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방콕 가는 비행기에서 이 책을 읽었다.

피곤해서 조금만 읽다가 자려 했는데,
자꾸만 가슴이 짠~해서,
좀 약게,영악하게 살려고 억지로 꼭꼭 눌러둔 감정이 자꾸만 벅차 올라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알라딘 서재의 야클님이 이 책을 읽고 쓴 리뷰에서
" 읽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착해지는 책 " 이란 표현을 썼는데,
정말 마음이 훈훈하게 덥혀지는,
모질게 마음먹고 얼리려 했던 마음이 무장해제 당하는 느낌이었다.

"솔직한 글은 힘이 세다"
좋은 글을 읽을 때 마다 항상 느낀다.

영어가 서툰 사람들은 짧게 할 수 있는 말을 길게 한다.
적확한 단어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단어를 설명해야 한다.
또 설명이 잘 안되니까 항상 예를 든다.
For example....

글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면,
안다해도 흐릿하게 알고 있으면 글이 길어진다.
또 읽기 어려운 글이 된다.
왜냐면....자기가 쓰면서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글이 길어지고,인용을 많이 하고, 무슨 말을 하려했는지 헛갈리게 된다.

문학작품을 소개하면서,
그것도 쉽지도 않은 고전을 소개하면서,
글의 어느 한 귀퉁이에서도 현학적인 표현을 볼 수가 없다.

장영희 선생님의 개인적 체험과
너무도 사소해서 흘려 버리는 우리들의 일상에서 건져올린 이미지,
그 이미지가 불러내는 고전들.

문학과 삶이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왜 우리에게 문학이 필요한지를
장영희 선생님 보다 더 절절하게 전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읽다가 울컥한 적이 있다.
셔우드 앤더슨(Sherwood Anderson)의 <<와인즈버그,오하이오 Winesburg,Ohio>>를 소개한 산문 <마음의 전령 '손'>을 읽다가...

......건우와 내가 함께 손을 잡고 걷고 있는 그림이었다.사실 그것은 조금 슬픈 그림이었다. 건우는 나와 함께 걸을 때마다 손을 잡고 싶어 하지만 내가 목발을 잡아야 하니 손을 잡지 못하는데다가 혹시 내가 걸려 넘어질까 봐 옆에서 가까이 걷지도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그러니 건우는 늘 내 뒤를 바짝 따라오면서 좀 어색하게 느꼈던 모양이다.
일생 동안 목발을 짚고 다녔으니 이젠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가끔 불편을 느끼는 것은 목발 자체가 아니라 걸으면서 양손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이다.....
(p191)

초등학교 2학년짜리 조카 건우가 그린
"내 손잡은 둘째 이모"란 그림을 보고 한 장영희 선생님의 고백이다.

아...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목발을 짚으면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나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조카랑 손을 잡고 걸을 수 없는
장영희 선생님의 독백을 읽으면서
옛날 남자친구가 생각났다.

그 사람은...뚜벅이었다.
그냥 차가 없는 단순 뚜벅이가 아니라
요즘 세상에 찾아보기 힘든,운전면허가 없는 뚜벅이의 지존이었다.

워낙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차를 불필요한 물건으로 생각했다.
나 또한 술을 좋아했기에
사실 우리의 데이트에는 차가 필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 사람이 뚜벅이라는 이유만으로 구박을 했다.
얼마나 게으르면 운전면허가 없냐고....
(내 구박에 그 사람은 운전면허를 땄다.결국....남 좋은 일만 시켰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현재에 감사하기 보다는
지금 없는 것을 생각하는데 마음을 쓴다.

원하던 차를 사면 더 큰 차를 사고 싶고,
원하던 큰 차를 사면 더 큰 차를 사고 싶고,
더 큰 차를 사면 모터쇼에서 본 렉서스가 어른거리고...

지금 여기, 이 순간에 감사할 줄 안다면
지금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다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사랑하는 너에게>라는 제목의
졸업하는 제자에게 쓴 장영희 선생님의 편지를 읽으면서도
가슴이 벅찼다.
마치 내가 직접 받은 편지 같았다.

그리고 삶이 너무나 힘들다고 생각될 때,
나는 고통 속에서도 투혼을 가지고 인내하는 용기,
하나의 목표를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능력과 재능을 발휘해
포기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너의 삶의 방식을 믿는다.
절망으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걸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스토우 부인은
"어려움이 닥치고 모든 일이 어긋난다고 느낄 때,이제 1분도 더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그래도 포기하지 말라.바로 그 때,바로 그 곳에서 다시 기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우리에게 충고한다.
(p156)

장영희 선생님의 책을 읽고 생각했다.
나도 조금이나마  다른 사람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면.......

댓글(9)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5-05-07 2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5-08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이미 다른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글을 쓰고 계세요. 수선님은......
문학의 숲이라는 표현이 진부해서 땡기지 않았는데 읽어봐야 할 것 같네요.
그토록 위안이 된다니!^^

kleinsusun 2005-05-08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제목이 진부하긴 해요.또 일간지에 연재했던 글들이라 읽었던 것도 있구요.
근데....솔직하고 가식 없는 글들이, 마음을 툭툭 건드리거든요.
야클님 말대로 조금은 마음이 착해지는 책이랍니다.^^

바람돌이 2005-05-08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마음이 착해지는 책 저 싫어요. 전 누가 저보고 착하다고 하면 일단 경계부터 한답니다. 저 인간이 나한테 뭐 시킬려고 저러나...ㅋㅋ
서재 보관함에는 넣어둔 책인데(알라디너들의 평이 좋아서리..) 근데 영 아직도 안 땡기네요. 읽을까 말까... 애고 고민되네요

kleinsusun 2005-05-09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착하다는 말 듣는거 부담스럴 때 많죠. 특히 회사에서...^^
고민되시면....인터넷으로 몇개 읽어보세요. 예전에 신문에 연재했던 글들이라 인터넷에서 읽으실 수 있거든요. 좋은 한주 시작하세요!

코마개 2005-05-09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한 영화, 착한책, 감동적인 책, 감동적인 영화 싫어! 투덜 스머프 버젼...

톡톡캔디 2005-06-20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산도 쓸 수 없더라구요 ㅠ.ㅠ

2005-08-02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8-02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