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전인 월요일에 경계 없는 페미니즘함께 읽기를 끝냈다(아쉽게도 그날 나는 개인 사정이 있어서 마지막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 한 권의 책을 읽는 데 걸리는 기간은 4주였다.

 

 

 

 

 

 

 

 

 

 

 

 

 

 

 

 

   

 

* [레드스타킹 추천 도서] 찬드라 탈파드 모한티 경계 없는 페미니즘(여이연, 2005)

    

 

     

레드스타킹 모임 분위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가 일사천리로 책을 읽는 것 같다고 생각하지 싶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레드스타킹 멤버 대부분은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고 책의 여백에 필기한다. 그분들은 나보다 책을 아주 꼼꼼하게 읽는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책 내용만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 본인이 동의하기 힘든 저자의 입장도 언급한다. 여러 사람이 똑같은 책을 읽는다고 해서 무조건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책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 다르게 나타날 수있다.

    

 

 

 

 

 

 

 

 

 

 

 

 

 

* [레드스타킹 추천 도서] 케이트 밀렛 성 정치학(이후, 2009)

* [레드스타킹 추천 도서] 미셸 푸코 성의 역사 1(나남출판, 2010)

    

 

 

아무리 뛰어난 페미니즘의 고전이라고 해도 냉정할 정도로 박하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그런 유형의 사람이다. 이를테면 나와 몇몇 멤버는 케이트 밀렛(Kate Millett)성 정치학을 비판적으로 읽었고,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성의 역사1을 읽었을 때도 푸코의 한계를 지적한 멤버들이 있었다.

    

 

 

 

 

 

 

 

 

 

 

 

 

 

 

* [2018년 레드스타킹 추천 도서]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이연, 2009)

* 벨 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문학동네, 2017)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창비, 2016)

    

 

 

서구 중심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책을 주로 펴내는 여성학 전문 출판사 여성문화이론연구소(줄여서 여이연’)도 비판의 칼날을 피하지 못한다. 작년에 여이연 출판사에서 나온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읽었을 때 휴머니즘으로 귀결되고 마는 저자의 입장에 이의를 제기한 의견이 있었다. 사실 벨 훅스(Bell Hooks)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도 그렇고, 몇몇 흑인 여성주의자는 여성을 위한 페미니즘을 넘어 남성을 포용하는 휴머니즘을 얘기한다.

 

 

 

 

 

 

 

 

 

 

 

 

 

 

* 오세라비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 (좁쌀한알, 2018)

 

 

 

나도 남성을 위한 페미니즘에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는 반 페미니스트들(자신을 여성주의자 또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도 한다)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라는 수사를 왜곡하면서 악용하고 있는 점이다. 그들은 페미니즘을 벗어나서 휴머니즘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들의 논리 저변에는 페미니즘 자체를 쓸모없는 사상으로 만들려는 의식이 깔려 있다. 또 그들이 말하는 휴머니즘은 남성과 여성 모두 연대하면서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남녀 모두를 위한 휴머니즘은 인본주의라고 말은 하면서도 젠더 이분법에 포함되지 않는 성소수자를 배제한다. 흑인 여성운동가들이 추구하는 휴머니즘은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억압을 극복하여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휴머니즘과 연관 지으려는 페미니즘은 어떤 맥락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남성을 위한 페미니즘을 비판한다고 해서 남성을 혐오하자는 것이 아니다. 남성을 위한 페미니즘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즘 이론도 시간이 지나면 모순과 한계를 드러낸다. 페미니즘 이론은 죽을 때까지 믿어야 하는 절대적인 신념이 될 수 없다. 아니, 그렇게 되어선 안 된다. 변치 않는 신념으로 자리 잡은 페미니즘 이론은 독단(dogma)에 빠진다. 경계 없는 페미니즘101쪽에 페미니스트라면 깊이 새겨들어야 할 의미 있는 문장이 나온다. 모순이 전혀 없는, 혹은 순수한페미니즘은 가능하지 않다.”

