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삼촌
현기영 지음 / 창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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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이 여자를 아시는 분? 아! 생각났다. 나훈아 ‘18세 순이’와 송대관 ‘우리 순이’. 우디 앨런 아내 순이 그리고 현기영의 단편 『순이 삼촌』에 나오는 제주도 출신 순이.

 

순이가 살다 갔던 제주도는 아름답다. 바다며 산이며 들이며 할 것 없이 모두 아름답고, 몸을 낚아챌 정도로 부는 바람도 아름답다. 누군가 그랬다. 이 땅에 제주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밋밋했겠느냐고. 신혼부부가 손을 맞잡고 유채꽃 사이를 달린다. 조랑말이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변을 노닌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제주의 이미지는 ‘신혼부부의 섬’이요, ‘낭만의 섬’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유채꽃에는 한(恨)이 서려있음을 아는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 구석구석에는 역사의 상처가 베어있다. 이틀 동안 제주에 머물면서,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끝없는 오름들, 쉴 새 없이 불어대는 바람, 바다에 몸을 숨기는 해녀들 그리고 곳곳에 남아 있는 가슴 아픈 이야기들.

 

여기에서 저기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무친다’는 형용사를 끝없이 떠올린다. 아름다운 섬이 분명한데, 그저 예쁘고 아름답다는 말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사무침이 이 섬에 있다.

제주 북촌 마을 옴팡밭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 1978년 현기영이 『순이 삼촌』에서 이야기했던 바로 그 옴팡밭이다. 살 사람과 죽을 사람을 갈라 세웠다던 운동장에서 죽음이 결정된 사람들은 옴팡밭에서 처형당했다.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선택하라는 군인들 앞에서 사람들은 헷갈렸겠지. 어느 편에 서야 진짜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인지 열심히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겠지. 애초에 이념을 가지고 저항한 이들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힘겹게 살아왔을 뿐인 사람들이기에,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디든 선택하라는 명령에 다만 얼떨떨할 뿐이었겠지.

 

그렇게 수백 명의 목숨은 까닭도 모른 채 쓰러져 갔다. 북촌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살 장소인 옴팡밭까지, 채 10분도 안 걸리는 길을 걸었다. 생의 마지막 10분, 그 길이 그네들에겐 얼마나 길고 아득한 길이었을까?

 

트라우마는 강간, 억압, 전쟁과 같은 육체적, 심리적 충격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 외상이다. 인간의 마음이란 때론 만물을 만들어낼 정도로 강력하지만, 어떤 때엔 조그마한 충격에도 바람 앞의 촛불처럼 심하게 흔들릴 정도로 나약하다. 그래서 육체는 멀쩡한데 정신은 멀뚱멀뚱한 사람들이 많다.

 

『순이 삼촌』은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일인칭 화자인 나는 한때 우리 집에 식모살이를 했던 순이 삼촌(제주에서는 먼 친척어른을 남녀 구분 없이 삼촌이라 부른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30여 년 전 제주도 4.3 학살사건을 떠올린다.

 

당시 사건은 무장대에 의해 발단되었다. 2연대 3대대 군인 일부가 시찰을 마치고 함덕으로 돌아가는 도중 무장대가 군인들을 기습하여 군인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를 심각하게 여긴 마을 원로들은 죽은 군인들의 시신을 들고 함덕에 있는 대대본부로 찾아갔다. 그런데 분노한 군인들은 부대를 찾아온 마을 원로들 10명 가운데 9명을 즉석에서 총살해버렸다. 그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 군인들은 2개 소대 병력을 풀어 북촌마을을 덮쳤다.

 

군인들은 주민 모두를 초등학교에 집결시키고 마을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운동장을 에워싼 군인들은 총을 장전한 채 주민들의 도주를 차단했고, 현장에서 주민 7~8명을 즉결 사살했다. 그리고는 군경가족이나 민보단 가족을 주민들에서 분리시켰고, 이런 군인들의 조치에 공포에 질린 주민들은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군인들은 주민들을 학교 동쪽에 있는 당팟과 서쪽 너븐숭이 일대로 끌고 가 총살을 시작했다. 총성은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500명 가까운 주민이 목숨을 잃고 나서야 우여곡절 끝에 멈췄다. 당시 어린아이들은 태어나도 이름을 짓거나 호적에 올리는 등의 일을 미루던 시기였기에, 유아 대부분이 이름이 없던 시기다. 피해자 수가 아직까지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이유다.

 

순이 삼촌도 북촌사건 당시 군인들에 의해 총소리 통곡소리가 진동하는 옴팡밭으로 끌려갔다. 순이 삼촌이 현장에 끌려갔을 때 사람들은 밭에 안 들어가려고 밭담 위에 엎어져서 이마에 피를 흘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순이 삼촌은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는 군인들이 총을 쏘기 직전에 실신해서 넘어졌으므로 총탄을 피할 수 있었고, 깨어났을 때는 그의 몸은 시신들로 뒤덮여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무구한 주민들이 목숨을 잃은 장소였던 옴팡밭은 순이 삼촌네 소유였다. 사건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도 옴팡밭에는 끝까지 찾아가지 않는 시신들이 널려 있었고, 사람을 빌어 시신을 다 치운 다음에야 고구마를 갈 수 있었다.

