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목민심서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편역 / 창비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5공 시절인 1986년, 정부는 각 언론사에 보도지침을 내렸다. ‘대통령의 임시 집무실에 놓여 있는 목민심서가 눈길을 끈다’고 보도할 것. 전두환 전 대통령은 외국행 비행기를 탈 때 기자들의 사진촬영에 대비해 이 책을 꼭 비치하도록 했다. 후안무치(厚顔無恥)도 유만부동(類萬不同)이다. 비록 읽지는 않고 선전용으로 홍보효과를 노린 것일지라도 이 책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는 있었던 것 같다.

 

조선 후기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대표 저서인 이 책은 지방행정관이 지켜야 할 준칙을 담고 있다. 책 전체에 흐르는 사상은 애민(愛民)정신과 실사구시(實事求是) 철학이다. 특히 관(官)이 몸을 낮추어 민생을 위해 헌신할 것을 강조했다.

 

옛말에 백성을 부양하는 것을 일러 ‘목(牧)’이라 했다. 이 책에는 목민관이 지켜야 할 6가지 계율이 있다.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가정을 바로 다스리고, 청탁을 물리치고, 철저히 절약하고, 즐겨 베풀라는 것이다. 다소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곧은 마음과 곧추선 자세야 말로 행정을 하기에 앞서 목민관이 가져야 할 덕목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 중심은 역시 민본주의이다.

 

이 책이 쓰인 1800년대 초반은 임진왜란 이후 군사력 증강에 국력을 기울인 결과 국가재정이 궁핍하던 때였다. 관리들은 뇌물 챙기기에 바빴다.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졌으나 조정은 나라 다스리는 일보다 당파싸움에 빠져 국가가 몰락의 길을 걷던 시기였다.

 

사실 목민에 대한 정약용의 구상은 일찍부터 싹트고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부친이 여러 고을의 수령을 역임할 때 임지에 따라가서 견문을 넓혔다. 그뿐 아니다. 자신도 한때는 암행어사와 수령으로서 지방행정의 문란으로 인한 민생의 고통을 생생히 목도한 터였다. 그래서 다산은 책의 서문(자서, 自序)에서 수령들의 부패한 모습을 다음과 같이 따끔하게 질타하고 있다.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기를 줄 모른다. 이 때문에 아랫사람들은 여위고 시달리고, 시들고 병들어 쓰러져 진구렁을 메우는데, 그들을 기른다는 자들은 화려한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만을 살찌우고 있다.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15쪽)

 

다산이 살다 간 시대와 오늘의 현실은 무엇이 다른가. 혹시 이 나라의 공무원들은 200년 동안 하나도 변한 게 없는 것 아닌가. 많은 사람이 한국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꼽는다. 정책 대결이 아닌 정당 간의 지역 대결만 있고 극단적인 분열과 대립 속에서 우리의 정치의 시계는 멈춰 선 지 오래다. 매일 보도되는 정치인들의 비리와 부정은 국민으로 하여금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불러일으켜 정치적 무관심을 만연시켰다. 아직도 이 나라는 부정과 부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공직자들의 부패 사건은 무시로 터지고 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정치권을 보면서 새삼 다산 정약용이 생각날 수밖에 없다. 백성이 수령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수령이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강조한 다산이 요즈음 전개되는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이를 과연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다산이 암행어사와 부사 등의직무를 수행하면서 겪은 자신의 경험이어서인지 더욱 설득력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공직자의 처신은 다르지 않아 항상 청렴과 자기희생이 으뜸의 덕목으로 꼽힌다. 공직자의 몸가짐과 자기관리가 강조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다산은 "청렴은 천하의 큰 장사이다. 욕심이 큰 사람은 반드시 청렴하려 한다. 사람이 청렴하지 못한 것은 그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뇌물에 또는 사사로운 인연에 집착하다 보면 자신의 가족은 물론이고 후손에까지 불명예를 끼치게 된다는 것을 경계한 말일 것이다. 그 중 율기(律己)편에 나오는 한 구절. ‘청렴은 수령의 본래 직무로 모든 선(善)의 원천이며 모든 덕(德)의 근본이다. 청렴하지 않고서 수령 노릇을 잘할 수 있는 자는 없다.’는 말은 오늘날에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관피아’ 문제가 부각되면서 정부는 대대적인 공직 개혁에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시 열풍’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수한 인재들이 국가 경영에 참여하고 국민들에게 봉사하고자 하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투철한 국가관과 봉사정신을 갖추지 않은 채, 소시민적 안락을 추구하고자 공직을 지망한다면 걱정스럽다. 공직자는 귀찮은 일도 기피하지 않아야 하며, 때로는 골치 아픈 경쟁도 벌여야 한다. 소명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지망할 곳이 아니다.

 

공직자가 된 사람의 최고 욕심은 최고위 공직자의 지위에 오르는 것일 것이다. 그런 큰 욕심을 접고 눈앞의 조그만 뇌물에 현혹돼 중도에 흠집이 나거나 낙마하고 만다면 큰 욕심을 채울 방법이 없게 되므로 진짜 큰 장사꾼만이 청렴한 공직자가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엄격한 도덕성으로 무장되지 않은 공직자가 돈까지 가지려는 데서 수많은 문제가 생긴다.

 

“벼슬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옛사람들의 뜻이었다. 교체되고자 슬퍼한다면 수치스럽지 않은가?” (해관 6조 중에서, 328쪽)

 

그 밖에도 다산은 청렴한 선비의 부임길 행장은 이부자리와 속옷 외에 책 한 수레라고 했다. 또 퇴임 행장은 낡은 수레와 여윈 말에 토산품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고생한 노력 끝에 높은 자리에 오르는 과정을 생각하면 공직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공직을 통해서 자신의 소명을 이루었다면 물러날 때를 알아야하는 초연함도 있어야 한다. ‘공복(公僕)’이라는 초심을 잃고, 권력과 재물에 욕심을 부리면 ‘박봉(薄奉) 타령’을 늘어놓거나 ‘검은 돈’의 유혹에 빠져 패가망신하기 쉽다.

 

‘청렴’은 여전히 공직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공부문이 아직도 많은 영향력과 권한을 행사하는 우리 사회에서 공직자의 인간됨과 자세는 참으로 중요하다. 청렴 다음으로 정약용이 강조하는 것이 자기 수양이다. “아전을 단속하는 일의 근본은 스스로를 규율함에 있다. 자신의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일이 행해질 것이고, 자신의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명령을 하더라도 일이 행해지지 않을 것이다”고 말함으로써 목민관의 마음 자세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목민관의 몸가짐이 바로 서야 올바른 행동이 나오k고 이를 아랫사람이 본받아 원칙과 기강이 바로 서게 된다는 것이다.

 

청렴을 말하면 웃음거리가 되는 세상이지만, 그 무엇도 인물 검증의 잣대가 될 수 없어 보이는 현실에서 유권자의 이름으로 『목민심서』를 읽었는지 시험이라도 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악독하고 간사한 자는 모름지기 정당(政堂) 밖에다 비석을 세우고 그 이름을 새겨 영구히 복직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전 6조 중에서, 147쪽)

 

만약에 다산의 시험에 통과된 공직자 중에 도의에 어긋난 행동을 했다면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과오를 덮은 채 공직에 복귀하려는 사람이 많다. 과연 누가 그들을 믿고 선거에서 표를 행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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