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초원에서는 풀과 초원이 가장 큰 생명체이고, 나머지는 전부 작은 생명체에 불과해. 작은 생명체들은 큰 생명체에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늑대와 사람조차도 작은 생명체에 속하지. 그래서 풀을 먹어치우는 것은 고기를 잡아먹는 것보다 더 나쁜 해악이야. 너는 가젤이 가련하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혹시 풀은 가련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 -78-79쪽
풀은 큰 생명체라고 하지만 그 일생은 가장 보잘것없고 고될 뿐이야. 누구든 그것을 밟을 수도 먹을 수도 깨물 수도 짓밟을수도 있지. 말의 오줌 한 번에 풀이 타 죽을 수도 있어. 풀은, 만일 모래밭이나 바위틈에서 자라면 딱하게도 꽃도 피우지 못하고 종자도 열리지 않아. 초원에서 불쌍하기로 치자면 풀만큼 불쌍한 생명체가 없어. 몽골인들이 가장 불쌍하게 여기고 마음 아파하는 게 바로 풀과 초원이야. 살생이라고? 가젤무리가 필사적으로 풀밭을 물어뜯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살생이 아니냐? 초원의 큰 생명체를 죽이니 말이다. 초원의 큰 생명체를 죽이면 초원에 있는 작은 생명체들도 모두 죽게 된다! 가젤무리는 늑대떼보다도 두려운 재앙인거다. 초원에는 폭풍한설로 인한 백재나 가뭄이 들어 농작물이 시커멓게 타는 흑재만 있는 게 아니야. 누런 가젤로 인한 황재도 있지. 황재가 닥치면 그야말로 가젤이 사람의 목숨을 잡아 먹는거나 다를 바 없어!-79쪽
초원 민족이 지키려는 것은 큰 생명체다. 그래서 그들은 초원과 자연의 생명은 사람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농경민족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작은 생명체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의 목숨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큰 생명체가 사라지면 작은 생명체도 전부 죽게 된다. 큰 생명체의 입장에서 본다면 농경민족은 대량으로 화전을 일구고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초원과 자연의 큰 생명체를 파괴했고, 그럼으로써 인류라는 작은 생명체까지도 위협했다. 그들에게 있어 이보다 더 야만스러운 짓이 있었을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지는 인류의 어머니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과연 어머니를 참혹하게 해치고도 문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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