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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산업혁명 - 수평적 권력은 에너지, 경제, 그리고 세계를 어떻게 바꾸는가
제러미 리프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평점 :
로마는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았다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대제국이었던 로마 제국의 멸망 원인은 지금도 풀리지 않는 서양사의 수수께끼 중의 하나다. 내부의 부패, 국가기구 비대화, 납 중독 등 수많은 가설을 놓고 역사가들은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외에도 로마 멸망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들이 많은데 일부 역사학자들은 자연환경적 문제 측면에서 로마 멸망의 원인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로마 제국이 번영했을 당시만해도 국토에는 삼림이 무성했다. 풍족한 자연자원이 산재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은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워 점차적으로 영토를 확장한 이후에는 오랫동안 평화로운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번영기를 누리게 되었다. 당시 로마 제국이 움직일 수 있었던 경제력의 가장 크나큰 원천은 농업에서 비롯되었다. 전쟁으로 획득한 넓은 토지들은 농지로 식민지화함으로써 정부 수입의 90% 이상을 조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력을 형성하게 만드는 로마의 경제구조는 로마의 쇠퇴를 재촉하게 만드는 지름길이 되고 말았다. 국유화된 토지들은 어느새 로마 귀족들이 잠식하게 되면서 그들이 경영하는 대농장(라티푼디움, Latifundium)이 로마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삼림으로 가득찼던 토지는 점점 황폐화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최악의 자연환경 상태가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농업 생산권을 쥐고 있는 로마의 귀족들의 탐욕은 끝이 없었다. 토질이 악화된 상태라도 농사 지을 땅이 있다면 어디든지 간에 자신의 농장을 만들었다. 로마 제국이 전쟁을 통해서 영토를 확장하는 것처럼 귀족들은 자신이 소유한 농장들의 크기를 점점 넓혀만 갔다.
무분별한 라티푼디움의 증대는 안 그래도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토지를 더욱 악화되게 만드는 문제점을 낳게 되었다. 그리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풍족한 토지가 줄어들게 되자 농업에 종사하던 농민층들은 농경지를 버리고 도시로 향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농업에서 비중 있게 수입을 조달받았던 로마 제국의 경제력은 하락세로 돌아서게 되었다. 하루 아침에 왕관의 주인이 바꿔 있을 정도로 치열한 권력다툼의 소용돌이로 인해 중앙통제력은 약화되었고, 내부적인 혼란에 틈 타 외부의 침략자들은 호시탐탐 로마를 노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번영을 누릴 것만 같았던 로마 제국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 내용 그대로 멸망에 이르고 말았다. 『돈 키호테』를 쓴 스페인의 소설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로마 제국의 황금기를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하지만 대제국답게 멸망하는 과정 역시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았다. 로마 제국은 지속 가능한 자연 환경을 개발하는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간과한 채 그렇게 자멸하고 말았다.
석유 시대의 종말도 멀지 않았다
다음과 같이 소개한 로마 제국의 멸망 과정설은 제러미 리프킨의 『3차 산업혁명』에 소개되어 있다. 로마 제국의 멸망이 우리 현대인에게 시사해주고 있는 중대한 교훈은 전해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지속 가능한 삶을 전망하지 못한 채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자원개발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로마 제국의 멸망 사례를 보면서 혹 눈치를 채셨는지...?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로마 제국은 경제 생산 의존도를 농업에만 치중한 탓에 멸망한 것인데 로마 이야기가 우리나라와는 무슨 상관 있느냐고.
그렇다면 로마 제국을 '우리나라'로, 국가 경제력 발전에 주요 기반이 되었던 농경지로 사용된 토지를 '석유'라고 바꿔서 생각해보자. 이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딱 답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자원 의존도, 즉 '석유' 의존도가 높은 국가다. 이 '석유'가 우리나라 경제가 작동하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중요한 자원이다. 만약에 이 지구상에 남아 있는 석유가 고갈된다면 우리나라의 앞날은 안 봐도 뻔한 일이다.