 

 

여이연에 나온 책들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만듦새가 조악한 점이 아쉽다. 여이연에 나온 책들을 읽어보면 가독성이 떨어지는 번역문, 사소한 오류나 오자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경계 없는 페미니즘13쇄이다. 레드스타킹 멤버들이 가지고 있는 책 모두 13쇄이다. 그런데 내 책은 파본이다. 303~304쪽과 320~321쪽 본문 내용이 중복된 채 인쇄되어 있다.

 

경계 없는 페미니즘97쪽에 오자가 있다.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해 동남쪽에 있는 나라인 트리니다드 토바고(Trinidad and Tobago)트리니다드 토바고로 표기되어 있다.

    

 

 

 

 

 

 

 

 

 

 

 

 

 

  

* [절판] 태혜숙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여이연, 2001)

* [절판] 가야트리 스피박 다른 세상에서(여이연, 2008)

 

    

 

경계 없는 페미니즘탈식민주의 사상에 기반한 페미니즘을 다룬 책이다. 탈식민주의 사상에 대한 이론적 배경 지식이 있으면 누구나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여이연 출판사가 처음으로 만든 책이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이다. 탈식민주의 페미니즘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다른 세상에서》(번역본 초판의 출판 연도는 2003년)경계 없는 페미니즘, 흑인 페미니즘 사상으로 이어지는 출판물의 시조라 할 수 있다.

 

경계 없는 페미니즘의 저자인 모한티(Chandra Talpade Mohanty)1986년에 서구의 시선 아래서(Under Western Eyes)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다. 모한티는 이 글을 통해 서구 페미니즘 담론이 재현하는 3세계 여성과 페미니즘방식을 비판한다. 그녀는 백인 여성의 경험을 강조하는 1세계 페미니즘에 문화제국주의가 스며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경계 없는 페미니즘의 마지막 장은 16년 뒤에 저자가 서구의 시선 아래서를 새롭게 검토하는 글이다. 일종의 보론(補論)인 셈인데 모한티는 이 글에서 국가라는 경계를 넘어 탈식민주의와 반자본주의(그리고 이성애중심주의)에 대항하는 초국적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다.

 

    

 

 

 

 

 

 

 

 

 

 

 

 

 

 

 

* 프라모드 K. 네이어 프란츠 파농, 새로운 인간(앨피, 2015)

* 이경원 파농(한길사, 2015)

* [품절] 알리스 셰르키 프란츠 파농(실천문학사, 2013)

    

 

 

역시 여이연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아니라고 할까 봐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에도 오류가 있다. 서구의 시선 아래서의 발표 연도는 ‘1985으로 적혀 있다(9). 이 논문은 1986에 발표되었다. 반제국주의(anti-imperialism)‘anti-colonialism(반식민주의)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32). 탈식민주의 이론가인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알제리 지식인이라고 소개했는데(35), 이렇게 대충 소개하면 독자들은 그를 알제리에서 태어난 인물로 오해하기 쉽다. 파농은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로 건너가 알제리 독립 운동에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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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무 때나 새로 나온 전자책이 있는지 확인한다. 어제 발견한 신간 전자책은 ‘빅토리안 호러 컬렉션(Victorian Horror Collection) 네 번째 시리즈인 《오비의 빛》이다. 출판사 이름은 ‘올푸리’다. ‘올푸리’는 ‘올풀이’를 발음할 때 나는 소리인데, 올풀이는 ‘작은 규모로 가게 따위를 하는 장사치가 상품을 낱개로 파는 일’을 뜻한다. 내 생각이지만, 출판사 이름의 뜻은 ‘빅토리안 호러 컬렉션’ 출판 의도와 부합된다. ‘빅토리안 호러 컬렉션’은 분량이 짧은 영국(아일랜드, 웨일스 등 과거 영국의 지배를 받은 나라들도 포함된다)의 고딕 호러 소설을 한 편씩 소개하는 시리즈다.

 

 

 

 

 

 

 

 

 

 

 

 

 

 

 

 

 

 

 

* [e-Book] 아서 맥킨 《오비의 빛》 (올푸리, 2019)

 

 

 

《오비의 빛》의 원제는 ‘The Inmost Light’이다. 직역하면 ‘가장 깊은 곳의 빛’이다. 역자는 제목의 의미가 모호하다고 생각했는지 ‘오비의 빛’으로 의역했다. 오비는 일본 여성들이 기모노를 입을 때 두르는 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소설 제목에서 말하는 오비(奧秘)는 국어사전에 등재된 단어다. ‘가장 깊은 비밀’이라는 뜻이다.

