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녀 - 궁궐에 핀 비밀의 꽃, 개정증보판
신명호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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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살고 싶으면 입 다물라', 궁녀(宮女), 삶의 존재 이유

 

 

     

 

궁중 속 애욕과 광기의 정사를 그린 《후궁: 제왕의 첩》(2012)

궁녀의 치정 살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궁녀들 간의 암투를 묘사한 《궁녀》(2007)

 

 

 

요즘 극장가에서 흥행 선두를 달리고 있는 영화 중에 최고의 핫(Hot)한 영화가 바로 《후궁: 제왕의 첩》이다. 여배우의 전라노출과 농도 짙은 배드씬 장면이 꽤 있는 19금 영화라는 장르의 제약 속에서도 전국 관객 2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한순간 어긋난 사랑으로 인해서 후궁에 들어가게 된 '화연'(조여정 役)과 단지 그녀를 소유하려다 못해 욕망과 광기에 눈이 멀게 된 권력자 '성원대군'(김동욱 役) 간의 애욕의 정사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후궁을 여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그저 '비밀'의 역사로만 알려진 궁중의 내막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후궁》이 개봉되기 5년 전에는《궁녀》라는 이름의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다. 이 영화 역시 19세 미만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궁녀의 에로티시즘을 묘사한 것은 아니다. 자살로 위장된 궁녀의 치정 살인사건 해결을 중심으로 드러나는 궁녀들 간의 은밀한 암투를 중심으로 그려낸 미스터리 장르의 영화다. 《후궁》보다는 《궁녀》야말로 영화로 재현된 궁녀들의 생활을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궁녀》를 촬영하기 위해 메가폰을 잡았던 김미정 감독은 《후궁》에서는 각본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두 편의 영화만 가지고 '궁녀'라는 존재에 대해서 확실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자면 과연 우리에게 '궁녀'는 어떠한 존재일까?

 

 

 

 

충남 부여에 위치하고 있는 낙화암에는 지금까지도 바다로 몸을 던진 백제 최후의 왕 의자왕의 삼천궁녀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사적 일화는 역사학계에서는 '허구'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백제의 삼천궁녀에 대해서도 어떠한 실질적인 역사적 문헌도 단 한 개도 없다. 백제의 사비 성 인구가 5만 명 정도 추산한다면 이 '삼 천'이라는 숫자는 과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후세의 호사가들이 역사적 장면을 극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그나마 가장 큰 숫자를 붙여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궁녀'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낙화암에서 뛰어 내렸다던 백제의 삼천궁녀다. 이 역사적 일화 덕분에 지금까지도 의자왕(?~660)은 나라를 망친 방탕한 군주이면서도 동시에 다른 사내들 부럽지 않을 정도로 무려 삼천 명이나 되는 궁녀를 거느린 진정한(?) 군주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의자왕의 이미지 덕분에 궁녀는 단순히 왕 한 사람을 위한 성 노리개 정도로만 치부하고 있다. 이번에 개봉되어 상영중인《후궁》까지 더해진다면 궁녀는 권력자의 파멸을 이르게 하는 무시무시한 한국형 '팜므 파탈'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과장되면서도 편협된 역사적 증언과 영화에 대한 관객의 몰입을 위해 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영화 속 궁녀의 이미지를 따로 놓고 본다면 궁녀의 삶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전혀 다르다.《궁녀》 포스터를 살펴보면 '살고 싶으면 입 다물라' 라는 문구가 눈에 띌 것이다.

 

그렇다. 정말로 궁녀는 인간으로서 살기 위해서 입을 다물어야 했다. 궁녀는 '궁(宮)의 여자', 한편으로는 궁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왕'의 여자이기도 했다. 궁녀들은 궁중 안에서 한평생 왕이나 왕후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좌해야 했다.  백성들에게는 '위대한 군신(君神)'과 다름없는 왕족의 사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에 제한적인 삶을 살아야했다. 그래서 결혼 적령기가 되어서도 결혼을 할 수 없으며 궁녀로서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 궁궐 밖으로 나가서도 궁녀들에게 결혼은 '금지'에 가까운 금기였다. 궁녀가 궁궐 외부의 사내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면 왕의 사생활뿐만 아니라 궁정 생활에 대한 모든 것을 발설하게 되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녀는 궁 안으로 들어오게 된 이상 왕족의 눈 밖으로 나지 않기 위해서는 말과 행동을 삼가해야만 했다. 궁중 생활에 대해서 함부로 말했다가는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할 수도 있으며 진정한 '왕의 여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발로 걷어차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비록 현존하고 있는 역사적 문헌을 통해서 본다면 낮은 신분의 궁녀가 '왕후'가 된다는 것은 단 1%에 불과할 정도로 희박했지만 말이다.

 

 

 

 궁녀, 신분 상승을 꿈꾸다  

 

