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아스 라인
기타 (DVD)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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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죽는 것은 없어. 언제나 무엇인가가 남는단다.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것이 탄생해. 인생은 그런거야.

이유없는 시작이지.

 

- <안토니아스 라인> 속 대사 한 구절 -

 

 

* 미리 밝혀두건대 안토니아스 라인이라는 영화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페미니즘 영화의 정전이다. 그래서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바라본 영화의 의미와 가치는 이미 충분히 논의되었기에 나는 여기서 다소 지엽적인 관점으로 영화 속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한다. (사실 이 유명한 영화를 보게 된 계기는 여성학이나 영화 관련 수업이 아닌 생뚱맞게 현대미술론수업 영상 자료로 보게 되었다. 그런데 현대미술 수업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하필 교수님이 외부 사정으로 수업 진행이 어렵게 돼서 임시방편으로 영화를 보게 된 것이다)

 

 

 

 ♣ 한 여자의 일생으로 보는 '삶/죽음/삶'

 

안토니아스 라인은 여인 5대로 이어지는 긴 가족사가 넓은 땅과 함께 펼쳐지는 영화이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딸 다니엘을 데리고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안토니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에는 안토니아와 다니엘 둘만 남는다. 굵은 허리에 두리두리한 몸매를 한 아줌마 안토니아는, 평생 성적 방종으로 고통을 준 남편을 원망하고 욕하며 숨을 거둔 어머니와 달리 결혼의 굴레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이웃집 농부 바즈의 구혼도 물리치고, 여러 이웃들과 어울려 씩씩하게 살아간다.

 

미술학교에 입학한 딸 다니엘이 결혼은 싫고 아이만을 원한다고 하자 적극적으로 상대를 찾는 것을 도와주어서 아이를 갖도록 한다. 태어난 손녀 테레사는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아이. 성폭행의 아픔을 겪고 방황하지만 결국 오래 곁에서 지켜준 마을 친구와의 사이에서 딸 사라를 낳는다. 그러니까 사라는 안토니아에게 증손녀, 이렇게 해서 여인 5대를 이루게 된다.

 

마을에서는 쉬지 않고 사람이 죽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며 끌어안는 안토니아는 '사는 게 인생이며, 인생은 살아야만 하는 것'이라고 증손녀 사라에게 이야기한다. '이 춤이 우리가 출 수 있는 유일한 춤'이라는 인생에 대한 깨달음이 자신의 마지막 날을 예감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삶/죽음/삶', 이 영화는 안토니아의 모계 가족이 함께 모여 화목하게 식사를 하는 모습과

주변 인물들이 한 사람씩 차례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교차하면서 보여주고 있다

 

 

나이가 많이 든 안토니아가 이제 죽음을 느끼며 준비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불러 모아 다가온 죽음을 알리고, 눈감은 채 죽을 준비를 한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죽음이다.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온 몸에 기계 장치를 달고 문 밖의 가족을 그리워하며 죽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추한 모습 보이지 않고 조용히 숨을 거두는 것, 모두가 꿈꾸는 마지막 모습이다.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야 하는 인간의 운명, 그러나 끝나지 않는 인생. 영화 중반부에 점점 가족의 수가 늘어나 화목한 분위기의 가족 식사 장면이 많이 차지한다면 영화 결말부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죽음의 두려움을 환기시켜준다. 그래서 인생은 누군가 떠난 자리에서 또다시 시작되는 것이라는 엄연한 진리를 영화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하나로 이어지게 처리해서 나타내고 있다.

 

 

 

 

 

미국의 심리분석학자 클라리사 에스테스는 이러한 인생의 주기를 /죽음/이라고 표현한다. 생명이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며, 죽음에 의한 소멸은 여기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새 생명의 부활이 시작된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존재의 본질을 묻는 이 질문은 인간에게는 가장 어려운 숙제이기도 하다. 정확한 해답은 존재하지 않지만 결국, 우리네 인생을 묘사하는 영화는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가 그린 한 폭의 풍경화와도 같다.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인생의 단계」 1834년

 

 

노을 지는 해변에 다섯 사람이 등장했다. 바다에는 다섯 척의 배가 떠 있다. 다섯 사람은 인생의 시기를 뜻하고 다섯 척의 배는 인간을 의미한다. 스웨덴 국기를 차지하려고 다투는 두 아이는 유년기, 아이들 곁에 앉아 있는 젊은 여자는 청년기, 중절모를 쓴 정장 차림의 남자는 중년기,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뒷모습의 노인은 노년기를 상징한다. 이 그림은 프리드리히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생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는 증거물이다. 인생이라는 바다를 향해 출항하는 배들은 활동적이다. 그러다가 무사히 항해를 마치고 완전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최종 목적지(사람의 인생에 비유한다면 '죽음')에 도착한다. 그러나 또 다른 배들은 미지의 세상을 향해 다시 한 번 돛을 활짝 펼쳐 출항할 것이다.