 

 

 

 

※ 아서 매켄의 작품을 수록한 책들

 

 

 

 

 

 

 

 

 

 

 

 

 

 

 

 

 

* 정진영 옮김, 《러브크래프트 전집 6: 외전 (하)》 (황금가지, 2015)

『검은 인장의 소설』 수록 (원제 ‘Novel of the Black Seal’)

 

 

 

 

 

 

 

 

 

 

 

 

 

 

 

 

 

 

* 이한음 옮김, 《불타는 피라미드》 (바다출판사, 2011)

『불타는 피라미드(The Shining Pyramid)』, 『검은 인장 이야기-라이스터 스퀘어의 젊은 여성(Novel of the Black Seal)』, 『하얀 가루 이야기(Novel of the White Powder)』 수록

 

 

 

 

 

 

 

 

 

 

 

 

 

 

 

 

 

* 정진영 옮김, 《세계 호러 단편 100선》 (책세상, 2005)

『궁수』 수록 (원제 ‘The Bowmen’)

 

 

 

 

 

 

 

 

 

 

 

 

 

 

 

 

* [절판] 김정미 옮김, 《톨킨의 환상 서가》 (황금가지, 2005)

『공포의 엄습』 수록 (원제 ‘The Terror’)

 

 

 

 

 

 

 

 

 

 

 

 

 

 

 

 

 

* [절판] 윤효송 옮김,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1》 (자유문학사, 2004)

『위대한 목신』 수록 (원제 ‘The Great God Pan’)

 

 

 

 

 

 

 

 

 

 

 

 

 

 

 

 

 

* 정진영 옮김, 《세계 호러 걸작선》 (책세상, 2004)

『악마의 뇌』 수록 (원제 ‘The Inmost Light’)

 

 

 

 

이 작품은 웨일스 출신의 소설가 아서 매켄(Arthur Machen)이 썼다. 켈트인(Celts)의 후예답게 매켄은 시적 상상력으로 환상소설과 고딕 호러 소설을 썼다. 《오비의 빛》은 1894년에 발표했고, 이듬해에 그의 대표작인 《위대한 목신(The Great God Pan)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뇌수술을 받은 여성이 초자연적인 존재인 목신을 만나 끔찍하게 변화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 러브크래프트 《공포 문학의 매혹》 (북스피어, 2012)

* 러브크래프트 《러브크래프트 전집 4》 (황금가지, 2012)

* 러브크래프트 《러브크래프트 전집 1》 (황금가지, 2009)

 

 

 

 

《위대한 목신》을 수록한 유일한 번역본이 절판되었다. 이 작품의 전체 줄거리는 러브크래프트(H. P. Lovecraft)의 공포 문학 비평서 《공포 문학의 매혹》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단편 공포 소설 『안개 속 절벽의 기묘한 집』(《러브크래프트 전집 4》에 수록)은 고대의 신인 노덴스(Nodens)가 등장하는 작품이다. 사실 러브크래프트가 노덴스라는 신을 창조한 것이 아니다. 노덴스는 켈트 신화에 나오는 바다와 치료의 신이다. 《위대한 목신》에 노덴스를 언급한 대목이 있다. 매켄은 러브크래프트에게 영향을 준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위대한 목신》의 영향을 받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이 『던위치 호러』(《러브크래프트 전집 1》에 수록)이다.

 

‘The Inmost Light’는 정진영 씨가 번역한 적이 있다. 제목은 ‘악마의 뇌’다. 그러나 번역이 좋지 않다. 꼼꼼한 주석을 달았고, 작품 속 인물들이 다니던 런던 구역의 주요 위치를 약도로 표시한 《오비의 빛》과 비교하면, 정진영 씨의 번역은 실망스럽다. 키안티(Chianti) 포도주를 ‘칸티’로, 런던에 속한 구역인 노우드(Norwood)를 ‘노르우드’로 표기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잘못 번역된 문장도 있다.

