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남자들만 산다
고은광순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 정말 cool하다.
근데...책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표지가 정말 엉망이다.
책 내용은 너무도 치열하고 진보적인데,
책 표지는 너무 구태의연하다.
세상에.... 저자가 빨간색 홈드레스 차림에 고무장갑을 끼고 노란색 확성기를 들고 있다. 트럭 세워놓고 생선 파는 아저씨가 "생~선, 생~선 왔어요!" 소리칠 때 쓰는 손잡이 달린 마이크.

표지를 디자인한 사람은(디자이너라는 말이 안나온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그림을 넣었을까?
혹시 이런 쾌쾌묵은 짝짓기를?

여자 - 앞치마, 고무장갑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자 - 앞치마,고무장갑 + 확성기


이런 생각이라면.... 한숨이 나온다.

근데...표지 때문에 이 책을 평가절하하면 안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진정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 책을 12월 31일에 다 읽었으니,
04년 마지막 읽은 책이다.

12월 31일.
종무식이 시작되기 30분 쯤 전이었다.
내 책상에는 이 책이 살포시 놓여 있었다.

상무님이 지나가시다가 이 책을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상무님 : (표지에 있는 저자 이름을 가리키며) 이 여자는 이름이 세글자야?
수선 : 아니요, 부모성 함께 쓰는거예요.
이름이 세 글자가 아니라 성이 두개예요.
상무님 : (뜨악한 얼굴로) 필명이지? 설마 호적을 바꾼건 아니지?
수선 : (신나하며) 호적 바꿨는데요.
상무님 : 아니 호적상에 성을 두개로 바꾸는게 가능하단 말이야?
세상 좋아졌다.세상 좋아졌어.
수선 : 그럼요, 호주제가 폐지되면 엄마성만 쓸 수도 있어요.
부모의 성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거죠.
상무님 : 뭐야? 아니 미국에서도 다 아버지 성을 쓰는 판에 무슨
소리야?
수선 : (그만 대꾸하라는 주위의 시선을 느끼며 잠시 침묵)
상무님 : 성을 마음대로 바꾸면 사회 질서가 흔들리지.
이 여자나 그렇게 살라 그래!

아....이것이 종무식을 30분 앞둔 상무님과 성대리의 대화였다.

"호주제 폐지"에 대부분의 남자들은 "발끈"한다.
호주제 폐지를 외치는 여자들은 대부분 이혼녀라고 말한다.
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멀쩡한 법을 왜 뜯어 고치냐고 말한다.
미국에서도 아버지 성을 따르고, 심지어 결혼하면 남편성을 쓰는데
왜 자기 성을 쓰는 한국에서 이 난리냐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미국에서는 아버지 성을 따르는 관습이 지금도 있으나 법적으로는 대부분의 주에서 부모의 협의에 의해 자유로이 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결혼 후 남편의 성을 쓰는 것도 관습일 뿐이어서 부부가 새로운 성을 쓰거나 결혼 후에도 자기 성을 고수하는 경우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영국도 마찬가지며 캐나다 정부는 결혼 후 성을 바꾸지 말도록 강력히 권장하고 있다.
일본도 1991년에 법을 바꾸어 부모 성 중에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p97)

외국에서도 그러니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게 아니다.
아들만이 대를 이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몰상식이 만연한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행을 당할 수 밖에 없다.

여성계에서 부계 성씨를 싹 무시하고 모계 성씨를 쓰자고 선동을 하고 있는게 아니다. 부계 성씨 사용이 강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보다 행복한 세상을 위하여.

그냥, 막무가내로, 기존의 질서가 깨질까봐
조바심을 내며 짜증내지 말고,
귀를 크게 열고 들어 보아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
<복음과 상황> 인터뷰 전문기자 지유철님과의 인터뷰 이야기다.

인터뷰 시작 전에 늘 하듯이 오신 분들에게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에서 만든 홍보엽서 8종을 드린 뒤 강아지 엽서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냐고 물었다......(중략)......