요즘 국제 관련 신문기사를 보게 된다면 아시겠지만 '그리스 사태와 유로존' 다음으로 비중 있게 다루는 소식이 바로 '이란 제제'에 대한 것이다. 이란 핵무기 개발 의혹에 대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들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장기화하고 국방수권법 제제가 더욱 강화될 경우 이란의 석유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와 일본은 경제적인 타격을 입을 우려가 있다. 이란사태가 악화될 경우 전세계 원유공급 차질에 따른 유가급등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유가 상승은 무역수지를 악화시키고 물가를 올리면서 성장률을 떨어뜨린다. 1979년, 이란의 석유수출 전면중단에 의해서 발생하게 된 제2차 오일 쇼크와 같은 일이 또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중동 4개국 국빈방문 중 두 번째로 순방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알 나이미(Al Naimi) 석유광물부 장관과 접견한 이 대통령. 이 접견을 통해서 우리나라 정부는 사우디 정부로부터 안정적인 원유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2012.2.7, 사진출처: 뉴시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불확실한 국제 정서의 변화에 대한 정부의 대응책이다.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대응책은 매우 한정되어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이란산 원유도입 감축이 최소화되도록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고 대체물량 확보, 비축유 활용 등의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자원외교'를 펼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올해 2월에 이루어진 이 대통령의 터키와 중동3개국 국빈방문은 '원유·오일 달러 확보'를 목표에 중점을 둔 중요한 외교활동이었다. 이 대통령의 자원외교는 미국의 이란 제제에 따른 비상시 원유수급선 다변화라는 소기의 목표를 일정 정도 달성했다는 성과가 있었지만 문제는 현 정부가 대대적으로 국제적인 성과로서 홍보하고 있는 이 자원외교는 단지 현실적인 국제 정세의 변화에 대한 대안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제러미 리프킨은 여전히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으며 불확실한 리스크들이 기다리고 있는 현 시대의 진행과정에 대해서 다양한 사례와 근거 자료를 통해서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의 원유 생산국인 미국의 자원 개발에 대해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리프킨의 설명에 따르면, 1차 산업혁명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다시피 영국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증기기관에서 출발한다. 증기기관 기술은 또 다른 기술의 업종들의 발전에도 상쇄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증기기관 기술을 이용한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책과 잡지 등이 빠르게 전파되었고, 이는 글을 아는 '노동인구'를 탄생시켰고, 이들은 한층 복잡해진 문명을 운영하고 체계화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2차 산업혁명의 근원은 석유와 전기다. 공장에 전기가 들어가고, 석유로 굴러가는 자동차가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그리고 상업광고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상징'이며 지금까지도 국제 경제는 석유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문제는 석유는 유한한 자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석유가 고갈된다면 지구상의 모든 국가 생존에 있어서 위험의 직면에 마주서게 된다. 그리고 석유에 채굴하는 데 드는 비용만 해도 경제적 효율성으로 따져 본다면 비효율적이다. 거기에다가 2010년에 발생했던 멕시코 만 원유 유출 사고처럼 환경오염 사고가 발생한다면 국가적으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화려한 자본주의의 황금기와 함께 했던 석유 시대의 종말도 이제 멀지 않은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부터 채굴 가능할 수 있는 석유량이 한정될 것이라는 주장이 이미 제기되어 왔었지만 '석유'를 통해 국가 경제가 운용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고 있던 서방국들은 애초에 이들을 '회의론자'라고 하여 무시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들이 속속 들어 밝혀지게 되고, 서방국의 이란 체제 이후 불확실성의 경제적 리스크(Risk)가 일어날 수 있는 국제 경제에 또 다시 불길한 기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3차 산업혁명의 청사진
이러한 불확실한 시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 리프킨은 '3차 산업혁명'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인터넷'과 '재생 에너지'. 이 두 가지 요소가 만나 결합해 '3차 산업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제안하고 있는 3차 산업혁명의 다섯 가지 핵심 요소를 간단하게 축약해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환
2) 재생 가능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미니 발전소가 있는 건물 증축
3) 수소 저장 기술 및 보존, 보급
4) 인터넷과 동일한 원리로 작동하는 에너지 공유 인터그리드(Inter-gtid)
5) 교통수단을 전기를 이용한 연료전지 차량으로 교체
(p. 59)
네 번째로 소개한 '인터넷과 동일한 원리로 작동하는 에너지 공유 인터그리드(Inter-gtid)'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창출해 서로 공유하는 것처럼 재생활용할 수 있는 미래의 자원 역시 공유하여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3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수 백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집, 사무실, 공장에서 재생 에너지를 생산하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듯이 `에너지 인터넷'을 통해 녹색 전기를 나눠 사용할 수 있으며 수 천 만개의 새로운 직업을 창출하고 지속가능한 지구촌 경제를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3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재생 에너지 체계'에 주목했다. 