 

 

 

 

 “London is always a mystery. In Paris you may say: ‘Here live the actresses, here the Bohemians, and the Ratés’; but it is different in London. You may point out a street, correctly enough, as the abode of washerwomen; but, in that second floor, a man may be studying Chaldee roots, and in the garret over the way a forgotten artist is dying by inches.

 

 “런던은 항상 미스터리입니다. 파리에서라면, ‘여기 여배우가 살고, 저기 보헤미안이 있고, 아무개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요. 그러나 런던에서는 다르죠. 여자 세탁부가 어디에 사는지 그 거리를 가리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집 이층점성가가 연구 중이고, 또 다락방에서는 무명의 예술가가 조금씩 죽어가고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악마의 뇌, 정진영 옮김, 88쪽)

 

 “런던은 언제나 미스터리야. 파리에선 이렇게 말할 수도 있네. ‘여기엔 여배우들이 살고, 여기엔 보헤미안들, 여기엔 인생의 낙오자들이 삽니다.’ 하지만 런던에선 달라. 자네는 세탁부들의 거주지라며 한 거리를 그런대로 정확히 가리킬지도 모르지만, 그 건물의 삼층에선 어떤 사람이 칼데아인 혈통을 연구 중일 수도 있고, 길 건너 다락방에선 세상이 잊은 예술가가 시시각각 죽어가고 있는 거야.

 

(오비의 빛, 임명익 옮김, 10쪽)

 

 

 

Raté’는 프랑스어로 ‘낙오자’, ‘실패자’를 뜻한다. 정진영 씨는 ‘아무개’라고 번역했다. 그리고 정진영 씨는 ‘second floor’를 ‘2층’으로 번역했는데, 영국에서 쓰는 ‘second floor’는 ‘3층’이다. 미국의 건물 층수와 영국의 건물 층수의 의미는 다르다. ‘a man may be studying Chaldee roots’도 엉뚱하게 번역되어 있다. ‘Chaldee(칼데아)’는 고대 바빌로니아 남부에 있는 지명이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칼데아의 지식계급에 속한 신관(神官)은 점성가였다. 하지만 원문의 의미를 봐서는 ‘Chaldee’를 점성가로 번역할 수 없다.

 

《오비의 빛》의 저자명을 ‘아서 맥킨’으로 되어 있는데, 이 또한 ‘아서 매켄’ 또는 ‘아서 매컨’으로 표기해야 한다. 간혹 ‘아서 메이첸’ 또는 ‘아서 매첸’

으로 쓰는 역자도 있는데, 이것들도 잘못된 표기법이다.

(2019419일에 취소선을 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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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4-14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완벽한 번역으로 읽고 싶은데... 번역 문학의 한계군요...

cyrus 2019-04-17 13:28   좋아요 0 | URL
서양 고전 문학 작품은 번역이 제일 중요해요. 번역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작품 속 인물을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과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해석이 달라지거든요.

2019-04-17 1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4-18 12:12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답변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집자님의 글을 읽고 나니 제가 작가의 이름을 표기하는 것에 ‘맞다/틀렸다’는 식으로 너무 성급하게 단정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맥킨’으로 발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편집자님 덕분에 새로운 정보를 배웁니다. ^^

저는 책 정보를 잘못 전달한 리뷰가 있으면 다른 분들이 지적한 의견을 반영하면서 고치는 성격입니다. 편집자님의 답변을 첨언해서 <오비의 빛> 리뷰를 다시 고치겠습니다.

2019-04-19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자책] 오비의 빛 빅토리안 호러 컬렉션 4
아서 맥킨 지음 / 올푸리 / 2020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악마의 뇌’라는 제목으로 정진영 씨가 번역한 적이 있는 아서 매켄(Arthur Machen)의 단편소설이다. 그런데 저자 이름이 ‘아서 맥킨’으로 되어 있는데, ‘아서 매켄’ 또는 ‘아서 매컨’으로 써야 한다.