우리가 '궁녀'라는 존재를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먼저 조선의 여성들이 '궁녀'가 된 이유를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 궁녀는 왕족들의 생활에 가장 밀접한 계급이기 때문에 궁녀 선발 과정은 좀 복잡하다. 간답하게 설명하자면 기본적으로 궁녀의 선발 조건은 각사(중앙 정부의 관청)에 소속된 여자 종(공노비)들이다. 양인의 여성들도 궁녀가 될 수 있었지만 이는 부득이한 상황에서 의해서 선발되었을 뿐 궁녀 선발 규정에서는 양인 여성들은 궁녀로 뽑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궁중 내에서 발생한 역모사건의 진상을 기록한『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에서 양인 출신 여성들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서 궁녀가 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정으로 인해서 자발적으로 혹은 강제적으로 입궁하여 궁녀가 되었던 것이다. 천이라는 이름의 나인(內人)은 한양에서 과부로 살다가 생계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궁녀가 되었으며 명순이라는 궁녀는 열세 살 때 궁중 행사를 보기 위해서 가족들과 함게 구경하러 갔다가 아예 그곳에서 광해군 세자의 나인이 되었다. 명순이 화려한 궁중 행사에 넋 빠져 넓은 궁중 안에서 길을 잃어버린 바람에 궁녀가 되었다기보다는 그녀의 부모가 당시 생계가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딸을 궁궐로 입궁시켰다고 볼 수 있다. 명순이 궁녀가 된 이유에는 그 당시 조선 백성들의 궁핍한 실상과 동시에 조선의 여성으로서의 겪어야 하는 사회적 진출의 한계를 엿볼 수 있다. 양반이 아닌 이상 생계를 제대로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양인의 딸로 태어난 조선의 여성들은 양인 남편의 아내로서 일생을 살아가야했다. 어찌 보면 조선의 여성이 궁궐로 입궁하여 궁녀가 된다는 것은 조선의 여성들에게는 그나마 제한적인 자신의 지위을 극복할 수 있는 사회적 진출을 위한 기회였다. '궁녀'라는 것도 궁중 내에 있는 모든 잡일을 도맡아야하는 노동을 하면서 월급을 받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소개된 궁녀가 된 양인 여성들의 사연 이외에도 신명호 교수가 발굴한 궁녀에 대한 잡다한 정보가 기록된 사료들을 추려 본다면 궁녀는 다른 조선의 여성들에 비해 자신이 처한 사회적 진출의 한계를 어떻게든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니고 있었으며 유난히도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가 강했음을 알 수 있다.  

 

궁녀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는 다르게 상궁 박씨는 궁녀라는 지위의 한계 속에서도 부동산을 통해서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궁에서 주는 월급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상궁 박씨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 증식에 노력했다.

 

 

13년이 흐른 후 상궁 박씨는 또다시 부동산을 매입한다.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매입하지 않고 자신의 남자 종 대복(大福)을 시켜 매입하도록 했다. 그 사이 노비도 샀다.

 

 - 신명호 『궁녀: 궁궐에 핀 비밀의 꽃』시공사, p 223 -

 

 

 

 

 

 

 

2005년에 개봉된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속 장면.

연산군(右, 정진영 役)과 장녹수(左, 강성연 役)

 

 

공전에 최대 흥행관객 수를 기록했던 이준익 감독의《왕의 남자》와 1995년에 방영된 동명의 사극 드라마 덕분에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장녹수(?~1506) 같은 경우에는 노비의 신분에서 왕의 후궁까지 오르게 된 신분 상승에 성공한 궁녀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가난한 노비의 딸로 태어난 장녹수는 어려서부터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그녀에 대한 역사적 문헌에 의하면 그렇게 눈에 띌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는 아니었지만 가무에 출증한 재능 덕분에 자신보다 연하인 연산군(1476~1506)의 눈에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이와 신분을 초월할 정도로 장녹수와 연산군은 예술적 교감이 가능했고 친모 폐비 윤씨(1445~1482)에 대한 결핍이 강하게 자리잡았던 연산군은 연상의 장녹수를 통해서 자신의 결핍한 모성애를 채우고자 했다. 이러한 왕의 총애를 받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 덕분에 장녹수는 후궁에 맞먹을 정도의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장녹수의 일생은 상궁 난이(?~1623)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궁녀는 죽을 때까지 자신과 한 번 맺게 된 주인을 섬겨야 했으며 그 주인이 살아 있다하더라도 다른 주인을 섬기게 된다면 그것은 '배신'에 가까운 행위였다. 하지만 선조의 두 번째 왕비인 인목대비 김씨(1584~1632)의 궁녀였던 난이는 자신의 신분 상승을 꾀하기 위해서 주인을 배신했던 궁녀의 사례로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난이는 번번이 상궁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놓치게 되자 광해군(1575~1641)과 인목대비 김씨 사이의 갈등을 기회로 삼아 광해군 쪽의 궁녀로 돌아서게 된 것이다. 난이는 인목대비 김씨를 핍박하기 위해서 인목대비 김씨 밑에서 일하는 궁녀들을 포섭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광해군을 위해서 앞장 섰다. 하지만 1623년 인조 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이 폐위되자 승승장구했던 난이의 운도 여기까지였다. 그녀는 역적의 몸이 되어 그 해에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사랑 그리고 성적 욕구마저도 억압했던 궁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궁녀는 입궁하게 된 순간부터 '여성'으로서의 지위를 거의 반 정도 스스로 포기해야만 했다. 일단 궁궐 내에서도 사내와의 연정을 품어서는 안 되었고 당연히 결혼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결혼을 한다고 해도 궁녀들은 신랑 없이 혼례를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은 자의적으로 한편으로는 강제적으로 성적 욕구를 억제해야만 했다. 하지만 궁녀들도 당연히 '여성'이기에 어떻게든 성적 욕구를 표출하고자 했다. 궁녀들은 네 다섯 명 정도 한 방에 생활했다. 이러한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궁녀들 사이에서 동성애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특히 사춘기에 가까운 어린 나이에 입궁한 젋은 궁녀 그리고 네 살이라는 너무 어린 나이에 입궁하여 외간 남자를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채 살아야했고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궁녀들에게는 사랑과 성이 금지된 궁궐 내 생활이 무척 답답하고 외로웠을 것이다.

