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첫번째 일주일을 보냈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늘상 부지런을 떤다.담배를 끊는다고 호들갑을 떨고, 헬스클럽은 새로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도 터져나갈 것 같고, 외국어 공부를 한다고 출근길에 이어폰을 낀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다.그런데 난....이상하게 피곤하고 무기력했다. 오히려 평소 때 보다 더 처져있었다.어제 아침에 난 좀 쉬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휴가를 냈다. 1월 10일 월요일.여름휴가를 빼고 별도의 휴가를 낸건 처음 있는 일이다. 요즘엔 휴가도 근태시스템에 입력하고 전자결재를 받아야 한다.가끔 헛갈린다. 이게 디지털 세상인지 귀찮은 세상인지...근태시스템에 들어가면 일단 휴가 날짜를 지정해야 한다.1월 10일 월요일 클릭. 그 다음 휴가 종류를 지정해야 한다.참...일년에 휴가 며칠 되지도 않으면서 휴가 종류는 디따 많다."연차" 클릭. 사실 보건휴가(생리휴가)를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연차를 선택했다. 사업부 전체에서 여자는 나 하나 밖에 없다. 한번 써본 적도 없는 보건휴가 한번 냈다가 " 여자들은...." 이런 말 듣고 싶지 않다.그 다음 휴가 사유를 입력해야 한다.난 잠시 망설였다. 뭐라고 쓰지? "가사"라고 쓸까? 근데 "가사"라고 쓰면 팀장이 뭔 일이냐고 또 꼬치꼬치 묻는다.참...자기 연차 자기가 쓴다는데 뭔 일이냐고 묻는 팀장도 그렇지만 이런 질문에 자세히 대답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하다.얼마전 울팀 대리 하나가 연차를 냈었는데 팀장이 뭔 일이냐고 물으니까옆에서 듣는 사람이 짜증이 날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했다.그래서....난 "몸살"이라고 썼다. 채울 칸을 다 채우고 "상신" 클릭. 한 10분 쯤 지났을까? 팀장이 자지러지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난 일하면서 생각했다. '아침 부터 뭐가 저렇게 웃길까? 쩝' 팀장은 자지러지게 웃다가 여전히 껄껄거리며 누군가를 불렀다.나를 부르는 소리였다.난 "네" 대답하고 팀장 자리로 갔다.팀장은 여전히 킥킥거리며 말했다."넌 몸살도 예약하냐?"난 순간 당황했다.잠시 침묵.... 팀장 : 넌 몸살도 예약하냐? 주말에 푹 쉬면 되지 월요일에 몸살이야? 우하하.수선 : 그게....몸살이 좀 심해서요.팀장 : 아프긴 정말 아프냐? 얼굴은 멀쩡한데...수선 : 참고 있는거예요. 팀장 : 마음이 아픈거 아니야? 으허허.수선 : (강경하게) 아니라니까요. 이렇게 해서 결재가 완료되었다.참.... 휴가 하루 내는게 이렇게 힘들어서야...생각해 보니 나도 참 미련하다.그냥 가사라고 쓰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면 외할머니 팔순 이런 모범답안을 말하면 되는데...어쨌든 3일을 쉬게 되었다. 내일 아빠가 등산을 가신다고 같이 가자고 한다.일기예보를 보니 오늘 내일은 가장 추운 날이라고 한다.영하 10도라나...등산 갔다가 정말로 몸살 나는거 아닐까?그래서 황금같은 휴가에 정말 몸살로 누워 있는거 아닐까? 몸살예약.우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