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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에서 밀크티를 마시다 - 하염없이 재밌고 쓸데없이 친절한 안나푸르나 일주 트레킹
정지영 지음 / 더블:엔 / 2017년 4월
평점 :
그냥 한마디로 밀크티에 꽂혔다. 그래서 안나 푸르나에서 밀크티를 마신다는 것은 내게있어 지상낙원의 경험과도 같은 것이라는 느낌때문에 이 책은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그리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별 기대감이 없었기 때문일까, 예상외의 이야기들이 펼쳐져 있어 그런걸까. 안나 푸르나의 트레킹 이야기만으로도 흥미로웠는데 그녀의 이야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담겨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어느순간 밀크티는 잊어버리고 그녀의 트레킹을 따라 길을 재촉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으니 놀랍지 않은가. 더구나 나는 이런 글 - 그러니까 씻지도 못하고, 땀범벅이 되었다가 동상이 걸릴 듯 추웠다가 단 1초만 물에 닿아도 동상이 걸릴듯한 차가움이라든가 또 퀴퀴한 숙소, 참기 힘든 화장실... 이런 것들에 밀려 괜히 글을 읽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그녀의 이야기는 그저 재미있기만 하다. 이건 뭘까, 싶을만큼 나 자신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책을 읽은 것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기까지 한 그녀의 이야기는 가히 빌 브라이슨의 유머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 아니, 그 이상으로 유쾌하고 진지하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밀크티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괜히 밀크티를 마시고 싶어졌다. 그녀는 '한잔의 완벽한 밀크티를 마시는 방법은 바로 안나푸르나 산맥을 바라보며 설산 속에서 마시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밀크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천상의 맛처럼 느껴질 그 완벽한 한 잔의 밀크티가 아닐런지.
이 책의 묘미는 단지 재미있게 읽힌다,에만 있지는 않다. 한잔의 완벽한 밀크티에 대해 지극히 주관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지만 밀크티가 만들어진 유래, 그러니까 홍차에 대한 역사에서부터 밀크티가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상식백과를 펼쳐놓은 것처럼 간략하지만 중요한 요점을 잘 정리해놓고 있다. 이러한 팁은 밀크티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배낭을 꾸릴 때 유용한 팁이라거나 네팔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에 대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면서도 알아두면 좋을 것들이 많다. 네팔을 이해하는데도 좋고, 트레킹에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도 안나 푸르나에 대한 관심을 더 높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사진 한 장 없는 트레킹 이야기가 무슨 재미일까, 싶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술술 읽힌다. 문화적인 이야기도 한가득이고. 사실 부록처럼 실려있는 뒷부분의 사진을 먼저 볼까 하다가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어지는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워서 뒷장을 먼저 넘겨볼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진을 보다보면 그녀가 이야기했던 장면들이 줄을 이어 떠오른다. 역시 책을 읽기 전이라면 별다른 감흥없이 경치만 보고 말았을텐데 이야기와 함께 보는 사진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네팔에서 그녀는 자주 신기해하고 즐거워했다고 한다. 트레킹이 끝나고 결혼을 해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가 된 그녀는 언젠가 아이와 함께 안나 푸르나에 다시 갈 날을 꿈꾸고 있다. 나 역시 그런 꿈을 꿀 수 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