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제임스 써버'라는 작가를 아시는가. 최근 제임스 써버의 책이 출간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작가의 이름이지만, ‘제2의 마크 트웨인’으로 불리는 미국의 단편작가이자 삽화가다. 마크 트웨인은 『톰 소여의 모험』『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집필하기 이전에 유머 소설 작가로 자신의 이름을 처음 알렸다. 세상을 위트 있게 풍자하는 트웨인의 미국적 유머는 인간성이 상실되는 물질문명을 배격하고 대범하게 비판하는 표현으로 유명하다. 써버의 유머 또한 물질문명 속에 놓여진 개인의 고독을 뒤집어 놓은 점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써버에게 유머란 “어떠한 정서의 혼란을 성찰하여 부드럽게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써버도 트웨인 못지않게 작가 이전에 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국무성 공무원, 지방신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뉴요커> 지의 편집에 참여함으로써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릴 때부터 한쪽 눈이 나빠 말년에 실명하고 만다. 어린 시절 자신의 형제들과 ‘빌헬름 텔’ 놀이를 하다가 그만 화살이 한쪽 눈을 찌르는 사고를 겪었다. 비록 한쪽 눈은 보이지 않아도 써버는 죽을 때까지 글과 그림을 남겼다.
지금까지 국내에 출간된 써버의 책(e-Book 포함)은 다음과 같다.
* 『난쟁이 퀼로우』 민음사 (1992년, 품절)
* 『나방과 별』 동천사 (1996년, 절판)
* 『아주아주 많은 달』 시공주니어 (1998년)
* 『열세 개의 세계』 살림어린이 (2009년)
* 『공주님의 달』 이스토리 (2012년, e-Book)
*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 뗀데데로 (2013년)
* 『공중그네를 탄 중년 남자』 뗀데데로 (2014년)
알라딘에는 ‘제임스 서버’, ‘제임스 써버’로 표기되어 있는데 둘 다 하나만 검색해도 동일한 저자의 책을 확인 가능하다.
작년에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이 출간되었을 때 알라딘 온라인 중고샵에서 2천 원도 안 되는 싼 가격으로 『나방과 별』을 구입했다. 알라딘에서는 책 표지가 등록되어 있지 않았는데 실물은 이렇다. 초등학생이 보는 동화책이 연상된다. 사실 분량이 얇은데다 우화, 짧은 동화들이 수록되어 있어서 초등학생이 읽어도 좋다.
그런데 이 책이 어느새 절판되고 말았다. 내가 중고샵에서 구입했을 때만 해도 구입이 가능했다. 이렇게 또 한 권의 책이 조용히 사라지는구나.
『나방과 별』에는 ‘우리 시대의 우화’, ‘인생의 경주’, ‘다락방의 올빼미’라는 부제목으로 우화와 동화 그리고 써버가 직접 그린 삽화가 수록되어 있다. ‘우리 시대의 우화’는 동물 또는 인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13편의 우화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우화에 삽화 한 점이 실려 있고, 이야기의 끝에 짤막한 교훈도 언급한다. ‘인생의 경주’는 글이 아닌 35개의 그림으로 만든 한 편의 이야기다. 인생을 ‘경주’로 비유하여 그림으로 표현했다. ‘다락방의 올빼미’(부제: 애완동물 상담극)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고민을 직접 써버가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답변해주는 대담 형식의 콩트이다
이 책은 서문의 내용이 독특하다. 써버가 직접 쓴 건데 3인칭 관점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써버는 어린 시절에 겪은 실명한 사고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별다른 일 없이 평탄했다고만 술회할 뿐이다. 나머지는 간단한 이력만 언급했다.
