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과 사람의 과학 -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우리 과학 이야기
김연희 지음 / 이음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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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이 된 공자는 천명(天命)을 깨달았다. 《논어》 위정(爲政) 편 4장에 주석을 단 주희(朱熹)는 천명을 ‘사물의 이치’ 또는 ‘하늘이 내린 사명’으로 해석했다. 공자와 고대 중국 사람들은 하늘을 특별하게 생각했다. 그들에게 하늘은 땅 위에 있는 모든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초월적인 존재(천제, 天帝)였다. 중국의 유학을 공부한 조선의 유학자들도 하늘을 무심코 바라보지 않았다. 하늘의 움직임(기상 현상)은 인간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가 쓴 《중용》에 언급된 하늘은 ‘만물을 덮은 우주’다. 







今夫天, 斯昭昭之多, 及其無窮也, 

日月星辰繫焉, 萬物覆焉.

 

 지금 저 하늘은 이처럼 밝은 빛이 많이 모인 것이니, 무궁한 곳에 이르면 해와 달과 별들이 거기에 매여 있고, 만물이 [그것에] 덮여 있다.


(《중용》 26장 9절, 김원중 옮김)




동양철학자 故 김충렬 교수는 하늘의 도(天道)를 논한 《중용》 26장에 ‘유가 우주론’이 펼쳐져 있다고 주장했다. 유가 우주론은 고대 그리스의 우주론인 코스모스(cosmos)와 비슷하다. 만물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우주. 


천지인(天地人)은 단순히 하늘과 땅과 사람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 아니다. 하늘의 질서를 이해하려는 천지인은 하늘과 땅 모두와 짝할 수 있는(配天, 配地, 《중용》 26장 5절) 사람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과학》은 한국사 수업 시간에 접하기 힘든 ‘과학 하는 천지인들’을 조명한다. 한국의 전통 과학은 천문학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천문학은 군주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학문이었다. 군주는 ‘하늘의 명령을 따르는 아들(天子)’이다. 하늘의 아들은 천체의 운동을 알고 있어야 했다. 군주의 곁에는 태양과 달, 별을 매일 관측하고 기록하는 천문학자들이 있었다. 하늘을 읽는 신하들은 홍수와 가뭄, 역병을 하늘이 내린 재앙으로 해석했다. 일식과 월식은 국가에 불길한 일이 생길 징조로 여겼다. 질서와 안정을 깨뜨리는 괴이한 현상을 옛말로 재이(災異)라고 한다. 재이가 일어나면 군주는 자신이 알아야 할 천명이 무엇인지 천문학자들의 조언을 받았다. 천명을 깨달은 군주는 부국강병과 민생 안정에 힘썼다.


고대 천문학은 점성술과 기상 관측, 동양철학(‘하늘’ 개념)과 종교가 혼합되어 있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고대 천문학을 바라보면 비과학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고대 천문학자들은 태양과 달의 주기(週期)를 이미 알고 있었으며 관측해서 얻은 정보를 활용하여 역서(曆書, 달력)를 만들었다. 하늘을 관측하는 조선 시대의 유학자들은 ‘관상감(觀象監)’이라는 관청에 들어가 역서 간행, 일식과 월식 예보 등의 업무를 맡았다. 


17세기 이후 조선의 유학자들은 중국에 유입된 서양 천문학, 지리학, 의술을 접했다. 최한기는 지동설과 뉴턴(Isaac Newton)의 중력 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성리학의 틀 안에서 천체 운동을 이해하려고 했다. 말년의 다산 정약용은 박제가와 함께 청나라의 의학 서적들을 참고하여 천연두의 예방법인 종두법을 연구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과학》은 유학과 성리학에 가려진 우리나라의 전통 과학을 들여다본 책이다. 우리나라의 과학 지식이 어떻게 수용되어 발전되었는지 알 수 있는 사료와 유물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동양 및 한국 고전 속에 숨은 우리나라 과학 문화를 살핀다. 《논어》에 하늘을 만물의 근원으로 여기는 고대인들의 자연관을 엿볼 수 있다. 《삼국유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인 첨성대를 언급한 문헌이다.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 퇴계 이황은 유가 우주론을 깊이 연구했으며 천체 관측 기구인 혼천의(渾天儀)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또 의술을 독학하여 학자들과 주고받은 편지에 자신의 의학적 견해를 밝혔다. 이황 사후에 간행된 문집 《퇴계전서》에 20여 건의 질환에 대한 이황의 처방법이 적혀 있다.


‘과학 하는 천지인들’은 온고지신(溫故知新, 《논어》 위정 편 11장)의 자세로 과학을 공부했다. 그들은 과거의 과학 지식을 깊이 익히면서도 새로운 과학 지식도 배웠다. 후세 사람들은 ‘과학 하는 천지인들’을 모르거나 그들을 여전히 유학자로만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과학 하는 천지인들’은 평생 책과 짝하면서 지낸 서생과 다른 삶을 살았다.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는 “꼭 책을 읽어야만 배우는 것인가?”라고 묻는다(《논어》 선진[先進] 편 24장). 한문으로 된 하늘(天)을 해석하는 일에만 매달리는 공부는 변화가 없는 좁은 세상을 답습하는 일과 같다. ‘과학 하는 천지인들’의 눈은 책 속에 갇힌 하늘만을 향하지 않는다. 변화무쌍하고 무한한 하늘이라는 책을 우러러본다.








책과 짝하면서 살아온 

서생 cyurs의 주석




* 191~192쪽







 

 고대 한반도인이 ‘역(疫, 전염병)’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는 『논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기원전 2세기에 편찬된 『논어』에는 ‘역’이라는 표현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역귀(疫鬼)를 쫓는 나례(儺禮) 의식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공자가) 마을 사람들이 나례를 행할 때 예복을 입고서 동쪽 섬돌에 서 계셨다”라는 대목[주1]이 나온다. 이어서 “역은 역귀가 일으키는 것이며, 그것은 쫓아내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이를 위한 의식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엄숙하게 치러져야 한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또 『논어』에는 병에 대처하기 위한 기도의 내용도 실려 있다.