건물들이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그 에너지의 일부는 수소로 저장하는 한편 생산된 에너지는 녹색 전기 인터넷을 통해 배분되고 플러그인 자동차에 사용돼 0%의 탄소를 배출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전망은 '분산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형태의 시대로 변모할 것이라고 이어지고 있다. 전통적이고 중앙 집중형 수직적인 경제 및 정치조직에서 탈피하여 수평적으로 조직된 '협업'이 핵싱이 되어 인류는 보다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지속 가능한 미래의 시대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러미 리프킨의『3차 산업혁명』은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을 선언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 정부, 시민사회를 위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기의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류들에게는 희망적인 메시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미래 예측을 보다 설득력 있게 구색을 갖추기 위해서 산업혁명의 변천과정을 굳이 '패러다임의 변화에 의한 인과 관계'라는 틀에 맞춰서 설명한 점은 '3차 산업혁명'이라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진부하게 느껴지도록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기업, 정부, 시민사회와 함께 서로 공동으로 '협업'함으로써 수평적 조직관계에서 이루어진 3차 산업혁명으로 변화할 것을 주장한 그가 EU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정상들에게 자신의 아이다어를 공유하고 제안한다는 것은 그의 생각 속에는 여전히 수직적 조직관계의 영향력에 의한 기성 세세대의 관성이 남아 있는 듯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저자의 모순적인 논리의 문제라기보다는 특정 시대에 유지해오던 특정 기성 세대의 패러다임을 탈피하여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으로 보고 싶다. 이전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한 사람의 천재가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한다고 해서 단번에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변화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각인되어 있지 않은 이상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과정 중에서는 신구 세대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진통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그가 소개한 사례들에 대해서도 꼼꼼한 지적을 덧붙이자면 리프킨은 '분산 자본주의'를 설명하기 위한 사례 중 하나로 무담보 소액대출로 세계적으로 큰 이목을 집중받은 적이 있었던 그라민 은행을 소개하고 있는데 사실 작년부터 그라민 은행의 한계점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서민들을 위해 소액을 저리무담보로 대출해 준다는 그라민 은행의 발상은 분명 좋은 취지인 것은 분명하나 신용이 낮을수록 금리가 높아진다는 금융의 현실적인 본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라민 은행 설립에 대한 세계적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던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는 은행의 대출지원금 오용 문제를 이유로 불명예 퇴진에 이르게 되었다. 리프킨의 신작이 그라민 은행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던 작년에 출판된 것을 감안한다면 저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할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현재 몽유병에 걸린 듯하다.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 시대가 점점 시들어져가고 지구는 잠재적으로 세상을 뒤엎을 기후변화에 직면해 있다는 증거가 쌓이고 있는데도 인류는 대체적으로 현실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중독을 달래기 위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화석자원을 찾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다. 실제로 최종 단계에 들어섰다면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에 대한 상상을 뛰어넘는 불편한 제안을 피하려고 애쓰면서 말이다.
(p. 46)
이 책에서 리프킨은 친환경적인 자원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채 여전히 석유의 힘에 의존하고 있는 미국 정부를 겨낭해서 비판하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미국 정부의 근시안적인 태도가 그저 남일 같지 않게 느껴진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의존했으며 미국식 문화를 자연스럽게 이식받은 '자원 의존도' 우리나라도 리프킨이 이 책에서 전달하고 있는 경고와 거시적인 대안을 설명하고 있는 메시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아이디어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변화의 단초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미국을 끔찍이도 싫어할 정도로 '반미주의자'로 잘 알려진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자신의 애독서 목록에 제러미 리프킨의 책 한 권을 꼭 포함시킬 정도로 재생 가능한 미래의 에너지를 창출하기 위한 변화의 흐름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거의 석유 산업에서 의존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이 쓴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보수, 진보를 떠나서 정책결정자, 즉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국가의 통치자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구체적인 플랜을 구상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실천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 세상은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데, 우리나라는 지금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기도 하다. 올해 치르게 될 대선을 통해서 우리 손으로 뽑게 될 차기 정책결정자가 세상의 변화를 제대로 인식할 줄 알고, 미래를 준비하는 거시적인 안목을 지닌 사람이기를 원하는 것은 내 개인적인 욕심에 불과한 것일까? 차기 정책결정자가 되려고 하는 대선 후보자라면 애독서 목록에 제러미 리프킨의 책 한 권 정도쯤은 포함되어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