(2019419일에 취소선을 그음)

 

 

번역은 정진영 씨의 번역보다 좋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생소한 단어의 의미를 설명한 주석이 달려 있다. 그뿐만 아니라 부록으로 작품 속 인물들이 다니던 런던 구역의 주요 위치를 표시한 약도가 있다. 역자와 출판사가 이 전자책 한 권을 만드는데 열심히 준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를 소개하는 글에 연도가 잘못 적혀 있다. 매켄은 1947년에 세상을 떠났다.

 

 

 

추가 사항

2019415일에 오탈자가 수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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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말들 -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
은유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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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쓸 것인지 생각하기, 쓰기, 고치기. 누구나 알고 있는 글쓰기의 세 단계다. 글을 쓰는 것은 생각을 깊게 한 후에 쓸 수 있고, 여러 번 지웠다가 다시 쓸 수도 있다. 말을 할 때도 이 세 단계를 지켜야 한다. 생각하기, 말하기, 고치기. 이 말하기 단계에서 가장 쉬운 것이 말하기고, 가장 어려운 것이 고치기다. 고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말은 엎어진 물과 같다. 말 한번 잘못하면 끝이다. 잘못 나온 말은 수십 마디의 변명으로도 고치기 어렵다. 그러므로 말을 할 땐 정말 신중해야 한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말도 잘할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이동진, 김영하, 김겨울 등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책 읽기를 엄청나게 좋아하고,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책을 냈다. 팟캐스트와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꽤 많은 청취자/시청자/독자들과 소통한다. 게다가 그들의 입심 또한 범상치 않아 재미있게, 유쾌하게 책을 소개한다.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책 많이 읽고, 글 잘 쓰는 똑똑한 사람도 무지에 근거한 발언이나 오해가 생길 수 있는 경솔한 발언을 할 때가 있다.

 

나는 책을 많이 읽지만,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다. 무언가 생각나는 것을 말로 표현하고 싶은데, 흐르는 물이 어딘가에 막힌 것처럼 술술 나오지 못할 때가 많다. 생각나는 대로 더듬더듬 힘겹게 말하고 나면, 얼굴이 화근거리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발음도 좋지 않다. 대화를 나누다가 상대방이 내 발음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는데,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은 갑자기 흔들린다. 그야말로 ‘마음 지진’이다. 그럴 때 급히 대화를 매듭지어버린다.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수려한 언변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쓸데없이 긴장하지 않으면서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래서 대화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싶어서 작년부터 독서 모임에 나가게 됐다. 1년 동안 두 개의 독서 모임에 나가면서 확실히 알았다. 내가 너무 책에 파묻혀 살았구나. 이러니 말주변이 없었어.

 

말을 잘 하지 못하더라도 말을 ‘잘 듣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내 인생의 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나한테 ‘다가오는 말들’을 경청하는 사람이 되는 것. 독서 모임에 나가기 전에 ‘경청하는 태도’를 잊지 않도록 마음속으로 자가 최면을 걸듯이 여러 번 다짐을 했다. 마침 은유 작가의 《다가오는 말들》을 읽게 되었고, 경청의 세 단계를 새롭게 설정할 수 있었다. 듣기, 생각하기, 고치기.

 

 

 타인의 말은 나를 찌르고 흔든다. 사고를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그렇게 몸에 자리 잡고 나가지 않는 말들이 쌓이고 숙성되고 연결되면 한 편의 글이 되었다. 이 과정을 꾸준히 반복하면서 남의 말을 듣는 훈련이 조금은 된 것 같다. 무엇보다 큰 수확은 내가 편견이 많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그렇게 책을 읽어도 이 모양인가 싶어 자주 부끄러웠다. 하지만 편견, 무지, 둔감함은 지식이 부족해서 생기는 건 아니었다. 결핍보다 과잉이 늘 문제다. 타인의 말은 내 판단을 내려놓아야 온전히 들리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 7~8쪽)

 

 