[주2] 이는 중병에 걸렸을 때 하늘과 땅에 기원하는 의식이 일반적으로 행해졌음을 의미한다. 이때 사용하는 기도문을 뇌문(誄文)이라 하며, 이러한 의식이 한반도에도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주1, 2] 《논어》의 문장을 인용하거나 간접적으로 언급할 땐 《논어》의 어느 편, 몇 장에 나오는 문장인지 밝혀야 한다. 나례 의식이 언급된 구절은 향당(鄕黨) 편 10장에 있다. 병에 대처하는 기도는 술이(述而) 편 34장에 나온다.







서평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논어》를 읽었다. 김기창 고려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가 공자의 생애와 《논어》를 재해석한 두 권의 책 《새롭게 만나는 공자: 결기(仁), 윤리(禮), 배움(學)에 대한 다른 해석》(이음, 2021년)와 《금서의 귀환, 논어》도 곁들어 참고했다. 


김 교수는 공자 철학의 핵심 개념 ‘인(仁)’을 어질고, 온화한 마음가짐으로 해석하는 관점을 비판한다. 그동안 과거의 《논어》 주석가들은 ‘인’이 자기 내면의 수양을 중시한 공자의 메시지가 함축된 단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저자는 ‘인’을 왜곡한 과거 주서가들의 해석을 거부한다. 저자가 바라본 진짜 공자의 모습은 위기에 빠진 세상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리고 올바른 도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투쟁하라고 가르친 ‘반항적인 지식인’이다.





 

* 273쪽, 용어 해설





『산해경』: 고대 중국과 주변국을 다룬 지리서다. [주3]








[주3] 《산해경》은 ‘신화집’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 책에 중국 지도에 없는 지명들이 나온다. 허구적인 지명의 풍속과 그곳에 있는 동식물과 광물이 백과사전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림으로 묘사된 상상 동물의 형태는 괴물에 가깝다.









[주4]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과학》은 한국 과학사의 일부만 정리한 책이다. 화약과 무기를 만든 최무선의 업적이 언급되지 않았다. 『동의보감』이 몇 번 언급되지만, 허준이 조선 시대의 의약(醫藥) 발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나오지 않는다. 한국 과학기술사의 주요 장면을 소개한 책 《한국인의 발명과 혁신》의 1장은 최무선, 2장은 장영실, 3장은 정약용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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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네서점 <책방아이> 책도깨비(독서 모임)

일요 미스터리 책방



4월의 미스터리







아오사키 유고

김은모 옮김

《지뢰 글리코》

리드비

2025년




2026년 4월 26일 일요일

저녁 6시~8시

장소: 책방아이








대구에 ‘추리소설(미스터리 소설) 읽기 모임’을 하는 서점이 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이 서점의 존재를 알고 있었어요. 시간이 많은 주말에 서점을 만나고 싶었지만, 이 서점은 평일에만 열어 있어요. 그래도 주말에 서점의 문이 열릴 때가 있습니다. 다만 손님을 맞이하는 서점의 모습은 아니에요. 주말 독서 모임에 참석하는 분들만 들어올 수 있어요. 매달 마지막 일요일 저녁 6시가 되면 서점은 <일요 미스터리 책방>으로 변신합니다.













주말에 드문드문 문 여는 서점의 이름은 <책방아이>(책방i, ibooks)입니다. 2017년 율하동의 동네 공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점의 얼굴이 공원의 나무들에 가려져 있어서 동네 주민이 아니면 찾기가 힘들 거예요. <책방아이>는 동네 주민과 후원자들이 함께 만든 협동조합 서점입니다.













이곳은 평일과 주말 독서 모임을 통틀어 ‘책도깨비’라고 부릅니다. 평일 책도깨비 이름 중 하나가 <읽어서 세계 속으로>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독서 모임 이름 같죠? 제가 참석하고 있는 독서 모임 이름이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약칭 ‘세속’)입니다. <읽어서 세계 속으로>가 <세속>보다 먼저 만들어졌어요. 저는 출근하기 전에 챙겨 보는 방송 프로그램이 KBS 2TV의 <걸어서 세계 속으로>입니다. 평일 아침에 하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재방송입니다. 독서 모임 이름을 세계 여행 방송 프로그램 이름을 변형해서 만들었는데요, <세속> 모임을 석 달 진행하고 난 후에 <읽어서 세계 속으로> 독서 모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의도치 않게 제가 <책방아이> 책도깨비 이름을 따라 하고 말았네요. 다음 모임 때 서점 대표님을 만나면 독서 모임 이름을 <세속>으로 정하게 된 계기를 밝히겠습니다.


독서 모임 있는 날이면 최대한 일찍 모임 장소에 도착하는 편이에요. 율하동은 제가 사는 동네가 아니라서 집에서 출발하여 서점에 도착하면 한 시간 정도 걸립니다. <책방아이>에 일찍 도착했는데, 서점 문이 닫혀 있었어요. 남는 시간에 저녁 식사를 했고, 공원을 산책했어요. 모임 시작 30분 전에 다시 <책방아이>에 가봤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서점 주변에 한동안 헤매다가 <일요 미스터리 책방>에 꾸준히 참석하는 향기님을 만났습니다! 향기님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세속> 독자입니다. 향기님을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일요 미스터리 책방> 참석자 두 분이 오셨어요. 두 분 역시 향기님 못지않게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입니다.








