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픈 편지가 무엇일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치지 못한 채 서랍 한쪽 구석에 보관된 편지도 있을 것이고, 이 세상에 없는 사람에게 부치는 편지도 있다. 편지라고 해서 꼭 편지지에 쓰라는 법은 없다. 가끔 누군가에게 책 선물을 할 때 하얀 속종이가 편지지가 되기도 한다.

 

감성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때 사랑하는 이성에게 주는 책에 편지를 쓰는 것은 무척 낭만적이다. 책을 받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게 된다. 그런데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때 책에 편지 쓰는 것은 좋지만, 분위기를 파악해야 한다. 책을 깨끗하게 읽고 보관하는 성격의 사람이라면 선물 받은 책에 누군가의 글씨체가 있으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책 편지를 쓰기 전에 상대방이 책을 다루는 습성은 알고 있어야 한다. 편지를 쓰고 싶다면 차라리 속종이에 쓰는 것보다는 작은 엽서나 편지지에 써서 책 사이에 끼워 넣는 것이 낫다. 

 

중요한 편지가 아닌 이상 오래 보관하기 힘들다.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으면 정성껏 쓴 편지도 슬프게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경우도 있다. 책 편지는 책 속에 적힌 글이기 때문에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가능성은 없지만, 문제는 책이 오래 보관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책은 헌책방에 팔 수 있다. 헌책방에 가면 속종이에 편지가 적힌 책을 가끔 발견한다. 책을 팔기 전에 편지를 확인했을까? 오랜 세월이 지나서 책 속에 적힌 편지를 기억 못한 채 팔 수 있다. 그리고 책 선물을 준 사람을 잊기 위해서 일부러 헌책방에 파는 것일 수도... 그래서 헌책방에 이런 책 편지를 보게 되면 꼼꼼하게 읽어본다. 편지 속에 숨겨진 사연이 무척 궁금하다. 책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몸속에 편지를 쓴 사람이, 그리고 그 편지를 읽은 사람이 누군지를.

 

만약에 헌책방에서 우연히 자신이 쓴 편지가 적힌 책을 발견하면 어떤 심정일까? 과거에 썼던 편지가 오랜만에 보게 되면 감회가 새로울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씁쓸할 것이다. 아무리 책을 보관하기 힘들고, 안 읽는다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받은 책 선물을 쉽게 파는 것은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 될 수 있다. 작년에 도올 김용옥 선생이 홍준표 의원에게 선물했던 책이 헌책방이 발견돼 홍 의원이 사과한 적이 있었다. 그 문제의 책이 하필 도올 선생이 쓴 『동경대전』이었다. 속표지에 도올 선생의 친필 사인과 ‘홍준표 의원님께’라는 글씨가 있어서 딱 걸리고 만 것이다.

 

책의 전 주인에 관한 기록이 편지로 선명하게 남아 있어서 아무리 책의 내용이 좋아도 선뜻 구입하기가 망설여진다. 도올 선생의 책처럼 유명 인사의 사인이 있다거나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을법한 유명 인사의 편지가 적혀 있다면 몰라도 남이 쓴 편지가 내가 읽어야 할 책에 있다는 것은 영 탐탁치가 않다.

 

나는 편지가 적힌 책이 보존 상태가 만족스러우면 사는 편이다. 원래 책을 사기 전에 편지가 적혀 있는지 확인하는데 가끔 그걸 미처 확인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도 책의 전 주인의 흔적이 있다고 해도 괜히 편지가 적힌 부분을 오려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어차피 책은 한 사람의 주인 곁에 오래 있거나 아니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서 헌책방에 전전하는 운명, 그 둘 중 하나이다. 헌책방에서 책을 구입하는데 있어서 책 편지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편지 속 내용을 보면 감탄하게 된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감성이 느껴지는 시적 문장은 빛난다. 왜 이런 좋은 내용의 편지가 적힌 책을 파는지 이해가 안 간다. 그리고 괜히 내가 그 편지를 쓴 무명인의 심정처럼 씁쓸하고 약간의 슬픈 감정도 느낀다.  내가 발견한 책 편지들은 사랑하는 이성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같다. 

 

올해 초에 서울 청계천 헌책방에서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구입했는데 뜻밖에도 속표지에 짧지 않은 편지가 적힌 것을 발견했다.

