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존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실로 ‘살아남은 자들’임에 틀림없다. 눈 한번 잘못 팔다가는 달리는 차바퀴에 남은 목숨을 바쳐야 하는 우리 처지다. 그 이름도 많은 질병, 대량 학살의 전쟁, 불의의 재난,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갈등. 이런 틈바구니에서 우리들은 정말 용하게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이다.

 

죽음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영원한 이별이기에 앞서, 단 하나뿐인 목숨을 여의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그 자체가 존귀한 목적이다.

 

살아남은 사람들끼리는 더욱 아끼고 보살펴야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자기 차례를 맞이할지 모를 인생이 아닌가. 살아남은 자인 우리는 채 못 살고 가 버린 이웃들의 몫까지도 대신 살아 주어야 한다. 나의 현 존재가 남은 자로서의 구실을 하고 있느냐가 항시 조명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 하루도 우리들은 용하게 살아 남았군요” 하고 인사를 나누고 싶다. 살아남은 자가 영하의 추위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화목에 거름을 묻어 준다. 우리는 모두가 똑같이 살아남은 자들이다.

 

(법정, ‘살아남은 자들’ 중에서 발췌)

 

 

 

 

 

 

 

 

 

 

 

 

 

 

 


잠깐 햇살이 비치고 있지만 지금 한반도의 공기는 더없이 무겁고 흉흉하다. 누구나 지금 눈물에 젖은 먹장구름에 가위 눌린 채 무기력과 슬픔의 일상을 견디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 사랑을 나누고 있다면 그 사랑의 온도와 질감은 비보로 인하여 낮게 가라앉아 있을 것이다. 모든 생일잔치와 동창회와 회갑연들, 강의실과 식당과 지하철, 회식 이후의 노래방과 은밀한 사랑의 모텔조차도 팽목항의 슬픔에 엄청난 무게에 짓눌린 상황이다.

 

독일의 시인 브레히트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라고 시를 읊었다. 살아있는 자의 기쁨 대신 슬픔을 노래했다. 우리는 강해서 살아남은 것일까?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일까? 표현하지 않지만 때로는 살아남은 것이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되고 비겁함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지금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무기력과 공포, 답답함과 불안함.

 

하지만 운 좋게, 혹은 강해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서늘한 마음으로 세월을 견디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여자는 잊혀진 여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비단 여자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잊혀진다'는 사실에는 비애감이 있다. 영원히 잊혀진다는 건 그래서 겁나고 무서운 일이다. 어쩌면 살아남은 자의 진짜 슬픔은 먼 옛날의 일처럼 비극을 쉽게 잊어버리는 기억의 한계일 것이다.

 

살아 있음에 슬픔을 느꼈다면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내 주변 사람을 안아주고 보살필 수 있는 이 평범한 일상이 ‘사랑’이며 서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위로’다.

 

망자(亡者)에 대한 최고의 사랑은 ‘그 사람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 일은 아프고 힘든 일일 것이다. 그래서 때때로 슬픔이 밀려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 주변에 있는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이다.

 

강하기 때문에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살아남아야 한다. 쓰러진 사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온기쯤은 남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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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간다 - 대중 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
에드워드 버네이스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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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propaganda)이란 원래 '잘 설명해서 널리 알린다'란 의미의 중립적인 단어였다. 'PR의 아버지'로 불리는 저자는 자신을 PR전문가보다는 '선전가'로 불리길 원했다. 그는 선전을 통해 일반 대중이 선량한 엘리트 집단의 안내를 받으며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선전의 의미는 부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20세기 초반의 역사에서 선전은 피바람을 부르기 위한 일종의 물밑 작업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의 나치정권과 그 선전 장관이었던 괴벨스였다. 괴벨스의 선동을 발판으로 유대인을 학살하고 잇단 전쟁을 치른 독일은 혈육과 이웃사촌을 잃은 뒤로는 더 이상 선전을 신뢰하지 않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전 세계인들 역시 이 부분에 깊은 공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버네이스의 이상은 현실 세계와 달라도 한참이 달랐던 셈이다.

