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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이명원 지음 / 새움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출근길에 읽고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앞에 앉는 김대리가 지나가다 내 책을 보고 한 마디.
"마음이 소금밭? 콩밭 아니야? 콩밭?"
난 김대리의 한 마디에 크게 소리내어 웃다가 생각했다.
진짜...."소금밭"이 무슨 뜻이지?
소금밭이면 염전이란 뜻인가?
마음이 짜다는 뜻인가?
난 왜 이 제목을 보고 아무 생각이 없었을까?
평소에 너무 많은 문장들,헉헉 거리게 요란한 문장들을 읽다 보니,그냥 '마음이 산란할 때 도서관에 갔다' 이렇게 이해하고 넘겨버렸다. 그러고 보니 너무 수사적이고 요란한 책 제목들이 많다.일단 제목이 눈에 띄어야 팔리기 때문일까?
마음이 "소금밭"이라는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나중에 이명원을 만난다면 한번 물어봐야 겠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는 내가 읽은 이명원의 첫번째 책이다. 매일 들리는 지하 아케이드 서점에서 서성이다가 산뜻한 초록색 표지의 이 책이 눈에 띄었다.이명원이 자기가 읽은 책,출판계,문화 전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쓴 짧은 글들은 모은산문집.재미있어 보였다.
이날 점심시간에 만난 친구에게 버거킹에서 햄버거 한개를 사주고(물론 콜라도 사줬다.), 책을 사달라고 했다.
그러니 이 책은 친구의 선물이다. 호홋.
이 책, 참 재미있게 읽었다.
이명원이 나와 비슷한 또래라는 것도(이명원은 나보다 세살 많다.)나와 이 책의 기묘한 궁합에 플러스 작용을 했다.
일단 이명원은 참 용기있는 남자다.
왜냐구?
평론계의 이단아냐구?
혹독하게 작품을 칼질하느냐구?
뭐 그런건 잘 모르겠고...
그냥 한 남자가 "평론"을 밥벌이로 선택했다는게 대단한 용기다.
뭐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대학교수니까 안정적인 생활을 하겠지만,이명원 같은 젊은 평론가는 평론을 쓰는 것 만으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대학 4학년 때,
아빠는 내게 공부를 계속하라고 하셨다.
공부 계속해서 교수가 되라고...
난 단.호.하.게 "No"라고 대답했다.
교수되기가 쉬운 것도 아니고,
실력만 있으면 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 강사를 전전하며 궁상을 떠는 선배들이 넘쳐난다며...
독문과 대학원에 간다는건 정말 아무런 vision도 없어 보였다.
빡센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끔 그 때 왜 아빠말을 듣지 않았을까 후회를 한다. 특히 젊은 교수들을 만날 때면...
하지만 나는 안다.인정한다.
"문학"을 밥벌이로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결정인지를...
보통 둘 중 하나다.
집이 아주 부자이거나, 아님 굶을 준비가 되어 있거나...
이 책은 2~3페이지 짜리 짧은 글들을 모은거라 부담 없이 읽히고 재미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건진건 두가지다.
하나, 파스칼 키냐르의 < 은밀한 생>을 향한 이명원의 하염 없는 극찬을 읽고 망설임 없이 <은밀한 생>을 주문했다. 대박이 기대된다.이럴 때면 책이 올 때 까지 기다리는 것이 즐겁다.
다른 하나, 작가/출판사와 짜고치는 고스톱 멤버인 평론가들에 대한 그의 비난에서 "후련함"을 느꼈다.
삶은 계란 세개를 연거푸 먹고 칠성사이다를 마신 것 처럼...
평론가를 꿈꾸는 한 학생이 이명원에게 상담을 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자기는 평론가로서의 자질이 없는 것 같다고...
왜냐고 묻자 자기는 아무리 읽고 또 읽어 봐도 별 내용도 없고 느껴지는 것도 없는 소설인데,
평론을 읽어보면 다 문제작이고, 영혼을 건드리고, 파격적이고 하며 온갖 극찬으로 가득하다는 거다.
그런 문제작을 읽고도 아무것도 못 느끼는 자기는 평론가로서의 자질이 없다는 하소연이었다. 어떤 소설들을 읽었냐고 물어보니,대부분 이명원도 실망한 작품들이었다.별 내용도 없고 지극히 상투적인...
일부 평론가들은 몇몇 작가와의 "인간관계", 또는 "공생관계" 속에서
때깔 좋은 평론을 써서 독자들을 현혹시키고 평론가 지망생들의 싹을 싹둑 잘라 버린다. 평론가들까지 나서서 책을 광고하는 것이다.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향해 날리는 이명원의 비난은 읽는 사람을 후련하게 한다.동종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왕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얼마 전 강유원의 서평집 <책>을 읽고,
그의 똘똘이 스머프적 태도에 짜증이 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작가들,출판사와 한 팀이 되서 광고 카피를 쓰는 얼치기 평론가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강유원은 꼭 필요한 존재다.적어도 강유원은 서평가로서의 "소명의식"에 충실하다.
작가,출판사,평론가, 더 나아가 일간지 북섹션의 기자들에 이르기까지 짜고치는 고스톱을 위한 얼치기 팀은 꼭 알아야한다.
그들의 전략은 단기적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출판시장 자체의 수요을 잠식시키는 일이라는걸...
한번 책읽기에 재미를 붙인 사람은 반복적으로 읽기를 계속하지만,평론가의 강력 추천에 책을 샀다가 배신을 당한 독자는 다시는 그 작가의 책을 읽지 않는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참 재미있게 읽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책 많이 읽는 남자랑 데이트 해봤으면 좋겠다.ㅋㅋ
수선이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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