 

궁궐 내의 궁녀들 간의 동성애를 '대식'이라고 하는데 궁궐 내 대표적인 동성애 스캔들이 바로 세종(1397~1450)의 큰며느리 세자빈 봉 씨와 궁녀 소쌍과의 관계다. 남편인 문종(1414~1452)이 워낙에 공부를 좋아하고 여색을 멀리한 모범적인 성격이다보니 봉 씨는 남편의 사랑을 그리워한 채 독수공방으로 지내야만 했다. 결국 목 말라하던 사랑에 대한 갈증을 자신의 밑에 있던 궁녀 소쌍와의 동성애를 통해서 해갈했다. 사랑의 결핍에 괴로워했던 봉 씨에게 소쌍은 단순히 육체적 동성애 상대가 아닌 정신적 사랑의 상대로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 둘 간의 은밀한 관계가 궁중 내에서 소문이 나게 되었고 세종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이에 세종은 격노하여 세자빈 봉 씨를 폐위시켜 궁궐로 쫓아내버리고 말았다.

 

 

  

 

 완전한 '여자'가 되지 못한 '궁의 여자'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험 매슬로우(Abraham H. Maslow)는 인간에게는 다섯 가지의 목표 또는 기본적인 욕구를 지니고 있다는 '욕구계층론(욕구단계설)'을 주장했다. 매슬로우가 규정하고 있는 '다섯 가지의 욕구'는 다음과 같다. 생리적 욕구(physiolosgical need), 안전에 대한 욕구(safety need), 사랑 또는 소속에 대한 욕구(belongingness or love need), 존경에 대한 욕구(esteem need) 그리고 자아실현(need for self actualization)이라는 최종적인 욕구가 그것이다.

매슬로우의 욕구계층론에 따르면, 개인은 하위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면 다음 단계의 욕구를 추구한다고 보고 있다. 이 이론은 인간은 경제적인 존재인 동시에 사회적인 존재임을 밝혔다는 데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만약에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이 다섯 가지의 욕구 중 단 한 개도 발현되지 않는다는거나 혹은 충족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자신이 진정 추구하고자하는 삶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리라. 그래서 욕구는 삶의 목표를 위한 행동의 동기 유발 요인이 되는 동시에 인간의 복잡한 성격을 보다 입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일종의 스펙트럼(spectrum)이기도 하다.

 

신명호 교수의『궁녀: 궁궐에 핀 비밀의 꽃』을 통해서 소개한 궁녀들의 삶을 매슬로우의 이론에 도입해본다면 궁녀는 우리보다 더 욕구에 대한 본능이 강했고, 그것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생리적 환경을 보장받는다거나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 자진해서 궁녀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궁녀 경력이 쌓이게 되면 궁궐 내에서 돌아가는 권력의 흐름을 파악하게 된다. 자신이 섬기고 있는 권력 있는 왕족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하며 그것을 잘 이용해 후궁이라는 최상의 궁극적 지위를 꿈꾸게 된다.

 

하지만 궁녀들에게 단 한 가지 욕구가 없었다. 아니, 궁녀가 된 이상 절대로 가져서는 안 될 욕구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또한 '여성'의 삶의 일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지극히 여성이라면 가지게 되는 본능적인 욕구이기도 하다. 그것이 바로 '사랑에 대한 욕구'이다. 궁녀들 또한 천상 여자이기에 이성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궁녀의 삶을 살아가게 된 이상 '사랑'과 '결혼'은 금지 행위다. 그리고 성적 욕구를 누릴 수 있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마저 스스로 포기해야만 했다. 이러한 수준이라면 궁녀들은 여성으로서의 지위를 거의 상실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 이제 궁녀를 왕을 위한 성 노리개라고 말할 수 있는가?  궁녀는 '궁녀'이기 전에 연약한 여자였다. 비록 평생을 눈 감고, 귀 막고, 입 다물고 살아야 하는 게 궁녀들의 삶이었지만 그들에게도 우리처럼 다양한 욕망을 품었으며 그것을 실현시키고자 했던 인생도 있었다. 마찬가지 그들도 인간이었고 여자였던 것이다. 어쩌면 남성 중심의 조선 사회에서 가장 억압받았고 불행한 여성은 바로 궁녀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녀들의 삶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비밀에 가려져 있기에 역사적 고증이 불가능할뿐더러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마저 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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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석 전 의원은 '여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줘야 한다'는 말 한 마디 때문에 곤혹을 치르게 되었고,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춘향전은 변 사또는 춘향이 따먹으려는 이야기'라고 해서 한 때 네티즌들은 그를 '따문수'라고 비아냥거렸다.  이 두 정치인의 발언은 그 해 네티즌들이 선정한 정치인 최고의 망언이 되었다.

 

좀 이른 감 있지만 아무래도 올해 2012년 정치인의 최고 망언으로는 이석기 의원의 '애국가 부정 발언'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도 네이버 검색어순위에 당당히 상위권에 자신의 이름 석자가 남아 있다. 그리고 이번 발언을 통해서 이석기 의원은 또 다시 말도 안 되는 궤변을 주장했다. 이 의원이 주장하고 있는 '국가(國歌)' 부정 발언 속에는 그동안 자신과 김재연 의원 그리고 통진당 구당권파를 향한 여당 및 국민들의 '종북주의'  비난 논란을 어떻게든 잠재워보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일부 여론은 이 의원의 발언 의도를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통진당 내 행사절차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는데 여기서 이 의원이 말하고 있는 '국가(國歌) 부정론'은 흡사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들이 주장하는 논리와 흡사해보인다. 말 그대로 무정부주의자들은 국가(國家)의 존재 및 정당성, 국가 권력, 제도화된 사회적 권위 자체를 부정하는 급진적인 사상을 주장했다. 

