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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아우카만은 내 눈을 바라본다. 나에 대한 믿음이 그의 시선 속에 오롯이 담겨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자기를 두고 떠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더구나 개에게는 오로지 행동이나 몸짓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가 있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세상이 시작될 무렵 응구네마푸는 인간과 동물이 말 대신, 눈빛으로 드러나는 감정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82-83)
이 이야기는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개의 이름은 아프마우, 즉 충직함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마푸체족- 그러니까 대지의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할때까지만 해도 이건 어쩌면 우리가 아는 그런 개다운 개의 이야기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 개답다,라는 건 어떤 의미지?
신화처럼 내려오는 이야기, 마푸체족에게는 개를 신성시하는 부족전설이 있는가보다 라고만 생각하기에는 아프마우의 이야기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많은 것을 파괴하고 자연의 순리를 빗겨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나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더구나 이 이야기는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아프마우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더 그렇다.
대지의 사람들이라는 뜻을 지닌 마푸체족과 함께 자란 아프마우는 외지에서 온 윙카들이 어떻게 그곳에서 살고 있던 마푸체족을 쫓아냈는지 모두 보고 있었다. 항상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두의 이름을 불러주던 웬출라프 할아버지가 어떻게 죽임을 당하는지도 지켜보았다. 그렇게 마푸체족 공동체는 파괴되어버렸고 아프마우 역시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프마우에서 한낱 사냥개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쇠사슬에 묶여 그저 '개'라고만 인식되던 아프마우는 흔적을 쫓아가던 인디오의 냄새를 통해 잃어버린 것들을 하나씩 찾게 되는데...
그 모든 과정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마푸체족의 슬픈 역사가 떠오르고 그들을 지켜주려고 한 아프마우의 충직함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라콘, 즉 죽음의 달콤한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몬웬, 즉 삶에 대한 강한 충직함을 보여주었다는거지. 그래서 우리는 이 녀석을 우리말로 충직하다는 뜻을 지닌 아프마우라고 부르기로 했다네"(37)
이 이야기의 슬픈 결말은 마푸체족의 역사는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모든 공동체에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역사를 암시하는 듯 했다. 하지만 또한 아프마우의 희생과 충직함은 결코 저버릴 수 없는 희망을 갖게 하기도 한다.
책을 다 읽고 무심코 마푸체족의 언어를 살펴보다가 웬출라프,의 뜻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고 잠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자연과 더불어 대지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던 그들을 내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아프마우의 이야기는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 글을 읽었을때와 그 뜻을 알고 다시 읽어보게 될 때, 그리고 또 되돌아보면 무심코 지나쳤던 행간의 의미가 또 다르게 느껴진다. 그저 신화같은 이야기, 동화같은 이야기, 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 아프마우의 이야기는 보다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