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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과 사람의 과학 -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우리 과학 이야기
김연희 지음 / 이음 / 2026년 5월
평점 :

쉰 살이 된 공자는 천명(天命)을 깨달았다. 《논어》 위정(爲政) 편 4장에 주석을 단 주희(朱熹)는 천명을 ‘사물의 이치’ 또는 ‘하늘이 내린 사명’으로 해석했다. 공자와 고대 중국 사람들은 하늘을 특별하게 생각했다. 그들에게 하늘은 땅 위에 있는 모든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초월적인 존재(천제, 天帝)였다. 중국의 유학을 공부한 조선의 유학자들도 하늘을 무심코 바라보지 않았다. 하늘의 움직임(기상 현상)은 인간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가 쓴 《중용》에 언급된 하늘은 ‘만물을 덮은 우주’다.

今夫天, 斯昭昭之多, 及其無窮也,
日月星辰繫焉, 萬物覆焉.
지금 저 하늘은 이처럼 밝은 빛이 많이 모인 것이니, 무궁한 곳에 이르면 해와 달과 별들이 거기에 매여 있고, 만물이 [그것에] 덮여 있다.
(《중용》 26장 9절, 김원중 옮김)
동양철학자 故 김충렬 교수는 하늘의 도(天道)를 논한 《중용》 26장에 ‘유가 우주론’이 펼쳐져 있다고 주장했다. 유가 우주론은 고대 그리스의 우주론인 코스모스(cosmos)와 비슷하다. 만물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우주.
천지인(天地人)은 단순히 하늘과 땅과 사람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 아니다. 하늘의 질서를 이해하려는 천지인은 하늘과 땅 모두와 짝할 수 있는(配天, 配地, 《중용》 26장 5절) 사람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과학》은 한국사 수업 시간에 접하기 힘든 ‘과학 하는 천지인들’을 조명한다. 한국의 전통 과학은 천문학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천문학은 군주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학문이었다. 군주는 ‘하늘의 명령을 따르는 아들(天子)’이다. 하늘의 아들은 천체의 운동을 알고 있어야 했다. 군주의 곁에는 태양과 달, 별을 매일 관측하고 기록하는 천문학자들이 있었다. 하늘을 읽는 신하들은 홍수와 가뭄, 역병을 하늘이 내린 재앙으로 해석했다. 일식과 월식은 국가에 불길한 일이 생길 징조로 여겼다. 질서와 안정을 깨뜨리는 괴이한 현상을 옛말로 재이(災異)라고 한다. 재이가 일어나면 군주는 자신이 알아야 할 천명이 무엇인지 천문학자들의 조언을 받았다. 천명을 깨달은 군주는 부국강병과 민생 안정에 힘썼다.
고대 천문학은 점성술과 기상 관측, 동양철학(‘하늘’ 개념)과 종교가 혼합되어 있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고대 천문학을 바라보면 비과학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고대 천문학자들은 태양과 달의 주기(週期)를 이미 알고 있었으며 관측해서 얻은 정보를 활용하여 역서(曆書, 달력)를 만들었다. 하늘을 관측하는 조선 시대의 유학자들은 ‘관상감(觀象監)’이라는 관청에 들어가 역서 간행, 일식과 월식 예보 등의 업무를 맡았다.
17세기 이후 조선의 유학자들은 중국에 유입된 서양 천문학, 지리학, 의술을 접했다. 최한기는 지동설과 뉴턴(Isaac Newton)의 중력 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성리학의 틀 안에서 천체 운동을 이해하려고 했다. 말년의 다산 정약용은 박제가와 함께 청나라의 의학 서적들을 참고하여 천연두의 예방법인 종두법을 연구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과학》은 유학과 성리학에 가려진 우리나라의 전통 과학을 들여다본 책이다. 우리나라의 과학 지식이 어떻게 수용되어 발전되었는지 알 수 있는 사료와 유물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동양 및 한국 고전 속에 숨은 우리나라 과학 문화를 살핀다. 《논어》에 하늘을 만물의 근원으로 여기는 고대인들의 자연관을 엿볼 수 있다. 《삼국유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인 첨성대를 언급한 문헌이다.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 퇴계 이황은 유가 우주론을 깊이 연구했으며 천체 관측 기구인 혼천의(渾天儀)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또 의술을 독학하여 학자들과 주고받은 편지에 자신의 의학적 견해를 밝혔다. 이황 사후에 간행된 문집 《퇴계전서》에 20여 건의 질환에 대한 이황의 처방법이 적혀 있다.
‘과학 하는 천지인들’은 온고지신(溫故知新, 《논어》 위정 편 11장)의 자세로 과학을 공부했다. 그들은 과거의 과학 지식을 깊이 익히면서도 새로운 과학 지식도 배웠다. 후세 사람들은 ‘과학 하는 천지인들’을 모르거나 그들을 여전히 유학자로만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과학 하는 천지인들’은 평생 책과 짝하면서 지낸 서생과 다른 삶을 살았다.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는 “꼭 책을 읽어야만 배우는 것인가?”라고 묻는다(《논어》 선진[先進] 편 24장). 한문으로 된 하늘(天)을 해석하는 일에만 매달리는 공부는 변화가 없는 좁은 세상을 답습하는 일과 같다. ‘과학 하는 천지인들’의 눈은 책 속에 갇힌 하늘만을 향하지 않는다. 변화무쌍하고 무한한 하늘이라는 책을 우러러본다.
책과 짝하면서 살아온
서생 cyurs의 주석
* 191~192쪽