 

이런 인식이 발달하면서 오늘날의 사람들은 쉽게 정권의 선전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 예로 195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각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정권 홍보물인 '대한뉴스'를 틀었다. 독재 정권의 서슬 퍼런 통제 아래 사람들은 얌전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영화가 끝나면 술자리 안줏감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소극적인 저항이었지만 어두운 시대에 대중이 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행동이었다.

 

버네이스는 선전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고 확언한다. 아무리 까다롭고 냉소적으로 일관하더라도 사람들은 결국 반응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특히 선전의 일부인 기업 광고가 넘치는 세상에서 선전의 역할은 과거에 비해 더욱 교묘하고 절대적이다. 음식을 필요로 하고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지도자를 따르려는 인간의 본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선전의 효과는 유효하다.

 

 

 

물론, 이 책에는 어떤 용어나 행위가 아무리 가치중립적이더라도 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에 의해 손쉽게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80년이 지난 지금의 복잡한 사회경제구조에는 버네이스가 제시한 비교적 단순하고 '소박한' 선전 전략이 통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여론을 조직하고 이끄는 것은 설사 그 도구가 잘못 사용될 위험이 있을지라도 질서정연한 삶에 반드시 필요하다. 어느 분야든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달성하려면 선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현대의 선전은 기업이나 사상 또는 집단과 대중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건을 새로 만들거나 일정한 방향으로 끼워 맞추려는 일관된 노력이다. 대중은 선전을 통해 변화와 진보에 길들여진다. 선전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일수록 선전은 생산적인 목표를 달성하고 무질서를 바로잡는 데 필요한 현대적 도구라는 점을 직시한다. 이러한 선전을 지속적으로 체계적으로 활용해야 할 책무는 소수의 지식인들에게 있다. 사회의 진보와 발전은 결국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을 일치시키는 소수 지식인들의 활발한 선전 활동에 달려 있다.

 

 

 

선전에 기만당하면서도 스스로는 그렇다고 믿지 않는 역설. 버네이스의 시대로부터 80여년이 흐른 지금, 달라진 것은 과연 무엇일까. 연일 신문과 방송, 인터넷을 도배하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선전과 선전 아닌 것을 구별해 낼 재간이 없는 대중은 힘 있는 정부와 기업이 설파하는 교묘한 선전 논리를 곧이곧대로 쉽게 믿어버리고 만다. 소수의 지배 권력은 끊임없이 여론을 조작하고 자신들이 신봉하는 이념과 정책을 받아들이도록 대중을 압박한다. 80여 년 전 버네이스의 자신감은 현대로 올수록 더욱 유효해지는 불편한 탁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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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흥망성쇠는 장구한 세월 부침을 거듭하다가 어느 시기에 고목이 쓰러지듯 그렇게 결말이 난다. 전쟁과 천재지변으로 한순간에 망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가가 끝이 보이지 않는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걸어가는 형국이 역사인 것 같다. 당대의 사람들은 워낙 경사가 완만하여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모르면서 산다.

 

 

 

 

 

 

 

 

 

 

 

 

 

 

 

 

세계금융의 패권을 주도해 온 경제 대국도 흥망성쇠의 과정을 피할 수 없다.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를 쓴 찰스 킨들버거는 금융위기를 질긴 다년생 꽃에 비유했다. 아무리 뽑아도 또 나타난다는 뜻이다.