 

 

 

 

 

‘승희’라는 이름의 여자에게 보낸 편지다. 문장으로 봐서는 필체가 상당한 걸로 보인다. 글씨도 무척 잘 쓴다. 내용으로 봐서는 승희는 어느 남자에게 음악 CD를 선물로 줬다. 승희는 솔로 가수가 아닌 여성 그룹의 멤버이며 2004년에 정식 데뷔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남자는 이 책을 선물했다. 아마도 마음속으로 사랑했던 여자였는데 가수가 되어서 상경했을 것이다. 남자 입장에서는 그녀의 성공이 기쁘고 자랑스럽겠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에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삶은 어쩔 수 없는 비극인가 보다’라는 문장에서 짝사랑으로 끝나버린 어느 남자의 슬픈 비극이 연상된다. 결국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사랑해’ 대신에 ‘행복해라’ 밖에 없다.


남성은 승희에게 고독하면 행복할 수 있다고 전한다. 무슨 의미일까? 참으로 역설적인 표현이다. 고독과 행복은 함께 공존한다...?  이 편지 속 사연이 무척 궁금하게 만드는 수수께끼 같은 표현이다. 10년이 지난 책 편지는 지나간 추억이 되어 망각의 감옥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그걸 또 내가 영영 오랫동안 잊힐 뻔했던 망각의 감옥에서 구출한 것이다. 과연 승희는 어떤 가수였을까? 아마도 승희는 본명일 수도 있겠다.

 

지난주에 내가 자주 다니는 헌책방에서 책 편지가 있는 책을 구입했다. 이번에는 정현종 시인의 시집 『나는 별 아저씨』다. 이 시집이 출간된 지 꽤 오래됐고, 편지 또한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에 기록된 것이다.

 

 

 

 

 

시집에 걸맞은 한 편의 시 같은 편지다. 편지를 쓴 사람은 평소에 시집을 많이 읽고, 좋아했다. 그래도 자신은 시를 잘 알지 못한다고 겸손의 표현을 썼다. 생일선물로 시집을 줬는데 시를 읽으면서 마음의 여유를 느낄 것을 권한다. 참으로 좋은 편지 내용이다. 문장 속에 삶의 여유가 살짝 묻어있다. 1993년에 편지를 쓴 사람은 지금도 어디선가 변함없이 시를 즐겨 읽고, 그 시간을 통해 여유를 느끼면서 잘 지내고 있을까? 누군지 몰라도 이런 편지가 무척 고맙다. ‘객관적 상황이 열악하더라도 가슴 속에도 많은 여유가 찾아들기를 바란다’ 남이 쓴 편지는 전혀 관련 없는 다른 사람에게 삶에 힘을 불어넣는 좋은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시집에 있는 편지 덕분에 삶의 여유의 가치를 느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21년 전에 쓴 편지가 시간을 초월해서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이 읽게 되는 이 운명적인 만남. 이런 편지 한 통이 과거와 현재를 ‘감성적 공감’이라는 무언의 감정으로 연결될 때가 있다. 이래서 사는 게 참 재미있고 신기한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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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4-05-28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어떻게 도올 선생은 자기 책이 헌책방에서 딱걸렸을까?ㅎ
이 페이퍼 승희라는 가수한테 딱 걸리는 거 아닐까?
이맛에 헌책방을 다니기도 하겠지?
그런데 바로 이점 때문에 책에 자기 서명이나 인삿말이 들어가는 게 조심스러워져.
책선물에 밋밋하게 그냥 주기도 뭐하고.
나도 요즘 헌책방에 책을 내다 팔곤하는데
저자 사인본은 차마 못 팔겠더라.
특별히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팔자니 그렇고, 안 팔자니 그렇고...
그래도 가지고 있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어 간직하고 있다만.ㅠ
그런데 진짜 저 준호라는 사람 글 잘 쓴다. ㅎ

cyrus 2014-05-28 22:43   좋아요 0 | URL
제가 아는 가수 중에 '승희'라는 이름은 없는 것 같아요. 설마 이런 조용한 블로그를 보겠어요? ㅎㅎㅎ 저는 사인본은 절대로 팔지 않아요. 저자의 사인이 있는 책은 보통 책보다 가치가 높고, 특별하니까요. ^^
 

 

 

 

 

 

조르주 루오  「늙은 왕」  1936년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갖아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시왕전(十王殿)에서도 쫓기어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중에서)

 

어떤 의미에서 왕 또는 리더가 된다는 것은 시인 홍사용이 노래한 것처럼 영원으로부터 추방된 인간이 시간 속의 삶이라는 무거운 고통의 짐을 지는 것과 비유할 수도 있다. ‘눈물의 왕’은 설움이 넘치는 모든 땅의 왕이다.