 

 

 

 

 

 

 

 

 

 

 

 

 

 

 

 

 

 

이들은 국가 및 사유재산의 존재는 개인을 억압하고 착취했다고 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무정부주의자들의 사상은 좌파 성향의 사회주의 사상과 언뜻 비슷해보일 수도 있지만 엄연히 내용면에서 따져 보면 이 두 급진적 사상은 서로 차이점이 있다. 아니. 오히려 무정부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사상을 비판하기도 했다. 국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계획 경제를 강조하는 사회주의자들의 사상 또한 국가 만들어내는 권위에 불과하며 이러한 제도 역시 개인을 억압할 수 있다고 봤다. 사상적 일례로 무정부주의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미하일 바쿠닌은 그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마르크스의 사상을 비판하면서 무정부주의적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그렇다면 과거에 NL계의 주체사상에 심취했던 이 의원이 갑자기 아나키스트로 사상 전향을 한 것일까?  그의 전력을 봐서는 사상 전향은 참으로 생뚱맞은 일이다. 이번에 논란의 이슈가 된 이 의원의 발언 배경에는 자신을 향한 '종북주의' 논란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서 잠시나마 19세기 유럽에 유행했던 아나키스트의 논리를 방패삼아 여론을 가라앉혀보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

 

하지만 이번에 아나키즘적 논리를 동원한 이 의원의 발언은 논리성 없는 궤변이 되고 말았다. 일단 먼저 무정부주의, 즉 아나키즘은 19세기 근대 유럽에서 유행했던 '현 시대의 흐름과는 전혀 맞지 않은 구시대적 사상이다.  현실성 전혀 없는 이데올로기의 허상에 사로잡힌 사람답게 이번에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는 조금 다르면서도 급진적인 아나키즘에서 나올 법한 논리를 근거로 들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진심으로 '아나키스트''로 사상 전향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그는 지금 당장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46조에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국가 정당성을 부정하는 '아나키스트' 이 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는 직무'를 행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국가'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데 굳이 그가 국가이익을 위해서 수고스럽게 일할 필요가 없다.

 

결국, 오늘 이 의원, 아니 아나키스트 이석기의 '국가 부정' 발언은 본인을 향한 비난 여론을 더욱 점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구시대적 사상을 들먹이면서 본인의 의원직 자체를 스스로 부정해버리는 결과를 입증해줬다.

 

북한 정부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부정하지 않은 채 회피하고 언제나 자신의 입장이 불리하게 처하면 '종미(從美)'를 언급하여 반박하는 그의 행보를 살펴보면 문제투성인데다가 관념적 허상에 불과한 주체사상에 대한 집착의 잔상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구시대적인 사상이나 다름없는 아나키즘과 유사한 논리를 근거삼아 해괴망측한 국가관을 만천하에 드러내 공개적으로 망신살 뻗쳤다. 내가 보기에는 이석기 의원은 한참 유행이 지나간 구시대적 이데올로기를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좋아해보인다. 그의 모습은 흡사 실생활에서 전혀 필요 없는 값어치 없는 옛날 유물 수집에 집착하는 유물수집광처럼 느껴진다. 차라리 이번 발언을 기회 삼아 '이석기'라는 이름 대신에 '구석기'(舊石器)라고 개명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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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내분 사태부터 시작한 진보 분열의 문제가 지금은 종북 논쟁으로 논란이 점화되어가고 있다. 요즘 아침 일찍 등교하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보수, 진보 진영 가리지 않고 조중동과 한겨레, 경향신문 어플로 신문에 실리는 소식들을 접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제일 먼저 관심 있게 보는 기사가 바로 통진당 내분 사태 관련 내용들이다.

 

그리고 몇 주 전부터 페이스북도 시작하게 되었는데 통진당 사태가 큰 사회적 이슈인지라 페이스북에서도 통진당 사태에 대해서 각자의 입장을 밝힌 글들을 볼 수 있었다. 학교 수업을 통해서 인연을 맺게 된 모 박사님과 페이스북 친구를 맺게 되었는데 그 분 또한 통진당 사태에 쭉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지 통진당 사태 관련 신문기사를 페이스북에 링크를 올리곤 한다. 그리고 진보 진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뿐만 아니라 NL계를 비롯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종북주의자들에 대한 경계와 근절에 대해서 소신있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 분 덕분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진보 내 종북주의자들의 존재에 대해서 알 수 있었고, PD계와 NL계의 실체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모 박사님이 올리신 통진당 사태 관련 글이 있으면 항상 댓글을 남긴다. 방금 전에도 모 박사님의 페이스북 링크에 댓글을 달았는데 북한 인권, 3대 세습 체제 그리고 북침과 남침에 대한 질문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종북주의자들의 태도에 비판하는 입장을 취한 글이었다.

 

나는 박사님의 글에 동의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달았는데... 아뿔싸..!  댓글에 용어를 잘못 쓰는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내가 페이스북에 남겼던 문제의 댓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북한 인권, 북침 문제를 회피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이념에 사로잡힌 전형적인 이데올로그입니다. 특히나 북침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자, 이 문장에서 내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알 수 있겠는가.

