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늘 어긋난다 해도 너 울지는 마 / 이별도 세월도 죽음도 가를 수 없는 우리 사랑이니까
(휘성, ‘살아서도 죽어서도’)
Scene #1 오프페우스♥에우리디케

귀스타브 모로 「오프페우스의 목을 들고 있는 트라키아 여인」 1865년
평화로운 지상에 아름답고도 섬뜩한 잔혹극이 펼쳐진다. 리라를 즐겨 켰던 음악의 대가 오르페우스. 그는 자신을 숭배하던 무녀들의 구애를 거절했다가 그네들 손에 몸이 갈가리 찢기고 머리통이 잘렸다. 한 여인이 강에 떠내려 온 오르페우스의 머리와 그의 리라를 건져 올린 뒤 애틋한 눈길로 어둠 속에서 내려다본다. 이젠 늦었다.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지옥에서 구출해오다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끝내 부인과 영영 이별해버린 슬픔을 그는 벗어날 수 없었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신부로 맞았다. 그런데 목동의 스토킹을 피해 달아나던 에우리디케가 독사에 물려 숨지고 말았다.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던 오르페우스에게 지옥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신이 내린 천재 뮤지션답게 오르페우스는 슬픈 노래로 저승의 뱃사공을 울려 카론의 배에 무임승차했고, 아름다운 연주로 괴물의 꼬리를 내려 저승의 입구를 통과했다. 마침내 명부의 왕 하데스의 콧날까지 시큰하게 한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얻어 지상으로 돌아오는 기적을 일으킨다. 다만 지상에 당도할 때까지 뒤따르는 에우리디케를 절대 보지 말라는 조건이 있었다.
오르페우스는 어떻게 되었는가? 뱀에 물려 절뚝거리는 아내가 잘 따라오는지, 돌에 걸려 넘어지는 것은 아닌지, 하데스의 선심이 혹 거짓은 아닌지 쏟아지는 걱정과 끊임없는 의심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상에 발을 딛는 마지막 순간에 오르페우스는 의혹을 억누르지 못하고 에우리디케를 보고야 만다. 그가 뒤돌아보는 순간, 열심히 뒤를 따르던 에우리디케는 다시 지옥으로 빨려 들어간다. 오르페우스의 절규어린 비탄도 애원의 목소리도 에우리디케를 붙드는 데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달래려는 듯, 꿈같은 사랑의 달콤함과 난파된 사랑의 사연을 절절히 노래했다.
Scene #2 생텍쥐페리♥콩쉬엘로
생텍쥐페리의 처녀작 『남방 우편기』의 주인공 자크 베르니스는 사막의 모래 언덕 위에서 죽는다. 주인공은 우편물을 싣고 유럽에서 아프리카를 경유하는 우편기 조종사다. 소설 속에서 그의 사망을 알리는 전보는 간결하고 차갑다.
‘세네갈의 생루이에서 툴루즈에 알림. 프랑스-아메리카 우편기를 티메리스 동쪽에서 발견함. 적들은 근방을 떠났음. 조종사는 피살되고, 비행기는 파손됨. 우편물은 무사함. 다카르로 운송 중임.’
‘다카르에서 툴루즈에 알림. 우편물이 다카르에 잘 도착함. 이상.’ (275~276쪽)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소설 주인공처럼 사라졌다. 삶의 낮은 차원을 견디는데 서툴렀던 이 남자를 사랑하는 일은 또한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생텍쥐페리에게 아내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행방불명되기 전부터, 그리고 행방불명 된 이후로도 그가 돌아오기만을 한결같이 기다리던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 아르헨티나 항공우편회사 지사장이던 생텍쥐페리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27세의 과부 콩쉬엘로.
엘살바르도의 7대 부호 가문 출신인 콩쉬엘로는 17세에 미국 유학을 가서 첫 남편을 만났지만 2년 만에 사별하고 파리 사교계에 진출, 과테말라 출신의 작가이자 외교관인 고메스 카리요와 재혼한다. 그러나 1년 만에 다시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남편의 현금 유산을 찾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들렀을 때 생텍쥐페리를 만난다. 사교회장에서 콩쉬엘로를 처음 만난 생텍쥐페리는 비행기를 태워주겠다고 제안했고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공중에서 나눈 키스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프랑스 귀족 출신인 생텍쥐페리 집안은 남미 출신의 이혼녀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가히 세기적 방랑벽의 소유자라 할 생텍쥐페리는 도망갔다가 돌아오고, 또 도망가기를 반복했다. 생텍쥐페리는 문학적 성공을 거둬도, 비행 기록을 수립해도, 콩쉬엘로가 곁에 있어도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들어차 있던 근원적인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는 혼자서 비행기의 조종간을 잡고 있을 때 비로소 행복을 느꼈다. 어쩌면 두 사람은 고독 속에서만 사랑이 온전히 유지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 더욱 놀라운 것은 두 사람이 언제나 최초의 사랑으로 끊임없이 회귀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러브스토리는 『남방 우편기』에 묘사되어 있다. 리비에르와 그가 소년 시절부터 사랑했던 주느비에브의 모델이 바로 생텍쥐페리와 콩쉬엘로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소설의 결말처럼 끝나고 만다. 1944년 7월 31일, 고독한 조종사는 자신의 애마 P38라이트닝과 함께 지중해의 상공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실종되기 전, 생텍쥐페리는 콩쉬엘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고집스런 작은 게처럼 날 꼭 잡고 있어줘서 고마워.” 남편의 실종을 두고 자살 혹은 탈영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콩쉬엘로는 모른 척한다. 그녀는 남편이 이제는 자신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일기에조차 실종에 대해 한 마디도 쓰지 않은 것은 물론 남편의 귀환 소식에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힘을 믿었다. 그것은 바로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연인들이 주고받는 신비한 감정의 힘, 바로 ‘사랑’의 힘이었다.