 

영화는 일레곤다는 안토니아를, 안토니아는 다니엘을, 다니엘은 테레사를, 테레사는 사라를 낳았다는 식의 모계(母系)가 탄생한다. 그리고 탄생과 죽음의 순간을 반복하면서 증손녀인 사라가 안토니아의 임종을 지켜보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러한 순환구조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 있는 삶과 죽음의 고리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영화제목인 안토니아스 라인은 단순히 안토니아 중심의 모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의 주기라는 예고된 삶의 연대기를 함축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여장부’, ‘어머니 늑대안토니아

 

 

 

 

 

안토니아는 여장부처럼 당돌하면서도 자기 기준이 확고하다. 이웃 농부 바즈가 그녀에게 '내 아들들에게 엄마가 필요하다'고 청혼을 한다. 그러자 안토니아의 대답. '난 아들 따위는 필요 없다.' 그러고는 오히려 되묻는다. '왜 남편이 필요하죠?' 두 가족은 종종 식사를 같이 하며 친숙한 이웃으로 지낸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안토니아는 바즈에게 자신의 성적 욕구를 솔직하고 당당하게 표시하고, 두 사람은 서로의 집이 아닌 제3의 장소를 고른다. 숲 속의 오두막에서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같이 차를 타고 등불 하나 손에 들고 떠나는 두 사람. 안토니아의 딸과 손녀가 배웅한다.

 

한편으로는 클라리사 에스테스가 주장하는 어머니 늑대의 원형을 안토니아의 모습에서도 찾을 수 있다. 어머니 늑대는 선천적으로 사랑이 넘치고, 적응력과 직관력이 뛰어나며, 씩씩하고 용감한 존재다. 그래서 주체적인 삶으로 개척할 수 있는 당당한 풍모가 느껴진다.

 

각자 자기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가끔 한 식탁에 온 가족이 마주 앉고, 필요할 때는 제3의 장소에서 성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동거에 대해서 단순한 성적, 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한 출구냐, 수많은 결함과 문제를 안고 있는 결혼 제도에 대한 대안이냐 하는 논의가 무성한데, 안토니아와 바즈의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노년의 사랑과 결혼을 생각해 봐도 안토니아와 바즈가 하나의 대안은 되지 않을까. 노년의 사랑과 결혼이 호적 문제, 재산 문제 등으로 벽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은데, 각자 자녀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둘 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다. 물론 한 쪽이 병에 걸리거나 세상을 떠났을 경우를 예상해서 분명한 약속들을 하는 것이 앞서야 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안토니아는 주름지고 검버섯 핀 얼굴이 되어서도 여전히 강하고 건강하다. 그리고 넓다. 몸담아 살고 있는 땅을 닮았다. 모든 슬픔과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 안아주는 땅의 얼굴이다. 큰 나무를 닮았다. 저 땅 끝에 단단히 뿌리 내리고 서서 태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생명을 묵묵히 지켜보는 나무의 모습이다.

 

세상 떠난 어머니를 빼고 여인 4대가 남자에 매이지 않고 생활해 나가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신선하다. 유쾌하기도 하다. 물론 폭력으로 상하는 어린 영혼의 이야기는 눈물 겹지만, 주변 남자들의 폭력과 오만, 위선 등이 깨져 나갈 때도 가끔은 웃음 짓게 하는 여유가 있다. 새로운 가족의 형태니 동거의 한 방식이니 하는 논의에서는 비껴간다 해도, 구원은 결국 여성의 힘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영화는 소리 높이지 않고 말하고 있다. 여성 영화이기도 하지만 우리네 인생을 정확하게 묘사한 영화인 것은 자연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안토니아가 그 넉넉한 품으로 우리를 안아 주고 있다.