 

 

 

 

 

 

 

 

 

 

 

 

 

 

 

 

여기 그림 속 왕도 지금 슬픔에 빠져 있다. 조르주 루오의 『늙은 왕』은 전혀 왕의 권위나 위엄이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를 연출해 내고 있다. 늙은 왕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있지만, 그 역시 견디기 힘든 슬픔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할 것이다.

 

루오는 순종과 고통, 죽음과 부활 같은 종교적 주제를 화폭에 담았다. 『늙은 왕』에서도 루오가 평소 다루던 주제가 부각되어 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는 말이 있듯이 왕에게 권력은 견디기 어려운 무거운 짐이 된다. 리더는 고독하다. 더 무겁고 고통스러운 짐을 지고 고난의 길을 홀로 걸어가야 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왕이라도 죽음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한다. 왕을 감싸고 있는 깊은 물속 같은 어두운 청록색은 침통한 분위기를 드러낸다. 자신의 턱 밑 가까이 오게 될 죽음의 공포가 두렵고 생각만 할수록 잠이 오지 않는다.

 

‘어머님 몰래 남 모르게 속 깊이 소리 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중에서) 왕은 남모르게 소리 없이 혼자 눈물을 흘릴 것이다. 눈물은 인간이 흘리는 생리적 액체에 불과하지만 인간의 슬픔을 가장 잘 나타내는 침묵의 언어이기도 하다. 신하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면 자신이 나약한 왕임을 심어주어 지도자로서의 위엄을 잃을 수 있다.

 

'눈물의 왕‘과 늙은 왕은 절대 권력의 왕이 아닌, 이 세상 모든 슬픔과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껴안은 자다. 그의 삶을 지배하는 슬픔의 원인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왕이 아니더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슬픔과 절망을 경험한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는 감상적인 지도자는 자칫 스스로의 존엄성을 잃게 만들 수 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냉정한 자세를 가져야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 마하트마 간디가 말했던 것처럼 눈물을 먼저 흘리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왕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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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목민심서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편역 / 창비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5공 시절인 1986년, 정부는 각 언론사에 보도지침을 내렸다. ‘대통령의 임시 집무실에 놓여 있는 목민심서가 눈길을 끈다’고 보도할 것. 전두환 전 대통령은 외국행 비행기를 탈 때 기자들의 사진촬영에 대비해 이 책을 꼭 비치하도록 했다. 후안무치(厚顔無恥)도 유만부동(類萬不同)이다. 비록 읽지는 않고 선전용으로 홍보효과를 노린 것일지라도 이 책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는 있었던 것 같다.

 

조선 후기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대표 저서인 이 책은 지방행정관이 지켜야 할 준칙을 담고 있다. 책 전체에 흐르는 사상은 애민(愛民)정신과 실사구시(實事求是) 철학이다. 특히 관(官)이 몸을 낮추어 민생을 위해 헌신할 것을 강조했다.

 

옛말에 백성을 부양하는 것을 일러 ‘목(牧)’이라 했다. 이 책에는 목민관이 지켜야 할 6가지 계율이 있다.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가정을 바로 다스리고, 청탁을 물리치고, 철저히 절약하고, 즐겨 베풀라는 것이다. 다소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곧은 마음과 곧추선 자세야 말로 행정을 하기에 앞서 목민관이 가져야 할 덕목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 중심은 역시 민본주의이다.

 

이 책이 쓰인 1800년대 초반은 임진왜란 이후 군사력 증강에 국력을 기울인 결과 국가재정이 궁핍하던 때였다. 관리들은 뇌물 챙기기에 바빴다.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졌으나 조정은 나라 다스리는 일보다 당파싸움에 빠져 국가가 몰락의 길을 걷던 시기였다.