 

나는 종북주의자를 비판하는 입장을 담은 내용의 댓글을 남겼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북침'이라는 용어를 쓰고 말았다. 그렇다. '북침'은 남한이 북한을 침략한다는 의미의 단어이다. 종북주의자를 비판하는 태도의 입장이라면 '북침'이 아니라 '남침'으로 써야한다. '남침'은 '북침'과 반대로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실수'라기보다는 내가 용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행히도 이 댓글을 단 지 5분 뒤에 모 박사님께서 답글로 나의 댓글 내용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확인한 후, 잘못 쓴 내용의 댓굴을 삭제하지 않았다. 나의 실수를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실수를 인정하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 제가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잘못 쓰고 말았네요. 실수를 통해서 단어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 배웁니다. "



오늘 실수를 통해서 문득 느낀게 과연 나 같은 젊은 세대들이 '남침'과 '북침'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으며 두 단어를 제대로 구분하고 있는지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염려된다.

 

어느 설문조사에 의하면 전국 초, 중고생의 50% 절반이 6.25 전쟁이 발발하는 연도를 정확하게 모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6.25 전쟁은 1950년에 발발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어떤 이는 6.25 전쟁이 북한의 침략이라는 사실을 모를뿐더러 심지어 남한이 먼저 북한을 침략한 걸로 알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6.25 전쟁은 소련의 스탈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북한의 침략이며 이는 국제법상으로 불법적인 '남침'인 것이다.

오늘 실수를 통해서 용어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제대로 배우게 되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사실을 모르고 있다거나 나처럼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잘못된 오류의 역사를 알고 있어서는 안 된다. 특히 요즘 같이 국가의 정체성을 왜곡하고 이념에 사로잡힌 채 사회을 호도하는 자들이 판치는 세상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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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ogue du vent et de la mer" from La Mer by Claude Debussy
NBC Symphony Orchestra
Arturo Toscanini, conductor
New York 13.IV.1940

 

 

 

 

 

 

 

 

 

 

 

 

 

 

 

 

 

 

 

 

 

 

 

 

 

문득 궁금중이 생겼다. 간혹 책, 그러니깐 시집을 읽다가 별 내용도 아닌 시구를 보는 순간, 이것과 연상되는 음악의 멜로디가 특정 그림의 이미작가 떠오르는 적이 있으신지..?

 

종종 시집을 읽다보면 정말 멋지고 인상 깊은 시구를 접하게 되는 것도 독서의 소소한 기쁜 일이지만 단 몇 줄의 구절 덕분에 잠시 세월의 망각 속에 잊혀지고 있었던 음악의 멜로디나 그림이 떠오른다면 그 기쁨은 더욱 배가 될 것이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마르셀이 아무 생각 없이 마들렌을 맛 보는 순간 감미로운 행복감에 엄습되는 것처럼 말이다.

 

분명 현재 읽고 있는 시의 문장과 갑작스레 떠올린 과거에 대한 기억의 존재들(좋아했던 음악이나 그림들)과는 연관성이 없어도 시집이라는 매게체를 통해서 또 하나의 익숙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추억을 재회하게 된다. 정말 보고 싶은 친구가 있었는데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게 되면 너무나도 반가우면서도 그를 떠나보내기가 싫을 때가 있다. 추억 속의 재회도 마찬가지다. 우연하게 찾아온 추억이라는 정겨운 손님을 그냥 쉽게 떠나보낸다는 것은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다.  

 

 

 

 

 

 

 

 

 

 

 

 

 

 

 

 

 

 

 

 

 

 

 

 

 귀스타브 쿠르베 「파도」1869년

 

 

 

 1


 바다가 감당할 길 없는 불길이라는 걸

 예전엔 물랐었다.

 열광의 도가니요

 광기의 샘이라는 걸 -

 

 

 아마 수평선 때문일 것이다

 그 불타는 무한

 불타는 그 한숨 때문일 것이다

 

 

 저 한없이 열린 공간을

 감당할 생물은 없다

 거대한 용광로의 열기에

 나도 막막히 달아오를 뿐.

 

 

 

 - 정현종 「바다의 열병(熱病)」중에서 -

 

 

 

 

정현종의 「바다의 열병(熱病)」은 총 2부로 구성된 짧은 시다. 특히 이 시의 1부에 해당하는 문장들을 보는 순간, '바다'의 푸른 이미지가 아니라 '바다'가 만들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딱 시의 문장들을 보는 순간, 클로드 드뷔시의 [바다]의 멜로디가 생각났다. 신기하게도 멜로디는 정확하게 무엇인지 기억은 안 났지만 문장 속 단어들을 보는 순간, 그냥 드뷔시의 음악이 생각났다.  '감당할 길 없는 불길' , '열광의 도가니', '열광의 샘' , '불타는 무한' . 

 

정말 오랜만에 드뷔시의 [바다]를 인터넷에 검색해서 들어보게 되었는데 3악장인 '바람과 바다의 대화'와 절묘하게 어울렸다. 선율의 도입부에서부터 불길함이 감도는 팀파니의 트레몰로는 이제 막 바다 위에 몰려오는 거대한 바람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바람에 의해 파도가 크게 출렁이듯이 음악은 후반부에 진행될수록 점점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빠지게 된다. 아니, 드뷔시의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이 멜로디가 '열광'이라기보다는 '불길함이 감도는 자연의 광기'에 가까우리라.