"음음,어,뭐랄까.이걸 보면 어,만든 사람들의 뭐랄까....,만든 사람들의 어떤 절박한 마음 같은 것이 느껴지면서..."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입술이 씰룩거려져서 결국 인터뷰를 눈물 바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한번 터진 눈물 창고가 수시로 터지는 바람에 정말 고약한 인터뷰가 되었다.
(p180~182)

많안 남자들은, 또 자신은 여성운동에 관심 없다고 말하는 많은 여자들은 페미니스트들이 억척스럽고 독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억척스럽고 독해서 그렇게 목이 터져라 외친게 아니다.
절박해서였다. 절박해서.
그 절박함이 다가와 마음이 아팠다.

이제 곧 행복한 소식을 들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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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05 0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5-01-05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주제 폐지는 관습법 위반이래요. 위헌인거죠.^^

법률보다 무서운 게 관습이란 거잖아요. 저 상무님도 그런 관습에 젖어 사는 거죠. 곧... 은 안 되겠지만,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같애요. 물론, 절박한 사람들의 눈물을 먹고 그 관습이 밀려나는 것이겠지만, 남자 위주의 사회란 관습 자체가 이런 것들을 바라보는 눈을 삐뚤게 만들기 때문이겠지요.

marine 2005-01-05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빠나 남친이 자주 쓰는 말입니다 뭐뭐를 마음대로 바꾸면 사회가 흔들리지... 전 그 바꾸는 걸 진보, 즉 발전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명 보수라는 분들은 사회의 안정성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하더라구요 가끔은 답답해서 숨막힌다는 생각도 들어요...

kleinsusun 2005-01-05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주제 폐지가 관습법 위반이므로 위헌이라는 것은,

유림들이 "수도 이전"이 관습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위헌" 판정을 받자,

그럼 호주제 페지도 관습법 위반이 아니냐고 제소를 한 거예요.



일단...."관습법"이라는 자체가 웃긴 거죠.

성문법이 있는 나라에서 관습법 타령을 하다니...



글쿠, 설사 관습법을 인정한다 치더라도

호주제는 관습법이 아니랍니다.

호주제 자체가 일제 시대 때 생긴 거니까요.

100년도 안된, 그것도 일본에 의해서 생긴 제도를 "관습법"에 해당된다고 할 수는 없겠죠.



"남자 위주의 사회"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나요?

가부장이라는 역할을 버거워 하는 남자들도 또 얼마나 많나요?

남자들도, 여자들도, 어느 집단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트렌스 젠더들도

모두모두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드팀전 2005-01-05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주제 없어진다고 별일 생기는 것도 아닌데 난리지요.^^ 일단 하나씩 하나씩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희망이고 진보아니겠습니까.역사의 흐름을 어찌 구식 무기들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드팀전 2005-01-05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보니 여기는 페미니즘난이 따로 있군요.님의 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인듯합니다.

벨훅스의 <행복한 페미니즘>에 대한 마태우스님과 복돌이님의의 논의가 문득 떠오르는군요.전 개인적으로 벨훅스의 주류페미니즘 비판에 동의하는 편이었는데... 뭐 한국정치의 비판적 지지에 대한 논의흐름과 비슷했던 기억이 납니다.아직 보시기 전이라면 추천합니다.마태우스님은 추천에 반대했지만...

kleinsusun 2005-01-06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페미니즘>읽었어요.

Feminism is for everyone 이란 원제에 충실한,

어렵지도 않고 군더더기도 없는 아주 "산뜻한" 책인 것 같아요.

페미니즘이 "反 남성주의"라는 선입견에 페미란 단어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분들께 추천하고픈 책이예요.

kleinsusun 2005-01-06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드팀전님, 님이 쓰신 <행복한 페미니즘> 리뷰 읽고 눈물이 핑 돌 것 같아요.

"세상의 거대한 소수자" 그 무심한 듯 하면서도 적확한 표현......가슴에 정면으로 와닿아요. 강사에게 카드 한장 보낼 수 있는 드팀전님의 마음씀도 잔잔한 감동을 주네요.

수퍼겜보이 2005-05-02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웬디수녀 리뷰 보고 놀러왔어요. :) 역시 예리한 리뷰들이 잔뜩 있네요. 뒷북이지만 스페인어를 쓰는 문화권에서는 자녀들은이부모의 양쪽 성을 다 쓰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