 

사실 목민에 대한 정약용의 구상은 일찍부터 싹트고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부친이 여러 고을의 수령을 역임할 때 임지에 따라가서 견문을 넓혔다. 그뿐 아니다. 자신도 한때는 암행어사와 수령으로서 지방행정의 문란으로 인한 민생의 고통을 생생히 목도한 터였다. 그래서 다산은 책의 서문(자서, 自序)에서 수령들의 부패한 모습을 다음과 같이 따끔하게 질타하고 있다.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기를 줄 모른다. 이 때문에 아랫사람들은 여위고 시달리고, 시들고 병들어 쓰러져 진구렁을 메우는데, 그들을 기른다는 자들은 화려한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만을 살찌우고 있다.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15쪽)

 

다산이 살다 간 시대와 오늘의 현실은 무엇이 다른가. 혹시 이 나라의 공무원들은 200년 동안 하나도 변한 게 없는 것 아닌가. 많은 사람이 한국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꼽는다. 정책 대결이 아닌 정당 간의 지역 대결만 있고 극단적인 분열과 대립 속에서 우리의 정치의 시계는 멈춰 선 지 오래다. 매일 보도되는 정치인들의 비리와 부정은 국민으로 하여금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불러일으켜 정치적 무관심을 만연시켰다. 아직도 이 나라는 부정과 부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공직자들의 부패 사건은 무시로 터지고 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정치권을 보면서 새삼 다산 정약용이 생각날 수밖에 없다. 백성이 수령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수령이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강조한 다산이 요즈음 전개되는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이를 과연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다산이 암행어사와 부사 등의직무를 수행하면서 겪은 자신의 경험이어서인지 더욱 설득력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공직자의 처신은 다르지 않아 항상 청렴과 자기희생이 으뜸의 덕목으로 꼽힌다. 공직자의 몸가짐과 자기관리가 강조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다산은 "청렴은 천하의 큰 장사이다. 욕심이 큰 사람은 반드시 청렴하려 한다. 사람이 청렴하지 못한 것은 그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뇌물에 또는 사사로운 인연에 집착하다 보면 자신의 가족은 물론이고 후손에까지 불명예를 끼치게 된다는 것을 경계한 말일 것이다. 그 중 율기(律己)편에 나오는 한 구절. ‘청렴은 수령의 본래 직무로 모든 선(善)의 원천이며 모든 덕(德)의 근본이다. 청렴하지 않고서 수령 노릇을 잘할 수 있는 자는 없다.’는 말은 오늘날에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관피아’ 문제가 부각되면서 정부는 대대적인 공직 개혁에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시 열풍’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수한 인재들이 국가 경영에 참여하고 국민들에게 봉사하고자 하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투철한 국가관과 봉사정신을 갖추지 않은 채, 소시민적 안락을 추구하고자 공직을 지망한다면 걱정스럽다. 공직자는 귀찮은 일도 기피하지 않아야 하며, 때로는 골치 아픈 경쟁도 벌여야 한다. 소명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지망할 곳이 아니다.

 

공직자가 된 사람의 최고 욕심은 최고위 공직자의 지위에 오르는 것일 것이다. 그런 큰 욕심을 접고 눈앞의 조그만 뇌물에 현혹돼 중도에 흠집이 나거나 낙마하고 만다면 큰 욕심을 채울 방법이 없게 되므로 진짜 큰 장사꾼만이 청렴한 공직자가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엄격한 도덕성으로 무장되지 않은 공직자가 돈까지 가지려는 데서 수많은 문제가 생긴다.

 

“벼슬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옛사람들의 뜻이었다. 교체되고자 슬퍼한다면 수치스럽지 않은가?” (해관 6조 중에서, 328쪽)

 

그 밖에도 다산은 청렴한 선비의 부임길 행장은 이부자리와 속옷 외에 책 한 수레라고 했다. 또 퇴임 행장은 낡은 수레와 여윈 말에 토산품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고생한 노력 끝에 높은 자리에 오르는 과정을 생각하면 공직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공직을 통해서 자신의 소명을 이루었다면 물러날 때를 알아야하는 초연함도 있어야 한다. ‘공복(公僕)’이라는 초심을 잃고, 권력과 재물에 욕심을 부리면 ‘박봉(薄奉) 타령’을 늘어놓거나 ‘검은 돈’의 유혹에 빠져 패가망신하기 쉽다.