 

남자 입장에서 본다면 영화 속 안토니아의 행동이 상당히 충격스러우면서 불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다시 보는 사람이라면 '페미니즘 영화의 정전'이라는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오랫동안 붙어 있는 수식어를 잠시 잊은 채 영화를 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안토니아와 그 주변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고 울고 웃는 장면에 초점을 맞춰 본다면 우리가 잊고 있던 화목한 가족애의 훈훈함, 그리고 가볍지 않은 인생사의 진중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여성 출연자들의 가슴과 음모가 드러나는 베드신이 있는 19금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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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3-11-05 11:27   좋아요 0 | URL
아, 정말 이 영화 오래 전에 본 기억이 나는데 그동안 잊고 있었네.
꽤 괜찮았던 영화로 기억하는데, 봤을 때만해도 유럽 영화가 익숙치 않아
조금은 뜨아하기도 했어. 다시 보면 어떨까? 지금은 유럽 영화 좋아하게 됐는데 말야.ㅋ
확실히 이 영화는 페미니즘 이상을 뛰어넘는 뭔가가 있지.

요즘은 기억이 가물거려서 어떤 영화는 옛날에 봐 놓고도 안 봤다고
다시 보게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어.ㅠㅠ

cyrus 2013-11-05 20:26   좋아요 0 | URL
처음엔 이름만 들었을 땐, 별 관심 없었다가 막상 보고나니 나름 충격적인(?) 장면도 있고, 생각해볼 수 있는 내용이 있어서 이 영화가 좋았어요. 사실 저도 유럽 영화를 많이 본 건 아니거든요. 그래도 언젠가 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보고 싶네요. ^^
 

 

 

 

 

 

빈센트 반 고흐  「요양원 정원」 1889년

 

 

 

 

 

 

 

 

 

 

 

 

 

 

 

 

 

 

 

요양원 정원의 테라스에 초점을 둔 이 작품에는 소나무와 돌 벤치, 시든 장미 옆을 걷는 환자 셋이 그려져 있다. 빈센트는 번개를 맞고 부러진 나무의 그루터기에 특히 매혹되었다. 그의 문학적 상상력은 이를 우쭐대는 남자의 패배로 보았다. 그림에서 그는 은근히 분노를 표현할 수 있었다. (랄프 스키 『반 고흐의 정원』87쪽)

 

 

 

 

 

 

 

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

시작한 이후, 나는 주어를 잃고 헤매이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되었다.

 

 

가끔씩 숨이 턱턱 막히는 어둠에 체해

반 토막 영혼을 뒤틀어 눈을 뜨면

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

단단한 몸통 위에,

사람아, 사람아 단풍든다.

아아, 노랗게 단풍든다.

 

 

 

 

‘주어를 잃고 헤매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된 시인의 시를 읽다가 요양원 한가운데 부러진 나무 그루터기로 남은 네덜란드 사내가 생각났다.

 

 

201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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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3-11-04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흐의 그림은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군요.
기형도 님의 시였나요?

사이러스님, 평온하고 즐거운 한주되세요.

cyrus 2013-11-04 21:2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맞아요. '병'이라는 제목의 기형도 시인이 쓴 거예요. 알라딘 중고샵에서 발행기간이 조금 오래된 기형도 시집을 발견했어요. 오랜만에 시집을 읽고 있었는데 예전에 눈에 들어오지 못했던 이 시를 읽다가 고흐의 그림이 생각났어요. 마고님 말씀처럼 비록 고흐는 자신을 잘려진 그루터기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강인한 생명력과 예술혼은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물론 시인이 남긴 시들 또한 마찬가지고요 :)
 
에퀴아노의 흥미로운 이야기
올라우다 에퀴아노 지음, 윤철희 옮김 / 해례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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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56] 재미있는 이야기

 

 

 

 

영국 중학생들은 자국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정규 수업시간에 배운다. 2008년부터 11∼14세 중학생들이 노예제도의 실상과 영향, 저항운동과 폐지 과정 등을 배우도록 의무화되었다. 학생들은 제국주의 시대 영국이 어떻게 노예무역에 개입했고 노예무역이 영국 무역과 산업혁명, 국제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등을 전반적으로 배우게 된다. 그동안 영국 중학교 역사 과목에서 제1, 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대학살 등은 정규 수업내용에 포함돼 있었으나 노예제도는 배제돼 있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언급되는 핵심 인물에 역사적으로 유명한 노예제도 폐지론자들이 새롭게 포함되었는데 그 중 눈여겨 볼 이름이 바로 올라우다 에퀴아노라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인물이다.

