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사람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 - 영국의 책사랑은 어떻게 문화가 되었나
권신영 지음 / 틈새의시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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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도서관이 미래로서 제시한 책, 갤러리, 정원, 그리고 인공지능. 이들은 어떤 화학 작용을 일으킬까. 아마도 책은 퇴물보다 보물이 될 것 같다."(324)


책장을 덮으면서 왠지 모르게 '책은 보물이야'라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버렸는데,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일까? 싶어진다. 코로나로 인해 북페스티벌이 취소되고 고서점이 힘들어진 상황에서 폐업위기에 놓인 서점을 살린 것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라는 이야기를 읽으며 정말 책이 보물이야, 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스티븐 호킹의 사망 후 그의 책들을 받아 판매를 하고 서점이 살아난 것인데 실상 책의 원소유주에게는 그 책이 보물은 아니지 않은가 라는 생각에 미치자 난감함이 느껴진다. 아니 애초에 '보물'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가,를 생각해봐야할까?


이 책은 독자와 출판사와 서점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라 생각했다. 책읽기를 즐겨하는 사람으로서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고 독자에게 읽히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닐까 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책을 펵쳤는데,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인문학 책이다. 왜 굳이 영국의 이야기일까 라고 딴지를 걸어보고 싶어도 셰익스피어에서부터 시작하여 디킨스, 제인 오스틴, 브론테자매, 코난 도일, 애거사 크리스티, 톨킨, 키플링, 버지니아 울프, 조지 오웰 그리고 해리포터를 쓴 롤링에 이르기까지 - 사실 저자가 언급한 저자들을 나열했는데 그 누구 하나 빼놓을수가 없다. 내가 꼭 언급하고 싶었던 작가들이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고 무엇보다 여성작가들은 또 빼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영국의 문화, 특히 책에 대한 이야기지만 보편타당한 이야기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이야기책이다. 


저작권의 역사, 전문 서평가인 조지 오웰의 서평에 대한 이야기, 글자를 알지 못하지만 책을 듣는 어린이들과 그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조금 큰 아이들의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웠다. 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그 시작이 아주 오래전에 티비 특집 프로그램에서 본 외국의 작은 도서관에서 시행하는 책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보고난 후였다. 영상매체가 아무리 발달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영국은 고학년이 저학년에게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도 있고 모두가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이 좀 부럽기도 하다. 


여러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읽었지만 그중에서도 지금의 나를 생각해보게 하는 건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니?'였다. 책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나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저 막연한 이야기뿐이다.어린시절엔 오히려 더 쉽게 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책 읽어주는 사람, 공공도서관의 순기능, 오랜 공간이 갖는 의미,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도서기증을 하고 개인서가를 기증하여 공공도서관으로 만드는 것 등의 문화는 "책과 정원은 영국스러운 아이템의 만남'(334)이라는 말과 찰떡같이 느껴지는데 이런 것이 꽤 매력적이고 조금은 부러운 마음도 생긴다. 

이렇게 책의 내용을 정리하다보니 다시 글의 첫머리로 돌아가게 되는 느낌이다. "아마도 책은 퇴물보다는 보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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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대로 낭만적인 - 스물여섯, 그림으로 남긴 207일의 세계여행
황찬주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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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대로 낭만적인,이라는 책 제목때문일까. 낭만이 넘치는 그림을 보며 감성적인 짧은 글을 보며 가볍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그런 여행에세이를 기대했는데 빼곡하게 담겨있는 글자들에 당황했다. 책을 읽기 위해 펼쳤는데 많은 글자에 당황했다니 이 무슨 말도 안되는 문장을 만들고 있는 것인가.


이 책은 군복무를 마치고 스물여섯의 나이에 207일간의 세계여행을 한 청춘의 이야기이다. 여행 준비를 하고 계획한 지역에 도착하여 여행자로서의 생활을 이어가며 현지인 친구와 여행자 친구를 만나 사귀기도 하고 뜻밖의 만남이 즐겁기도 하지만 뜻하지 않은 여자친구와의 추억이 떠올라 당혹감을 느끼기도 한다. 여행이 끝난 후 인천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여자친구와는 여행을 시작하고 이별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십대 청춘의 여행이야기가 아주 감동적일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낭만'은 흘러넘치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다. 책을 읽으며 낭만적이다, 라는 생각은 그리 들지 않았지만 청춘의 낭만이라면 나름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삶을 이루는 소중한 조각이 될 것이다. "내가 앞으로 이루게 될 크고 작은 성취는, 예상치 못한 역경을 이겨냈을 때 진정으로 값지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내가 내린 모든 결정과 만족, 후회가 모여서 결국 내가 되겠지. 그렇다면 그 모든 고난과 눈앞이 깜깜한 순간들까지 사랑해야지. 내가 걷는 모든 길과 마주한 모든 경험이 나를 이루는 소중한 조각들이 되길."(466)


혼자 여행을 계획했다가 k와 동행하여 여행을 떠나게 되고 끝까지 같이 갈 예정이었으나 각자의 여정을 따라 헤어지게 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후배 y와 남미 여행을 하게 되기도 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볼리비아 비자를 받기 위해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아순시온에서 일없이 4일이나 지내야한다면 - 화가나고 짜증이 올라오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더 화가난다. 그리고 겨우 비자를 받고 들어갔는데 볼리비아 트럭기사들의 파업은 그 유명한 우유니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무너뜨리고...