 

‘청렴’은 여전히 공직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공부문이 아직도 많은 영향력과 권한을 행사하는 우리 사회에서 공직자의 인간됨과 자세는 참으로 중요하다. 청렴 다음으로 정약용이 강조하는 것이 자기 수양이다. “아전을 단속하는 일의 근본은 스스로를 규율함에 있다. 자신의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일이 행해질 것이고, 자신의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명령을 하더라도 일이 행해지지 않을 것이다”고 말함으로써 목민관의 마음 자세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목민관의 몸가짐이 바로 서야 올바른 행동이 나오k고 이를 아랫사람이 본받아 원칙과 기강이 바로 서게 된다는 것이다.

 

청렴을 말하면 웃음거리가 되는 세상이지만, 그 무엇도 인물 검증의 잣대가 될 수 없어 보이는 현실에서 유권자의 이름으로 『목민심서』를 읽었는지 시험이라도 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악독하고 간사한 자는 모름지기 정당(政堂) 밖에다 비석을 세우고 그 이름을 새겨 영구히 복직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전 6조 중에서, 147쪽)

 

만약에 다산의 시험에 통과된 공직자 중에 도의에 어긋난 행동을 했다면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과오를 덮은 채 공직에 복귀하려는 사람이 많다. 과연 누가 그들을 믿고 선거에서 표를 행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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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라면 군 입대 하기 전에 무조건 해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가 있었다. 입대를 하는 순간, 평생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여자를 오랫동안 볼 수 없다. 한창 혈기왕성한 사내들에게는 군 생활은 감옥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총각 딱지’를 뗀다. 집창촌에 가서 섹스로 욕구를 푼다.

 

집창촌은 ‘총각 딱지’를 떼려는 젊은 사내뿐만 아니라 중년 남자들도 많이 찾는다. 집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내를 생각하면 섹스할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섹스를 하고 싶은 마음에 돈을 지불해서라도 집창촌으로 향한다.

 

아내는 사랑해서 섹스를 할 수 있지만, 집창촌의 매춘부는 그저 섹스하기 위한 여자일 뿐이다. 자신의 몸을 팔아 돈을 버는 매춘부는 영혼 없는 섹스를 어떻게 생각할까. 매춘으로 자신의 성욕을 해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쾌락의 감각은 일시적이다. 남자의 뇌는 자위를 한 후에 성적 흥분 상태가 가라앉으면 이성을 되찾는다고 한다. 이런 것을 요즘 유행하는 말로 ‘현자타임’이라고 한다. 매춘부들도 처음에 돈을 많이 받고, 남자 손님들로 성욕을 풀 수 있어서 좋았겠지만 섹스를 하고 나면 후회감이 밀려올 것이다. 섹스로 인해 점점 더 망가져만 가는 몸. 늙으면 매춘을 할 수 없다.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차라리 몸을 파는 직업이 아니라 조금만 더 판단을 잘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매춘부도 사람이다. 자신의 몸을 남성들을 위한 ‘상품’으로 만들어 돈을 버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고, 과연 이것을 ‘직업’이라고 표현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다만, 매춘부라고 해서 섹스에 굶주린 색녀는 아닐 것이다.

 

내가 매춘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자신의 몸을 상품화시켜서 돈을 버는 것 그리고 그런
행위 때문에 남자들에게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멸시받는 것이 싫어서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노는 계집, 창>에서 집창촌에 간 중년 손님이 매춘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소란스럽게 난동을 부리는 장면이 있다. 손님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거나 돈이 터무니 없이 비싸다는 이유로 매춘부는 그들로부터 무시 받고, 여자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험한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며칠 전에 페이스북 유머 관련 페이지에서 매춘 행위를 하는 여자의 경험담을 인터넷에 올린 20대 남자의 글을 사진으로 캡처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사연은 이렇다.

 

자신의 사연을 올린 21살 남자는 영등포에 위치한 여관에서 매춘 행위를 하는 40대 아주머니와 섹스를 했다. 그런데 남자는 비싼 돈에 걸맞지 않은 매춘 행위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화가 나서 자신보다 20살 많은, 거의 어머니뻘 되는 아주머니를 때리면서 ‘너 같은 창녀는 죽어야 된다’고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남자의 멸시에 아무 말도 못한 채 그저 울면서 밖으로 나갔다고 한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남자의 말은 어이가 없다. ‘빡촌(집창촌의 속어)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보통 눈물도 없지 않나요? 독해지지 않나요? 이 아줌마는 울면서 나가더라고요. 창녀도 직업 아닌가요? 서비스업 아닌가요? 그럼 손님한테 잘해야 되는 게 아닌가요? 잘못했으니 욕 먹는 건 당연하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매춘이 정당한 직업이고, 서비스업이라고 해야 될 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40대 아주머니가 나이와 몸을 생각하지 않고 매춘으로 돈을 버는 행위는 좋지 않게 본다. 하지만 매춘, 그러니까 섹스가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아주머니를 함부로 손찌검하고 욕설을 하는 21살 남자도 잘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인터넷에 공개해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태도는 같은 남자로서 부끄럽고 한심하다. 그저 섹스로 욕구를 풀지 못한 화풀이를 매춘을 ‘직업’이라는 이유로 불만을 표출하는 모습은 나잇값 제대로 못한 철없는 행동이다.