 

노예서사의 원형은 올라우다 에퀴아노의 자서전이다. 나이지리아 태생의 노예였던 그가 1789년에 쓴 ‘아프리카인 올라우다 에퀴아노, 혹은 구스타프 바사의 재미있는 인생이야기’는 자신의 경험을 상세히 묘사해 베스트셀러가 됐다.36판을 찍을 정도로 널리 읽혀 그는 18세기 말에 미국 흑인이 보여준 독립정신의 대표 인물로 여겨졌다. 이 책에서는 아프리카로부터 서방에 이르는, 즉 노예로의 관문인 ‘중간항로’의 참혹함을 지옥으로 하강하는 은유로 표현했다.

 

지금의 나이지리아에서 1745년 태어난 에퀴아노는 11살 때 여동생과 함께 노예 사냥꾼에게 납치된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인 미국의 버지니아로 팔려간 그는 주인 마이클 파스칼 밑에서 일하면서 그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니며 읽기를 배우고 기독교 신자가 된다.

 

그는 이후 무역업을 하는 로버트 킹에게 팔려갔다.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킹은 노동의 대가로 에퀴아노가 모은 40파운드를 받고 자유의 몸이 되게 해준다. 이후 영국으로 간 에퀴아노는 노예무역 폐지 운동가들과 합류, 강연에 나서고 자서전 출간 이후로 노예제도 폐지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백인 여성과 결혼해 적잖은 부를 쌓을 정도로 영국 정부가 신뢰하는 흑인으로 명성을 누렸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의 영국 사회에 야만적인 노예무역을 반성하고 이를 없애자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이에 불을 불인 것은 노예 출신 작가 올라우다 에퀴아노의 자서전이었다. 에퀴아노는 자서전에서 입에 쇠로 재갈을 물린 채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며 고문과 중노동에 시달리는 노예의 비참한 삶을 생생하게 전했다.

 

주인님 밑에서 일을 맡아 하는 동안 나는 내 불행한 동료 노예들에게 자행되는 온갖 종류의 잔혹 행위를 자주 목격했다. 나는 새로운 니그로들을 판매용 화물로 취급하는 일을 자주 했다. 그런데 우리 사무원이나 다른 백인들이 여자 노예들의 순결을 잔혹하게 짓밟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일은 꾸준히 벌어지는 관행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일이 벌어질 때면, 그들을 도울 도리가 없는 나는 약간은 주저하면서도 늘 상황에 굴복해야만 했다. (166쪽)

 

 

이 책이 펭귄 클래식 100선에 꼽힌 것은 그만큼 문학사적으로도 이 책의 가치가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만큼 노예 문학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아프리카 노예 출신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어 표현력과 사건 묘사 능력이 뛰어나다. 책 속에서 성경 구절과 밀턴의 『실락원』 구절 등을 적재적소에 인용하는 것으로 보건대 에퀴아노는 지적 수준도 매우 높았다.

 

인간 특성의 하나는 잠재력을 계발시킬 가능성에 있다. 특히 장애나 제약을 극복하고 가능성의 단계를 드높인 인간 승리자에게 우리는 존경에서 우러나오는 찬탄을 아끼지 않는다. 에퀴아노가 그런 인물이었다. 노예무역을 금지하도록 영국의회에 낸 청원서도 서두에 소개했다. “나는 여러분에게 문학적 가치도 없는 내 글을 읽게 하는데 대해 용서를 간청해야 됨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고통 받는 동포를 구해 내기 위한 도구가 되려는 희망으로 고무된 것이니 만큼, 그 대담함이 용서되리라 믿는다.” 당대 백인이 갖고 있던 흑인에 대한 지능적, 도덕적 열등함에 대한 편견을 꼬집고, 흑인은 글로써 자신을 표현하기에 너무 무식하다는 통념도 뒤집어 놓았다. 비록 영국인으로써 명예로운 대우를 누려도 ‘흑인’으로써의 정체성만큼은 잊지 않았다. 노예 해방 운동을 위해 순회 여행을 다닐 때나 저술을 할 때에는 구스타프 바사라는 이름을 씀으로써 아프리카인임을 내세웠다.