여행지에서 우연히 알게 된 친구의 고향을 찾아갔는데 그녀가 보여 준 집이 유명 건축가의 집이며 삼촌이 병원 진료비 대신 받은 그림이 피카소의 초기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 놀라움보다, 그렇게 먼 거리를 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왔는데, 언제 다시 그곳을 볼 기회를 갖게 될지도 모르는데 포기해야할지도 모른다는 그 상황이 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아니, 물론 예전이었다면 화가나고 만일 내가 그런 처지가 된다고 생각하면 역시나 나의 불운에 대해 낙담하고 원망하는 마음만 가득했을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지금 안되면 다음에, 다음이 없다면 또 다른 좋은 것이 내 미래를 채워주겠지 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207일의 여행이 그저 즐겁고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건 당연히 알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여정을 통해 무엇을 체험하고 무엇을 깨달았으며 무엇을 삶에 새겨넣게 되었는지는 제대로 알 수 없다. 

여행에세이를 읽는 건 그 모든 것을 다 알수는 없지만 대리체험을 통해 내 삶의 여정을 계획해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아름답고 멋진 사진이나 쉽게 얻을 수 없는 여행정보라거나 여행팁을 얻을 수는 없지만 이 책을 추천해보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어쩌면 "여행이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면, 이제는 단단한 땅에 발을 딛고 서 있었습니다. 제가 마주해야 할 차가운 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단단한 현실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492)라고 말하는 저자의 후기가 더 마음에 남아서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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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외부로부터의 요청은커녕 경로사상을 내세워 누구도 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그래서 해야 할 일이 전혀 없는 평범한 노인들은 어떨까. 자기 스스로 할 일을 찾아 선택하고, 그 일들을 하나하나 완수해가며 혼자 힘으로 삶의 의미와기력을 찾는 수밖에 없다. 외부와 교류하며 기력을 유지하는 유명한 고령 작가들과 달리, 그들에게는 스스로 과제를 선택하는 힘, 하루하루 과제를 수행하는 힘 같은 또 다른 종류의 힘이 필요하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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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살다가 저세상으로 갈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다.
누구나 ‘미리 준비하면 근심이 적다‘라는 마음으로 고령화를 대비해야 한다. 100세까지 살 각오를 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편안히 죽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고, 다른 사람에게 보살핌을 받아야만 하는 최후의 시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때가 되면 어디서, 누구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고 싶은가‘, ‘그때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오래 살아 정든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등 인생의 마무리 준비를 아직 건강할 때 미리 해둬야 한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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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들의 삶이 가까이 느껴지고 나서 내게 찾아온 감정은 깊은 연민이었다. 신기하게도 1700여년전 로마인들의 끊어진 삶이 나는 안타깝게 느껴졌다. 노인과 아이와 어머니와 아버지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어느 오후 바닥이 흔들리고 지붕에서 기와가 떨어졌을때 그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지진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러다 갑자기 마을 뒷산이 시커멓고 커다랗고 뜨거운 숨을 토해내기 시작했을 때, 하늘은 먹구름으로 덮이고 세상이 잿빛으로 변해갈 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곧이어 하늘에서 불타는 돌이 떨어졌을 것이다. 광장과 골목과 대문, 마당, 거실, 부엌, 안방,
화장실이 속수무책으로 불타고 있을 때, 그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나는 젖먹이의 눈동자에 비친 어머니의 표정을 상상할 수 없었다.
아수라장 속에서 그들이 느꼈을 절망과 무기력감의 깊이를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폼페이의 누군가도 분명 근거 없는 희망을 품고 살아갔을 것이다. 옥상 텐트 속의 나처럼. 하지만 적어도 나를 짓누르던 이름 모를 옥상은 시커멓고 커다랗고 뜨거운 숨을 토하진 않았다. 최후의 날 화산재에 묻힌 그 누군가가 느꼈을 무기력감이란,
대관절 얼마나 위압적이었을까.
・・・ 고개를 들면 베수비오산은 아무런 표정 없이 도시를 관망하고있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잔뜩 흐렸다. - P244

내 머리를 가득 채운 것은 역시 베수비오와 폼페이였다. 나는어떻게 살아야 할까. 광장과 골목과 대문, 마당, 거실, 부엌, 안방,
화장실, 노인과 아이와 어머니와 아버지. 젖먹이는 커서 어떤사람이 되었을까. 연인은 결국 행복했을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살아야 할까. 폼페이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 생각지도 못한 일로삶이 한순간 사라져버리거나 멈추어버릴 수 있다면, 나는 어떻게살아야 할까. 모든 일은 결국 좋은 방향으로 풀리지 않을 것이다.
믿음은 배신당하고 나는 무기력감에 빠질 것이다. 언젠가는 이름모를 옥상과 텐트가 정말로 용암을 토해낼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어떤 마음가짐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여야 할까. 웃으며 털고 일어나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까? 혹은, 웃으며 최후의 날을 맞이할 수있을까.
베수비오의 시커멓고 커다랗고 뜨거운 숨..
이따금씩 바위에 파도가 부딪혀 철썩 하는 소리를 냈다. 산은지금도 무표정한 얼굴로 폼페이를 내려다보고 있을까.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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