 짓밟을수도 있지. 말의 오줌 한 번에 풀이 타 죽을 수도 있어. 풀은, 만일 모래밭이나 바위틈에서 자라면 딱하게도 꽃도 피우지 못하고 종자도 열리지 않아. 초원에서 불쌍하기로 치자면 풀만큼 불쌍한 생명체가 없어. 몽골인들이 가장 불쌍하게 여기고 마음 아파하는 게 바로 풀과 초원이야. 살생이라고? 가젤무리가 필사적으로 풀밭을 물어뜯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살생이 아니냐? 초원의 큰 생명체를 죽이니 말이다. 초원의 큰 생명체를 죽이면 초원에 있는 작은 생명체들도 모두 죽게 된다! 가젤무리는 늑대떼보다도 두려운 재앙인거다. 초원에는 폭풍한설로 인한 백재나 가뭄이 들어 농작물이 시커멓게 타는 흑재만 있는 게 아니야. 누런 가젤로 인한 황재도 있지. 황재가 닥치면 그야말로 가젤이 사람의 목숨을 잡아 먹는거나 다를 바 없어!-79쪽

초원 민족이 지키려는 것은 큰 생명체다. 그래서 그들은 초원과 자연의 생명은 사람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농경민족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작은 생명체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의 목숨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큰 생명체가 사라지면 작은 생명체도 전부 죽게 된다.
큰 생명체의 입장에서 본다면 농경민족은 대량으로 화전을 일구고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초원과 자연의 큰 생명체를 파괴했고, 그럼으로써 인류라는 작은 생명체까지도 위협했다. 그들에게 있어 이보다 더 야만스러운 짓이 있었을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지는 인류의 어머니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과연 어머니를 참혹하게 해치고도 문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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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케의 여정
소냐 나자리오 지음, 하정임 옮김, 돈 바트레티 사진 / 다른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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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 한편이 떠올랐다. 헤어지고 소식이 끊긴 엄마를 찾아 머나먼 길을 걸어 다른 나라까지 가서 결국 엄마를 찾아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는 이야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그것이 동화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를 찾아 헤매는 마르코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내게는 더할나위없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였지만, 이놈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있는 내게는 이주노동자의 서글픔이 담긴 이야기가 되었다.

엔리케의 여정은 어찌보면 엄마를 찾아 떠나는 동화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 빈부의 차가 심해져가고 있고, 부의 집중이 세계의 몇 나라에 더 치중되어가고 있는 현실은 엔리케의 이야기가 더이상 동화가 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엔리케의 여정은 남아메리카의 온두라스에서 더이상 아이를 키우며 생활하기 벅찬 엄마 라우데스가 어린 아이들을 남겨두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미국으로 밀입국하면서 시작되었다. 어린 자신을 남겨두고 떠나버린 엄마가 자신을 정말 사랑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위험한 여행을 시작하였고, 이 책의 이야기는 시작된 것이다.
엄마의 사랑과 가족의 더 나은 미래와 자신의 삶을 건 여정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길이다. 가진것이 없는 그들에게 그나마 남아있는 것마저 빼앗는 강도가 있고, 경찰이 있고, 밀입국 감시단이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이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감동어린 이야기도 있다. 굶주리고 지친 그들에게 음식을 주고 잠자리와 입을 옷을 주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면 엔리케의 여정은 엄마를 만나고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 이후의 이야기로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너무 험하고 고통스러운, 외면해버리고 싶은 현실에 책을 집어던져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엔리케의 이야기가 단지 '그들'만의 이야기일까?
내가 아는 애도 부모님이 일본으로 떠나 불법취업자로 생활하는 동안 형제들끼리만 생활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님은 긴 세월 가족을 위해 힘겨운 노동을 하며 버티셨지만 결국 그것이 그들의 행복을 보장해주지도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하지도 못했고, 부자가 될수도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가족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목숨을 건 여정에 걸음을 떼어놓은 사람들이 저 멀리 남아메리카에만 있는 것인지, 잘 생각해보자.
나는 왜 이런 비극적인 이야기가 우리의 현실이고, 지금 이순간에도 덜컹이는 기차에 목숨걸고 올라타려하는 아이들이 있어야 하는지, 가족의 희망을 품고 부자나라에 가서 뼈골이 빠지는 노동을 하다 한줌의 재가 되어버리는 이들이 있어야 하는지...모르겠다.
세상은 이기적이라는 말로는 모자라다. 이 세상은 너무 슬프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말을 감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전쟁 영웅의 귀향을 노래한 서사시 '오디세이아'는 행복한 재회로 끝났다. 중서부 초원지대와 오클라호마 농민들의 캘리포니아 이주를 그린 고전소설 '분노의 포도'는 죽음과 희미한 새 생명에 대한 희망으로 끝났다.
그러나 엔리케의 긴 모험은 소설이 아니다. 따라서 결말이 더 복잡하면서도 덜 드라마틱하다. 오히려 오 헨리의 소설처럼 결말이 뒤틀려있다"(235)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목숨을 건 여정에서 결국 엄마와 만나게 되고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행복했습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여전히 현실은 비참했고, 불법 밀입국자의 노동은 고되었고, 부자가 될 만큼 돈을 많이 모을수도 없고, 고향에 있는 가족이 행복해질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아이를 놔두고 부모가 '돈'을 벌기위해 목숨을 건 여행을 해야하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 나의 이야기가 너무 비관적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리케는 엄마를 만났고, 엄마의 사랑을 느꼈다..라고 이야기를 끝내버리면 나의 감상은 끝나는 것인가?
한때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을 높였던 공중파TV  오락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삶은 고통스럽고 힘겹다. 그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 줄 수 있는 우리가 된다면, 이런 우리의 마음이 모아져 세계의 모든이가 이주노동자들을 따뜻하게 대해준다면, 아니 세상의 모두가 부를 축적하기 위한 이기적인 삶을 버린다면......
나의 이런 이야기가 결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마침, 우리 고유의 명절 새 해가 되었으니 소원을 빌어본다. 세상의 모든 이가 사랑을 전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더 이상 엔리케와 같은 길을 떠나는 아이들이 없기를.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말을 남기고 헤어져 살아야하는 가족이 없기를......

