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전인 월요일에 ‘《경계 없는 페미니즘》 함께 읽기’를 끝냈다(아쉽게도 그날 나는 개인 사정이 있어서 마지막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 한 권의 책을 읽는 데 걸리는 기간은 4주였다.
* [레드스타킹 추천 도서] 찬드라 탈파드 모한티 《경계 없는 페미니즘》 (여이연, 2005)
레드스타킹 모임 분위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가 일사천리로 책을 읽는 것 같다고 생각하지 싶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레드스타킹 멤버 대부분은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고 책의 여백에 필기한다. 그분들은 나보다 책을 아주 꼼꼼하게 읽는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책 내용만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 본인이 동의하기 힘든 저자의 입장도 언급한다. 여러 사람이 똑같은 책을 읽는다고 해서 무조건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책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 다르게 나타날 수있다.
* [레드스타킹 추천 도서] 케이트 밀렛 《성 정치학》 (이후, 2009)
* [레드스타킹 추천 도서] 미셸 푸코 《성의 역사 1》 (나남출판, 2010)
아무리 뛰어난 ‘페미니즘의 고전’이라고 해도 냉정할 정도로 박하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그런 유형의 사람이다. 이를테면 나와 몇몇 멤버는 케이트 밀렛(Kate Millett)의 《성 정치학》을 비판적으로 읽었고,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성의 역사》 1권을 읽었을 때도 푸코의 한계를 지적한 멤버들이 있었다.
* [2018년 레드스타킹 추천 도서]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 (여이연, 2009)
* 벨 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문학동네, 2017)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창비, 2016)
서구 중심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책을 주로 펴내는 여성학 전문 출판사 여성문화이론연구소(줄여서 ‘여이연’)도 비판의 칼날을 피하지 못한다. 작년에 여이연 출판사에서 나온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읽었을 때 휴머니즘으로 귀결되고 마는 저자의 입장에 이의를 제기한 의견이 있었다. 사실 벨 훅스(Bell Hooks)나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도 그렇고, 몇몇 흑인 여성주의자는 ‘여성을 위한 페미니즘’을 넘어 남성을 포용하는 휴머니즘을 얘기한다.
* 오세라비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 (좁쌀한알, 2018)
나도 ‘남성을 위한 페미니즘’에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는 반 페미니스트들(자신을 여성주의자 또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도 한다)이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라는 수사를 왜곡하면서 악용하고 있는 점이다. 그들은 ‘페미니즘을 벗어나서 휴머니즘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들의 논리 저변에는 페미니즘 자체를 쓸모없는 사상으로 만들려는 의식이 깔려 있다. 또 그들이 말하는 휴머니즘은 ‘남성과 여성 모두 연대하면서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남녀 모두를 위한 휴머니즘은 인본주의라고 말은 하면서도 젠더 이분법에 포함되지 않는 성소수자를 배제한다. 흑인 여성운동가들이 추구하는 휴머니즘은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억압을 극복하여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휴머니즘과 연관 지으려는 페미니즘은 어떤 맥락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남성을 위한 페미니즘’을 비판한다고 해서 남성을 혐오하자는 것이 아니다. 또 ‘남성을 위한 페미니즘’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즘 이론도 시간이 지나면 모순과 한계를 드러낸다. 페미니즘 이론은 죽을 때까지 믿어야 하는 절대적인 신념이 될 수 없다. 아니, 그렇게 되어선 안 된다. 변치 않는 신념으로 자리 잡은 페미니즘 이론은 독단(dogma)에 빠진다. 《경계 없는 페미니즘》 101쪽에 페미니스트라면 깊이 새겨들어야 할 의미 있는 문장이 나온다. “모순이 전혀 없는, 혹은 ‘순수한’ 페미니즘은 가능하지 않다.”
여이연에 나온 책들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만듦새가 조악한 점이 아쉽다. 여이연에 나온 책들을 읽어보면 가독성이 떨어지는 번역문, 사소한 오류나 오자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경계 없는 페미니즘》은 1판 3쇄이다. 레드스타킹 멤버들이 가지고 있는 책 모두 1판 3쇄이다. 그런데 내 책은 파본이다. 303~304쪽과 320~321쪽 본문 내용이 중복된 채 인쇄되어 있다.
《경계 없는 페미니즘》 97쪽에 오자가 있다.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해 동남쪽에 있는 나라인 트리니다드 토바고(Trinidad and Tobago)를 ‘트리니다드와 토바고’로 표기되어 있다.
* [절판] 태혜숙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여이연, 2001)
* [절판] 가야트리 스피박 《다른 세상에서》 (여이연, 2008)
《경계 없는 페미니즘》은 탈식민주의 사상에 기반한 페미니즘을 다룬 책이다. 탈식민주의 사상에 대한 이론적 배경 지식이 있으면 누구나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여이연 출판사가 처음으로 만든 책이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이다.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은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의 《다른 세상에서》(번역본 초판의 출판 연도는 2003년)와 《경계 없는 페미니즘》, 《흑인 페미니즘 사상》으로 이어지는 출판물의 시조라 할 수 있다.
《경계 없는 페미니즘》의 저자인 모한티(Chandra Talpade Mohanty)는 1986년에 『서구의 시선 아래서(Under Western Eyes)』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다. 모한티는 이 글을 통해 서구 페미니즘 담론이 재현하는 ‘제3세계 여성과 페미니즘’ 방식을 비판한다. 그녀는 백인 여성의 경험을 강조하는 ‘제1세계 페미니즘’에 문화제국주의가 스며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경계 없는 페미니즘》의 마지막 장은 16년 뒤에 저자가 『서구의 시선 아래서』를 새롭게 검토하는 글이다. 일종의 보론(補論)인 셈인데 모한티는 이 글에서 ‘국가’라는 경계를 넘어 탈식민주의와 반자본주의(그리고 이성애중심주의)에 대항하는 ‘초국적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다.
* 프라모드 K. 네이어 《프란츠 파농, 새로운 인간》 (앨피, 2015)
* 이경원 《파농》 (한길사, 2015)
* [품절] 알리스 셰르키 《프란츠 파농》 (실천문학사, 2013)
역시 ‘여이연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아니라고 할까 봐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에도 오류가 있다. 『서구의 시선 아래서』의 발표 연도는 ‘1985년’으로 적혀 있다(9쪽). 이 논문은 1986년에 발표되었다. 반제국주의(anti-imperialism)를 ‘anti-colonialism(반식민주의)’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32쪽). 탈식민주의 이론가인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을 ‘알제리 지식인’이라고 소개했는데(35쪽), 이렇게 대충 소개하면 독자들은 그를 ‘알제리에서 태어난 인물’로 오해하기 쉽다. 파농은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로 건너가 알제리 독립 운동에 헌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