책의 동명 제목이기도 한 우화 ‘나방과 별’은 자신만의 꿈을 가지면서 삶의 한계를 넘어서는 노력의 가치를 강조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나방 한 마리는 별로 날아가는 꿈을 가지게 되었는데 나방의 부모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충고한다. 나방의 부모는 자신들은 별이 아닌 램프 주위에 맴도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별을 쫓는 방향으로 날아가지 말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별을 열망하는 나방은 저녁이 되면 별이 있는 곳으로 날기 시작했다. 날마다 아침이 돼서야 녹초가 된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는 주인공 나방이 나방의 습성처럼 램프 주위에 돌다가 타버리지 못하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나방은 램프 근처로 맴돌다가 타다 죽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별에 가까이 날아가고 싶었다. 그는 결코 별에 갈 수가 없다. 빛의 속도로도 4년이 넘게 걸리는 아주 먼 곳에 떨어진 곳을 연약한 날갯짓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나방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미 나방의 부모와 형제들은 램프 주위를 돌다가 타서 죽었다. 별을 열망하는 나방은 다른 나방에 비해 오래 살 수 있었다. 늙어버린 나방은 생각했다. 비록 실제로는 별에 다다르지 못했지만, 자신은 드디어 별에게 다가갔다는 것을. 이렇게 생각하자 그에게는 영원한 기쁨이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오래 살 수 있도록 빛나게 해 준 진정한 꿈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방의 삶을 빛나게 해준 진짜 별이었다. 만약에 별에 가고 싶은 꿈을 가지지 않았다면 주인공 나방도 램프 빛에 타서 죽었을 것이다.
간혹 글 대신 그림만 구성된 이야기도 있다. ‘사냥개와 빈대’는 글이 없다. 16개의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에 소개한 우화처럼 교훈을 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빈대가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는 사냥개의 모습을 관찰해서 그림으로 묘사한 것 같다.
현재 출간된 써버의 책 중에서 내용이 아주 간략해서 킬링타임용으로 읽을 수 있다. 아직 써버의 다른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나방과 별』의 삽화가 진짜 써버가 그린 것인지 의문이 조금 든다. 사실 삽화가 너무 단순하면서도 투박하다. 아무래도 초등학생 독자 대상으로 책을 편집해서 그런지 이 책만 가지고 써버의 그림 실력을 알 수 없을 듯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방과 별』에 수록된 우화, 즉 ‘나방와 별’을 포함해서 몇 편을 제외하면 교훈성과 거리가 먼 곳도 있으며 ‘다락방의 올빼미’는 애완동물 보호자의 고민을 유머스럽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써버의 의도가 그렇게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미국식 유머는 한국식 유머와 차이가 있긴 하다. 써버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마크 트웨인 뺨치는 유머를 재미있게 살리지 못한 번역도 아쉽다.
책에 수록된 이야기 중에서 가장 내용이 어이없으면서 엽기적인(?) 결말의 콩트 한 편 소개하면서 써버의 절판된 책에 관한 잡문을 마무리짓겠다. 이건 우화라기보다는 우리가 아는 동화 ‘빨간 모자’를 색다르게 비틀어버린 패러디로 봐야하나. 어쨌든 써버의 삽화와 그가 언급한 교훈 한 마디가 유머스럽다.
<소녀와 늑대> (58~59쪽)
어느 날 오후 어두컴컴한 숲속에서 커다란 늑대가 음식을 바구니에 담아 할머니에게로 가져갈 한 소녀가 숲을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소녀가 숲으로 걸어왔다. 음식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서 말이다.
“너는 그 바구니를 할머니께 가져가는 거냐?” 늑대가 물었다.
소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자 늑대는 소녀의 할머니가 어디에 사는지를 물었다. 소녀는 늑대에게 할머니의 집을 가르쳐주고 숲속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할머니가 계신 집의 문을 열었을 때 소녀는 침대 위에 누군가가 나이트캡을 쓰고 잠옷에 갖춰 입고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침대로부터 스물다섯 발자국 이상은 가까이 가지 않았다. 소녀는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 할머니가 아니라 늑대라는 것을 눈치 챘던 것이다. 아무리 늑대가 나이트캡을 썼다 해도 할머니와는 조금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녀는 들고 있던 바구니 속에서 자동권총을 꺼내 늑대를 쏘아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