아오사키 유고(青崎有吾)의 《지뢰 글리코》(地雷グリコ)는 탐정과 경찰이 등장하지 않으며 살인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추리소설입니다. 그러나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주인공은 머리가 상당히 좋고, 상대방의 심리를 잘 읽는 영악한 여고생입니다.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이 전부 학생들입니다. 조연으로 나오는 학생들 역시 주인공 못지않게 똑똑합니다. 









주인공 이모리야 마토는 ‘인생은 게임’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머리를 써야 이길 수 있는 게임을 하면 승부에 강한 지능적인 플레이어(player)가 됩니다. 마토는 수재가 모인 고등학교 학생회가 만든 ‘변형 규칙’ 게임에 도전합니다.


변형 규칙 게임이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놀이에 특별한 규칙이 적용된 것을 말합니다. 소설 표제이자, 제일 먼저 나오는 ‘지뢰 글리코’는 가위바위보를 해서 제일 먼저 계단 꼭대기에 도착하는 사람이 이기는 ‘글리코 게임’에 지뢰가 추가된 게임입니다. 두 명의 플레이어는 계단에 세 개의 지뢰를 설치합니다. 밟으면 폭발하는 지뢰는 아니지만, 상대편 플레이어가 설치한 지뢰를 밟으면 열 계단 내려가는 벌칙이 있습니다. 플레이어 본인이 설치한 지뢰를 밟으면 벌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다만, 상대편 플레이어에게 지뢰의 위치가 탄로 납니다.


작가는 추리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전에 라이트노벨(Light novel) 공모전에 응모했습니다. 라이트노벨은 ‘문장으로 표현한 애니메이션’과 같습니다. 만화에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전개되고, 라이트노벨 속 주인공은 비범한 능력이 있거나 범상치 않은 성격의 학생입니다. 라이트노벨에 주인공이나 조연 인물들의 모습이 묘사된 애니메이션풍 삽화가 있습니다. 인기가 많은 라이트노벨은 만화로 만들어지고, 이 만화 역시 반응이 좋으면 TV에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집니다.


《지뢰 글리코》에 교사를 포함한 어른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습니다. 정말로 고등학생들만 나옵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청춘물과 추리물이 결합한 이야기가 재미있었습니다.
















* 나카야마 시치리, 문지원 옮김 《비웃는 숙녀》 (블루홀식스, 2020년)

 

* 나카야마 시치리, 문지원 옮김 《다시 비웃는 숙녀》 (블루홀식스, 2020년)

 

* 나카야마 시치리, 문지원 옮김 《비웃는 숙녀 두 사람》 (블루홀식스, 2022년)




향기님은 소설에 나오는 학생들이 평범하지 않아서 이질적으로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주인공을 포함한 학생회 대표들은 상대방이 사소한 행동과 몸짓만 보고, 그 사람의 심리를 간파합니다. 심리전에 능숙한 학생들은 게임에 참여하면 승부사로 돌변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지배해서 자신이 좀 더 유리한 상황으로 만들기 위해 상대방의 심리를 조종하기도 합니다.









향기님은 상대방의 심리를 조종하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추리 소설로, 나카야마 시치리(中山七里)의 <비웃는 숙녀> 시리즈를 추천했습니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 가모우 미치루는 사람들의 심리를 조종해서 나쁜 행동을 하게끔 유도하는 범죄자입니다. 주인공의 악행과 주인공에게 쉽게 조종당하는 피해자들의 모습을 본 독자들의 머릿속엔 불쾌하면서도 찝찝한 뒷맛이 남습니다.


이런 유형의 추리 소설을 ‘이야미스(イヤミス)’라고 합니다. 이야미스는 ‘싫음’, ‘불쾌한 모양’을 뜻하는 일본어 いや 와 미스터리를 합친 말입니다. 이야미스는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보다는 사건에 휘말린 인물들의 부정적인 심리 상태를 묘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암울한 결말에 이르는 이야미스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독자의 기분은 씁쓸해집니다.


《지뢰 글리코》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두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래도 이 작품은 이야미스 소설로 볼 수 있습니다. 소설 속 학생들은 경쟁과 서열 중심의 교육 체계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명문고에 진학하고 싶은 학생들은 ‘시험’이라는 게임을 여러 번 치러야 합니다. 교실에서 만나면 친구이지만, 시험 기간이 되면 경쟁자가 됩니다. 성적이 좋은 친구들과 성적이 저조한 친구들이 서로 만나면 어색해지고, 어울리지 못합니다. 소설에서 명문고로 묘사된 세이에쓰 고등학교는 부유하면서도 머리가 좋은 학생들만 입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학교의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학생들은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게임을 해야 합니다. 세이에쓰 고등학교는 ‘타산적이고 추악한 자본주의의 축소판’이자 ‘약육강식의 엘리트 양성소’입니다(214쪽).
















* [절판] 나오키 산주고, 김소연 옮김 《나오키의 대중 문학 강의》 (북스피어, 2011년)




일본의 추리 · 미스터리 문학상들을 휩쓴 《지뢰 글리코》는 제171회 나오키상 후보에까지 올랐습니다. 나오키상은 일본의 소설가 나오키 산주고(直木三十五)를 기리기 위해 1935년에 만들어진 문학상입니다. 나오키상은 ‘대중 문학’ 작품을 쓴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인데요, 나오키 산주고는 일본 대중 문학의 선구자입니다. 









추리 소설은 대중 문학에 속합니다. 나오키 산주고는 대중 문학에 과학 소설, 소년 · 소녀 소설, 탐정 소설 등이 포함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중 문학(문예)를 이렇게 정의를 내립니다.







 표현이 평이하고, 흥미를 중심으로 하되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 또는 거기에 인생에 대한 해설과 인간 생활상의 문제를 포함하는 것.


