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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 ㅣ 범우희곡선 16
오태석 지음 / 범우사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희곡집"이다.
그러니까 오태석의 연극 대본 5편이 실려 있다.
희곡을 읽어본 건
대학 3학년 때 <독일희곡론> 교재로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Mutter Courage und ihre Kinder](1939)을 비자발적으로 읽은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나름 연극에 관심이 많았던 고등학교 때는
<유리 동물원>,<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세일즈맨의 죽음> 이런 유명한 희곡들을 읽기도 했었다.
(고등학교 때는 연극에 대한 환상(?) 그런게 있었다. 왜 그랬을까나? 기억이 가물가물...)
사실...희곡을 읽는다는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수업 교재나 연극을 공부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읽을 기회가 아예 없는 책이 희곡집 아닐까?
<장정일의 독서일기 6>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런 책이 있는지도 몰랐을꺼다.
그러니까...이 책을 읽은건 순전히 장정일의 "꼬득임" 때문이다.
'이 말을 하면서, 저 말을 하는' 오태석의 다층적인 극적 조형력은 한국적인 희곡어법을 생각할 때 꼭 집고 넘어가야 할 전범으로, 가나다라를 깨우치고도 <자전거>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를 맛보지 못한 사람이다.'
( 장정일의 독서일기 6, page 14)
정말...강력한 추천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라....
도대체 어떤 희곡이길래 이런 엄청난 칭찬을 할까?
참을 수 없는 궁금함으로 이 책을 주문했다.
그런데...이 책을 읽는건 결코 쉽지 않았다.
희곡을 읽는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대사가 하나 같이 너무 짧아서 그런지,
이해가 되지 않아 몇번씩이나 읽었던 페이지를 다시 읽으면서 그렇게 이 책을 읽었다.
저자 머릿말을 보니
희곡이 어려운 사람은 나만이 아닌 것 같아 위로가 되었다.
희곡집은 잘 읽어지는 책이 아닙니다. 연구를 하거나 공연을 연습한다거나 학점 때문에 공부를 하기 전에는 손에 잡히지 않는 책입니다.생략되거나 비약하는 곳이 많아서 그걸 일일이 메우고 이어 주어야만 되고 행간(行間) 백색(白色) 고랑에 숨겨진 말들을 또 캐낼 줄 알아야 됩니다.
이 희곡집에는 <태>,<자전거>,<사추기> 등
모두 다섯편의 희곡이 실려 있다.
가장 먼저 읽은 작품은 장정일이 강추한 <자전거>.
장정일의 표현대로 '이 말을 하면서,저 말을 하는' 치밀하고 놀라운 다층적 구성과 반전,
비장미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솔직히...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너무 무거워서 부담스러웠다"는게 솔직한 독후감이다.
<태>와 <사추기>는 기성세대 "한국 남자"로서의 시각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어 저항감이 느껴졌고,
<비닐 하우스>와 <초분>은 상당한 인내를 갖고 읽었지만
무슨 얘기를 하는건지 전혀 모르겠다.
특히 <비닐 하우스>는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이 희곡집에 실려있는 작품 해설은 <태>만 해설하고 있어 아쉽다.
치밀하고 놀라운 다층적인 극적 조형력을 갖춘 "훌륭한" 작품이었지만,
내겐 재미가 없었다...는게 유감스럽다.
사족)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언제 느꼈더라?....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 떠올랐던 생각은
몇년 전 낙산사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느꼈던 "위안"과
한국 바다만이 보여주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뭔가 서러운 아름다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