 

북촌사건이 발생했던 1949년은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끼니를 잇기도 어려웠지만, 옴팡밭에는 죽은 시신을 먹은 고구마들이 목침덩어리만큼 큼직큼직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또 다른 친척 어른이 당시를 회상하는 증언이다.

 

“그핸 숭년(흉년)이라, 보릿겨범범 먹던 때지만 그 아지방네(아주머니네) 밭에서 난 감저(고구마)는 사름(사람) 죽은 밭엣 거라고 사름(사람)들이 사먹질 않했쥬.”

 

학살현장에서 두 아이를 잃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순이 삼촌은 그 후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한번은 순이 삼촌이 이웃집에서 메주콩을 잃어버린 일로 시비가 벌어진 적이 있는데, 이웃사람의 ‘경찰서로 가자!’라는 말 한 마디에 철퍼덕 주저앉아 똥오줌을 싸는 바람에 범인으로 오해받으면서 환청이 시작되었다. 평생 30년 전 그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순이 삼촌은 자식이 둘이나 묻힌 그 옴팡밭에서 사람의 뼈와 탄피를 골라내며 살다 결국 살육의 현장에서 약을 먹고 개처럼 죽고 말았다. 그녀는 지금 죽었지만 그녀는 이미 30여 년 전에 죽어버린, 유예된 죽음을 살았던 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정권도 바뀌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는 제주도를 트라우마 섬이 아니라 '익사이팅'한 관광의 섬으로만 기억한다. ‘4.3특별법’이 제정되고,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 조치 등이 이어지고 있지만, '어떤 위로와 사과로도 제주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다 지우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몇 마디 위로의 말로 혹은, 요식행위에 불과한 법 제정만으로 그들이 겪은 '팔열지옥(八熱地獄)'의 고통을 지울 수 있을까?

 

아직도 제주에는 제삿날이 같은 집이 동네마다 지천이다.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어둡고 습한 그늘. 이 비극의 역사를 위정자들은 ‘4.3폭동’, 우리들은 ‘제주 4.3항쟁’이라 부른다.

 

언제나 외세와 육지 사람들로부터 수탈당하고 차별과 억압을 당해왔던 섬 제주는 어느 곳보다 공동체가 살아있고 평화의 정신이 살아있는 곳이었다. 제주도민은 남과 북이 갈리기를 원하지 않았고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원하지 않았기에 통일과 자주를 외치며 저항했다. 또 친일경찰들이 해방 이후에도 버젓이 세를 누리며 민중을 억압하고 3·1절 시위에서 무력진압을 해 사람을 죽이고도 사과를 하지 않는 불의에 저항한 것뿐인데 그 대가는 너무나 혹독했던 것이다. 게다가 세월이 흐르도록 역사적으로는 빨갱이로 몰리고 그 가족마저 연좌제의 고통을 당했다. 피해자들은 억울한 피해자이면서도 무조건 빨갱이 취급을 받을까봐 피해 사실조차 입 밖으로 내지 못하며 숨죽여 살아야 했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 지나간 역사의 충격과 아픔을 잊어버리고 가끔씩 생각해내겠지만, 순이 삼촌 같은 분들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과거의 그 한 순간에 영원히 머물러 고통 받으면서 산다. 지제주도 바람에 묻어오는 순이 삼촌의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커플티를 입고 온 신혼여행객들의 자지러지는 웃음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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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특별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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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하늘에서 우주의 과거를 보다

 

태양은 하루 종일 서쪽을 향해 조용한 항해를 계속하면서도 가슴속 깊이 묻어놓은 용광로에 풀무질을 한다. 힘겨운 풀무질로 녹여낸 이글거리는 황금색 쇳물을 응축시켜 아무도 모르게 내면 깊숙이 숨겨둔다. 이윽고 서편 하늘에 도착하면 아련한 청산들이 겹겹으로 웅크려 잠들어 있는 곳에 허공과 청산의 계곡마다 쇳물을 흩뿌린다. 눈물겨운 석양을 하늘 가득히 채워 놓고는 황혼이 그 검은 장막을 내리기 전에 서둘러 서산 너머로 아스라이 사라진다.

 

낮에서 밤으로 바뀌는 순간에 서쪽 하늘에 뜨는 낭만적 노을은 지상에서 인간의 눈으로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일종의 우주 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날이면 날마다 반복되는 이 노을 현상은 태양이라는 거대한 항성의 인력에 종속돼 지구가 궤도를 이루고 주기적으로 자전과 공전을 계속하는 날까지 이루어 질 것이다.

 

천문학적인 개념으로 볼 때 애초의 태양은 태양계와 비교적 가까운 오리온좌에서 태어났다. 은하계 안에서는 가장 큰 우주의 가스와 먼지들이 복잡하게 압축된 오리온성운 속에서 형제들과 떼를 지어 함께 탄생한 것이다. 오리온성운을 망원경으로 관찰하면 지금도 어둡고 침침해 보이는 구름의 내면 깊숙이 새로 태어나고 있는 거대한 항성들,즉 태양의 동생들이 찬란한 빛으로 눈부시게 발광하고 있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 항성들은 오리온성운을 뛰쳐나와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길을 떠난다.