 

*** 퓰리처상을 수상했다는 이 기록은 괜한 미사여구를 달지 않고 담담히 모든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내용자체로는 감동적이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것이지만, '책'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하자면 이야기를 읽어나가는데 이 책의 편집은 결코 매끄럽지 못했다. 교정을 보지 않은듯한 문맥의 어색함과 오타들이 너무 많았다. 또한 문장 자체로는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 구술문학의 번역이 아닌한 조금은 매끄러운 문장으로 다듬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한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많은 이들의 노력이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감사할 일이지만, 이렇게 좋은 내용을 담은 책이 좀 더 세심한 교정 편집 번역이 되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읽는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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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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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존자가 자살하는 것은 우선 그것이 동물이 아닌 인간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수용소에서 그들은 완전히 노예화된 동물로 살았기 때문에 목숨이 다하는 것을 기다릴지언정 스스로 자신을 죽이지는 않았다. 둘째, 수용소에서는 생각해야만 하는 다른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죽음이 닥쳐오기 때문에 죽는다는 생각에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또한 대부분 생존자의 자살은 어떤 체벌로도 줄일 수 없는 죄의식에서 나온다. 그것은 어떤 죄일까?.... (174,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나는 프리모 레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몰랐다.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의 제목을 들었을 땐 철학자일까 생각했었고, 주기율표라는 책을 봤을 땐 정말 화학책인 줄 알았다. 그리고 '프리모 레비'에 대한 관심은 서경식님의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읽으며 비로소 생겨났다. 그는 화학자였고, 아우슈비츠 생존자였으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는 굳이 그에 관한 책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가 단지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라는 사실만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 대해, 그가 '모든 인간에게 답'하기를 원하는 물음에 대해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를 과거로만 넘겨버리고 있는 우리에게 '인간의 역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주기율표는 책의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주기율표상의 원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니, 단순히 원소의 이야기가 아니라 원소와 연결된 이야기 안에 그의 삶과 역사가 담겨있고 철학적 성찰이 담겨 있다. 실험실에서 원소를 추출하는 이야기인 듯 하지만 그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고, 친구와의 추억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프리모 레비의 사유와 성찰이 담겨 있다.
이런 멋진 구성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그 많은 것을 담아 낼 수 있는 사람이 문학가라기보다는 화학자였다는 사실이 놀랍다. 책을 읽으며 놀라워해야 하는 것이 이런 것은 아니겠지만.

주기율표를 읽으며 내용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먼저 읽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부록으로 실린 대담과 연보, 서경식의 해설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여전히 프리모 레비의 철학적 사유에 대해서는 다 알 수 없겠지만 이제 그의 다른 작품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후에, 나는 프리모 레비가 던지는 물음에 답해 볼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뿐,이라고 해야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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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18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테치카님, 전 이것이 인간인가, 를 먼저 읽었네요. 주기율표는 다음에 읽으려고
담아두었어요. 님의 리뷰를 보고 나니 얼른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chika 2007-02-18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전 '이것이 인간인가'를 얼른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
 
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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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용기있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그 며칠 동안 나는 모든 일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인간적인 경험들을 하고 싶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 바람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조금밖에 그리고 그것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던 것 같은 지금까지의 내 삶을 저주했다.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1분 1초가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는 피처럼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물론 난 금을 찾을 것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실험해보고 흙과 공기와 물을 다시 보고 싶어서다. 매일 더 깊어지는 심연이 흙과 공기와 물과 나를 갈라놓고 있다. 그리고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그 형태, 바로 맥석에서 금속을 분리하는 기술인 사이데쿤스트를 통해 화학자로서 내 직업을 되찾아보고 싶었다.-202쪽

도라강뿐만 아니라 친구들을 모두 잃었다. 젊음과 기쁨 그리고 아마도 삶까지 모두 잃은 거겠지. 도라 강은 얼음이 뒤섞인 자신의 심장 속에 금을 싣고 옆으로 무심히 흘러갔다. 불안정하지만 너무나 자유로운 자신의 생활로, 금이 끝없이 흐르는 그 강물로, 영원히 이어질 나날들로 돌아갈 수 있는 그 정체불명의 죄소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203쪽

나는 인간이 모두 영웅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며 모두가 그처럼 솔직하고 무방비 상태인 세상이라도 그러저럭 살아갈 만은 하리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은 비현실적이다. 현실 세계에는 무장한 이들이 존재했고 그들이 아우슈비츠를 만들었으며 솔직하고 무방비 상태인 사람들은 무장한 이들의 길을 닦아야 했다. 그러니까 아우슈비츠에 대해서는 모든 독일인이, 아니 모든 인간이 대답해만 한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무방비로 있는다는 게 더 이상 허용되지 않았다.-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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