(나오키 산주고, 《나오키의 대중 문학 강의》 중에서, 13쪽)




《지뢰 글리코》는 나오키상을 받을 만한 문학 작품입니다. 소설에 나오키 산주고가 정의한 대중 문학의 특징들이 도드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대중 문학의 선구자가 살아 있다면 자신이 경험한 적이 없는, 학교와 두뇌 게임을 소재로 한 추리 소설 《지뢰 글리코》를 높이 평가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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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6-06-01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모임 저도 가보고 싶네요. 워낙 혼자 읽는 생활이고 나눌 사람이 없어서 더더욱. 저라면 마쓰모토 세이초나 요! 이런 모임 저도 가보고 싶네요. 워낙 혼자 읽는 생활이고 나눌 사람이 없어서 더더욱. 저라면 마쓰모토 세이초나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을 갖고 가겠어요.ㅎ

cyrus 2026-06-09 07:07   좋아요 1 | URL
추리 소설 읽기 모임을 언젠가 만들어보고 싶어서, 본보기로 모임 분위기를 경험하려고 일요 미스터리 책방 모임에 가입하게 됐어요. 제가 가입하기 전까지 모임 회원은 세 명이었어요. 제가 추리 소설 읽기 모임을 만든다면 저 포함한 딱 세 명만 모였으면 좋겠어요. ^^

blanca 2026-06-01 1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나오키상이 대중소설에 주는 건지 몰랐어요. 문학성이 높은 소설에 주는 줄 알았네요. ‘이야미스‘라는 장르가 있군요. 몰랐던 사실들 많이 알아 갑니다.

cyrus 2026-06-07 19:35   좋아요 0 | URL
제가 모르는 추리 소설의 하위 장르가 생각보다 많았어요. 어렸을 때 즐겨 읽은 셜록 홈스의 그늘에 벗어나야겠어요. ^^

살리에르 2026-06-09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책방이 호젓하네요. 근데 미스터리 읽기 모임은 만나서 책 읽기만 하나요? 추리 소설은 줄거리를 말하면 김이 새기 때문에 모두 다 읽고 감상평을 나누어야겠네요^^

cyrus 2026-06-13 09:37   좋아요 0 | URL
책 이야기를 하다가 책에서 벗어난 다른 주제로 대화할 때가 있어요. 그래도 삼천포를 자주 빠질 정도는 아니고, 다른 주제의 대화가 재미있어요. 추리소설은 결말이 가장 중요해서 결말을 안 읽고, 모임에 참석하면 대화에 끼지 못합니다.. ^^;;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양자 책 - 양자 컴퓨터와 초전도체 너머 양자역학의 미래
짐 알칼릴리 지음, 김성훈 옮김 / 윌북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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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의 시

「두 번은 없다」 중에서 -






물리학자들은 평생 양자역학을 공부해야 한다. 박사 학위를 받은 물리학자도 양자역학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학생이 된다. 양자역학은 물리학자들을 바보로 만드는 이상한 학교다. 모든 자연현상을 일정한 인과관계에 따른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 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꺼린다. 왜냐하면 양자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흔한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자(Quantum)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물리량의 최소 단위다. 아원자입자는 원자보다 아주 작다. 우리는 아원자입자를 볼 수 없지만, 입자가 알갱이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양자 세계의 아원자입자는 입자(알갱이)이면서도 입자가 아니다. 양자역학 학교에 입학하면 제일 먼저 이중슬릿(double slit) 실험을 해야 한다. 슬릿은 틈새를 뜻한다. 빛이 두 개의 틈새가 있는 벽을 통과하면 벽 뒤쪽 스크린에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스크린에 물결이 흐르는 듯한 무늬가 생겼다. 영국의 물리학자 토머스 영(Thomas Young)은 빛이 입자 형태로 되어 있다고 주장한 뉴턴(Isaac Newton)의 견해(입자설)를 반증하기 위해 이중슬릿 실험의 기이한 결과를 제시했다. 물결 무늬는 빛이 입자가 아니라 파동 형태로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영과 그의 지지자들은 파동설을 주장했다. 입자설의 입지가 흔들렸다. 그러나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발견한 광전 효과가 알려지면서 입자설이 다시 주목받았다. 아인슈타인은 금속 표면에 빛을 비추면 입자 형태의 광자(光子)가 튀어나오는 현상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빛은 입자인가, 파동인가? 양자역학 학교는 둘 중 하나의 관점만 선택해서 해석하게 만드는 이분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양자역학 학교에 소속된 교사 중 가장 젊은 루이 드 브로이(Louis de Broglie)는 파동-입자 이중성(wave–particle duality)을 주장했다. 빛은 동시에 입자와 파동처럼 행동한다. 이와 같이 입자와 파동의 형태와 특징을 동시에 가진 상태를 ‘중첩(superposition)’이라고 한다.


양자역학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빛이 언제 입자가 되고, 언제 파동이 되는지 관측(측정)할 수 있는가? 고전 역학은 인과관계가 분명한 거시적 세계의 자연현상을 연구하는 이론이다. 고전 역학에 익숙한 학생들은 측정 불가능한 자연현상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양자역학 학교의 교감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를 제시했다. 양자 세계 입자의 위치와 속도는 동시에 관측할 수 없다. 양자역학 학교 교사 중에 수학을 잘 아는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는 파동함수와 파동방정식(슈뢰딩거 방정식)을 내세워 측정 불가능한 양자 세계를 이해하고자 했다. 양자 세계에서는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히 알기 어렵고 오직 확률적으로만 파악할 수 있다.