말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면 생각이 많아진다. 상대방에게 말하기 전에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하고, 그것을 어떻게 능숙하게 표현해야 할지 미리 생각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두뇌를 완전 가동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짧은 시간 안에 두뇌를 너무 빨리 작동하면 정확하지 않은 지식의 파편, 또는 편견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다. 잡다한 생각으로 꽉 채운 말 한마디는 겉으론 화려하게 보일지 몰라도, 청자의 마음을 울리는 힘은 부족하다. 오히려 ‘청자를 울리는’ 해로운 말이 될 수 있다. 나나 상대방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 말 한마디를 꺼내려고 복잡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차라리 ‘나’를 내려놓고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게 낫다. 내게 다가오는 상대방의 말 또한 나를 아프게 하는 해로운 무기가 될 수 있지만,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독소’ 같은 편견들을 제거해주는 따끔한 해독 주사가 되기도 한다. 해독 주사 같은 말이 내 두뇌를 찌르고 나면, 몇 번의 진통을 거치면서 생각한다. 그게 바로 은유 작가가 말한 ‘사고를 원점으로 돌리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편견을 발견하게 되고, 성숙한 ‘나’로 단단히 준비할 수 있도록 편견에 저항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경청의 마지막 단계 ‘고치기’다.

 

제대로 경청하는 사람이 되려면 ‘확신에 찬 사람(19쪽)’이 되지 않아야 한다. 편견이 쌓이고 자기 확신 단계에 들면 오만이 생긴다. 오만은 ‘다가오는 말’을 원천 봉쇄하는 방어막이 되거나 때론 상대방을 제압하는 위력이 되기도 한다. ‘네가 생각한 건 틀렸어’ ‘어딜 감히 내 말에 태클을 걸어?’ 이런 식으로 강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모든 답이 자기에게서 나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은유 작가는 40대 후반이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두려워해야 할 나이라고 말하는데, ‘젊은 꼰대’가 늘어나는 요즘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하면 아집이 생기기 시작하는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책을 많이 읽고, SNS나 블로그에서 글을 쓰는 일은 분명 좋은 일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글쓰기의 세 단계를 이행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혼자서 ‘생각하고, 쓰고, 고치는 일’이 가능하냐는 점이다.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은유 작가의 글을 읽고 난 이후로 생각이 달라졌다. 글쓴이가 자신의 글에 ‘다가오는 말들’을 경청하지 않은 채 글을 쓰고 고친다면, 과연 그 글이 제대로 쓰인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평소에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은 글 쓸 때도 남의 의견을 잘 듣는다. 이 사람은 무지와 편견으로 살아온 ‘나’를 재발견하고, 삶과 사회를 새롭게 정의하면서 글을 쓴다. 그리고 상대방(독자)이 불편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글을 쓴다. 내 글을 읽게 될 독자에게 상처 주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면서 글을 쓸 수 있으려면 일단 ‘다가오는 말’을 잘 듣고 마음으로 흡수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야 한다. 그러면 ‘나를 위한 글쓰기’는 ‘남을 위한 글쓰기’로 승화한다.

 

혼자서 책 읽고, 글을 쓰는 일은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게 ‘다가오는 말들’이 없기 때문이다. 틀에 박힌 글쓰기가 반복되는 일상은 온전히 ‘나’를 위한 공부가 될 수 없다. 안중근 의사는 ‘하루만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말했다. 좋은 말이긴 하나, 책에 파묻혀 사면서 글쓰기에 몰두하는 외로운 일상도 좋다고 볼 수 없다. 낯선 존재와 마주하면서 낯선 말을 접해보지 않으면 머리에 가시가 돋는다. 그 가시는 내 정신을 빈곤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남을 위협하는 언어라는 무기가 되곤 한다. 머릿속에 가시가 생기지 않으려면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는 ‘낯선 존재의 말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부딪칠 수 있는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 공간 안에서 ‘무지로 인한 긴장과 혼돈의 시간을 치르면서(278쪽)’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 들어 혼자서 책 읽는 것보다 같은 책을 여러 사람과 함께 읽는 독서 모임이 좋게 느껴진다. 모임 분위기가 즐거운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 삶, 성격, 정체성, 신념)(과, 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공부하면서 느끼는 ‘긴장감’이 좋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공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쭉 그렇게 공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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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4-14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 모임, 좋은 공부 방법인 것 같습니다. 함께 읽은 텍스트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요. 편견 깨기... 확실히 독학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cyrus 2019-04-17 13:38   좋아요 0 | URL
내 글을 보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없는 것은 좋은 현상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글만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죠. 솔직히 말해서 요즘 들어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에 회의감을 느낍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도 그들과 직접 만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좋게 느껴집니다.
 