 

이렇듯 하늘을 보는 일은 우주의 과거를 보는 셈이다. 낮에 우리에게 밝은 빛을 주는 태양은 이미 8분전에 태양을 떠난 것이다. 지금 보는 북극성은 800년 전의 모습을 보는 것이고,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은하 안드로메다는 220만 년 전의 모습이다.

 

 

 

 Scene #2  우리는 별의 자녀

 

인류는 명백히 우주의 산물이다. 먼저 인간과 생명체를 이루는 원소들이 모두 별의 폭발에서 만들어졌다. 초기 우주는 수소와 헬륨뿐이었지만 별이 핵융합을 하다 신성(또는 초신성) 폭발로 생을 마무리하는 과정을 반복함에 따라 탄소 산소 질소 마그네슘 황 등 무거운 원소가 생긴다. 칼 세이건은 “DNA를 이루는 질소, 치아를 구성하는 칼슘, 혈액의 주요 성분인 철 등 원자 하나하나가 모두 별에서 합성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별의 자녀”라고 말한다.

 

태양도 주변 초신성 폭발 후 탄생했을 것이며 태양으로부터 자외선이 닿아 지구 최초의 유기물이 생겨났을 것이다. 공룡이 사라진 덕분에 포유류가 번성하고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진화하게 된 것도 우주적 환경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사실 우주를 들여다볼수록 인간의 존재는 경이다. 거꾸로, 인간의 눈으로 우주를 바라보기에 경이롭게 보이는 측면도 없지 않다. 예컨대 인간은 기적적으로 낙원 같은 지구를 만난 것이 아니라 지구 환경에 적응한 결과물이다. 지구에 산소가 풍부해진 것은 인간에게는 행운이지만 산소 없이 살던 미생물들에게 재앙이었다.

 

화성인 논란은 또 어떤가. 로웰 천문대를 세운 퍼시벌 로웰은 화성 표면을 가로지르는 선들이 거대한 운하라고 생각했고, 행성 규모의 토목공사를 벌이는 고등한 지적존재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물론 순전히 그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우주를 탐사하고 관측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화성에 이끼 같은 생물을 살게 하고, 덕분에 지표가 어두워져 더 많은 태양빛을 흡수하고, 얼음이 녹고, 얼어붙었던 대기가 풀려나 언젠가 인류가 화성에 거주하게 되리라는 상상은, 사람의 지적 능력이 아니라 꿈꾸는 능력에서 나온다. 화성인이 침공하는 공상과학과, 화성인이 산다는 로웰의 생각이 없었다면 과연 화성탐사선 프로젝트가 현실이 됐을까.

 

언젠가 화성의 극관(極冠, 화성의 극에서 얼음으로 덮여 하얗게 빛나 보이는 부분)에서 녹아내린 물을 적도 지대에서 받아쓰도록 거대한 운하를 건설할 날이 올지 모른다. 그 날이 오면 우리가 바로 ‘로웰의 화성인’이라고 세이건은 말하고 있다.

 

 

 

 Scene #3  만약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무한의 공간’인 우주를 탐험하는 지적 존재는 과연 인류뿐일까? 인간만이 고등한 기술을 갖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까? 외계인과의 만남은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환상’이다. 그러나 소수지만 어른이 돼서도 이 꿈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이건은 조바심치며 외계인과 조우를 고대하는 아이와도 같다.

 

전파는 외계의 존재를 확인하는 수단인 동시에 인간의 존재를 외계에 알린다. 지구에서 유래한 전파신호는 빛의 속도로 전 우주로 퍼져나간다. 세이건은 언젠가 외계 문명이 해독할지도 모를 인간의 TV 전파를 우려하기도 한다. 인류라는 존재는 고작 아무 생각 없는 광고, 끊임없는 국제 분쟁, 지지고 볶는 가정사에 얽매여 산다니. 도대체 외계 문명인이 인류를 뭘로 보겠는가.

 

외계 생명체의 모습이 지구인과 닮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여러 유기체에 분산 존재하는 지적 개체’ 같은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인간처럼 상온에서 전기신호를 주고받는 뉴런이 아니라 저온에서 작동하는 초전도 소자 뉴런을 가진 외계인이라면, 그들은 1,000만배나 빠른 속도로 생각을 하고, 동떨어진 뉴런끼리도 전파를 주고받을 것이다. 그래서 분신들이 여러 행성에 흩어져 존재하면서 하나의 총체적 자아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우주의 주인이 인간만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우주적 시야에 걸맞은 윤리를 따라야 한다. 예를 들면 고래와 같은 지구의 지적 생물을 저잣거리에서 파는 물건으로 취급할 게 아니라 이해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고래와 돌고래는 사람만큼이나 다채로운 언어를 구사한다. 긴수염고래는 20㎐의 소리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이처럼 낮은 주파수는 바다에서 거의 흡수되지 않아 지구 정반대편의 고래와도 대화할 수 있을 정도다.