고대 한반도인이 ‘역(疫, 전염병)’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는 『논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기원전 2세기에 편찬된 『논어』에는 ‘역’이라는 표현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역귀(疫鬼)를 쫓는 나례(儺禮) 의식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공자가) 마을 사람들이 나례를 행할 때 예복을 입고서 동쪽 섬돌에 서 계셨다”라는 대목[주1]이 나온다. 이어서 “역은 역귀가 일으키는 것이며, 그것은 쫓아내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이를 위한 의식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엄숙하게 치러져야 한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또 『논어』에는 병에 대처하기 위한 기도의 내용도 실려 있다.
[주2] 이는 중병에 걸렸을 때 하늘과 땅에 기원하는 의식이 일반적으로 행해졌음을 의미한다. 이때 사용하는 기도문을 뇌문(誄文)이라 하며, 이러한 의식이 한반도에도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주1, 2] 《논어》의 문장을 인용하거나 간접적으로 언급할 땐 《논어》의 어느 편, 몇 장에 나오는 문장인지 밝혀야 한다. 나례 의식이 언급된 구절은 향당(鄕黨) 편 10장에 있다. 병에 대처하는 기도는 술이(述而) 편 34장에 나온다.

서평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논어》를 읽었다. 김기창 고려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가 공자의 생애와 《논어》를 재해석한 두 권의 책 《새롭게 만나는 공자: 결기(仁), 윤리(禮), 배움(學)에 대한 다른 해석》(이음, 2021년)와 《금서의 귀환, 논어》도 곁들어 참고했다.
김 교수는 공자 철학의 핵심 개념 ‘인(仁)’을 어질고, 온화한 마음가짐으로 해석하는 관점을 비판한다. 그동안 과거의 《논어》 주석가들은 ‘인’이 자기 내면의 수양을 중시한 공자의 메시지가 함축된 단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저자는 ‘인’을 왜곡한 과거 주서가들의 해석을 거부한다. 저자가 바라본 진짜 공자의 모습은 위기에 빠진 세상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리고 올바른 도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투쟁하라고 가르친 ‘반항적인 지식인’이다.
* 273쪽, 용어 해설

『산해경』: 고대 중국과 주변국을 다룬 지리서다. [주3]

[주3] 《산해경》은 ‘신화집’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 책에 중국 지도에 없는 지명들이 나온다. 허구적인 지명의 풍속과 그곳에 있는 동식물과 광물이 백과사전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림으로 묘사된 상상 동물의 형태는 괴물에 가깝다.

[주4]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과학》은 한국 과학사의 일부만 정리한 책이다. 화약과 무기를 만든 최무선의 업적이 언급되지 않았다. 『동의보감』이 몇 번 언급되지만, 허준이 조선 시대의 의약(醫藥) 발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나오지 않는다. 한국 과학기술사의 주요 장면을 소개한 책 《한국인의 발명과 혁신》의 1장은 최무선, 2장은 장영실, 3장은 정약용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