 

드뷔시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근대 음악가 중의 한 사람이다. 치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이 대상에 비쳐졌을 때의 순간적인 인상을 화면에 포착한 것처럼 대상을 보고 느낀 인상을 음표로 옮겼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듣는 순간 자연스레 이미지가 연상돼 감상자들을 음악과 미술의 이중적 유희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인간의 감성은 서로 상반된 이미지의 대상을 통해서 공감각적으로 연계한다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 당시 정형적이면서도 조화로운 선율의 입맛에 길들인 사람들에게는 드뷔시의 음악은  낯설게 느껴지는 '소음'에 가까웠을 것이다. 아니, 그가 만들어 낸 '소음'이 단순히 귀로만 듣어서는 안 되며 음감의 공간을 뛰어넘어 또 다른 이미지가 연상되는 시각적 공간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저 '음악'만 듣고 자란 사람들은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멜로디를 '음악' 그 자체로 들으려고만 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바다에 많이 가보지도 못한 편이다. 비록 많은 횟수는 아니지만 두 세 번 직접 본 '바다'에 대한 이미지는 지금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누군가는 바다 한 두 번 가는 걸 가지고 '바다'가 떠올리고 느낄 수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몰라서 그렇지 인간이 한 번 경험에 의해서 형성하게 된 기억은 오랫도안 지속될수록 강력하다. 망각의 어둠 속에 남아 있던 기억의 잔상들을 우연찮게 떠올리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남자는 실패한 첫사랑을 잊지 못하며 여자는 자신에게 실연의 상처를 안겨 준 못난 사랑을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하고 있는 것 또한 경험에 의한 기억이 우리의 삶에 작용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서 [바다]에 대한 숨겨진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정작 드뷔시는 바다에 가본 적이 딱 한 번뿐이라는 점이다. 그의 유일한 경험은 영국에 갈 때 도버해협을 건넌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그 짧은 경험에 의한 기억만 가지고 3악장으로 이루어진 위대한 음악이 탄생되었던 것이다.

 

오늘 덕분에 정현종 시인의 시 구절 덕분에 내가 좋아했던 드뷔시의 음악을 오랜만에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른한 매너리즘이 감도는 주말에 드뷔시의 푸른 열기에 달아오를 수 있다. '광기의 불꽃'이 아닌 '정열의 불꽃' 속에서 10년 전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열정을 기억의 숯더미 속에서 찾게 되었다.

 

이런 멋진 시를 만들어주신 정현종 시인님. 정말 고맙습니다.

 

 

... 그리고 이번 경험을 통해서 얻은 또 하나의 결론. 나는 '인상주의자'에 가깝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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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8 17: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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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8 21: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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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산업혁명 - 수평적 권력은 에너지, 경제, 그리고 세계를 어떻게 바꾸는가
제러미 리프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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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는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았다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대제국이었던 로마 제국의 멸망 원인은 지금도 풀리지 않는 서양사의 수수께끼 중의 하나다. 내부의 부패, 국가기구 비대화, 납 중독 등 수많은 가설을 놓고 역사가들은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외에도 로마 멸망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들이 많은데 일부 역사학자들은 자연환경적 문제 측면에서 로마 멸망의 원인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로마 제국이 번영했을 당시만해도 국토에는 삼림이 무성했다. 풍족한 자연자원이 산재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은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워 점차적으로 영토를 확장한 이후에는 오랫동안 평화로운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번영기를 누리게 되었다. 당시 로마 제국이 움직일 수 있었던 경제력의 가장 크나큰 원천은 농업에서 비롯되었다. 전쟁으로 획득한 넓은 토지들은 농지로 식민지화함으로써 정부 수입의 90% 이상을 조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력을 형성하게 만드는 로마의 경제구조는 로마의 쇠퇴를 재촉하게 만드는 지름길이 되고 말았다. 국유화된 토지들은 어느새 로마 귀족들이 잠식하게 되면서 그들이 경영하는 대농장(라티푼디움, Latifundium)이 로마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삼림으로 가득찼던 토지는 점점 황폐화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최악의 자연환경 상태가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농업 생산권을 쥐고 있는 로마의 귀족들의 탐욕은 끝이 없었다. 토질이 악화된 상태라도 농사 지을 땅이 있다면 어디든지 간에 자신의 농장을 만들었다. 로마 제국이 전쟁을 통해서 영토를 확장하는 것처럼 귀족들은 자신이 소유한 농장들의 크기를 점점 넓혀만 갔다.  

 

무분별한 라티푼디움의 증대는 안 그래도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토지를 더욱 악화되게 만드는 문제점을 낳게 되었다. 그리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풍족한 토지가 줄어들게 되자 농업에 종사하던 농민층들은 농경지를 버리고 도시로 향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농업에서 비중 있게 수입을 조달받았던 로마 제국의 경제력은 하락세로 돌아서게 되었다. 하루 아침에 왕관의 주인이 바꿔 있을 정도로 치열한 권력다툼의 소용돌이로 인해 중앙통제력은 약화되었고, 내부적인 혼란에 틈 타 외부의 침략자들은 호시탐탐 로마를 노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번영을 누릴 것만 같았던 로마 제국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 내용 그대로 멸망에 이르고 말았다. 『돈 키호테』를 쓴 스페인의 소설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로마 제국의 황금기를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하지만 대제국답게 멸망하는 과정 역시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았다. 로마 제국은 지속 가능한 자연 환경을 개발하는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간과한 채 그렇게 자멸하고 말았다.

 

 

 

 

 석유 시대의 종말도 멀지 않았다

 

 

다음과 같이 소개한 로마 제국의 멸망 과정설은 제러미 리프킨의 『3차 산업혁명』에 소개되어 있다. 로마 제국의 멸망이 우리 현대인에게 시사해주고 있는 중대한 교훈은 전해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지속 가능한 삶을 전망하지 못한 채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자원개발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로마 제국의 멸망 사례를 보면서 혹 눈치를 채셨는지...?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로마 제국은 경제 생산 의존도를 농업에만 치중한 탓에 멸망한 것인데 로마 이야기가 우리나라와는 무슨 상관 있느냐고.