 

보이저 호는 이 광막한 우주에서 얼마나 오래 날아가야 생명체를 만날 수 있을까. 아마 못 만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레코드판에 수록된 정보의 수명은 10억 년은 된다고 하니, 그 사이에 새로운 우주 생명체가 탄생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인간이 멸종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후손은 외계 지적생명체의 대답을 들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우주의 저쪽 그 먼 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실제 풍경들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현란한 광경이다. 현대의 최첨단 망원경으로서도 감지할 수 없는 세계이다. 인간의 의식이나 사고로서만 상상할 수 있는 추상적 개념의 우주의 풍경들을 점토를 빚어 형상화하는 것이 천문학자의 역할이다.

 

세이건은 우리에게 우주로 나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당당한 우주의 일원이 되라고 말하고 있다. '모험'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인간은 이제 겨우 달에 두 발을 디뎠을 뿐이다. 화성까지 유인우주선을 보내는 것도 아직은 힘겨워 보인다. 하지만 우주로의 모험이 시작된 이상 인간 종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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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해바라기」 1888년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碑)돌은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오늘 중앙일보의 ‘나를 흔든 시 한 줄’이라는 코너에 유종호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이 함형수의 ‘해라바기의 비명’을 소개했다. 아침에 만난 반가운 시였다. 그러나 옥에 티가 있었다. 시에 오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의 부제가 표기되지 않았던 것이다.

 

 

 

 

 

 

 

 

 

 

 

 

 

 

 

※ 함형수의 '해바라기의 비명'이 수록된 시집은 1989년 문학과 비평사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됐으나 현재 절판이다. 지금은 그의 시집은 eBook로 볼 수 있다.

 

 

이 시의 부제는 ‘청년 화가 L을 위하여’다. 신경림 시인은 자신이 매우 좋아하는 시 중의 하나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그가 쓴 책『시인을 찾아서』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시의 분량이 적다해서 별 볼일 없는 시인이 아니다. 시는 질로 따져야지 양으로 따져서는 안 된다. 그가 남긴 시는 ‘해바라기의 비명’ 단 한 편뿐이지만, 수천, 수만의 시인들 가운데 단 한 편의 ‘해바라기의 비명’이 없는 시인이 허다하다”고 썼다.

 

여름의 뙤약볕에도 굴하지 않고 태양을 마주하던 해바라기는 가을이 되면 절로 고개를 숙인다. 마치 사람의 한 생애를 닮았다. 피 끓는 청춘의 시절 당당하게 고개 들고 운명과 대결하던 이들도 나이가 들면 운명과 맞서려 하지 않는다. 그 부질없음을 알게 된 까닭이리라. 대신 불멸을 꿈꾼다. 누구든 죽고 나서 흔적 하나쯤 남기고 싶어 한다. 훗날 ‘참 잘 살다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 노란 해바라기와 보리밭, 무덤, 태양, 꿈, 그리고 부제를 보면 이 시는 화가 반 고흐의 꿈과 죽음을 소재로 한 것이 거의 틀림없다.

 

반 고흐가 자살한 지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이 시의 모티브로 등장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뒤 함형수가 반 고흐처럼 정신착란증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실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반 고흐는 정신질환 속에 권총 자살했으며, 그의 유일한 후원자이자 예술적 동지였던 동생 테오 역시 형이 세상을 뜬 지 6개월 만에 정신착란으로 숨졌다.

 

두 형제는 밀밭과 해바라기가 있는 파리 근교의 오베르에 나란히 묻혔다. 생전에 작품이 팔리지 않았던 반 고흐의 쓸쓸함, 이와 대비되는 열정적이고 눈부신 예술세계, 형제의 죽음 등이 함형수의 시에 무늬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숙연한 느낌을 준다.

 

 

 

 

 

 

 

 

 

 

 

 

 

 

 

 

 

 

 

 

 

 

 

 

 

 

 

 

 

 

고흐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폴 고갱과 함께 쓸 작업실을 장식할 목적으로 해바라기를 그린다고 하였다. 프랑스 남부의 8월에 고흐는 생의 의지를 가지고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었다.

 

고흐는 맹렬한 속도로 그린다. 자세히 보면 그림물감이 미묘하게 서로 섞이고 있고 마르지 않은 상태의 물감을 덧칠하는 것으로 독특한 생명감을 자아내고 있다. 고흐는 꽃 그 자체의 볼륨감을 내기 위해서 물감을 충분히 발라 거듭하고 있다. 거기에 따라, 마치 조각과 같은 입체감이 그림으로 태어난다.

 

 

 

 

폴 고갱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 1888년

 

 

그러나 고갱은 기억을 바탕으로 창조력을 구사하는 반면 고흐는 눈앞에 모델이 없으면 그릴 수 없었다. 정반대의 화가였던 것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두 명은 대립해 우정 관계는 무너져 갔다. 그렇게 위험한 공동생활 속에서 그려졌던 것이 바로 ‘해바라기’ 그림이다. 고갱의 도착을 손꼽아 기다려 그린 해바라기.