 

비록 에퀴아노가 영국에서 인정받는 흑인 명사가 되었으나 그의 사후 10년 만인 1807년, 노예무역법이 폐지되기에 이른다. 사실 힘 있는 자들이 만든 노예제도법보다 더 무서운 건 노예를 잔인하게 대하는 비윤리적인 대우와 그들을 멸시하는 인식이다. 노예의 삶은 때론 동물보다 못했다. 잔혹한 매질에 시달리는 데다 음식부족으로 반 아사 상태에서 때로는 돼지와 먹을 것을 놓고 다툰다. 극단적인 노동으로 움직임이 둔한 열서너 살의 노예를 몽둥이로 쳐 죽이는 여성 노예 주인이나 남자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노예를 처형했다는 노예감독도 있었다. 오랜 노예 생활을 몸소 체험했고, 끔찍한 노예의 삶을 목격한 에퀴아노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인식의 변화를 꾀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인종 차이에 대한 이데올로기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자행됐다. 미국에서 심심찮게 일어난 인종에 관련된 ‘증오범죄’나 세계의 인종분규가 이를 증명한다.

 

에퀴아노의 자서전은 그가 단순히 노예의 한 많은 삶을 극복하고 ‘브리티쉬 드림’을 이뤄냈다는 것이 아니다. 독특한 통찰력을 통해 노예의 심리 상태 및 노예 제도가 흑인들에게 안겨준 고통을 보여주고 있다. 제목의 ‘흥미로운’이라는 단어에 노예제 폐지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일부 영국 상류층 사람들은 단순히 사회 진출을 꿈꾸는 흑인의 성공 스토리로만 치부했을 것이다. 흑인 노예가 따르는 차를 마시면서 편안하게 안락의자에 앉아 사회적으로 성공한 흑인의 자서전을 흥미롭게 읽는 어느 영국 귀족의 모습이 어렴풋이 상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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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3-11-03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책 제목 자체가 좀 잘못된 것 같다만
너의 리뷰 제목도 좀 헷갈리는데가 있는 것 같네.
제목은 그렇게 쓰고 별점은 네개라서 말이지...ㅋ
아무튼 영국 사람들은 대단하네.
일본도 좀 배워야 할텐데 말야.

근데RP는 뭐지?^^

cyrus 2013-11-03 23:27   좋아요 0 | URL
이 책 원제를 풀이하면 '에퀴아노의 흥미로운(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왜 이런 제목을 짓는지 궁금했어요. '흥미로운', '재미있는'이라는 형용사가 없으면 책이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흑인 노예의 비참한 생활상을 묘사하는 내용이 있다는 사실만 보면 그렇게 흥미롭지는 않죠. 그리고 별 네 개를 준건, 에퀴아노 이 사람이 노예 해방이 되고나서 바다를 항해하는 여행을 하게 되는게 전 그 부분이 좀 지루했어요. 노예제의 부당함에 대한 내용이 없으면 흑인 노예의 성공담이 되었을꺼에요.
 

 

 

 

 

 

 

시뮬라크르라는 말은 사건·이미지와 의 동일한 말로서 순간적인 것, 지속성을 가지지 않은 것, 자기 동일성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자체로는 지각되지 않으며 오직 감각 가능한 최소시간 내 그들의 합(지각)만이 지각가능하다. 따라서 플라톤에 따르면 시뮬라크르 쪽으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존재는 점점 더 적어지며 그에 따라 가치 또한 점점 적어지게 된다.

 

사건은 물체에 ‘부대하고’ 언어에 대해 ‘표현전도’, 즉 언어의 표현을 통하여 사건이 분절된다. 따라서 사건을 사유한다는 것은 물질적인 차원과 정신적인 차원, 자연의 차원과 문화적 차원의 접촉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도 시뮬라크르를 사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는 공간보다는 시간을, 엄밀한 결정론보다는 우연, 창조, 불연속 등을 중시한다.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등장한 문제가 시뮬라크르이다. 모델과 사본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 위에 근거한 플라톤주의를 전복시킴으로써 우리 현실의 삶에 대한 새롭고 깊은 통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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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3-11-01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뮬라크르 하믄, 보드리야르밖에 생각이 안난다능~ㅎㅎ

사이러스님, 11월 단풍이 아름답게 들었더이다~ 단풍구경하면서 저무는 가을을 만끽하시길~^^

cyrus 2013-11-02 22:00   좋아요 0 | URL
보드리야르의 책도 읽고 있는 중인데 어렵네요.. 이 글을 쓰면서 제가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네요.. ^^:;
감사합니다. 야무님. 어제 서울에 갔는데 날씨가 참 좋더라고요. 간만에 느껴보는 가을 날씨였어요.
 

