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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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용기있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그 며칠 동안 나는 모든 일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인간적인 경험들을 하고 싶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 바람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조금밖에 그리고 그것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던 것 같은 지금까지의 내 삶을 저주했다.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1분 1초가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는 피처럼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물론 난 금을 찾을 것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실험해보고 흙과 공기와 물을 다시 보고 싶어서다. 매일 더 깊어지는 심연이 흙과 공기와 물과 나를 갈라놓고 있다. 그리고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그 형태, 바로 맥석에서 금속을 분리하는 기술인 사이데쿤스트를 통해 화학자로서 내 직업을 되찾아보고 싶었다.-202쪽

도라강뿐만 아니라 친구들을 모두 잃었다. 젊음과 기쁨 그리고 아마도 삶까지 모두 잃은 거겠지. 도라 강은 얼음이 뒤섞인 자신의 심장 속에 금을 싣고 옆으로 무심히 흘러갔다. 불안정하지만 너무나 자유로운 자신의 생활로, 금이 끝없이 흐르는 그 강물로, 영원히 이어질 나날들로 돌아갈 수 있는 그 정체불명의 죄소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203쪽

나는 인간이 모두 영웅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며 모두가 그처럼 솔직하고 무방비 상태인 세상이라도 그러저럭 살아갈 만은 하리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은 비현실적이다. 현실 세계에는 무장한 이들이 존재했고 그들이 아우슈비츠를 만들었으며 솔직하고 무방비 상태인 사람들은 무장한 이들의 길을 닦아야 했다. 그러니까 아우슈비츠에 대해서는 모든 독일인이, 아니 모든 인간이 대답해만 한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무방비로 있는다는 게 더 이상 허용되지 않았다.-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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