 

 

 

 

폴 고갱 「의자 위의 해바라기」 1901년

 

 

 

 

 

반 고흐 「폴 고갱의 의자」 1888년

 

 

두 명의 우정의 표시이기도 한 이 꽃을 한 번 더 그리는 것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관계를 수복하려고 했지만 오래지 않아 결국 두 사람의 공동생활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고갱이 떠난 아틀리에에서, 고흐는 다시 해바라기를 두 매 그린다. 이별의 해바라기를. 고흐가 세상을 떠난 지 11년 뒤, 남태평양 이국 땅에서 병마로 인해 피폐해진 예술혼을 끝까지 불태우고 있던 고갱은 해바라기 그림 한 점을 제작한다. 저 먼저 세상을 떠난 고흐가 그리워서였을까. 의자 위에 놓인 해바라기는 생전 고흐가 의자 위 물건을 정물화의 소재로 그렸던 그림이 연상된다. 고갱은 고흐가 정신적 충격으로 한 쪽 귀를 자른 사건과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고, 진심으로 애도했다고 한다.  

 

아니면 이제 곧 병으로 지친 자신의 영혼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신의 숨결을 느꼈을까. 고흐의 해바라기가 태양빛처럼 이글거리는 듯한 생동감이 느껴진다면 고갱의 해바라기는 거의 말라 죽을 듯하다. 노란 꽃잎이 듬성듬성 떨어져 나간 상태다.

 

배경과 화병조차 노란색인 이 그림은 고갱이 초록색 눈동자라고 묘사한 해바라기의 중심만 제외하고는 거의 노란색 일색이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른 것이긴 하지만, 고흐가 생의 희망을 가지고 그린 이 해바라기조차 그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열네 송이가 담긴 화병은 희망과 정열의 노란색을 띠고 있지만 화병에 담긴 해바라기들은 고흐 그 자신처럼 병들어가면서도 생의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는 듯하다.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처럼 고갱은 고흐를 떠나려했고, 고갱과 다투고 난 뒤 자신의 귀를 자르면서부터 고흐의 정신병적 발작은 시작되었다. 그는 정신병원에 있을 때에도 그림을 그렸고, 고통스러울 때에도 그림을 그렸다. 제 정신으로는 살 수 없었던 사람. 그 사람이 빈센트 반 고흐였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예술혼의 결정체이다.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뜨겁고 격정적인 자신의 감정을 대변하는 영혼의 꽃이다. 지독한 신경강박증이 없었더라면 누가 청년 화가의 해바라기 은유에 대해 그토록 오래토록 기억해줄 것인가. 오늘밤도 몇 번씩 제 귀를 면도날로 오리는 악몽에 시달리는 당신, 당신이야말로 해바라기 품는 예술가임을 잊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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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제임스 써버'라는 작가를 아시는가. 최근 제임스 써버의 책이 출간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작가의 이름이지만, ‘제2의 마크 트웨인’으로 불리는 미국의 단편작가이자 삽화가다. 마크 트웨인은 『톰 소여의 모험』『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집필하기 이전에 유머 소설 작가로 자신의 이름을 처음 알렸다. 세상을 위트 있게 풍자하는 트웨인의 미국적 유머는 인간성이 상실되는 물질문명을 배격하고 대범하게 비판하는 표현으로 유명하다. 써버의 유머 또한 물질문명 속에 놓여진 개인의 고독을 뒤집어 놓은 점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써버에게 유머란 “어떠한 정서의 혼란을 성찰하여 부드럽게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써버도 트웨인 못지않게 작가 이전에 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국무성 공무원, 지방신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뉴요커> 지의 편집에 참여함으로써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릴 때부터 한쪽 눈이 나빠 말년에 실명하고 만다. 어린 시절 자신의 형제들과 ‘빌헬름 텔’ 놀이를 하다가 그만 화살이 한쪽 눈을 찌르는 사고를 겪었다. 비록 한쪽 눈은 보이지 않아도 써버는 죽을 때까지 글과 그림을 남겼다.

 

지금까지 국내에 출간된 써버의 책(e-Book 포함)은 다음과 같다.

 

 

 

 

 

 

 

 

 

 

 

 

 

 

 

 

 

 

 

 

 

 

 

 

 

 

 

 

 

* 『난쟁이 퀼로우』 민음사 (1992년, 품절)
* 『나방과 별』 동천사 (1996년, 절판)
* 『아주아주 많은 달』 시공주니어 (1998년)
* 『열세 개의 세계』 살림어린이 (2009년)
* 『공주님의 달』 이스토리 (2012년, e-Book)
*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 뗀데데로 (2013년)
* 『공중그네를 탄 중년 남자』 뗀데데로 (2014년)

 

 

알라딘에는 ‘제임스 서버’, ‘제임스 써버’로 표기되어 있는데 둘 다 하나만 검색해도 동일한 저자의 책을 확인 가능하다.

 

작년에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이 출간되었을 때 알라딘 온라인 중고샵에서 2천 원도 안 되는 싼 가격으로 『나방과 별』을 구입했다. 알라딘에서는 책 표지가 등록되어 있지 않았는데 실물은 이렇다. 초등학생이 보는 동화책이 연상된다. 사실 분량이 얇은데다 우화, 짧은 동화들이 수록되어 있어서 초등학생이 읽어도 좋다.

 

 

 

 

 

 

그런데 이 책이 어느새 절판되고 말았다. 내가 중고샵에서 구입했을 때만 해도 구입이 가능했다. 이렇게 또 한 권의 책이 조용히 사라지는구나.

