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cm 예술
김점선 지음, 그림 / 마음산책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 읽으면서 통쾌했다.
나도 김점선처럼 좀 "자기 확신"에 차서,
"독한 년" 소리 들으면서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엉뚱하지만 고집있게 그렇게 좀 살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하느님이 김점선의 삶을 내것과 바꿔 준다고 하면
나는 겁이 나서 사양할거다.
김점선의 스승, 김상유 선생님은 제자들에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그런 게 아니다. 집에서 탄 돈으로 물감 사서 기분 나는 대로 물감칠을 하면 그게 예술인 줄 아느냐?
너희들이 정말 예술가가 되고 싶으면 결혼해라.백마 탄 왕자가 아닌 아주 가난한 사람과.얼음물을 손에 넣고 기저귀를 빨고,시장에서 콩나물 값을 깍으며 사는 고난을 이겨내고 나서도 그림을 그려야지...지금처럼 살면 너희들은 기생충이다.부모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이다."(p43)
이 말을 듣고 김점선은 결혼했다. 그것도 한달 안에...
선생님의 뜻에 꼭 맞는 가난한 남자와...
콩나물 값을 깍는 정도가 아니라 콩나물 값도 없어서 산에서 나물을 뜯어 먹고 정부미를 먹으며 살았다.
남편은 백수에 알콜중독이었다.
모든 일에는 댓가가 있다.
어떤 "선택"을 하면 그 선택에 맞는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무서워서 결정을 잘 못한다.
항상 망설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래서 아직 결혼을 안했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김점선이 만약 뜨리뜨리한 집안의 며느리였다면
지금처럼 눈치 안보고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원색으로 넘쳐 흐르는 김점선의 그림처럼 야생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지금처럼 퉁퉁거리며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살 수 있었을까?
나는 내 남편이 내가 빨리 안 죽어서 잠깐 개로 태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내겐 생을 정리할 삼십 년이 필요하다.나는 남편보다 삼십 년 늦게 죽을 것이다.그 개는 삼십 년쯤 살게 될 것이다.
남편은 아천리 어떤 집, 내가 가끔 놀러 가는 집에 개로 태어나 있다가 가끔 내가 가면 우리는 초감성으로 만난다.내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개도 굶어 숨을 거둔다.우리는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같은 해 같은 동네에서, 우리는 세 살 때부터 손잡고 프리스쿨에 다닌다.우리는 백 년 동안 싸우지 않고 무지무지 좋아하며 산다.사랑은 당대에 완성되지 않는다.
(p140)
다른 여자들처럼
"여보, 조금만 기다리세요! 함께 가지 못해서 미안해요.
저도 곧 당신 계신 곳으로 갈께요."
라고 말하지 않고,
자신은 현생에서 30년이 더 필요하니,
남편이 개로 태어나서 30년을 기다리다가
다음 생에 둘이 무지무지 좋아하며 100년 동안 산다는 자신감, 사랑에 대한 확신.
이 여자....정말 쿨하다.
대학원에 가겠다는 김점선에게 아버지가 한푼도 주지 않겠다고 하자
김점선은 동생들을 다 모아놓고 말했다.
"너희들은 오늘부터 다 학교를 자퇴해라.너희들의 월사금은 다 내가 쓰겠다.너희들 중 한 놈도 밤새워 공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우수한 놈도 없고,학문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놈도 없다.미래에 대한 야망도 없는 너희들은 어정쩡한 놈들이다.그러니 너희가 돈을 쓰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낭비다.너희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교통표지판과 날아오는 고지서만 읽을 줄 알면 충분하다.너희들은 이미 한글을 깨쳤으니 그만 공부해라.그렇지만 나는 너무나 우수하다.지금 공부를 중단한다는 것은 민족 자원의 훼손이다.내 민족의 장래에 먹구름이 끼는 것이다.그러니 너희들이 더 이상 돈을 안 쓰는 것은 애국 애족하는 길이다."(p56)
우하하하.
동생들 공부시키려고 누이는 공부를 포기하고 한 헌신하는 것이 정상으로 인식되던 시대에(김점선은 46년생이다) 김점선은 정말 통쾌한 역습을 했다.
김점선의 책을 읽고 있으니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건강한 자의식에서 나오는 통쾌함과 후련함.
한 바탕 운동을 하고 땀을 짝 흘린 기분이다.
김점선이랑 한 살 차이인 우리 엄마.
제발 김점선 아줌마의 반의 반의 반의 반만이라도 이기적이었으면 좋겠다.
김점선은 말한다.
두 팔을 하늘 높이 쳐들고 만세를 부르자.
만세를 부르면 회색빛 심장이 뚝 떨어져 나간다.어떤 치욕이 우리를 짓누를지라도 우리는 벌떡 일어서 만세를 부르자.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도 힘들다고 징징 울지 말자.일어나서 만세를 부르자.몸에서 툭 소리를 내며 고통이 떨어져나간다."(p18)
만세를 부르자구.만세!만세!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