 

이 남자는 매춘부를 그저 섹스를 하기 위한 상품으로만 보고 있다.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춘부는 눈물도 없고, 독하다고? 도대체 그런 논리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남자 손님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욕설을 듣는다면 제 아무리 섹스가 좋아서 매춘을 하는 여자라도 화가 나고, 마음에 상처받기 쉽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못 받는 것이다. 그저 섹스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남자는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다. 그들이 매춘을 혐오하고 무시하는 인식은 이중적인 생각이다.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년

 

 

마치 에두아르 마네가 파리의 매춘부을 연상시키는 「올랭피아」를 살롱에 출품했을 때 욕설과 비난의 융단폭격이 쏟아진 것을 연상시키듯 매춘부를 ‘성적 상품’으로 격하시켜 멸시하는 모습은 위선적이다. 살롱의 신사들은 매춘부가 벌거벗은 채 누워 있는 마네의 그림이 격에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좋아하는 그림은 고귀한 비너스가 벌거벗은 그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네가 활동했던 19세기 파리는 매춘이 성행했다. 마네의 그림에 분노한 신사들 중에 매춘을 안 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밤이 되면 집창촌에서 자주 보던 매춘부의 누드를 살롱에서 마주하는 순간, 낮 뜨겁고 부끄러운 것이다. 당시에 유행하는 누드화에서 비너스는 ‘아름다운 여성 모델’이고, 「올랭피아」는 그저 여성 모델이 아닌 매춘부였다. 올랭피아는 그림 속 당당하고 아름다운 여자가 될 수 없었다. (「올랭피아」의 모델은 실제로 매춘부가 아니다. 평소 마네의 그림에 모델로 자주 섰으면 화가로 활동한 빅토린 뫼린이라는 이름의 여성이다)

 

매춘부는 ‘여자 아닌 여자’다. 마음이 연약하고 쉽게 눈물을 흘리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세상 그리고 밤만 되면 그녀를 탐하는 남자들은 매춘부를 보통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눈물을 흘러서 안 되고, 그저 남자 손님의 정액을 받아야하는 상품일 뿐이다.

 

따지고 보면 그들도 한 집안의 딸이거나 가장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밖에 없기 때문에 매춘을 할 뿐이다. 가족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서라면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아도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매춘부들의 말 못하는 마음을 프랑스의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은 잘 알고 있었다. 로트렉은 물랑 루즈의 사창가에 수시로 드나들면서 매춘부들의 일상을 숨김없이 표현했다. 마네가 매춘부처럼 누드를 그렸다면, 로트렉은 진짜 매춘부의 누드를 그렸다. 누드뿐만 아니라 그녀들의 일상 하나하나 그림으로 묘사했다.

 

 

 

 

로트렉  「거울 앞에 선 누드 여인」  1897년

 

 

로트렉이 묘사한 매춘부의 모습은 반쯤 벌거벗고 있지만, 그렇게 야하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들의 얼굴은 생기가 없고 힘없어 보인다. 자신들의 삶이 좋을리가 없다.

 

로트렉의 「거울 앞에 선 누드 여인」 속 매춘부는 너무나 평범한 검은 스타킹을 신은 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매춘부의 손엔 방금 벗은 듯한 블라우스가 들려져 있다. 손님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선 이 부분이 여자로서의 세월이 불과 얼마 안 남았음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이 그림의 핵심적 의미는 다른데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왼쪽에 그려진 흐트러진 침대가 그것이다. 이는 매춘부가 나이 들면 제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사랑 받지 못함을 상징하고도 남음이 있다. 비록 이 그림은 매춘부를 모델로 했으나 로트렉은 시들어가는 여인의 육체의 덧없음을 그림을 통하여 여실히 드러내려 애썼다.