 

『나방과 별』에는 ‘우리 시대의 우화’, ‘인생의 경주’, ‘다락방의 올빼미’라는 부제목으로 우화와 동화 그리고 써버가 직접 그린 삽화가 수록되어 있다. ‘우리 시대의 우화’는 동물 또는 인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13편의 우화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우화에 삽화 한 점이 실려 있고, 이야기의 끝에 짤막한 교훈도 언급한다. ‘인생의 경주’는 글이 아닌 35개의 그림으로 만든 한 편의 이야기다. 인생을 ‘경주’로 비유하여 그림으로 표현했다. ‘다락방의 올빼미’(부제: 애완동물 상담극)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고민을 직접 써버가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답변해주는 대담 형식의 콩트이다

 

이 책은 서문의 내용이 독특하다. 써버가 직접 쓴 건데 3인칭 관점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써버는 어린 시절에 겪은 실명한 사고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별다른 일 없이 평탄했다고만 술회할 뿐이다. 나머지는 간단한 이력만 언급했다.

 

 

 

 

 

책의 동명 제목이기도 한 우화 ‘나방과 별’은 자신만의 꿈을 가지면서 삶의 한계를 넘어서는 노력의 가치를 강조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나방 한 마리는 별로 날아가는 꿈을 가지게 되었는데 나방의 부모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충고한다. 나방의 부모는 자신들은 별이 아닌 램프 주위에 맴도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별을 쫓는 방향으로 날아가지 말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별을 열망하는 나방은 저녁이 되면 별이 있는 곳으로 날기 시작했다. 날마다 아침이 돼서야 녹초가 된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는 주인공 나방이 나방의 습성처럼 램프 주위에 돌다가 타버리지 못하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나방은 램프 근처로 맴돌다가 타다 죽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별에 가까이 날아가고 싶었다. 그는 결코 별에 갈 수가 없다. 빛의 속도로도 4년이 넘게 걸리는 아주 먼 곳에 떨어진 곳을 연약한 날갯짓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나방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미 나방의 부모와 형제들은 램프 주위를 돌다가 타서 죽었다. 별을 열망하는 나방은 다른 나방에 비해 오래 살 수 있었다. 늙어버린 나방은 생각했다. 비록 실제로는 별에 다다르지 못했지만, 자신은 드디어 별에게 다가갔다는 것을. 이렇게 생각하자 그에게는 영원한 기쁨이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오래 살 수 있도록 빛나게 해 준 진정한 꿈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방의 삶을 빛나게 해준 진짜 별이었다. 만약에 별에 가고 싶은 꿈을 가지지 않았다면 주인공 나방도 램프 빛에 타서 죽었을 것이다.

 

 

 

 

 

 

 

 

 

 

 

간혹 글 대신 그림만 구성된 이야기도 있다. ‘사냥개와 빈대’는 글이 없다. 16개의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에 소개한 우화처럼 교훈을 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빈대가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는 사냥개의 모습을 관찰해서 그림으로 묘사한 것 같다. 

 

현재 출간된 써버의 책 중에서 내용이 아주 간략해서 킬링타임용으로 읽을 수 있다. 아직 써버의 다른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나방과 별』의 삽화가 진짜 써버가 그린 것인지 의문이 조금 든다. 사실 삽화가 너무 단순하면서도 투박하다. 아무래도 초등학생 독자 대상으로 책을 편집해서 그런지 이 책만 가지고 써버의 그림 실력을 알 수 없을 듯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방과 별』에 수록된 우화, 즉 ‘나방와 별’을 포함해서 몇 편을 제외하면 교훈성과 거리가 먼 곳도 있으며 ‘다락방의 올빼미’는 애완동물 보호자의 고민을 유머스럽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써버의 의도가 그렇게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미국식 유머는 한국식 유머와 차이가 있긴 하다. 써버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마크 트웨인 뺨치는 유머를 재미있게 살리지 못한 번역도 아쉽다. 

 

책에 수록된 이야기 중에서 가장 내용이 어이없으면서 엽기적인(?) 결말의 콩트 한 편 소개하면서 써버의 절판된 책에 관한 잡문을 마무리짓겠다. 이건 우화라기보다는 우리가 아는 동화 ‘빨간 모자’를 색다르게 비틀어버린 패러디로 봐야하나. 어쨌든 써버의 삽화와 그가 언급한 교훈 한 마디가 유머스럽다.

 

 


<소녀와 늑대> (58~59쪽)

 

 어느 날 오후 어두컴컴한 숲속에서 커다란 늑대가 음식을 바구니에 담아 할머니에게로 가져갈 한 소녀가 숲을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소녀가 숲으로 걸어왔다. 음식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서 말이다.
 “너는 그 바구니를 할머니께 가져가는 거냐?” 늑대가 물었다.
 소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자 늑대는 소녀의 할머니가 어디에 사는지를 물었다. 소녀는 늑대에게 할머니의 집을 가르쳐주고 숲속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할머니가 계신 집의 문을 열었을 때 소녀는 침대 위에 누군가가 나이트캡을 쓰고 잠옷에 갖춰 입고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침대로부터 스물다섯 발자국 이상은 가까이 가지 않았다. 소녀는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 할머니가 아니라 늑대라는 것을 눈치 챘던 것이다. 아무리 늑대가 나이트캡을 썼다 해도 할머니와는 조금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녀는 들고 있던 바구니 속에서 자동권총을 꺼내 늑대를 쏘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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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 피터 - 인생을 바꾸는 목적의 힘
호아킴 데 포사다.데이비드 S. 림 지음, 최승언 옮김 / 마시멜로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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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인생의 목적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사람들은 이 질문 앞에서 누구나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낀다. 그 어떤 질문보다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가급적 피하고 싶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또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가장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물음이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살아갈 세상은 어떤 곳인지,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내게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아야 진정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는 까닭이다.