 

흔히 자본의 대이동은 금융위기를 수반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금융은 경제뿐만 아니라 지리적 환경과 기술, 종교 등을 망라한 집합체라 할 수 있다. 또 금융은 지금 이 시대에만 연계된 것이 아니다. 모든 금융위기의 배후에는 사회, 문화, 역사적 배경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역사를 해부해 분석하는 것이 좋다. 역사는 중복되지 않으며 역사의 배후에는 사건이 있다. 금융 발전은 개인, 민족, 국가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금융 자체에는 발전 코드가 있다. 이에 따라 금융시장의 붕괴는 우리의 내일을 불행하게 만드는 씨앗이 된다. 금융위기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금융위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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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1916-1956 편지와 그림들 - 개정판 다빈치 art 12
이중섭 지음, 박재삼 옮김 / 다빈치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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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편지는 시가 된다. 그리움이 넘치면 시인은 편지를 쓴다. 곽재구는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새벽 편지를 쓰기 위하여’(새벽편지), 윤동주는 ‘긴긴 잠 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 절절한 마음을 시로 남겼다.  그리움으로 쓰는 편지가 인연의 끈이 되기도 한다. 괴테의 시에 차이코프스키가 곡을 붙인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라는 가곡을 듣고 있으면 가슴 한구석이 아주 깊이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한국에도 이 노래만큼이나 구구절절한 그리움을 표현한 화가가 있다. 이중섭이다.

 

 

 

 

이중섭하면 일단 고등학교 때 배운 대충의 지식으로 무지하게 가난했었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이중섭은 신화적인 존재였다. 민족적 정서를 화폭에 옮겨놓으면서 한국 근대 미술의 선구자로서 또는 천재화가로서 인정받아왔다. 그의 궁핍했던 삶이 이런 신화에 보다 많은 후광을 낸 것도 사실이다. 이런 신화적 요소를 벗고 이중섭의 예술 세계를 다시 보자는 말이 나올 정도니, 그의 삶 자체 하나하나가 역사와 예술 속에서 얼마나 고단했는지 반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화가 이중섭의 편지는 수많은 편지 중 언제나 애잔한 빛을 띤다. 이중섭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에게 한 번도 부치지 못한 편지를 그림으로만 남겼다. 화가의 그리움이 진하게 배어있는 편지는 그림이 된다. 불우한 천재. 한 뼘의 수식어로 남은 그의 삶을 편지가 전하고 있다.

 

작가들은 보통 자신의 세계를 작품으로 말한다. 거기에 몇 가지 기록이나 주위 사람들의 소회가 덧붙여져 한 작가의 생애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들여다 볼 수 있는 작가의 삶은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간혹 그들이 속살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는데, 일기나 편지를 통해서이다.

 

6.25 전쟁으로 인해 피난 온 서귀포에서의 2년이 채 못 되는 시간이 이중섭에겐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꿈같은 나날이 된다. 어쩌지 못하는 가난 때문에 아내 이남덕 여사는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중섭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  1941년

 

 

“빨리빨리 아고리(이중섭, 턱이 길다고 붙인 애칭)의 두 팔에 안겨서 상냥하고 긴긴 입맞춤을 해주어요. 언제나(지금도) 상냥한 당신 일로 내 가슴은 가득 차 있소. 하루빨리 기운을 차려 내가 좋아하는 발가락 군(이남덕, 발가락이 예쁘다고 붙인 애칭)을 마음껏 어루만지도록 해주시오. 아! 나는 당신을 아침 가득히, 태양 가득히, 신록 가득히, 작품 가득히, 살아하고 사랑하고 열애해 마지않소.” (73쪽)

 

 

일본에 있는 아내로부터 편지가 온 날이면 이중섭은 잠을 설쳤다. 여비를 마련해 준다는 친구 시인 구상의 권유에도, 서울에 여는 전시회를 위해서 새벽부터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 아들 태성이도 그리고 태현이도 그렸다. 그 아이들이 이중섭을 타고 엉덩이를 굴러대는 그림도 그렸다. 두 아이와 아내가 자신과 함께 과일 따먹는 그림도 그렸다. 고기하고 노는 아이도 그렸다. 그리고 밤새 그 그림과 이야기를 했다.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이중섭의 그림