 

유럽의 일부 국가들처럼 매춘을 정당한 노동행위, 직업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 해도 매춘부를 여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매춘부도 여자다. 섹스만 하는 장난감이 아니다.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살아야하는 여자. 여자 아닌 여자. 그녀도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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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아가면서 이것만큼은 해보고 싶은데 실컷 하지 못한 것이 한 두 개 정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만화책을 읽는 것이다. 만화 엄청 좋아한다, 어렸을 때 TV에서 하는 만화영화는 무조건 챙겨봤다. 둘리, 달려라 하니, 머털도사 같은 한국 만화부터 꼬마자동차 붕붕, 세일러문, 포켓몬스터, 명탐정 코난까지 일본 만화도 거의 챙겨보는 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만화책은 많이 읽은 기억이 없다. 고등학생 때 집 근처에 있는 작은 만화방에 가서 만화책 몇 권 빌려서 야자(야외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읽긴 했지만, 공부를 완전 소홀히 할 정도로 질리도록 만화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알라딘 중고샵에 가면 만화책이 잔뜩 꽂혀 있는 서가 근처에 만화책을 보거나 구입하는 학생들을 만난다. 혼자가 아닌 또래 친구들과 같이 읽고 싶은 만화책을 찾아보고 그것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다. 아마도 중고샵 내부에서 제일 시끌벅적한 곳이 만화책이 꽂혀 있는 서가 근처일 것이다. 가끔 그런 어린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부럽다.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면서 만화책을 같이 읽어 본 적이 없다. 한 일 년 아니 한 몇 달이라도 질릴 때까지 만화책을 빌려다 읽고 싶다.

 

어쩌면 나는 만화를 좋아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만화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요즘은 이름난 만화들을 어쩌다 뒤늦게 찾아 읽는 것을 빼고는 만화를 자주 보지 않는다. 아니, 이 말이 과장일지도 모르겠는데, 이름난 만화들을 찾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말고는 만화에 별로 목숨을 걸지 않는다. 어렸을 때 많이 보던 만화는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다. 가끔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재밌게 봤던 만화가 하고 있으면 보곤 한다. 만화의 결말을 뻔히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기억하면서도 본다. 어렸을 때 본 만화를 그리워하는 추억은 채널 돌리느라 쉴 틈이 없는 리모컨 컨트롤을 한 템포 쉬게 할 정도로 그 향수는 너무나도 강하다.

 

만화를 본 적은 없지만 그 만화 캐릭터를 기억하는 경우도 있다. 만화 캐릭터를 기억해서 그가 나온 만화작품과 작가에 흥미를 가질 때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박수동 화백의 '고인돌'이다.

 

“빠빠라빠빠빠~ 삐삐리 삐삐코~ 빠!삐!코!” 중독성 있는 CM송을 유명한 아이스크림 TV 광고에 나온 고인돌 캐릭터는 16년이 지난 시간 속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1989년에 처음 빠삐코 TV 광고가 제작되었다던데 사람으로 치면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다... 비록 1970년대 한창 인기를 끌었던 원작을 접하지 못했지만 이 아이스크림 광고 한 편 덕분에 고인돌 캐릭터를 기억할 수 있었다. 고인돌 캐릭터는 빠삐코뿐만 아니라 스크류바 광고에도 진출했다. 스크류바 광고 CM송도 빠삐코 못지않게 유명하다. “이상하게 생겼네. 롯데 스크류바~ 삐삐 꼬였네, 들쭉날쭉해~.” 지금까지도 슈퍼마켓에 가면 볼 수 있는 장수 아이스크림 제품 광고에 나올 정도로 박수동 화백의 고인돌 캐릭터는 친숙하고 재미있다.

 

그런데 박수동의 『고인돌 왕국』을 만화 원작으로 읽어보지 못한 8090 세대는 이 만화가 아동 독자를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들에게는 원작의 캐릭터보다 TV 광고 속 고인돌 캐릭터 이미지가 강한 탓이다. 사실 『고인돌 왕국』은 성인만화다. 성인 주간잡지의 대명사였던 ‘선데이 서울’ 연재 만화였다. 1974년부터 1991년까지 17년 동안 총 833회 연재됐다.