기이한 양자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은 낙심에 빠진다. 하지만 그들은 낙제생이 아니다.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짐 알칼릴리(Jim Al-Khalili)는 양자역학을 어려워하는 과학도와 과학 비전공자들의 호기심이 위축되지 않도록 친절하게 다독여준다. 그가 쓴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양자 책》(Quantum: A Guide For The Perplexed)은 양자역학 학교에 천천히 적응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교재다. 저자는 양자 세계가 우리가 몰랐던 자연의 예측 불가능한 특성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사실 대부분의 양자역학 학교 교사들도 양자역학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지금도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의 기묘한 특성에 주목하여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하지만 양자역학 학교의 교장 닐스 보어(Niels Bohr)는 측정 불가능한 양자 세계를 해석하는 일은 시간 낭비라고 말한다. 이러한 보어의 관점을 ‘코펜하겐 해석(Copenhagen interpretation)’이라고 한다. 짐 알칼릴리는 코펜하겐 해석을 반대하는 물리학자다. 그는 양자 세계에 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지 질문하지 않고, 오로지 현상의 결과에만 주목하는 코펜하겐 해석의 한계를 비판한다.







미국의 철학자 제나 히츠(Zena Hitz)는 궁금증이 있는 사람은 배움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말한다(《찬란하고 무용한 공부》, 226쪽). 하지만 교사가 학문을 잘 가르친다고 해도 학생의 질문을 막으면 그들의 호기심마저 막아버린다. 불친절한 교사는 학생이 알고 싶은 것을 외면하고, 체계적으로 잘 정리된 지식을 가르친다. ‘입 닫고 공부나 해.’ 지식을 이해하지 못한 학생에게는 외우라고 다그친다. ‘닥치고 암기’ 식으로 양자역학을 공부하면 양자역학의 기묘함을 이해하기는커녕 의혹과 거부감이 생긴다. 양자 세계의 기묘함을 일상적인 사례와 접목해서 설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양자역학 학교의 교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양자역학의 기묘함에 무지한 교사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학생에게 가르친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하는 양자역학 공부는 정답이 된 지식을 암기하지 않는다. ‘답이 정해지지 않은 지식’을 탐구한다.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독자

cyrus의 주석과 정오표

 










이 책에 저자 외에 다른 물리학자들이 쓴 기고문이 실려 있다. 1장의 기고문 「버키볼과 이중슬릿 실험」은 오스트리아의 양자물리학자 안톤 차일링거(Anton Zeilinger)가 썼다. 그는 양자 얽힘 현상에 관한 연구로 202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8장의 기고문 「음을 강화하기」는 과학 저술가로 더 유명한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폴 데이비스(Paul Davies)가 썼다.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양자 책》의 초판 발행일은 5월 22일이다. 이 책이 나오기 일주일 전에 폴 데이비스의 《퀀텀 2.0》이 출간되었다. 짐 알칼릴리가 《퀀텀 2.0》의 추천사를 썼다.





* 91쪽




 


슈뢰딩거 방정식 다릅니다. → 슈뢰딩거 방정식은 다릅니다.





* 170쪽




 


않는다는 을 비판하는 → 않는다는 것을 비판하는






* 243쪽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서 서로 다른 시간에서의 파동함수를 구해보면 거기서 나오는 확률이 관찰한 방사선 붕괴 공식에서 나오는 확률과 정확히 일이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일이함 → 일치함






* 244쪽




 


원소 비롯해서 → 원소를 비롯해서






* 271쪽





 더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자면 ‘약한 벡터 보손’인데 그냥 W하고, Z로 부르는 게더 쉽겠죠.



Z로 부르는 게더 쉽겠죠. → Z로 부르는 게 더 쉽겠죠.






* 278쪽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아인슈타인은 절대적인 시간과 절대적인 공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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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읽어야 시를 좋아할 수 있을까? 시시한 질문이 아니다. 독자들과 친해지고 싶은 시(詩)의 적절한 질문이다. 시 몇 줄 읽으면 자신이 바보가 된 것 같다고 느낀 독자들에게는 시의적절한 질문이다. 과연 시는 독자들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까?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6년 5월의 세계 문학, 추천 독자: 히시마]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최성은 옮김 《끝과 시작》 (문학과지성사, 2016년)

 

* [리커버]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최성은 옮김 《끝과 시작》 (문학과지성사, 2021년)


* [절판]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이해경 옮김 《모래 알갱이가 있는 풍경》 (문학동네, 1997년)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는 간단명료하게 대답한다.



몰라, 정말 모르겠다.

마치 구조를 기다리며 난간에 매달리듯

무작정 그것을 꽉 붙들고 있을 뿐.

 

- 쉼보르스카, 「어떤 사람들은 시를 좋아한다」 부분-



자신이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거듭 생각하는 일을 포기한다. 그래서 어렵다고 느낀 시를 만나면 눈길을 돌린다. 시구절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이유로 시 읽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시를 읽어야 한다. 








쉼보르스카는 199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다. 올해는 그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쉼보르스카의 시 선집 《끝과 시작》과 《모래 알갱이가 있는 풍경》에 시인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문이 실려 있다. 그녀는 연설에서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독자는 호기심이 많다. “나는 이게 뭔지 잘 모르겠어, 그래서 더 알고 싶어져.”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독자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시를 해석한다. 시인이 시를 쓴 의도와 완전히 달라도 된다. 독자의 독자적(獨自的) 해석은 시인도 몰랐던 시의 또 다른 매력을 드러나게 한다.


















[그라디언트 <이 작가의 책> ‘미국 근대 문학 읽기’ 2026년 5월의 책, 추천 독자: ‘읽는 인간’ 천성은]

* 월트 휘트먼, 허현숙 옮김 《풀잎》 (열린책들, 2021년)

 

* 월트 휘트먼, 김성훈 옮김 《사람들은 사람들의 몸을 감싸안는다》 (파시클, 2025년)

 

* 월트 휘트먼, 황유원 옮김 《밤의 해변에서 혼자》 (읻다, 2019년)



시인도 모르는 것이 많고, 호기심도 많은 사람이다. 쉼보르스카는 진정한 시인이라면 자기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나는 모르겠어’를 되풀이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한 편의 시든, 한 권의 시집이든 다 쓰고 나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질문을 계속하는 시인은 생각날 때마다 시구절을 매만진다. 한 번 더, 그리고 여러 번 쓰고, 또 쓴다.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은 평생 질문하고, 성찰하면서 시를 썼다. 그는 학교를 5년 다니다가 그만두고, 독서와 독학으로 지식을 쌓았다. 그래도 휘트먼은 모르는 게 많았고, 호기심이 왕성했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들을 관찰했고, 자유와 ‘살아 있음’을 찬양하는 시를 썼다.