 

 

한 장을 가득 채우고도 못내 아쉬운 이중섭의 그리움은 편지지의 귀퉁이마다 작은 삽화로 다시 그려진다. 떨어져 있는 세 식구를 향해 팔을 벌린 자신의 모습, 네 식구가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 아내의 얼굴 등을 구석구석에 채워 넣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이중섭의 마음속에는 사랑하는 아내를 살포시 껴안고 싶고, 아이들과 마음껏 뛰어놀고 싶었을 것이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예술가만큼 불완전한 존재가 있을까. 예술가란 이중섭이 그린 벌거벗은 어린이의 모습처럼 천진하고 현실감이 없어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지독한 궁핍 속에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이중섭이 몸과 마음을 부려놓고 기댈 곳은 아내뿐이었을 것이다.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는 마치 늘 가까이에 있는 아내에게 일상에 대해서 소곤거리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였을까. 책을 읽는 내내 자신이 얼마나 궁핍한지, 아내와 두 아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예술에 대한 갈망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그의 육성을 듣고 있는 것 같다.

 

‘나의 거짓 없는 희망의 봉오리, 나의 귀여운, 나의 기쁨의 샘, 가장 아름다운 나의 아내, 소중한 나의 남덕 군’ 이렇듯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는 사랑의 수식어가 넘친다. 그러나 그 수식어들은 공허하다 못해 슬프기까지 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듣기 좋은 말들을 무작위로 쏟아내고 있는 것 같아 그가 처해 있는 현실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이 편지를 받고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또 보고 싶은 마음에 얼마나 울었을까?

 

그러나 역설적으로 화가의 애절한 사연과는 다르게 그림을 오랫동안 보게 되면 분명 가난 속의 행복이 느껴진다. 고통스럽거나 찌들려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몸짓이 즐거워 보인다. 가족들이 행복해 보인다.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그릴 수 없는 그림이라 여겨진다. 적어도 서귀포에 생활하면서 그렸던 그림들이 그렇다. 한 평 반도 채 안 되는 공간에서 그린 그림들, 저토록 좁은 공간에서 행복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이중섭 그림의 진가는 거기에 있다고 본다.

 

 

 

 

이중섭  「바닷가에서 물새와 노는 소년들」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춘 것은 없었지만 바닷가에서 아이들과 뒹굴어가며 게를 잡고 그림을 그렸던 이중섭. 그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내에게 전하는 저 아름다운 말은 가족의 사랑에서 느껴지는 행복을 말해주고 있다. 가난의 고통을 홀로 뼈저리게 느꼈을텐데 이중섭은 행복이 물질적인 조건에 있다는 것을 강력히 거부한다.

 

 

“돈 걱정 때문에 너무 노심하다가 소중한 마음을 흐리게 하지 맙시다. 돈은 편리한 것이긴 하지만, 돈이 반드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하오. 중요한 건 참 인간성의 일치요. 비록 가난하더라도 절대로 동요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부부의 사랑 그것이오. 서로가 열렬히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한다면 행복은 우리 네 가족의 것이 아니겠소.” (59~60쪽)

 

 

 

어떤 이들은 이중섭의 그림이 단지 이중섭의 이상향을 그렸을 뿐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그림 속의 행복은 현실에 가장 가까웠을 것이다. 이중섭은 가난 속에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림으로 보여줬다. 그걸 누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그 어떤 것을 소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행복감을 표현하려 했던 수단으로 다가온다.

 

제주도 피난민 시절,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생활에 또 무엇이 필요했겠는가. 마음이 편하면 입는 것 먹는 것 잠자리는 그리 대수롭지 않다.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중섭은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참 인간성의 일치이자 확고부동한 부부의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이중섭에게 예술은 지고한 애정의 표현이다. 참된 애정이 충만함으로써 마음이 맑아지고 그로써 우주의 모든 것이 올바르게 마음에 비추어 훌륭한 작품이 탄생된다고 했다. 사랑이 이런 과정을 거쳐 예술혼으로 승화된다.