 

 

혼자 사는 남자의 방에는 퀴퀴한 홀아비 냄새가 진동한다. 내 방도 예외가 아니다. 냄새를 없애려고 실내 방향제와 섬유 탈취제를 뿌려봤지만, 별 소용이 없다. 몸에 나는 체취에 굉장히 많이 신경 쓰는 편이다. 친구, 그것도 절친한 벗으로부터 ‘홀아비 냄새가 난다’라고 농담 섞인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난 이후부터 한동안 대인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느꼈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 피에르 라즐로 《냄새란 무엇인가?》 (민음인, 2006)

* [품절] 마르코 라울란트 《호르몬은 왜?》 (프로네시스, 2007)

 

 

 

남자한테서 풍기는 체취의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땀이다. 특히 겨드랑이처럼 체모가 많은 부위에 ‘아포크린(apocrine)’이라는 땀샘이 있다. 아포크린에 나오는 땀이 ‘암내’의 원인이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 분해되면 특이한 향이 나는 안드로스테롤(androsterol)과 안드로스테논(androstenone)이라는 화합물이 만들어진다. 안드로스테롤은 남자의 모낭 끝부분, 그중에서도 겨드랑이와 음모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으며 사향 냄새를 풍긴다. 안드로스테논은 남성 페로몬의 일종으로, 땀으로 체외에 배출된다. 피부에 사는 세균과 만나면 지린 오줌 냄새 비슷한 악취가 생긴다. 여성의 땀 속에도 안드로스테논이 들어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약 30%에 이르는 성인은 안드로스테논이 유발한 냄새를 느끼지 못하며, 사람에 따라서는 바닐라 향기로 느끼기도 한다.

 

 

 

 

 

 

 

 

 

 

 

 

 

 

 

 

 

 

 

* 알랭 코르뱅 《악취와 향기》 (오롯, 2019)

* [품절] 마크 스미스 《감각의 역사》 (수북, 2010)

* [절판] 콘스탄스 클라센 외 《아로마: 냄새의 문화사》 (현실문화, 2002)

 

 

 

악취와 향기를 구분하는 기준은 사회문화적 분위기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후각은 고대로부터 노예 노동, 식민지, 인종과 계급 착취체제가 정착되는 시기까지 중요한 구실을 했다. ‘타자’를 정하고, 그들을 특정 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후각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철저하게 나누는 근거가 됐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의 소설 《향수》에 나오는 주인공은 후각에 민감하다. 이 소설에서 그는 ‘변태’ 또는 ‘타락한 하층계급’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 근대 유럽인들은 사회적으로 주변부에 속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악취가 나고, 교양인들에게서는 향기가 난다고 생각했다. 《향수》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랭 코르뱅(Alain Corbin)《악취와 향기》에 영감을 받아서 쓴 소설이다. 《악취와 향기》는 후각이 역사적이지만,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악취와 향기에 대한 학자와 대중의 반응은 특정한 사회 · 역사적 정황에 따라 달라졌다. 《악취와 향기》는 감각이 타자를 어떻게 규정짓는지를 재조명하는 책이다. 예전에도 《악취와 향기》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몇몇 책들이 나온 적이 있다. 《감각의 역사》후각을 포함한 ‘오감’이 권위와 서열의 기준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 주목한 책이다. 《아로마: 냄새의 문화사》는 후각이 서구 문화와 비(非)서구 문화에서 어떻게 구성되고, 억압되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냄새는 정치적인 것이고, 권력이다” 이 세 권의 책을 관통하는 공통의 주제이다.