 



휘트먼은 1855년에 첫 시집 《풀잎》을 자비로 출판했다. 초판본에 서문과 열두 편의 시가 수록되었다. 비평가의 반응은 좋지 않았으나 휘트먼은 189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풀잎》을 7번 고쳐 쓰고 새로운 시를 추가했다. 시집의 최종 판본은 휘트먼이 사망하기 직전에 출간돼서 ‘임종판(deathbed edit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휘트먼의 시집은 시작(詩作)의 끝이 아니라 창작을 이어가는 새로운 시작(始作)이다. 휘트먼은 《풀잎》 초판 서문에 ‘위대한 시인’의 특성을 언급한다. 위대한 시인은 완성도 높은 작품을 쓴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위대한 시는 남자나 여자에게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이다. 그가 결국 어떤 합당한 권위 아래 앉아 설명에 만족하며 편안해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흡족해하며 충만할 수 있다고 그 누가 상상한 적 있는가? 위대한 시인은 그런 끄트머리에 이르지 않는다. 그는 중단도, 보호받는 비만과 편안함도 가져오지 않는다. 그의 손길은 행동으로 말한다.


(《풀잎》 「서문」 중에서)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나온 《풀잎》은 1855년 초판본을 참고한 번역본이다. 최종판 《풀잎》 완역본은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풀잎》에 실린 시들을 선별해서 엮은 시 선집들은 휘트먼의 풍요로운 시 세계 일부만 보여줄 뿐이다.








쉼보르스카는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에서 그해 1월에 세상을 떠난 시인 조지프 브로드스키(Joseph Brodsky)를 언급했다. 그녀는 자신이 만난 시인 중에 스스로 ‘시인’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정도로 긍지를 가진 사람은 오직 브로드스키뿐이었다면서 고인을 추모했다.


브로드스키는 5월 24일 러시아(당시 소련)에서 태어났다. 조지프 브로드스키를 러시아어로 읽으면 ‘이오시프 브로츠키’다. 그가 태어난 지 정확히 일주일이 되는 날인 5월 31일은 휘트먼의 생일이다. 브로드스키도 휘트먼처럼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여러 번 직업을 바꾸면서 창작 활동을 했다. 소련 밖에 있는 세계 문학에 호기심을 느낀 브로드스키는 독학으로 영어와 폴란드어를 공부했했다. 그는 소련 당국의 검열을 피해 영국의 시를 번역한 지하 출판물(사미즈다트, самиздат)을 만들었다. 1964년, 24세의 브로드스키는 체포되고, ‘사회의 해로운 기생충’이라는 죄명으로 강제노동형을 선고받았다.


다행히 수용소 생활은 길지 않았다. 동료 문화계 인사들의 탄원으로 브로드스키는 이듬해에 석방되었다. 하지만 조국은 그가 자유롭게 문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1972년 소련 당국은 브로드스키를 ‘청소년들의 정서에 나쁜 영향을 주고, 사회주의 이념에 전혀 쓸모없는 쓰레기’라고 비난하면서 추방했다. 브로드스키는 미국으로 건너가 창작 활동을 재개했다.









1986년 미국에서 발표된 《하나보다 작은 생》(Less Than One: Selected Essays)은 브로드스키의 폭넓은 문학 편력을 알 수 있는 산문집이다. 미국과 러시아 작가들의 문학에 대한 브로드스키의 견해가 담긴 책이다. 이 책으로 그 해에 브로드스키는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 비평가상(National Book Critics Circle Award for Criticism)을 받았고, 이듬해에 노벨 문학상까지 거머쥐었다.


















* 조지프 브로드스키, 이경아 옮김 《베네치아의 겨울빛》 (뮤진트리, 2020년)



브로드스키는 《하나보다 작은 생》에 실린 「그림자 예찬」이라는 글에서 ‘오래 살아남은 시인들’은 하나를 선택해서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작품 전체를 보고 평가되어야 한다고 했다(189쪽). 하지만 국내 독자들은 ‘오래 살아남은 시인들’, 쉼보르스카, 휘트먼, 브로드스키의 시 작품 전체(시 전집)를 볼 수 없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쉼보르스카와 휘트먼은 시 선집이 되었고, 브로드스키는 완전히 잊힌 상태다. 1987년 브로드스키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직후에 시 선집과  《하나보다 작은 생》(설영환 옮김, 세종출판공사), 단막 희곡 《대리석》(이길주 옮김, 한마당)이 출간되었으나 모두 절판되었다. 브로드스키가 매년 겨울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머무르면서 쓴 산문 《베네치아의 겨울빛》이 유일하게 번역 출간된 작품이다.


브로드스키는 「시와 산문」(《하나보다 작은 생》 수록)에서 휘트먼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 읽는 독자들을 치켜세웠다.

 

 





“위대한 시는 위대한 독자가 있을 때 가능하다.”




‘위대한 독자’는 책을 많이 읽고, 지식이 풍부한 독자를 가리키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위대한 독자’는 시가 뭔지 몰라도 자기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시가 난해하다고 해서 자신의 무지함을 스스로 폄하하지 않고, 난해한 시를 쓴 시인이 형편없다고 깎아내리지도 않는다. ‘위대한 독자’의 호기심은 마르지 않는다.

