그가 지중해에서 사라진 지 54년이 지난 1998년에 고기를 잡던 어선 그물에 낡은 비행기 잔해와 팔찌 하나가 걸려 올라왔다. 팔찌 안쪽에는 조그만 이름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콩쉬엘로
Scene #3 앙드레 고르♥도린
“당신은 곧 여든 두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빈자리입니다.” (6쪽)
생태정치 운동가이자 사상가인 앙드레 고르와 그의 아내 도린. 두 사람은 평생을 이념의 동지로, 더 나아가 일상의 동반자로 함께 했다. 기쁨과 슬픔, 희열과 절망 속에서, 그리고 불치병을 앓던 도린의 형용할 수 없는 통증과 고통 속에서 함께 나이가 들어갔다. 삶의 곳곳에서 마주치는 죽음의 그림자. 그러나 죽음 자체는 겁나지 않았다. 두려운 것은 오직 아내와의 이별일 뿐. 80여 쪽 넘게 이어지는 고르의 편지는 두 사람이 함께 살아낸 시간이 늘 함께 춘 사랑의 춤이었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88쪽)
그토록 많은 책을 저술했고, 사상이나 이념에 천착한 지식인은 아내 없이는 모든 게 공허함을 홀몸으로 견디기가 힘들었을까. 2007년 9월 24일. 프랑스 외곽 시골마을에서 부부는 나란히 저세상으로 떠났다. 사인은 동반자살. 결코 혼자 가지 않겠다는 생전의 약속 그대로. 두 사람을 태우고 남은 재는 유언대로 두 사람이 손수 가꾼 정원에 뿌려졌다.
러브레터라는 게 꼭 사랑을 시작할 때만 가능한 게 아닌 것이다. 삶이 끝나려 할 때, 그 때까지도 사랑이 계속되고 있음을 스스로 다짐하며 보내는 연서(戀書)도 있음을, 그런 사랑편지가 더 지극한 감동을 준다.
Epilogue 사랑의 정의
나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 혹은 그녀는 지금 내 곁에 없다. 나는 부재의 시간 속에 있다. 부재의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다. 누군가의 부재가 나에게 끊임없이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누군가에 대한 생각에 붙잡혀서, 벗어날 수 없이 매여 있음,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그렇게 붙잡혀서 매여 있음이다.
한국어의 ‘사랑’이란 단어가 그 정황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원래 많이 ‘생각하다’라는 의미의 한자어다. 즉 사량(思量)이었다. 한가지의 생각에 얽매여 있기. 그것이 사랑이 되었다. 이전에 고어에서 사랑은 ‘고임’이었다. 괴다, 고이다. 몽골어에서도 사람과 사랑이 동의어다. 사랑은 사람이다. 사람이 사랑이다. 사람에 대한 생각,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것이 사랑인 것이다.
그리스에서 사랑은 에로스(eros)다. 치명적인 화살을 가진 신, 에로스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사랑의 격정에 빠지게 만드는 화살을 쏜다. 인간은 화살에 맞고, 사랑의 격정에 빠져든다. 거기엔 아무런 논리적 이유가 없다. 그리스들은 사랑의 감정을 신의 희롱으로 보았다. 사랑에 빠진 자는 에로스 신의 화살을 맞은 것이다. 화살을 맞고 사랑에 빠진 자, 이젠 죽음조차도 그 사랑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사랑은, 부재의 경험에 토대를 두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지금 내 곁에 없다. 나와 생각하는 대상 사이에는 무섭고 지독한 심연이 가로놓여 있는 듯하다. 그것이 사랑이다. 부재를 통해서만 더욱 명징하고 절박하게 확인되는 감정, 그것이 사랑의 감정이다. 사랑은 자꾸만 생각나게 만드는 것이다. 간절한, 감내하기 힘든 그리움이다. 그리하여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하데스의 왕국으로 내려간다. 우리는 모두 오르페우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