 

 

 

 

 

 

 

 

 

 

 

 

 

 

 

 

 

 

* 엘리즈 티에보 《이것은 나의 피》 (클, 2018)

* 박이은실 《월경의 정치학》 (동녘, 2015)

* 마사 C. 누스바움 《혐오와 수치심》 (민음사, 2015)

 

 

 

 

 

 

 

 

 

 

 

 

 

 

 

 

 

 

* [품절] 메리 더글러스 《순수와 위험》 (현대미학사, 1997)

* 방원일 《메리 더글러스》 (커뮤니케이션북스, 2018)

 

 

 

후각에 의존한 인간의 평가는 인종 및 계급 문제뿐만 아니라 ‘젠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과거에 남성의 정액은 남녀의 성적 욕망을 부추기고, 생명체 전체에 영향을 주는 ‘생명의 본질’로 인식 받았다. 정액은 비릿한 밤꽃 냄새가 난다. 18세기 학자들은 활동력이 왕성한 남자일수록 정액 특유의 ‘메슥거리는 냄새’가 심해진다고 생각했다. 반면 고자한테는 정액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학자들은 남성의 정액이 품고 있는 ‘영기(靈氣)’를 강조했다.

 

남성 학자들은 여성의 월경혈을 몸에 빠져나오는 ‘나쁜 피’로 생각했고, 그것을 성스러운 것을 오염시키는 위험한 물질로 취급했다.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가 지적했듯이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체액은 몸 안에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밖으로 배출되는 순간 불결하거나 위험한 것으로 규정된다. 우리는 우리 몸이 냄새나고, 불결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몸의 불완전함’을 은폐하려면 ‘불결한 존재’로 규정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상, 즉 타자가 필요하다. 미국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의 주장처럼 ‘불결한 타자’에 오랫동안 장애인, 성소수자, 유색인종, 그리고 여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 이화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학센터 《우리들의 목소리 1》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5)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월경과 월경혈은 금기와 억압의 대상이었다. 유대인들은 남성 할례의 피를 성스럽다고 생각하는 반면 월경혈은 끔찍한 것이라고 여겼다. 네팔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생리 기간에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 네팔 서부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월경을 ‘차우파디(chhaupadi)라고 부른다. 월경 중인 여성은 자기 집에 들어갈 수 없고, 우유와 유제품을 먹지 못한다. 종교와 관련된 건물 안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네팔 사람들은 ‘월경 금기’를 믿는다. 그들에게 월경은 음식을 부패하게 만드는 원인이고, 신을 모독하는 현상이다. 월경 중인 여성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움막 속에 혼자 산다. 그녀는 월경기가 끝날 때까지 소금 묻힌 빵으로 연명하면서 움막 안에 지내야 한다. 네팔 정부는 여성을 차별하는 악습을 금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여전히 월경 금기를 믿는 네팔 사람들이 많다. 네팔의 젊은 남녀들로 구성된 ‘사마비카스 네팔(Samabikas Nepal)이라는 사회단체는 차우파디 전통을 폐지하는 일이 앞장서고 있으며 ‘차우파디 없는 지역 만들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냄새를 맡지 못하면 음식 맛도 느낄 수 없고 다른 감각도 둔해져 삶이 울적해진다. 그렇지만 ‘냄새에 스며든 권력’은 누군가에게는 저주가 된다. ‘냄새에 스며든 권력’을 가진 자는 자기보다 아래인 타자를 ‘불결한 냄새가 나는 존재’로 규정하여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타자에 대한 혐오와 수치심이 확산한다. 냄새에 대한 부끄러움은 내 몫이 아니다. 냄새가 조금 난다고 해서 스스로 ‘죄인’ 취급하지 말자. ‘죄인’이 되는 순간, 누군가에게 종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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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4-10 18:44   좋아요 0 | URL
겨울에 샤워를 자주 안 합니다. 2주에 한 번씩 합니다. 그래서 겨울에 유독 홀아비 냄새가 자주 나는 것 같습니다. 날씨가 좋아지면 샤워를 자주 해야겠어요.. ^^;;

syo 2019-04-09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홀아비냄새가 난다˝는 말은, 방에서 난다는 게 아니라 바깥에서 만났는데 들은 거라면 ‘솔로 생활 청산하고 애인 만들어라/결혼해라‘로 번역되는 대사 아닌가요..... 진짜 난다는 뜻이었단 말인가....

cyrus 2019-04-10 18:45   좋아요 0 | URL
syo님의 말씀처럼, 말 한 마디에 두 가지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