* 황현산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2014-2018 황현산의 트위터》 (난다, 2019년)



문학 평론가 황현산 선생은 2014년 트위터에서 ‘시 쓰기는 소통하기 어려운 것을 소통하려는 노력’이라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17쪽). 시 읽기도 마찬가지다. 시 속에 소통하기 어려운 구절이 있어도 우리 독자는 조금이라도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시를 읽으면서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정답을 찾을 필요가 없다. ‘위대한 독자’는 정답을 잘 찾는 현자(賢者)가 아니다. 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어색하고 틀릴 수 있더라도 ‘읽는 모험’을 즐기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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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싱 더 바디 - 젠더 정치와 섹슈얼리티의 구성 ㅣ 딕테 시리즈 4
앤 파우스토-스털링 지음, 홍승효 옮김 / 후마니타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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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밑 세계,

바다 밑바닥의 숲, 가지와 잎사귀,

파래, 어마어마한 이끼, 기이한 꽃과 씨앗, 빽빽한 다시마,

벌어진 틈, 그리고 분홍색 잔디,

다양한 색깔들, 옆은 회색과 녹색, 보라색, 흰색, 그리고

황금색, 물속에 비친 빛의 반짝거림.


 

(월트 휘트먼, 「바다 밑 세계」 중에서, 황유원 번역)







플라톤(Plato)의 《향연》에 나온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는 아테네의 유명 인사들을 비꼬면서 당대 현실을 풍자한 희극 작가다. 광장에서 청년들과 대화를 나눈 소크라테스(Socrates)도 아리스토파네스의 조롱을 피하지 못했다. 









향연장에서 연설한 아리스토파네스는 인간의 성(性)이 원래 세 개였다고 주장한다(《향연》 189e). 남성과 여성, 그리고 이 둘을 함께 가진 세 번째 성(androgynon). 시간이 지나면서 세 번째 성은 사라졌고, 이름만 남았다. 하지만 세 번째 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희미한 모습으로 어딘가에 살고 있다. 남성 생식기와 여성 생식기를 다 가진 사람을 자웅동체(hermaphrodite), 양성구유, 남녀추니, 어지자지라고 한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사람은 환대받지 못한다. 이상하게 태어난 인간이라고 놀림을 받는다. 










미국의 생물학자 앤 파우스토 스털링(Anne Fausto-Sterling)은 인간의 성을 다섯 개로 분류하자고 제안한다. 그녀는 남성과 여성에 이어 ‘세 개의 자웅동체’를 추가했다. 진성-자웅동체(herms), 남성-가성 자웅동체(merms), 여성-가성 자웅동체(ferms). 학계는 스털링의 견해를 비판했고, 보수적인 기독교 단체는 분노했다. 훗날 스털링은 ‘다섯 개의 성’을 약간 농담이 섞인 생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다섯 개의 성’은 헛웃음만 나오는 가벼운 농담이 아니다. 스털링은 두 개의 성(남성, 여성)만 존재한다는 이분법과 이성애(Heterosexuality)를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는 정상성에 정면으로 맞서 싸움을 걸었다.


1993년에 발표된 논문 『다섯 개의 성』(The Five Sexes)이 두 개의 성을 지키는 이분법을 향해 돌을 던진 ‘투석구’라면, 2000년에 출간된 《섹싱 더 바디》(Sexing the Body)는 두 개의 성을 부수기 위해 만들어진 ‘투석기’와 같은 책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자신과 적을 알아야 한다(知彼知己). 어린 시절 스털링의 별명은 ‘톰보이(tomboy)’였다. 남자아이처럼 행동하는 여자아이는 인형보다 뱀과 개구리에 흥미를 느꼈다. 이때부터 그녀는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스털링이 평생 도전해야 할 적은 이분법이다. 오랫동안 세상을 지배한 적은 인간의 삶을 두 개로 분리해서 바라본다. 우리가 ‘정상인’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입증하려면 ‘남성 대 여성’, ‘섹스(생물학적 성별) 대 젠더(사회가 만든 성별)’, ‘본성 대 양육’으로 형성된 이분법적 범주 안에 속해야 한다. 이분법에 맞지 않는 사람은 ‘비정상’으로 간주된다.


적을 믿고 따르는 세력들의 역공도 대비해야 한다. 이분법의 함정에 빠진 과학자들은 ‘남성 대 여성’과 ‘본성 대 양육’을 입증하기 위해 연구한다. 의사는 성별이 모호한 아이를 수술대 위에 눕혀 ‘교정’한다. 편견에 사로잡힌 전문가들은 자신의 연구 활동이 사회 개선에 공헌한다고 생각한다. 적의 속셈을 간파하려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스털링은 이분법이 적용된 과학이 어떻게 지식이 되는지 이해하기 위해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TS)을 연구했다.









권위 있는 과학자는 연구 결과를 ‘사실’로 규정해서 ‘지식’으로 만든다. 확정된 지식은 교과서에 자리 잡은 상식이 된다. 과학자는 라투르가 표현한 ‘블랙박스(black box)’에 숨는다. 과학자의 권력이 잔뜩 들어간 지식은 검토 대상에서 제외된다. 대중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에 과학자의 편견과 이데올로기가 조금이라도 들어 있는지 숙고하지 않는다. 과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은 ‘가치중립적’이라고 착각한다. 《섹싱 더 바디》는 과학과 문화,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분리하는 이분법도 비판한다. 과학은 실험실에서만 갇혀 지내지 않는다. 과학은 국가가 지향하는 정책에 반영된 이데올로기, 정부 기관, 연구 자금을 주는 재단을 만나면서 만들어진다.









