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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켄트 하루프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2월
평점 :
밤에 자기 집에 있는 사람들. 그들의 이런 평범한 삶. 그들이 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지나가는 삶이지요. 나는 거기에서 뭔가를 되살리기를 바랐습니다.
소중한 일상을요.
예전에 나는 사람들이 유해한 존재인 줄 알았습니다. 잔인한 존재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내가 본 것은 상대방에 대한 다정한 태도입니다. 여름날 밤에 그저 함께 보내는 시간. 이 평범한 삶 말이예요.(286-287)
평범한 삶,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지나가는 삶이 행복이라는 것을 언제쯤이면 알게 될까?
나는 그저 별볼일없이 지나가는 내 인생이 조금은 하찮다고 생각했었다. 무미건조한 일상의 행복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면 나의 존재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것 자체가 바로 우리들 대부분의 삶의 의미이고 존재의 가치인 것을. 우리 모두가 다 연관되어있고 그 삶들이 이어져 세상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켄트 하루프의 소설 '축복'을 읽기 시작할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책이 재미없었다. 느릿느릿 흘러가는 일상에 따옴표없이 진행되는 대화는 더 기운을 빼고 있어서 슬슬 재미없음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뭐라 꼬집어 얘기할 수 없지만 오히려 그런 맥빠진듯한 이야기의 전개가 오히려 늪에 빠져들듯이 빨려들어가버리고 말았다. 천천히 그러나 아주 깊숙히.
책을 다 읽었을 때 '축복'받은 나의 소중한 일상에 감사하고 더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감사하며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책을 다 읽고 그냥 '좋구나'라는 느낌뿐이었을 때, 그날도 다른날처럼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 뒷정리한다음 편히 앉아서 어머니와 한두마디 나누며 티비를 보고 있었다. 그 되풀이되는 일상을 깨뜨린 건 전화한통이었다. 병동 간호사실인데 수술 끝나고 중환자실로 옮기면서 가방을 두고 갔다고. 잘못걸려온 전화려니 했지만 수술한 환자의 이름은 정확히 오래비 이름이었다.
알아봐야 좋을 것 없다고 우리에게는 알리지 않고 대장암 수술을 받았는데, 대장의 일부를 절제하면 된다던 수술이 8시간을 넘기며 대장 전체를 다 잘라냈다고 한다. 외국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 잠깐 건강검진 받으러 입국했다가 바로 수술해야한다고 해서 긴급히 수술을 하게 되었고 국내 연락처가 없어서 내 전화번호를 기입했는데 경황이 없던 올케가 가방을 두고 가서 주인을 찾는 소동중에 수술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잠시 휴직을 하며 고향에서 요양중이다. 물론 어머니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라는 것은 나이가 많을수록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일테니.
젊은 시절의 패기넘치는 삶, 원칙을 고수하고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간다면 두려울 것이 없었던 소설의 주인공 대드 루이스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한 계절을 넘기지 못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을 알게 된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대드 루이스 역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평범하기만 할 것 같은 그에게 일어났었던 수많은 일들,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그가 살고 있는 동네 이웃의 이야기들...
가만히 생각해보면 소설속의 여러 이야기들은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내 이웃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더 특별함이 아닌 평범함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서 느껴지는 평범함이란 매일이 똑같이 흘러가는 안일함과는 다른 그런 평범함의 일상이다. 그것이 특별한 것이고 그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바로 축복이라 느끼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