 

『고인돌 왕국』은 삐뚤삐뚤 대충 그린 듯한 구불구불한 선화(線畵)체 그림에 에로틱한 분위기로 원시 조상의 유쾌한 일상을 보여주었다. 1970년대 당시만 해도 사회분위기는 만화의 질펀한 성적(性的) 담론을 용납하지 않았으나 만화는 고루했던 분위기를 단숨에 깨버렸다. 야하면서도 이것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에로티시즘. 만화에 나오는 야한 농담과 성적 비유는 그 당시 독자들에게 많은 찬사를 받았다. ‘미스터 고’를 비롯해 ‘인’, ‘돌’ 이 세 남자 원시인과 고인돌 마을을 이끄는 임금은 여색을 밝힌다. 성적으로 농담하기를 좋아하고, 성적 욕구를 멈출 줄 모르는 전형적인 남성을 대표한다. 여자 원시인 ‘미스 오’, ‘육’, ‘팔’ 역시 성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가끔 세 명의 남자 원시인을 꼼짝하게 못할 정도로 기가 센 편이다.

 

박수동의 『고인돌 왕국』은 선사시대 조상들의 유쾌한 일상을 4칸 만화로 만든 조니 하트의  ‘Back to the B.C’(1958년)와 비교하고 필적하곤 한다. 작품의 분위기는 하트의 만화와 많이 닮았다. 그러나 성냥 개피에다 먹물을 찍어 그리는 고인돌 그림체는 자니 하트의 꽉 짜인 듯한 펜 그림과는 사뭇 다르다. 고인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매력은 글씨체다. 허투루 그려 제낀 듯한 그림이지만 꽉 짜인 구도, 그에 걸맞은 휘청휘청 끊어질 듯 흘러내리는 글씨체.

 

 

 

 

 

예전에 남자들의 가슴에 확 불을 지펴서 설레게 만들었던 ‘우리 집에 라면 먹고 갈래?’ 못지않은 『고인돌 왕국』 속 야릇한 의미의 표현은 지금도 봐도 신선하고 재미있다. 일부 표현 중에는 여성의 외모나 신체를 성적으로 희화한 것이 있어서 성희롱에 해당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요즘 성(性)에 대해 개방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하면 다시 만화가 나온다면 충분히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다.

 

만화는 1978년 까치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처음 발행됐으며 ‘선데이 서울’ 폐간 이후로 고인돌 캐릭터가 나오는 작품들이 단행본으로 묶어져 줄줄이 출판되었다. 이듬해 『소년 고인돌』이 출간되었고, 90년대 중반까지 다양한 출판사를 통해 고인돌 만화집 단행본이 나왔, 그러나 이제는 절판되었으며 지금은 헌책방에서 고가로 매길 정도로 희귀본이 되었다. 최근에 헌책방에서 구한 우석출판사의 『고인돌 왕국』은 2001년에 출간된 마지막 만화집 단행본이다. 한 권짜리 분량으로 봐서는 ‘선데이 서울’에 연재된 833회의 작품 중 일부만 출판한 것으로 보인다. 우석출판사판에는 소설가 김홍신의 서문, 책 중간에 만화평론가 손상익의 짧은 비평을 읽어볼 수 있다.

 

박수동의 <고인돌>은 인간애를 저버리지 않는 따스한 시선이 있어 좋다. 권위도 없고 뽐냄도 없다. 그저 사람답고 동물답고 약간 모자란 듯한 가슴을 느낄 수 있어 예쁘다. (김홍신, 『고인돌 왕국』 서문 중에서)

 

『고인돌 왕국』은 네이버에서 약간의 요금을 내면 볼 수 있다. 허나 젊은 시절, ‘선데이 서울’에 연재된 만화를 즐겨본 기억이 있는 중장년층들에게는 그 때 그 시절의 향수까지 바란다면 욕심일 수 있겠다. 만화는 만화책이 낫다. 종이를 훨훨 넘기면서 보는 것이야말로 진짜 만화책 보는 맛이다. 올해가 『고인돌 왕국』이 ‘선데이 서울’에 처음 연재된 지 40년이 되는 해다. 타이밍이 딱 좋다. 『고인돌 왕국』이 단행본으로 복간되기에 아주 좋은 시기다. 한국만화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을 그저 과거의 추억으로 대표되는 유물로 남기에는 너무 아깝다. ‘선데이 서울’ 열혈 남성 독자들을 키득키득거리게 만든 성인만화의 재미를, 나 같은 젊은 친구들도 누려 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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