 

『죽음의 수용소』의 저자 빅터 프랭클은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시련 속에서도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야 한다고 설파한다. 이렇듯 중요한 인생의 목적이란 무엇이고, 왜 그리 중요하며, 어떻게 찾을 것인가?

 

인생의 목적은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즉 존재의 이유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깊은 의식이다. 그것은 정체성, 소명, 가치와 신념, 욕구 등이 망라된 우리의 존재와 삶을 규명하는 본질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이고 방향이며 최종 목적지이다. 그리고 성취, 직업, 인간관계 등 우리 삶을 통제하는 근원이며 에너지의 원천이다. 인생의 목적은 이처럼 중요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먹고살기에도 바쁘다는 이유라든가 특별한 사람이나 가지는 것으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부와 신분상승이 인생의 목적이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모든 것을 이룬 순간 오직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모두가 가는 길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자신의 삶이 옳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생에서 실패와 좌절을 겪고 희망을 잃을 때가 있다. 그런 상황이 찾아오면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 표류하는 배처럼 방황의 연속일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피터’ 역시 그랬다.

 

피터는 불행했다. 가난하고 무식한 부모에게서 태어났기에 나면서부터 가난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게다가 그는 선천적으로 키가 작았다. 유전적 질병은 아니었지만 또래 아이들에 비해 현저하게 키가 작았던 그를 친구들은 난쟁이라고 놀려대며 왕따를 시켰다. 또한 분노조절장애가 있어 ‘욱’하는 성격으로 놀려대는 친구들과 싸움질하기 일쑤다. 그래서 친구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유일하게 그의 편이었던 엄마마저 아빠를 대신해 생계를 꾸려가다가 뜻하지 않은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빠는 툭하면 술을 마시고 손찌검을 해댔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힘든 거리 생활을 하게 됐지만, 그의 주변에는 그를 돕고자 하는 많은 이들이 생기게 된다.

 

끊임없이 독서를 권하는 학교 선생님부터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알렉스 경 등 피터를 지지하고 독려하는 소중한 존재들이 피터를 어둠으로부터 끌어낸다. 낮에는 택시운전을 하고 밤에는 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하며 피터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지가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사는 것이라고 깨닫게 된다. 또한 피터는 우리가 사는 데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어들을 모아 드림 카드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지가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사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피터는 노숙자에서 택시 운전사가 되기까지, 그리고 하버드 출신 변호사가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아버지를 용서하고 화해한 피터는 어느새 진정한 거인이 돼 있었다. 예컨대, 피터의 무료 법률사무소는 노숙자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실제 해결을 못한다 해도,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노숙자 출신의 변호사가 자신들의 말을 들어준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에게 큰 위안을 주는 부분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피터는 처음의 목적, 즉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는 인생의 목적을 차근차근 이뤄 간다.

 

 

 

 Scene #2  우화 형식 자기계발서의 등장

 

『난쟁이 피터』는 전작 『바보 빅터』 이후로 3년 만에 나온 호아킴 데 포사다의 신작이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에 출간한 『마시멜로 이야기』가 국내에서 빅히트를 친 이후 인생에 교훈을 주는 우화 형식의 자기계발서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마시멜로 이야기』가 성공한 것은 흡입력 있는 깔끔한 우화 형식의 이야기가 가진 힘도 있었지만 출판사 한국경제신문(한경BP)의 철저한 마케팅의 덕분이다.

 

처세서나 실용서, 그리고 우화는 모두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어떻게 새로운 이야기로 들려주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마시멜로 이야기』는 ‘잘 참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뻔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바꿔냈다. 성공한 갑부 조나단이 운전사 찰리에게 들려주는 성공의 비결에 따라 찰리가 스스로 삶의 방식을 바꾸는 과정을 실감나게 진행된다. 대가없이 도움을 주는 후견인이 생겼으면 하는 ‘키다리 아저씨’의 환상도 충족시켜준다.

 

『마시멜로 이야기』는 아나운서 정지영 씨의 대리번역 논란 이후로 판매량이 주춤할 듯 했으나 새 번역자와 새 출판사(21세기북스)로 옮겨 지금도 판매되고 있다. 그리고 『바보 빅터』는 한경BP에서, 이번에 나온 『난쟁이 피터』도 한경BP 소속 계열의 출판사인 ‘마시멜로’에서 출간되었다.

 

포사다의 신작 『난쟁이 피터』에 관한 언론과 독자의 관심이 높아서, 역시 ‘마시멜로 열풍’을 일으킨 저자의 인기를 다시 한 번 실감케 한다. 현재 4월 1일 기준으로 알라딘 에세이 분야 주간 베스트셀러 4위,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1위로 출간된 지 1주일 만에 상위권에 진입했다. 