 

그렇다면 로마 제국을 '우리나라'로, 국가 경제력 발전에 주요 기반이 되었던 농경지로 사용된 토지를 '석유'라고 바꿔서 생각해보자. 이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딱 답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자원 의존도, 즉 '석유' 의존도가 높은 국가다. 이 '석유'가 우리나라 경제가 작동하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중요한 자원이다. 만약에 이 지구상에 남아 있는 석유가 고갈된다면 우리나라의 앞날은 안 봐도 뻔한 일이다.

 

요즘 국제 관련 신문기사를 보게 된다면 아시겠지만 '그리스 사태와 유로존' 다음으로 비중 있게 다루는 소식이 바로 '이란 제제'에 대한 것이다. 이란 핵무기 개발 의혹에 대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들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장기화하고 국방수권법 제제가 더욱 강화될 경우 이란의 석유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와 일본은 경제적인 타격을 입을 우려가 있다. 이란사태가 악화될 경우 전세계 원유공급 차질에 따른 유가급등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유가 상승은 무역수지를 악화시키고 물가를 올리면서 성장률을 떨어뜨린다. 1979년, 이란의 석유수출 전면중단에 의해서 발생하게 된 제2차 오일 쇼크와 같은 일이 또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중동 4개국 국빈방문 중 두 번째로 순방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알 나이미(Al Naimi) 석유광물부 장관과 접견한 이 대통령. 이 접견을 통해서 우리나라 정부는 사우디 정부로부터 안정적인 원유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2012.2.7, 사진출처: 뉴시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불확실한 국제 정서의 변화에 대한 정부의 대응책이다.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대응책은 매우 한정되어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이란산 원유도입 감축이 최소화되도록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고 대체물량 확보, 비축유 활용 등의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자원외교'를 펼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올해 2월에 이루어진 이 대통령의 터키와 중동3개국 국빈방문은 '원유·오일 달러 확보'를 목표에 중점을 둔 중요한 외교활동이었다. 이 대통령의 자원외교는 미국의 이란 제제에 따른 비상시 원유수급선 다변화라는 소기의 목표를 일정 정도 달성했다는 성과가 있었지만 문제는 현 정부가 대대적으로 국제적인 성과로서 홍보하고 있는 이 자원외교는 단지 현실적인 국제 정세의 변화에 대한 대안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제러미 리프킨은 여전히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으며 불확실한 리스크들이 기다리고 있는 현 시대의 진행과정에 대해서 다양한 사례와 근거 자료를 통해서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의 원유 생산국인 미국의 자원 개발에 대해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리프킨의 설명에 따르면, 1차 산업혁명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다시피 영국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증기기관에서 출발한다. 증기기관 기술은 또 다른 기술의 업종들의 발전에도 상쇄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증기기관 기술을 이용한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책과 잡지 등이 빠르게 전파되었고, 이는 글을 아는 '노동인구'를 탄생시켰고, 이들은 한층 복잡해진 문명을 운영하고 체계화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2차 산업혁명의 근원은 석유와 전기다. 공장에 전기가 들어가고, 석유로 굴러가는 자동차가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그리고 상업광고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상징'이며 지금까지도 국제 경제는 석유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문제는 석유는 유한한 자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석유가 고갈된다면 지구상의 모든 국가 생존에 있어서 위험의 직면에 마주서게 된다. 그리고 석유에 채굴하는 데 드는 비용만 해도 경제적 효율성으로 따져 본다면 비효율적이다. 거기에다가 2010년에 발생했던 멕시코 만 원유 유출 사고처럼 환경오염 사고가 발생한다면 국가적으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화려한 자본주의의 황금기와 함께 했던 석유 시대의 종말도 이제 멀지 않은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부터 채굴 가능할 수 있는 석유량이 한정될 것이라는 주장이 이미 제기되어 왔었지만 '석유'를 통해 국가 경제가 운용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고 있던 서방국들은 애초에 이들을 '회의론자'라고 하여 무시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들이 속속 들어 밝혀지게 되고, 서방국의 이란 체제 이후 불확실성의 경제적 리스크(Risk)가 일어날 수 있는 국제 경제에 또 다시 불길한 기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3차 산업혁명의 청사진

 

 

이러한 불확실한 시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 리프킨은 '3차 산업혁명'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인터넷'과 '재생 에너지'. 이 두 가지 요소가 만나 결합해 '3차 산업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제안하고 있는 3차 산업혁명의 다섯 가지 핵심 요소를 간단하게 축약해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환

 2) 재생 가능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미니 발전소가 있는 건물 증축

 3) 수소 저장 기술 및 보존, 보급

 4) 인터넷과 동일한 원리로 작동하는 에너지 공유 인터그리드(Inter-gtid)

 5) 교통수단을 전기를 이용한 연료전지 차량으로 교체

 

 (p. 59)

 

 

