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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그 마음들을 - 황인숙의 엉뚱한 책읽기
황인숙 지음 / 이다미디어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난 시를 거의 읽지 않는다.
그래서...황인숙이란 시인을 몰랐다.
시인 조은을 산문집을 통해서 알게된 것처럼,
시인 황인숙은 독서일기 <이제 다시 그 마음들을>을 통해 알았다.
이 책의 부제는 "황인숙의 엉뚱한 책읽기"인데,
실망스럽게도 전혀 엉뚱하지도 쌩뚱맞지도 엽기적이지도 않다.
그냥 평범한, 나름대로 재미있는 "독서 에세이"다.
총 38편의 독서 에세이가 실려 있다.
이 책을 읽고 찜한 책이 몇권 있다.
<나 이뻐?> - 도리스 되리
<삶의 철학산책> - 드 보통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여자 이야기> - 유동영/허민경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 김형경
<10cm 예술> - 김점선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58> - 로저 로젠블라트
<앙겔루스 노부스> - 진중권
부담 없이, 그리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독서 에세이다.
저자의 일상과 독서, 그 사이의 여러가지 방정식들이 맛깔스럽게 버무려져 있다.
그런데.... 38편 중 브렌다 애버디언의 <내 신발이 어디로 갔을까>를 읽고 쓴 "당신 부모의 부모가 된다는 것"이란 제목의 에세이를 읽다가 흥분했다. 화도 났다.
책의 앞날개에 있는 저자 소개에 이렇게 써 있다.
길들여지는,경직된 관념을 아주 꺼려하는 황인숙은 기복심한 세상 한가운데 서서,때로는 침울하게 때로는 삶 사이를 팔랑거리며 치열하게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경직된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가부장제 사회의 가족제도에 길들여져 있는 것 같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치매 노인 전문 요양 시설로 아버지를 모신 체험을 말하는
<내 신발이 어디로 갔을까>를 읽은 황인숙은
치매를 앓던 자신의 어머니를 시설로 모신 아픈 얘기를 한다.
아,어머니를 그곳에 보낸 죄책감을 씻을 날이 올까? 나는 제법 합리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우리 형편에 맞춰 치매 노인 전문도 아닌 그 시설에 맡긴 것 자체에 대해 회의하지는 않는다.내 가슴을 할퀴는 것은 내 어머니가 집에서 돌보지 못할 정도로 과연 증세가 심각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다.(p157)
황인숙은 솔직하다.
아픈 얘기를 꾸밈 없이 들려준다.
그런데...
독신으로 살고 있는 58년생 시인 황인숙은
가부장제 사회의 가족제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모든 책임과 의무를 장남과 큰 며느리에게 통째로 떠넘기는
잔인한 가족제도에 아무런 비판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올케는 8개월 동안 치매를 앓는 내 어머니를 모셨다.그토록 힘들어하고 그토록 불행해하며.올케가 많이 힘든 시간을 보낸 것에는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그 시간에 전혀 사랑이 없었다는 건 한스럽다.그리고 내가 좀더 많은 시간 올케의 수고를 나누지 못한 게 후회된다.8개월 동안 어머니를 존중하고 사랑했으면 어머니를 시설에 보낸 것이 덜 죄스러울 것이다.(p158)
어머니를 모시는게 장남과 큰며느리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걸까?
올케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그 시간에 사랑이 없었다는게 한스럽다고?
이 글을 올케가 읽는다면 얼마나 화가 날까?
황인숙은 올케의 수고를 "나누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말한다.
어머니를 모시는 건, 그것도 치매노인을 모시는 건,
며느리의 의무도 아니고, 천형도 아니고,
며느리에게만 주어진 "수고"도 아니다.
올케의 수고를 "나누지 못한 걸" 후회하기 보다는,
자신이 직접 엄마를 모시지 않은 걸 후회해야 되는게 아닐까?
설마....딸은 부모를 모실 의무는 없고, 올케에게 입바른 소리를 할 권리는 있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작년에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가 베스트셀러였다.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인 시대... 안타깝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장남정신의 회복"이 아니라,
딸,아들,첫째,막내 구별 없이 모두 의무를 나누어 가지는 거다.
황인숙의 엉뚱한 책읽기를 읽고,
나야 말로 엉뚱한 책읽기를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