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5시쯤에 팀 회의를 했다.
팀장은 무척이나 회의를 좋아한다.
회의 횟수로는 단연 "짱".
communication 기술로는 "삐꾸".

중요한 착각도 하고 있다.
자신은 "open mind" 라나? 

이건 정말.....치명적이다.

그 흔한 공주병.
좋다.자신감을 가지고 삶을 즐겁게 살 수 있으니까. 가끔 "따"가 되더라도.

그 흔한 왕자병.
좋다. 컴플렉스에 쌓여서 베베 꼬인 것 보다 100배 낫다.

그런데..... "open mind"라는 착각은
주위 사람들을 멍들게 한다.

주위에서 보기엔 귀를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파도 
사오정 수준이 겨우 될 것 같은데 
"open mind"라니...

울 팀장은 이렇게 말한다.
" 난 항상 열려 있는 사람이야."

차라리 태평로 노숙자 아저씨가
"난 식물과 대화할 수 있어."
이렇게 말하는 게 보다 설득력이 있을 거 같다.   
 
어제 팀 회의에서 난 "투명인간"이 되었다.

정보공유를 한다며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가 팀장이 말했다.
"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우리 사업부에 05년 과장 진급 대상이 5명입니다.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5명 모두가 진급할 수 있도록 상무님을 비롯해서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들으면서 생각했다. 이런 말 왜 하지? 그거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지?
역시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 본론은 뒤에 나왔다.

" K 대리의 경우, 내후년 진급대상입니다.
 그 동안 내년 진급 대상자들 우선으로 고과를 주느라 K 대리는 항상 C를 받아 왔습니다.
 고과가 계속 나빠서 이대로는 내후년에도 과장 되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OOO상 수상자로 K대리를 추천, 선정되었습니다.
  OOO 수상자는 상금 500만원과 특진을 하게 됩니다. "

사람들 뜨악한 표정.
잠시의 침묵....

" 모두 다함께 축하해 줍시다."

힘 없고 뜨악한 박수..... 짝짝짝. 

동료가 상을 받으면 기뻐해 줘야 한다.
암..... 내 일처럼 기뻐야 줘야지.
그런데..... 난 투명인간인가?

난 영광(?)의 OOO상 수상자인 K대리와 호봉이 똑 같다.
즉, 나도 06년 진급 대상자다.
05년 진급 대상자가 5명인 덕분에 나도 쭈~욱 C를 받아 왔다.
그런데 K 대리에게 OOO상을 주고 특진까지 시키면 나는 뭐지?

나는 고과 C를 비타민 C를 선물 받듯이 감사하게 받으며
K대리를 K과장님으로 불러야 하는가?
나는 울 회사 영업사원 중 유일한 여자다.
고로 나는 쭈~욱 C를 받다가 시집가면 된다는 건가?

어제 회의에서 나는 투명인간이 된 것 같았다.
사무실에서 뚜껑 열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일찍 퇴근했다.
오랜만에 수경이를 만났다.
대화 중에 수경이가 말했다.

수경 : 야. 내가 니 홈페이지 맨날 들어간다.
       근데....너... 글들 진짜 솔직하더라. 너네 팀장이라도 보면 어쩌려구?
       회사 사람들 안 들어 오냐?
수선 : (머쓱하게) 뭐....친한 사람 몇 명 들어오긴 하는데....
       몰라....

그렇다. 모른다.
open된 공간인 만큼 아무나 볼 수 있다.
그런데....
고과가 더 이상 나빠질 수는 없다. 우하하.

분노, 허탈함, 부끄러움... 이런 저런 감정들이 
엄마가 제사 음식 남은걸 처리하기 위해 끓이는
잡탕찌개처럼 막 섞여 있다.

지진과 해일로 55,000명이 죽고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삶의 기반을 잃었다.
이 와중에 "No Problem!"을 되풀이 하는 Dina를 욕하며,
아픔을 함께 나누자고 외치던 수선.

그들의 그 엄청난 아픔 보다
나의 고과에 더 연연해 하며
팀장의 만행에 부들부들 떨고 있다.

아....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이중성이여....

상상 속에서 난 팀장과 상무님에게
온갖 깐죽 거리는 말들을 하며
속 시원하게 따지고 안녕이라고 말한다.

현실은?
도저히 일할 기분이 안 들어서 오전 내내 태업을 하다가
답장해야 할 수 많은 메일과 발표 준비에
꼬리를 내리며 일을 시작한다.

어제 난 투명인간이 되었다.
그리고....이렇게 한 해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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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2-29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만행이로군요. 그의 처사!

자기 입으로 오픈 마인드 외치는 사람치고 정말 오픈 마인드인 사람

못 봤어요.

고과 C를 비타민 C 받듯이...

수선님의 유머는 어떤 상황에서도 빛을 잃지 않습니다.^^

kleinsusun 2004-12-29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하도 스트레스를 받았더니 다리가 다 저려요.

답장을 기다리는 메일들이 밀려 있는데 정말 일하기가 싫어요.

화내면 저만 손해겠죠? 기운 내야쥐.아자!


세벌식자판 2004-12-29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그래도 글을 마음껏 쓰시다가 그분(?)들이 다 보면 어떻하시려구...

기분 푸세요. 저는 [내 서재] 챙겨 쓰다가 혹시나 주변 사람들과 관계있는 글을

쓰면 무척이나 마음에 걸리던데...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여기를 자주 들락거리진

않을까 하구요.



아무튼 기분 푸세요~~~

kleinsusun 2004-12-29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벌식 자판님, 감사합니다.

근데요..... 은근히 그분(?) 들이 봤으면 하는 마음이 한 구석에....ㅋㅋ

야클 2004-12-29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수선님답게 Cool하게 웃고 새해 맞이하세요.  ^^

다른데 가시더라도 대한민국직장들이 다 그렇고 그렇지 않겠어요? ^^

 




kleinsusun 2004-12-29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하하. 또다른 그색히.....

맞아요. 어데가나 그색히가 있죠. 허무한 웃음.ㅋㅋ

바람돌이 2004-12-30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대로 인사도 안하고 댓글만 한 두번 올린 것 같은데 쩝... 어쨌든 안녕하세요. 님의 글은 항상 생기가 넘치네요. 이렇게 열받는 상황을 얘기할 때도요.

일반회사생활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저에겐 수선님의 생활글을 보는게 거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수준이예요.

전 학교에 있는데 학교라는 공간이 인간관계면에서는 1차 집단의 특징을 많이 보이죠. 아이들과는 오로지 1차집단, 동료들과는 구분지어서 1차집단과 2차집단으로 분류.

여기도 사람사는데라 님이 말하는 그런 사람들 많지만 또 좋은건 승진에 관심을 끊을 수 있다는거죠... 거기에 관심끊고 살면 내 할말 다하고 맘에 안드는 사람 형식적인 관계 유지하고 그러는게 가능하다는게 저같이 어리버리한 사람에겐 좋은곳인것 같아요. 학교는 약간 정지되어 있는 느낌이 들때가 많죠. 그리 새로운 일들이 많지는 않거든요. 일상의 반복이죠..

오늘 수선님의 글을 보니 세상이 전쟁터라는게 새삼스럽게 실감나네요

힘내세요. 세상이 치사해도 뽄대나게 이기세요. 세상이 아무리 치사해도 난공불락은 아닐거예요

kleinsusun 2004-12-30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당! 바람돌이님의 말을 들으니 힘이나요!!!

세상이 치사해도 "뽄대나게" 이기세요. 네, 항상 당당하게! "뽄대나게!" 살겠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라구요? ㅋㅋ 넘 재미있는 표현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