네 번째로 소개한 '인터넷과 동일한 원리로 작동하는 에너지 공유 인터그리드(Inter-gtid)'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창출해 서로 공유하는 것처럼 재생활용할 수 있는 미래의 자원 역시 공유하여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3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수 백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집, 사무실, 공장에서 재생 에너지를 생산하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듯이 `에너지 인터넷'을 통해 녹색 전기를 나눠 사용할 수 있으며 수 천 만개의 새로운 직업을 창출하고 지속가능한 지구촌 경제를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3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재생 에너지 체계'에 주목했다. 건물들이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그 에너지의 일부는 수소로 저장하는 한편 생산된 에너지는 녹색 전기 인터넷을 통해 배분되고 플러그인 자동차에 사용돼 0%의 탄소를 배출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전망은 '분산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형태의 시대로 변모할 것이라고 이어지고 있다. 전통적이고 중앙 집중형 수직적인 경제 및 정치조직에서 탈피하여 수평적으로 조직된 '협업'이 핵싱이 되어 인류는 보다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지속 가능한 미래의 시대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러미 리프킨의『3차 산업혁명』은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을 선언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 정부, 시민사회를 위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기의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류들에게는 희망적인 메시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미래 예측을 보다 설득력 있게 구색을 갖추기 위해서 산업혁명의 변천과정을 굳이 '패러다임의 변화에 의한 인과 관계'라는 틀에 맞춰서 설명한 점은 '3차 산업혁명'이라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진부하게 느껴지도록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기업, 정부, 시민사회와 함께 서로 공동으로 '협업'함으로써 수평적 조직관계에서 이루어진 3차 산업혁명으로 변화할 것을 주장한 그가 EU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정상들에게 자신의 아이다어를 공유하고 제안한다는 것은 그의 생각 속에는 여전히 수직적 조직관계의 영향력에 의한 기성 세세대의 관성이 남아 있는 듯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저자의 모순적인 논리의 문제라기보다는 특정 시대에 유지해오던 특정 기성 세대의 패러다임을 탈피하여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으로 보고 싶다. 이전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한 사람의 천재가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한다고 해서 단번에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변화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각인되어 있지 않은 이상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과정 중에서는 신구 세대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진통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그가 소개한 사례들에 대해서도 꼼꼼한 지적을 덧붙이자면 리프킨은 '분산 자본주의'를 설명하기 위한 사례 중 하나로 무담보 소액대출로 세계적으로 큰 이목을 집중받은 적이 있었던 그라민 은행 소개하고 있는데 사실 작년부터 그라민 은행의 한계점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서민들을 위해 소액을 저리무담보로 대출해 준다는 그라민 은행의 발상은 분명 좋은 취지인 것은 분명하나 신용이 낮을수록 금리가 높아진다는 금융의 현실적인 본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라민 은행 설립에 대한 세계적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던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는 은행의 대출지원금 오용 문제를 이유로 불명예 퇴진에 이르게 되었다.  리프킨의 신작이 그라민 은행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던 작년에 출판된 것을 감안한다면 저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할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현재 몽유병에 걸린 듯하다.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 시대가 점점 시들어져가고 지구는 잠재적으로 세상을 뒤엎을 기후변화에 직면해 있다는 증거가 쌓이고 있는데도 인류는 대체적으로 현실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중독을 달래기 위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화석자원을 찾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다. 실제로 최종 단계에 들어섰다면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에 대한 상상을 뛰어넘는 불편한 제안을 피하려고 애쓰면서 말이다.

 

(p. 46)

 

 

이 책에서 리프킨은 친환경적인 자원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채 여전히 석유의 힘에 의존하고 있는 미국 정부를 겨낭해서 비판하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미국 정부의 근시안적인 태도가 그저 남일 같지 않게 느껴진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의존했으며 미국식 문화를 자연스럽게 이식받은 '자원 의존도' 우리나라도 리프킨이 이 책에서 전달하고 있는 경고와 거시적인 대안을 설명하고 있는 메시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아이디어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변화의 단초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미국을 끔찍이도 싫어할 정도로 '반미주의자'로 잘 알려진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자신의 애독서 목록에 제러미 리프킨의 책 한 권을 꼭 포함시킬 정도로 재생 가능한 미래의 에너지를 창출하기 위한 변화의 흐름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거의 석유 산업에서 의존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이 쓴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보수, 진보를 떠나서 정책결정자, 즉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국가의 통치자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구체적인 플랜을 구상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실천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 세상은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데, 우리나라는 지금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기도 하다. 올해 치르게 될 대선을 통해서 우리 손으로 뽑게 될 차기 정책결정자가 세상의 변화를 제대로 인식할 줄 알고, 미래를 준비하는 거시적인 안목을 지닌 사람이기를 원하는 것은 내 개인적인 욕심에 불과한 것일까?  차기 정책결정자가 되려고 하는 대선 후보자라면 애독서 목록에 제러미 리프킨의 책 한 권 정도쯤은 포함되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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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2-05-26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모든 것을 떠나 이렇게 분석하고 예측하는 사람들은 신기합니다. 막연히 이럴 것 같아..가 전부인 저는 그저 부러울 뿐이죠...

재생에너지에 관해서는 리프킨의 예측이 맞으면 좋겠습니다. 석유는 이제 끝을 보이고 있는 게 맞으니까요. 그 결말이 전쟁이 아닌 재생 에너지였으면 정말 좋겠어요.

cyrus 2012-05-27 17:5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꼬마요정님 ^^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저자의 주장이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생각들이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했어요. 좋은 미래를 위해서라면
실현되면 좋겠지만요 ^^;;

노이에자이트 2012-05-27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프킨이 염려하는 것이 화석에너지 과다사용,쇠고기를 얻기 위해 수많은 숲을 목초지로 바꾸는 것이죠.그래서 채식전도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cyrus 2012-05-27 17:5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이 책에서도 내용 중간에 <수소 혁명> 때 주장해 온
수소 에너지 사용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나와썽요, 참고로 글 마지마겡
우고 차베스가 읽었다던 리프킨의 책이 <수소 혁명>입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2-05-27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석유의존도를 줄이자고 우리 정부가 자동차 소유 허가제를 추진한다면 아마 엄청나게 욕을 얻어먹을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