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알라딘 야클님의 "책 없는 서재"에서
"가슴 뭉클한 책"이란 제목의 리뷰를 읽었다.
장영희의 <내 생애 단 한번>을 읽고 쓴 리뷰였다.

난 야클님의 서재를 좋아한다.

야클님은 알라딘의 인기 서재 주인장들처럼 글을 유려하게 잘 쓰지는 못한다.
책을 많이 읽지도 못한다.
하지만 야클님의 글은 참 솔직담백하고 공감이 느껴진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지만,
회사원의 그 꽉 짜인 바쁜 일상 속에서
책을 읽고 글을 끄적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건조해지지 않으려고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하는
자신의 일상에 대해 투덜투덜 말하지만 그 속에서 기쁨이 느껴지는 그런 글들을 쓰는,
야클님이란 사람은 자신의 일상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다.

야클님의 리뷰를 읽고 <내 생애 단 한번>을 주문했다.
학교 다닐 때, 장영희 선생님을 자주 봤다.
장영희 선생님은 주로 영문과 전공과목을 담당하셨기 때문에
수업을 들어 본 적은 없지만,
선생님이 계단 많은 건물을 목발을 짚고 올라 가시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표정은 항상 밝았던 것 같다.

야클님의 리뷰를 읽고 책을 주문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장영희 선생님의 '문학의 숲' 칼럼을 자주 읽었었다.
잔잔한 일상에서 잡아낸 생각거리에 문학 작품들을 하나씩 불러와
조용히 얘기를 하듯이 쓴 그런 아기자기한 칼럼들이었다.
<내 생에 단 한번>도 이런 칼럼들을 묶은 수준의 책이 아닐까?
그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내 생에 단 한번>을 읽으면서,
끊임 없이 '부끄러움'을 느꼈고
삶을 향한 지치지 않는 '열정'을 느꼈고,
책장을 넘기면서 쏟아지는 '사랑'을 느꼈고,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일상의 수 많은 소소한 사건들을
애정을 담아서 풀어내는 그 '따뜻한 시선'에 깊은 감사를 느꼈다.

무엇보다도 '솔직한 글은 힘이 세다'는걸 느꼈다.
감동을 주는 글들은 솔직하다.

"나 잘났어!" 떠드는 "성공시대"류의 책들은
반짝 읽는 이들에게 긴장을 주긴 하지만 곧 잊혀진다.
장영희 선생님의 글들은 정말로 솔.직.하.다.
에세이 한편 한편이 따끈따끈한 일상과 지나친 기억에서 잡아낸
솔직한 자기고백들로 가득하다.

난 장영희 선생님이 목발을 짚고 계단을 올라가시는걸 많이 봤지만
장애가 그토록 한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꿈에서도 목발을 짚고 걷는,
수많은 장애와 벽들에 끊임 없이 부딪히게 하는,
그런 "거대함" 이라는 걸 느끼지 못했다.

장영희 선생님은 항상 웃는 얼굴이었고,
장애를 훌쩍 넘어선 '잘난 여자'로만 보였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
화장실에 데려다 주려고 엄마가 쉬는 시간 마다 오셨다는,
초조함 때문인지 엄마가 집에 가고 나면 가기 싫었던 화장실이 그렇게 가고 싶었다는 고백.

동생이 명동에 옷 구경을 가자고 해서 같이 갔다가
옷가게의 턱이 높아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주인이
"나중에 와요! 지금 손님 있는 거 안보여요?"
"나중에 오라니까요. 지금 잔돈 없다니까...."
했다는, 그러니까 거지 취급을 받았다는 고백.
그래서 자신에게 배우는 학생들의 자존심을 위해서 화장을 하고 정장을 입는다는 고백.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이 번번히 거절되었다는,
Y대 영문과 박사과정 면접을 보러 갔는데
(이 떄 서강대에는 박사과정이 없었단다)
면접관들이 목발을 흩어 보면서
"저희는 학부에도 장애인 입학은 허용되지 않습니다.하물며 박사과정에서야..."
라는 "명백한 거절"의 말을 듣고,
집에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가고자 영화 "킹콩"을 보러 갔는데
사회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킹콩"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느꼈다는 고백.
(이 부분에서 나는 막 화가 났다. 이 때는 70년대니까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신학과와 사회사업학과가 있는 대학에서 장애인 입학을 거부했다는 웃기는 짬뽕 같은 얘기.
사회사업학과는 사지 멀쩡한 애들의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서 필요한 과인가? )

장영희 선생님의 너무도 솔직한 자기 고백은 책에 가득 넘쳐 난다.
장영희 선생님은 결코 절망하지 않았다.
그 때 마다 일어서고 또 일어서서,
세상에 "따뜻함"을 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글을 쓰신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런데....
장영희 선생님이 얼마 전 또 다른 고난을 만나셨다.
암에 걸리셨다. 척추암.

9월 24일 '문학의 숲' 마지막 칼럼에서 장영희 선생님은 이렇게 쓰셨다.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그렇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선생님!
꼭 다시 일어나셔야 해요.

<내 생애 단 한번>에서 선생님이 <노인과 바다>의 노인의 말을 인용하셨었죠?

" It is silly not to hope. It is a sin!"

이 문장을 만나고 정말 부끄러웠고, 또 용기를 얻었어요.
선생님도 이 말, 항상 가슴 속에 넣어 두고 계시죠?

다시 씩씩하게 일어 나셔서,
행복한 글들을 쓰시길,
또 그토록 원하셨던 여행을 훌쩍 떠나시길 기도할께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야클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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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4-12-16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부끄부끄 민망민망 *^^*

요즘도 장영희 선생님 영시산책이 신문에 매일 연재되고 있는걸 보면 거뜬히 병마를 물리치고 계신가 봅니다. 새해엔 꼭 완쾌되시길 다 같이 응원보내드리죠.

로드무비 2004-12-16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는 장영희 교수님이 1년 동안 애써 쓴 논문을 날려먹고 쓰신 글을

어느 산문집에서 읽고 감동했는데 이 책을 꼭 사봐야겠군요.

빨리 완쾌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땡스투 누릅니다.

그리고 야클님 서재에 가봐야겠어요.^^

kleinsusun 2004-12-16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장영희 선생님이 이번에도 꼭 이겨내시길 다 함께 기도해요!

플레져 2004-12-16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영희 선생님의 글을 (조선일보에 연재하던...) 참 좋아했어요.

요즘도 그분의 영미시 산책이 연재되고 있지만, 시를 볼 때 마다 마음이 아파요.

꼭 완쾌 되시기를...바랍니다!!!

수선님의 글도 참 좋은걸요...^^ 저두 땡스투 눌러요!

kleinsusun 2004-12-16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당.

흘려 버리는, 지나쳐 버리는 일상의 이미지들을 "따뜻함"으로 불러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나누어 주셨던 장영희 선생님. 우리들의 응원이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2004-12-16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랑녀 2005-01-2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학기부터는 다시 강단에 서신다고 하시더군요. 병이 나으신 건 아닌데, 젊은 학생들을 보면 힘이 난다구요.
제가 그 분을 직접 뵌 일은 없지만, 참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