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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평점 :
많은 생존자가 자살하는 것은 우선 그것이 동물이 아닌 인간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수용소에서 그들은 완전히 노예화된 동물로 살았기 때문에 목숨이 다하는 것을 기다릴지언정 스스로 자신을 죽이지는 않았다. 둘째, 수용소에서는 생각해야만 하는 다른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죽음이 닥쳐오기 때문에 죽는다는 생각에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또한 대부분 생존자의 자살은 어떤 체벌로도 줄일 수 없는 죄의식에서 나온다. 그것은 어떤 죄일까?.... (174,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나는 프리모 레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몰랐다.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의 제목을 들었을 땐 철학자일까 생각했었고, 주기율표라는 책을 봤을 땐 정말 화학책인 줄 알았다. 그리고 '프리모 레비'에 대한 관심은 서경식님의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읽으며 비로소 생겨났다. 그는 화학자였고, 아우슈비츠 생존자였으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는 굳이 그에 관한 책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가 단지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라는 사실만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 대해, 그가 '모든 인간에게 답'하기를 원하는 물음에 대해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를 과거로만 넘겨버리고 있는 우리에게 '인간의 역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주기율표는 책의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주기율표상의 원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니, 단순히 원소의 이야기가 아니라 원소와 연결된 이야기 안에 그의 삶과 역사가 담겨있고 철학적 성찰이 담겨 있다. 실험실에서 원소를 추출하는 이야기인 듯 하지만 그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고, 친구와의 추억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프리모 레비의 사유와 성찰이 담겨 있다.
이런 멋진 구성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그 많은 것을 담아 낼 수 있는 사람이 문학가라기보다는 화학자였다는 사실이 놀랍다. 책을 읽으며 놀라워해야 하는 것이 이런 것은 아니겠지만.
주기율표를 읽으며 내용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먼저 읽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부록으로 실린 대담과 연보, 서경식의 해설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여전히 프리모 레비의 철학적 사유에 대해서는 다 알 수 없겠지만 이제 그의 다른 작품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후에, 나는 프리모 레비가 던지는 물음에 답해 볼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뿐,이라고 해야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