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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케의 여정
소냐 나자리오 지음, 하정임 옮김, 돈 바트레티 사진 / 다른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 한편이 떠올랐다. 헤어지고 소식이 끊긴 엄마를 찾아 머나먼 길을 걸어 다른 나라까지 가서 결국 엄마를 찾아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는 이야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그것이 동화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를 찾아 헤매는 마르코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내게는 더할나위없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였지만, 이놈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있는 내게는 이주노동자의 서글픔이 담긴 이야기가 되었다.
엔리케의 여정은 어찌보면 엄마를 찾아 떠나는 동화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 빈부의 차가 심해져가고 있고, 부의 집중이 세계의 몇 나라에 더 치중되어가고 있는 현실은 엔리케의 이야기가 더이상 동화가 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엔리케의 여정은 남아메리카의 온두라스에서 더이상 아이를 키우며 생활하기 벅찬 엄마 라우데스가 어린 아이들을 남겨두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미국으로 밀입국하면서 시작되었다. 어린 자신을 남겨두고 떠나버린 엄마가 자신을 정말 사랑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위험한 여행을 시작하였고, 이 책의 이야기는 시작된 것이다.
엄마의 사랑과 가족의 더 나은 미래와 자신의 삶을 건 여정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길이다. 가진것이 없는 그들에게 그나마 남아있는 것마저 빼앗는 강도가 있고, 경찰이 있고, 밀입국 감시단이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이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감동어린 이야기도 있다. 굶주리고 지친 그들에게 음식을 주고 잠자리와 입을 옷을 주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면 엔리케의 여정은 엄마를 만나고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 이후의 이야기로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너무 험하고 고통스러운, 외면해버리고 싶은 현실에 책을 집어던져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엔리케의 이야기가 단지 '그들'만의 이야기일까?
내가 아는 애도 부모님이 일본으로 떠나 불법취업자로 생활하는 동안 형제들끼리만 생활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님은 긴 세월 가족을 위해 힘겨운 노동을 하며 버티셨지만 결국 그것이 그들의 행복을 보장해주지도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하지도 못했고, 부자가 될수도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가족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목숨을 건 여정에 걸음을 떼어놓은 사람들이 저 멀리 남아메리카에만 있는 것인지, 잘 생각해보자.
나는 왜 이런 비극적인 이야기가 우리의 현실이고, 지금 이순간에도 덜컹이는 기차에 목숨걸고 올라타려하는 아이들이 있어야 하는지, 가족의 희망을 품고 부자나라에 가서 뼈골이 빠지는 노동을 하다 한줌의 재가 되어버리는 이들이 있어야 하는지...모르겠다.
세상은 이기적이라는 말로는 모자라다. 이 세상은 너무 슬프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말을 감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전쟁 영웅의 귀향을 노래한 서사시 '오디세이아'는 행복한 재회로 끝났다. 중서부 초원지대와 오클라호마 농민들의 캘리포니아 이주를 그린 고전소설 '분노의 포도'는 죽음과 희미한 새 생명에 대한 희망으로 끝났다.
그러나 엔리케의 긴 모험은 소설이 아니다. 따라서 결말이 더 복잡하면서도 덜 드라마틱하다. 오히려 오 헨리의 소설처럼 결말이 뒤틀려있다"(235)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목숨을 건 여정에서 결국 엄마와 만나게 되고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행복했습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여전히 현실은 비참했고, 불법 밀입국자의 노동은 고되었고, 부자가 될 만큼 돈을 많이 모을수도 없고, 고향에 있는 가족이 행복해질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아이를 놔두고 부모가 '돈'을 벌기위해 목숨을 건 여행을 해야하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 나의 이야기가 너무 비관적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리케는 엄마를 만났고, 엄마의 사랑을 느꼈다..라고 이야기를 끝내버리면 나의 감상은 끝나는 것인가?
한때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을 높였던 공중파TV 오락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삶은 고통스럽고 힘겹다. 그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 줄 수 있는 우리가 된다면, 이런 우리의 마음이 모아져 세계의 모든이가 이주노동자들을 따뜻하게 대해준다면, 아니 세상의 모두가 부를 축적하기 위한 이기적인 삶을 버린다면......
나의 이런 이야기가 결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마침, 우리 고유의 명절 새 해가 되었으니 소원을 빌어본다. 세상의 모든 이가 사랑을 전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더 이상 엔리케와 같은 길을 떠나는 아이들이 없기를.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말을 남기고 헤어져 살아야하는 가족이 없기를......
*** 퓰리처상을 수상했다는 이 기록은 괜한 미사여구를 달지 않고 담담히 모든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내용자체로는 감동적이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것이지만, '책'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하자면 이야기를 읽어나가는데 이 책의 편집은 결코 매끄럽지 못했다. 교정을 보지 않은듯한 문맥의 어색함과 오타들이 너무 많았다. 또한 문장 자체로는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 구술문학의 번역이 아닌한 조금은 매끄러운 문장으로 다듬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한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많은 이들의 노력이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감사할 일이지만, 이렇게 좋은 내용을 담은 책이 좀 더 세심한 교정 편집 번역이 되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읽는 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