 

 

 

 Scene #3  『바보 빅터』『난쟁이 피터』, 다르면서도 같은 이야기

   

그러나 냉정하게 이 책에 대해서 따져보자.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누구다 다 아는 이야기를 새로운 이야기처럼 들려줘야 독자의 흥미를 유도할 수 있다. 너무 뻔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는 절대로 감동을 주지 못한다. 그런데 과연 『난쟁이 피터』가 포사다의 전작들과 비교해서 ‘누구나 다 알면서도 흥미진진한 새로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마시멜로 이야기』『바보 빅터』『난쟁이 피터』에는 불행한 일을 겪는 주인공을 돕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주인공에게 진짜 성공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들은 책에서는 조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주인공이 성공의 해피엔딩으로 이끄는 중요한 인생의 멘토 또는 조력자로 나온다. 『마시멜로 이야기』에는 갑부 조나단, 『바보 빅터』는 문학교사 레이첼 그리고 『난쟁이 피터』는 크리스틴 선생님, 알렉스 경, 윌리엄 교수 등이 있다. ‘성공한 자’와 ‘성공을 원하는 자’의 인물 구도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가면서도 독자들이 마지막까지 극적 긴장감을 놓지 않도록 이끈다. 그러나 비슷비슷하면서도 단순한 플롯은 우화라는 형식에서 볼 수 있는 한계이기도 하다. 우화는 장르적으로 보면 서사적인 것과 교훈적인 것이 절충된 단순 형식이라 할 수 있고, 그들이 가르치는 교훈은 비교적 저차원적인 사리 분별을 위한 것이나 실용주의적인 것이다. 그만큼 글의 밀도가 떨어지고, 자칫 가볍게 읽혀질 수 있다.

 

그리고 『난쟁이 피터』는 포사다의 두 번째 전작 『바보 빅터』의 인물과 플롯이 유사하다. 『바보 빅터』의 주인공 빅터는 IQ 173의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수줍음 많고 말도 더듬은 자신감 없이 살아가는 인물이다. IQ 테스트에서 담임선생님의 실수로 73이 나오자 아이들로부터 아예 ‘바보 빅터’로 낙인찍힌다. 그는 학교를 자퇴하고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진짜 바보로 살아간다. 또 다른 주인공 로라의 상황도 비슷하다. 부모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조차 그녀를 못난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예뻐질 수 없다는 자괴감에 늘 우울해하며 매사에 비관적이다. 결국 결혼생활마저도 실패하고 만다. 『난쟁이 피터』의 피터처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유년기 시절은 절망과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바보 빅터』의 빅터와 로라, 『난쟁이 피터』의 피터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에 힘입어 열등감과 자괴감이라는 감옥에 스스로 빠져 나온다. 그리고 자신의 숨어있는 잠재력과 재능을 서서히 발견하게 된다. 이들은 이때부터 그동안의 상처를 함께 치유하며 새로운 긍정과 희망의 씨앗을 심기 시작한다. 두 책 다 이미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 볼 수 있었던 ‘희망적인 삶을 위한 긍정의 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인생에 가장 필요하고도 중요한 교훈이지만 자기계발서 열 권 중에 두 세 권 정도만 읽어도 나오는 흔한 내용이다.

 

 

 

 Scene #4  전작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신작   

 

출판사는 이 책이 ‘『바보 빅터』이후 400만 독자가 기다려온’ 최신작이라고 홍보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 출판사가 말한 그 ‘400만 독자’는 『난쟁이 피터』에 만족했을지 의문이 든다. 포사다가 쓴 책을 한 번 이상 읽어보고, 그의 신작을 정말 기다리는 독자라면 기대에 못 미쳐 실망하지 않았을까.

 

나는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는 편이 아닌데다 ‘베스트셀러’ 딱지가 붙어도 잘 읽지 않는다. 운 좋게도 출판사로부터 포사다의 신작을 무료로 제공받아 읽게 됐는데, 사실 포사다의 책은 『난쟁이 피터』가 처음이다. 그 다음에 『마시멜로 이야기』『바보 빅터』순으로 읽어나갔다. 세 권 다 읽으면서 왜 우리나라 독자들이 자기계발서에 열광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책의 교훈적인 주제는 정말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 번 곱씹어 봐야 할 좋은 내용인 것은 사실이다. 책을 읽다보면 성공한 명사의 격언이나 밑줄 긋고 싶은 문장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지극히 주관적이고, 좀 박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준수한 정도인 별 3개의 평가를 주고 싶지 않다. 읽는 내내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이라서 그런지 나의 가슴을 울컥하게 해주는, 그런 감동이 밀려오지 않았다.

 

자기계발서를 읽고 나면 지금보다 나은 성숙한 삶으로 계발하고 발전하기 위한 실천이 꼭 따라야만 한다. 책을 덮고 나서 진부하게 중요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거나 인상 깊은 구절로 채우는 서평을 쓴다고 해서 제대로 된 자기계발서 독서라고 보기 어렵다. 책의 내용을 평가하는 정도에 그친다면 자기계발서를 읽었던 그 시간은 낭비에 불과하다. 심장으로 교훈을 느꼈으면 머리로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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