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내내 주말에 쉬지 못했다.

2주 전에는 일본에서 친구들이 와서 늦잠도 못자고 가이드를 했고,
3월 내내 주말에도 쉬지 않고 달렸다.일요일까지...

덕분에 밧데리가 없어서 곧 끊어질 것 같은 핸드폰처럼
체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버스에서 항상 책을 읽던 내가
요란하게 헤드빙을 하며 꾸벅꾸벅 졸았다.
어제는 지각까지 했다.10분.

오랜만에 늘어져서 푹 쉬고 있다.
이럴 때 만땅 충전을 못하면 계속 힘들다.

그런데...
모처럼 집에 있는 내게...
엄마의 한마디는 내 마음에 못을 박았다.
그것도 커다란 못. 왠만해서 안빠지는 대못.

엄마가 말했다.
"너 때문에 어제 동창회도 안갔어."

이 말을 듣는 순간,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동창회만 가면 다들 사위 자랑에 며느리 자랑하고,
손주 사진을 들고 와서 자랑하고 하면서,
" 너네 애는 아직이니? " 이런 질문을 하는데 화가 난다고,
동창회에 가기 싫다고 예전에도 몇번씩 말했었다.

그러니까....
가기 "싫다"는 말은 여러번 들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안갔다"는 "과거형"이다.
과거형의 최초 등장.

아.....어떻해야 할까?
우리 엄마 동창회 다시 나가시라고 서둘러서 결혼을 해야할까?
정말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부럽다."
남아선호가 강한 한국이라는 후진국에는 이런 표어가 있었다.

이 말을 우리 엄마는 정말 수도 없이 들었다.

난 우리 엄마가 잡아 시키지 않아도 공부를 꽤 잘했다.
엄마 친구 애들이 재수를 하고, 미국으로 필리핀으로 유학을 갈 때,
난 커트라인에 따른 대학배치표 꼭대기 5개 안에 드는 대학에 턱하니 붙었다.

엄마 친구 아들들이 취직을 못해서 애를 태울 때,
난 대기업에 턱하니 들어갔다.

신입사원 때는 회사 광고모델로 뽑혀서 TV에도 나왔다.
가끔씩 사보에도 나오고,
가끔씩 회사에서 상도 타고,
범죄나 사고로 인한 사회면 기사가 아닌 인터뷰 기사로 신문에도 났다.

즉, 나는 우리 엄마의 "자랑"이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우리 엄마의 "스트레스"가 되었다.

" 너무 눈이 높은게 아니니? "
" 그러다 혼기를 놓치면 어쩌니? "
" 너네 애가 올해 몇살이지? "
이런 말을 들으며 우리 엄마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런데....이게 내 잘못일까?
엄마가 나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으니 미안하다.
하지만 도대체....내가 뭘 잘못한거지?

"부모님을 위해서", "효도"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이랑 결혼해서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을 더러 봤다.

前직장 동료였던 K는 세번 만난 여자랑 결혼했다.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아버지 살아 계실 때 결혼해야 한다는 주변의 성화로,
급하게 선을 봐서 3번 만난 여자랑 급하게 결혼을 했단다.

뭐...이렇게 결혼하고도 잘살면 다행이다.
그런데....K는 그렇지 못하다.
K는 주말부부다.
말이 주말부부지 일년에 몇번 만나지 않는다.
만나면 서로 할 얘기도 별로 없는게, 서먹서먹하단다.

K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도대체...그게 효도야?
세번 만난 여자랑 결혼해서, 그 결혼을 후회하면서
일년에 2~3번 만나고 사는게 효도야?

난 이렇게 생각한다.
대한민국 이혼율이 높은 이유는
이렇게 등떠밀려서 하는 결혼이 많기 때문이라고....

나이에 대한 중압감으로,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겨,
그냥 남들 사는대로 살려고,
불끈 눈을 감고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난 절대 "확신" 없는 결혼은 하지 않을꺼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우리 감여사가 동창회를 몇년 더 못나간다 해도...
그래서 내 맘에 못을 박다 모자라 바리케이트를 친다 해도...

그리고....대한민국 아줌마들에게 건의하고 싶다.
친구들을 만나면 자식이랑 남편 얘기가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하라고...

씁쓸하게도.... 벌써 이런 경향을 보이는 친구들이 주위에 더러 있다.
만나기만 하면 애들 얘기(자기 애가 또래에서 키가 제일 크다나....)
남편 자랑(남편의 무용담을 그대~로 믿고 거기에 더 보태서 자랑한다),
돈 자랑(아파트가 얼마 올랐다, 차를 바꿨다...)을 한다.
아까운 시간에 정말 왜 그럴까?

제발...."평균의 폭력"을 휘두르며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자.
오늘은 좀 쉬고 싶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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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1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4-01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4-01 1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여우 2006-04-01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빔일글이 많구낭...
우짰든, 수선님 화이링!^^

mannerist 2006-04-01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엄마한테 그래보셈... 엄니, 나 엄한 결혼하면 매너란 애가 누나 아줌마라고 놀릴거래. 나 놀림받기 싫어... 그러다 감여사님께 등짝 맞으면... 음음... -_-;;;

매너네 형 결혼식 내내 '번호표 탔다'소리에 짜증 오를대로 오른 청년. 쿨럭;;;;

kleinsusun 2006-04-02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산이신님, 제 OOOOO를 보고 싶으시다구요? 언젠가....그런 날이 있겠죠?^^

어설프게 숨어 계신님, 네....이제 그.러.려.니 하는 경지가 되어야 하는데...제가 소심해서...ㅎㅎㅎ 어쩔 땐....도망가고 싶어요.

숨어서 응원해주신 님, 감사합니다.힘낼께요^^

파란여우님, 닉네임을 또 바꾸셨네요.^^ 네, 홧팅할께요. 홧팅!

매너야, "번호표 탔다"가 무슨 뜻이야? 너 차례란 말인가? ㅎㅎㅎ
오늘도 방금 일어나서 감여사님 눈치를 보고 있단다.좋은 일요일!

로드무비 2006-04-02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리어 큰소리 치고 뻔뻔하게 나가세요.
그게 저의 전략 아닌 전략이었습니다.
엄마가 걱정하시는 건 이해가 되지만 그것 때문에 수선님
너무 위축되지는 마세요.
에효, 말은 이르케 하지만 참 어려운 문제여요.
아무튼 뻔뻔하게 나가는 게 두루두루 편하고 좋더군요.^^

2006-04-02 1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6-04-02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현실이 너무너무 답답해요..

kleinsusun 2006-04-02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네....제가 위축되면 엄마가 더 불안하겠죠.ㅎㅎ
아줌마들 동창회 하는거 본 적이 있는데요, 대화가 아니라 무슨 모임에서 자기소개 하는 것처럼 돌아가면서 자식자랑을 해요.ㅠㅠ 아....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네요.일단은 뻔뻔하게!^^

다락방님, 가끔은 현실이...답답하죠.가끔은...도망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