안녕하세요, 민음사입니다. ^^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03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에 이어 금세 새로운 서평 이벤트로 찾아왔습니다. 


서평단 책을 소개하기 전에 한가지 힌트를 드리자면,

윤고은 작가와 마찬가지로 

혈기가 넘치는(!!) 젊은 소설가라는 점입니다.


이번 서평단의 주인공은 바로

2013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인 이재찬

「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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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올해의 작가상「펀치」는 내신 성적 5등급, 외모도 5등급인

18살 여고생 방인영이 40대 계약직 공무원 ‘모래의 남자’에게 부모 청부살해를 의뢰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았습니다. 


방인영은 재력과 명예를 고루 갖췄지만, 재벌총수와 사회 고위층의 비리를 변호하는

아버지를 경멸하며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방 변호사'라고 칭합니다. 


또한 자신의 성적에 열을 올리며, '방 변호사'에게 사랑받기 위해 몸무게 유지에

여념없는 어머니에게도 등을 돌립니다.


방인영은 '딸을 외고 보내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계급이기에 억울함'(p.12)을 가진 부모에게,

혈연이기에 잔존할 수 밖에 없는 자잘한 애정까지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문제의식 뿐만 아니라, 이재찬 작가만의 경쾌한 말맛과 뒷통수를 때리는 신선한 시각은

책을 덮을 때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속도감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2013 오늘의 작가상 심사평 중_

이 소설이 지닌 온갖 장점 중에서 이른바 ‘타고난 감각’ 혹은 ‘선천적 재능’으로 부를 만한 것 하나만을 꼽으라면, 나로서는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흑마술’이라 대답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건 사기다. 그러나 이 작가가 제대로 사기를 쳐 주어서 나는 기뻤다.

—심사평 중에서|박형서(소설가)

 

이야기가 경쾌하고 문장이 좋다. 문장들을 읽어 가다 보면 사물(사태)의 본질을 재빨리 포착해서 이를 발랄하게 드러낼 줄 아는 감각이 느껴진다. 우리 문단에 의미 있는 한 방을 날려 줄 수 있는 작품이다.

—심사평 중에서|정영훈(문학평론가·경상대 국문과 교수)




2013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 이재찬 작가, 그는 누구인가?_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0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에서 「버스, 정류장」이 당선되었고,
 이 작품은 2002년 3월 김민정, 김태우 주연의 동명 영화(명필름 제작)로 개봉되어 호평을 받았다. 2013년 장편소설 『펀치』로 제37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장편소설 『안젤라 신드롬』으로 제5회 자음과모음 네오픽션상을 수상했다.

영화 「버스, 정류장」을 보신 분들에게 
더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 


2013 오늘의 작가상 이재찬 장편소설 <펀치> 중_
한국 여자의 몸매는 전통적으로 '상체 빈약, 하체 튼튼'이다. 
걸 그룹들은 그런 역사를 정면으로 거스른 '가슴 육덕, 하체 부실'이다.
몸매로는 신이 창조한 역사를 어겼지만 걸 그룹이 부르는 노래 가사는
남성이 창조한 여성의 역사에 고스란히 복종하고 있다.
"오빠 나 좀 봐. 나를 좀 바라봐." 이건 질투심이 아니다. p.20

"1등급이 아니면 기회조차 잡지 못해."
방변호사가 한 말이다. 1등급은 유전자와 부모의 재산이 결정하는 거다.
주인공이 될 수 없기에 난 궤도에서 이탈할 테다. 
안그러면 내 인생은 보나 마나 평생 들러리일테니까. p.25 

엄마와 방 변호사도 시장에서 만나 흥정한 거 아닌가.
각자의 가치를 높인 후 적당한 소비자를 물색하고 판매하기 전에
스스로 사랑을 세뇌한 후 결혼한 거 아닌가.
열성 유전자만 물려준 건 사랑이 부족해서 그런 걸까. 
사랑이 충만했다면 우성유전자들이 내가 됐을까. p.56

맨발로 엘리베이터까지 쫓아 타면서 동생한테 쌍욕을 퍼부은 
방 변호사는 누가 뭐래도 자타 공인 대한민국 엘리트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전형적인 한국의 엘리트라고 할 수 있다. p.57


이재찬 작가만의 예리한 시각과 경쾌한 말맛이 느껴지시나요?


2013년 올해의 작가상「펀치」를 읽고 
서평을 써주실 분 들은 아래의 양식으로 해당 날짜까지 지원해주시면 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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