 

이중섭은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는 기능공보다는 자신의 시각으로 사물을 변조하는 창조자의 꿈을 가지고 좀 더 엄밀하고 강렬한, 보다 새로운 표현에 대한 갈망이 컸다. 대담하고 다이내믹하면서도 몽환적인 붓 터치나 단순화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선묘(線描) 그리고 선명하고 강렬한 원색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이중섭  「소」  1953년경

 

 

작품 제작에 대한 열정은 지극했다. 그는 오로지 가족과의 재회를 고대하며 매일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제작에 몰두했다. 작품제작에 대한 불같은 열정은 그의 아내에 대한 진한 사랑과 바로 조응한다. 그가 그린 소는 단순히 들판에서 풀을 뜯어먹는 한가한 소가 아니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한 황소의 눈빛은 무언가 강한 메시지를 전하려 하고 있다. 내가 가난과 불행 속에서 버텨내면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의 근원은 사랑과 열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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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joker 2014-04-29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드마라에 나왔었죠 ㅡ 책이랑 그의삶에 대해 ㅡ 반가운 마음이 한켠에 댓글을 남깁니다 ㅡ 좋은글 감사합니다

cyrus 2014-04-30 14:2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 tjjoker님. 맞아요. 갑자기 이 책이 관심을 받길래 읽어보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드라마 덕분에 책이 뜬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
 

 

 Prologue

 

 

              

 

 

늘 어긋난다 해도 너 울지는 마 / 이별도 세월도 죽음도 가를 수 없는 우리 사랑이니까

(휘성, ‘살아서도 죽어서도’)

 

 

 


 Scene #1  오프페우스♥에우리디케 

 

 

 

 

 

귀스타브 모로  「오프페우스의 목을 들고 있는 트라키아 여인」  1865년

 

평화로운 지상에 아름답고도 섬뜩한 잔혹극이 펼쳐진다. 리라를 즐겨 켰던 음악의 대가 오르페우스. 그는 자신을 숭배하던 무녀들의 구애를 거절했다가 그네들 손에 몸이 갈가리 찢기고 머리통이 잘렸다. 한 여인이 강에 떠내려 온 오르페우스의 머리와 그의 리라를 건져 올린 뒤 애틋한 눈길로 어둠 속에서 내려다본다. 이젠 늦었다.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지옥에서 구출해오다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끝내 부인과 영영 이별해버린 슬픔을 그는 벗어날 수 없었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신부로 맞았다. 그런데 목동의 스토킹을 피해 달아나던 에우리디케가 독사에 물려 숨지고 말았다.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던 오르페우스에게 지옥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신이 내린 천재 뮤지션답게 오르페우스는 슬픈 노래로 저승의 뱃사공을 울려 카론의 배에 무임승차했고, 아름다운 연주로 괴물의 꼬리를 내려 저승의 입구를 통과했다. 마침내 명부의 왕 하데스의 콧날까지 시큰하게 한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얻어 지상으로 돌아오는 기적을 일으킨다. 다만 지상에 당도할 때까지 뒤따르는 에우리디케를 절대 보지 말라는 조건이 있었다.

 

오르페우스는 어떻게 되었는가? 뱀에 물려 절뚝거리는 아내가 잘 따라오는지, 돌에 걸려 넘어지는 것은 아닌지, 하데스의 선심이 혹 거짓은 아닌지 쏟아지는 걱정과 끊임없는 의심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상에 발을 딛는 마지막 순간에 오르페우스는 의혹을 억누르지 못하고 에우리디케를 보고야 만다. 그가 뒤돌아보는 순간, 열심히 뒤를 따르던 에우리디케는 다시 지옥으로 빨려 들어간다. 오르페우스의 절규어린 비탄도 애원의 목소리도 에우리디케를 붙드는 데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달래려는 듯, 꿈같은 사랑의 달콤함과 난파된 사랑의 사연을 절절히 노래했다.