‘남성 대 여성’ 이분법적 시각을 옹호하는 과학자와 의사들은 자웅동체를 ‘고쳐야 할 연구 대상(환자)’으로 대한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지적한 대로 정상성을 강화하는 의학 지식은 성소수자를 통제하는 규율이 된다. 양성 생식기를 모두 가진 사람은 한 개의 성별로 만드는 교정 수술을 반대한다. 수술 방식이 까다롭고, 수술 이후에 부작용이 생기면 다시 수술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성별이 모호한 사람들은 ‘자웅동체’가 ‘의학상 장애가 있는 존재’로 규정하는 용어라고 비판한다. 그래서 자웅동체 대신에 ‘간성인(intersex)’이라는 명칭을 선호한다. 간성인은 ‘성별이 복잡한 인간’이다.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친 본성(유전자와 호르몬의 작용)과 양육(교육, 외부 환경에서의 경험 등)을 분리해서 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둘 중 하나를 무조건 선택하라고 종용하는 ‘본성 대 양육’ 논쟁은 이미 끝난 지 오래다. 우리는 본성과 양육이 복잡하게 얽힌 삶을 살고 있다. 스털링은 단순히 생물학적 관점에만 맞춰서 몸을 설명하지 않는다. 몸의 동적인 특성에 주목하기 위해 ‘섹스 대 젠더’ 이분법을 해체한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의 철학을 끌어들인다. 우리 몸은 유전자와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생물학적인 몸이 아니다. 외부 환경(의 문화)을 경험하면서 느낀 감각도 신체 발달과 성적 지향의 변화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우리 몸은 섹스와 젠더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체화(embodiment)’[주]된 물질과 같다. 체화된 몸은 고정적이지 않다. 체화된 몸은 ‘섹스 대 젠더’ 이분법과 ‘몸 대 의식(정신)’ 이분법을 거부하고, 안정적으로 변화하는 연속체다.








<Sexing the Body> 국역본은 2020년에 나온 개정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개정판에 10장 「젠더의 바다」가 추가되었다. 우리는 ‘존재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379쪽)’ 젠더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다. 그러나 젠더의 바다는 ‘젠더만의’ 바다가 아니다. 젠더와 섹스는 절대로 분리할 수 없는 관계다. 그러므로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젠더/섹스의 바다’다. 젠더/섹스의 바다를 즐기면 몸과 정신, 자연과 문화의 상호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무지개가 피어오르는 젠더/섹스의 바닷속에 

셀 수 없는 성과 몸들이 살고 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책을 구매한

cyrus의 주석




[주] ‘embodiment’는 주디스 버틀러의 철학에 자주 나오는 개념으로, 버틀러의 대표작 《젠더 트러블》에서는 ‘체현’으로 번역되었다.




역자와 편집자들이 저자가 참고한 문헌의 국역본 제목을 표기했다. 잘 만든 책의 특징 중 하나가 세심한 편집이 돋보이는 국역본 표기다. 국역본 표기가 안 된 문헌이 있지만, 책의 완성도에 흠이 될 정도는 아니다.




* 옮긴이 각주, 353쪽



 거트루드 스타인은 “장미는 장미는 장미는 장미다”(Rose is a rose is a rose is a rose)라고 말했다.



[국역본] 거트루드 스타인, 신혜빈 옮김 《세상은 둥글다》 (미행, 2022년).






* 미주, 530쪽




 

 싱클레어 루이스의 고전 소설 『애로스미스』 [과학 연구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국역본] 싱클레어 루이스, 유진홍 옮김, 《의사 과학자 애로우스미스》 (군자출판사, 2025년).






* 참고문헌, 602쪽





Angier, N

Woman: An Intimate Geography





[국역본] [절판] 나탈리 앤지어, 이한음 옮김, 《여자, 내밀한 몸의 정체》 (문예출판사, 2016년).

 

[국역본 초판] [절판] 나탈리 앤지어, 이한음 옮김, 《여자: 그 내밀한 지리학》 (문예출판사, 2003년).






* 참고문헌, 635쪽





Halberstam, J

Female Masculinity.






[국역본] [절판] 주디스 핼버스탬, 유강은 옮김, 《여성의 남성성》 (이매진, 2015년).






* 참고문헌, 651쪽




   

Laqueur, T

Making Sex: Body and Gender From the Greeks to Freud.





[국역본] [절판] 토머스 라커, 이현정 옮김, 《섹스의 역사》 (황금가지, 2000년).






* 참고문헌, 653쪽





Lewontin, R. C., S. Rose.

Not in Our Genes.



[국역본] 리처드 르원틴 · 스티브 로즈 · 리언 J. 카민 함께 씀, 이상원 옮김,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 생물학·이념·인간의 본성》 (한울아카데미, 2023년, 2판).






* 참고문헌, 653쪽





Lorenz, K

King Solomon’s Ring.



[국역본] 콘라드 로렌츠, 김천혜 옮김, 《솔로몬의 반지: 그는 짐승, 새, 물고기와 이야기했다》 (사이언스북스, 2000년).






* 참고문헌, 667쪽





Pinker, S

How the Mind Works.



[국역본] 스티븐 핑커, 김한영 옮김,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과학이 발견한 인간 마음의 작동 원리와 진화심리학의 관점》 (동녘사이언스, 2007년).






* 참고문헌, 671쪽




   

Rubin, G


_The Traffic in Women: Notes on the “Political Economy” of Sex.


_Thinking Sex: Notes for a Radical Theory of the Politics of Sexuality.

 






[국역본] 

게일 루빈, 임옥희 · 조혜영 · 신혜수 · 허윤 함께 옮김,

《일탈: 게일 루빈 선집》 (현실문화, 2015년) 


1장 「여성 거래: 성의 ‘정치 경제’에 관한 노트」(The Traffic in Women)

5장 「성을 사유하기: 급진적 섹슈얼리티 정치 이론을 위한 노트」

(Thinking Sex).






* 참고문헌, 686쪽





Wilson, E. O.

On Human Nature.

 




[국역본] 에드워드 O. 윌슨, 이한음 옮김, 《인간 본성에 대하여》 (사이언스북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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