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그들의 삶이 가까이 느껴지고 나서 내게 찾아온 감정은 깊은 연민이었다. 신기하게도 1700여년전 로마인들의 끊어진 삶이 나는 안타깝게 느껴졌다. 노인과 아이와 어머니와 아버지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어느 오후 바닥이 흔들리고 지붕에서 기와가 떨어졌을때 그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지진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러다 갑자기 마을 뒷산이 시커멓고 커다랗고 뜨거운 숨을 토해내기 시작했을 때, 하늘은 먹구름으로 덮이고 세상이 잿빛으로 변해갈 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곧이어 하늘에서 불타는 돌이 떨어졌을 것이다. 광장과 골목과 대문, 마당, 거실, 부엌, 안방,
화장실이 속수무책으로 불타고 있을 때, 그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나는 젖먹이의 눈동자에 비친 어머니의 표정을 상상할 수 없었다.
아수라장 속에서 그들이 느꼈을 절망과 무기력감의 깊이를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폼페이의 누군가도 분명 근거 없는 희망을 품고 살아갔을 것이다. 옥상 텐트 속의 나처럼. 하지만 적어도 나를 짓누르던 이름 모를 옥상은 시커멓고 커다랗고 뜨거운 숨을 토하진 않았다. 최후의 날 화산재에 묻힌 그 누군가가 느꼈을 무기력감이란,
대관절 얼마나 위압적이었을까.
・・・ 고개를 들면 베수비오산은 아무런 표정 없이 도시를 관망하고있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잔뜩 흐렸다. - P244

내 머리를 가득 채운 것은 역시 베수비오와 폼페이였다. 나는어떻게 살아야 할까. 광장과 골목과 대문, 마당, 거실, 부엌, 안방,
화장실, 노인과 아이와 어머니와 아버지. 젖먹이는 커서 어떤사람이 되었을까. 연인은 결국 행복했을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살아야 할까. 폼페이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 생각지도 못한 일로삶이 한순간 사라져버리거나 멈추어버릴 수 있다면, 나는 어떻게살아야 할까. 모든 일은 결국 좋은 방향으로 풀리지 않을 것이다.
믿음은 배신당하고 나는 무기력감에 빠질 것이다. 언젠가는 이름모를 옥상과 텐트가 정말로 용암을 토해낼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어떤 마음가짐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여야 할까. 웃으며 털고 일어나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까? 혹은, 웃으며 최후의 날을 맞이할 수있을까.
베수비오의 시커멓고 커다랗고 뜨거운 숨..
이따금씩 바위에 파도가 부딪혀 철썩 하는 소리를 냈다. 산은지금도 무표정한 얼굴로 폼페이를 내려다보고 있을까.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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