 

 

 Scene #2  생텍쥐페리♥콩쉬엘로

 

 

 

 

 

 

 

 

 

 

 

 

 

 

 

 

생텍쥐페리의 처녀작 『남방 우편기』의 주인공 자크 베르니스는 사막의 모래 언덕 위에서 죽는다. 주인공은 우편물을 싣고 유럽에서 아프리카를 경유하는 우편기 조종사다. 소설 속에서 그의 사망을 알리는 전보는 간결하고 차갑다.

 

‘세네갈의 생루이에서 툴루즈에 알림. 프랑스-아메리카 우편기를 티메리스 동쪽에서 발견함. 적들은 근방을 떠났음. 조종사는 피살되고, 비행기는 파손됨. 우편물은 무사함. 다카르로 운송 중임.’

 

‘다카르에서 툴루즈에 알림. 우편물이 다카르에 잘 도착함. 이상.’ (275~276쪽)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소설 주인공처럼 사라졌다. 삶의 낮은 차원을 견디는데 서툴렀던 이 남자를 사랑하는 일은 또한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생텍쥐페리에게 아내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행방불명되기 전부터, 그리고 행방불명 된 이후로도 그가 돌아오기만을 한결같이 기다리던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 아르헨티나 항공우편회사 지사장이던 생텍쥐페리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27세의 과부 콩쉬엘로.

 

엘살바르도의 7대 부호 가문 출신인 콩쉬엘로는 17세에 미국 유학을 가서 첫 남편을 만났지만 2년 만에 사별하고 파리 사교계에 진출, 과테말라 출신의 작가이자 외교관인 고메스 카리요와 재혼한다. 그러나 1년 만에 다시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남편의 현금 유산을 찾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들렀을 때 생텍쥐페리를 만난다. 사교회장에서 콩쉬엘로를 처음 만난 생텍쥐페리는 비행기를 태워주겠다고 제안했고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공중에서 나눈 키스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프랑스 귀족 출신인 생텍쥐페리 집안은 남미 출신의 이혼녀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가히 세기적 방랑벽의 소유자라 할 생텍쥐페리는 도망갔다가 돌아오고, 또 도망가기를 반복했다. 생텍쥐페리는 문학적 성공을 거둬도, 비행 기록을 수립해도, 콩쉬엘로가 곁에 있어도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들어차 있던 근원적인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는 혼자서 비행기의 조종간을 잡고 있을 때 비로소 행복을 느꼈다. 어쩌면 두 사람은 고독 속에서만 사랑이 온전히 유지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 더욱 놀라운 것은 두 사람이 언제나 최초의 사랑으로 끊임없이 회귀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러브스토리는 『남방 우편기』에 묘사되어 있다. 리비에르와 그가 소년 시절부터 사랑했던 주느비에브의 모델이 바로 생텍쥐페리와 콩쉬엘로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소설의 결말처럼 끝나고 만다. 1944년 7월 31일, 고독한 조종사는 자신의 애마 P38라이트닝과 함께 지중해의 상공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실종되기 전, 생텍쥐페리는 콩쉬엘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고집스런 작은 게처럼 날 꼭 잡고 있어줘서 고마워.” 남편의 실종을 두고 자살 혹은 탈영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콩쉬엘로는 모른 척한다. 그녀는 남편이 이제는 자신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일기에조차 실종에 대해 한 마디도 쓰지 않은 것은 물론 남편의 귀환 소식에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힘을 믿었다. 그것은 바로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연인들이 주고받는 신비한 감정의 힘, 바로 ‘사랑’의 힘이었다.

