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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펫 1~14(완결) 세트
오가와 야요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이 만화를 알게 된건 작년 12월.
작년 8월 입사한 신입사원 W가 말했다.
"대리님, <너는 펫> 알아요? "
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대답했다.
"그게 뭔데?"
"만화책 제목이예요. 대리님, <너는 펫> 주인공 스미레랑 꼭 닮았어요."
W의 말에 <너는 펫>을 한번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잊고 있었다.
일주일 전, 알라딘에서 책구경을 하다가
낡은구두님 서재에서 <너는 펫> 대사를 보고 필 받았다.
그 순간 지름신이 내렸다. 14권이나 되는 만화책을 주문했다.
아무 생각 없이 <너는 펫> 1권을 키득거리며 읽다가
갑자기 얼굴이 후끈거렸다.
주인공 스미레랑 닮았다는 W의 말이 생각났다.
난 그 말이....당근 외모가 닮았다는 말인지 알았다.
그런데....책장을 넘기다 보니
직장에서, 남들에게 보일 땐 "강한 척, 센 척" 하지만
내면은 소심하기 짝이 없고,
작은 실수에도 어쩔 줄 모르며 자신을 들들 볶는 스미레는....
바보 같은 스미레가 하는 짓들은....
누가 나를 미행하고 쓴 것처럼 나랑 똑.같.았.다.
W는 알고 있었구나....
"강한 척, 센 척" 하지만
속으로는 물러 터져서 상처 잘 받는 내 성격을....
<너는 펫>을 읽고 회사에서 W를 보니
약간은 부끄럽기도 했고,
약간은 반갑기도 했고,
약간은....동네 목욕탕에서 갑자기 만난 것처럼....쩍팔리기도 했다.
난 "커리어 우먼"이란 말이 참 싫다.
"커리어 우먼"은 무슨 얼어 죽을 커리어우먼이냐?
단어 자체가 너무 작위적이다.
아마도....여성잡지 같은데서 만들어낸 말일꺼다.
여자건 남자건 자기 밥벌이 자기가 하려면
싫건 좋건 일을 해야 한다.
여자가 일을 하는건 대단한 것도, 멋있는 것도, 특이한 것도 아니고,
그냥 밥 먹고 잠자는 것처럼 당연한 거다.
인수합병 같은 뽀다구 나고 남들보기 대단한 일을 하건,
집에서 인형 눈을 박건....
그런데 여성잡지랑 매스컴은 끊임 없이 왜곡된 이미지들을 생산해낸다.
라인 잘 떨어진 정장을 입고,
머리는 세련된 단발,
눈은 부리부리 야망에 타오르고,
립스틱은 깔끔하고 도발적인 레드,
허리는 꼿꼿하게 세우고
노트북 가방을 야무지게 들고
전투에 임하듯 전방을 향해 걸어가는 커리어 우먼의 모습.
웃.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여자들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미레처럼, 또 나처럼....
행여나 흠이라도 잡히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신경을 바짝 세우고,
작은 실수 하나에 며칠씩 끙끙 앓고,
<지 아이 제인>의 데미 무어처럼 단단한 척은 혼자 다해놓고
집에 오면 긴장감이 확 풀려서 지쳐 쓰러진다.
오랜만에 만화책을 읽으면서 키득키득거렸지만
1~14권까지, 잠시도 편하지 못한 스미레의 모습은
무척이나....안쓰러웠다.
이 만화에는 무척이나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시오리 같은 혐오스러운 여자 캐릭터가 상당히 오래 나와서 거슬리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무척....재미있었다.
<너는 펫>을 읽고 느낀 교훈 하나?
새로운 건 아니지만....
결혼은 역시 "편한 사람"이랑 해야 한다는걸 느꼈다.
같이 있으면 편한 사람.
그 사람에게 잘보이려고 끊임 없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내가 가끔씩 뚱해서 말없이 있어도 자꾸 왜 그러냐고 다구치지 않는 사람.
내가 술취해서 화장 안지우고 잠들어도 귀찮게 하지 않는 사람.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