 

그가 지중해에서 사라진 지 54년이 지난 1998년에 고기를 잡던 어선 그물에 낡은 비행기 잔해와 팔찌 하나가 걸려 올라왔다. 팔찌 안쪽에는 조그만 이름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콩쉬엘로

 

 

 Scene #3  앙드레 고르♥도린

 

 

 

 

 

 

 

 

“당신은 곧 여든 두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빈자리입니다.” (6쪽)

 

생태정치 운동가이자 사상가인 앙드레 고르와 그의 아내 도린. 두 사람은 평생을 이념의 동지로, 더 나아가 일상의 동반자로 함께 했다. 기쁨과 슬픔, 희열과 절망 속에서, 그리고 불치병을 앓던 도린의 형용할 수 없는 통증과 고통 속에서 함께 나이가 들어갔다. 삶의 곳곳에서 마주치는 죽음의 그림자. 그러나 죽음 자체는 겁나지 않았다. 두려운 것은 오직 아내와의 이별일 뿐. 80여 쪽 넘게 이어지는 고르의 편지는 두 사람이 함께 살아낸 시간이 늘 함께 춘 사랑의 춤이었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88쪽)

 

그토록 많은 책을 저술했고, 사상이나 이념에 천착한 지식인은 아내 없이는 모든 게 공허함을 홀몸으로 견디기가 힘들었을까. 2007년 9월 24일. 프랑스 외곽 시골마을에서 부부는 나란히 저세상으로 떠났다. 사인은 동반자살. 결코 혼자 가지 않겠다는 생전의 약속 그대로. 두 사람을 태우고 남은 재는 유언대로 두 사람이 손수 가꾼 정원에 뿌려졌다.

 

러브레터라는 게 꼭 사랑을 시작할 때만 가능한 게 아닌 것이다. 삶이 끝나려 할 때, 그 때까지도 사랑이 계속되고 있음을 스스로 다짐하며 보내는 연서(戀書)도 있음을, 그런 사랑편지가 더 지극한 감동을 준다.

 

 

 Epilogue  사랑의 정의 

 

나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 혹은 그녀는 지금 내 곁에 없다. 나는 부재의 시간 속에 있다. 부재의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다. 누군가의 부재가 나에게 끊임없이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누군가에 대한 생각에 붙잡혀서, 벗어날 수 없이 매여 있음,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그렇게 붙잡혀서 매여 있음이다.

 

한국어의 ‘사랑’이란 단어가 그 정황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원래 많이 ‘생각하다’라는 의미의 한자어다. 즉 사량(思量)이었다. 한가지의 생각에 얽매여 있기. 그것이 사랑이 되었다. 이전에 고어에서 사랑은 ‘고임’이었다. 괴다, 고이다. 몽골어에서도 사람과 사랑이 동의어다. 사랑은 사람이다. 사람이 사랑이다. 사람에 대한 생각,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것이 사랑인 것이다.

 

그리스에서 사랑은 에로스(eros)다. 치명적인 화살을 가진 신, 에로스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사랑의 격정에 빠지게 만드는 화살을 쏜다. 인간은 화살에 맞고, 사랑의 격정에 빠져든다. 거기엔 아무런 논리적 이유가 없다. 그리스들은 사랑의 감정을 신의 희롱으로 보았다. 사랑에 빠진 자는 에로스 신의 화살을 맞은 것이다. 화살을 맞고 사랑에 빠진 자, 이젠 죽음조차도 그 사랑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사랑은, 부재의 경험에 토대를 두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지금 내 곁에 없다. 나와 생각하는 대상 사이에는 무섭고 지독한 심연이 가로놓여 있는 듯하다. 그것이 사랑이다. 부재를 통해서만 더욱 명징하고 절박하게 확인되는 감정, 그것이 사랑의 감정이다. 사랑은 자꾸만 생각나게 만드는 것이다. 간절한, 감내하기 힘든 그리움이다. 그리하여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하데스의 왕국으로 내려간다. 우리는 모두 오르페우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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