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에 나온 문학과지성사판은 품절)

 

 

빛바랜 카프카의 흑백사진을 바라다보면 짧은 인생을 살다간 그의 철학적 고뇌와 성격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고독하면서도 희망이 묻어 있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맺힐 것만 같은 그의 큰 눈망울에서 따스한 정이 느껴진다. 사실 카프카는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 때문에 소심하고 외롭고 저항성이 부족한 청년으로 자랐다. 이러한 환경 속에 자란 카프카는 매사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한 마리의 까마귀예요. 한 마리의 카프카죠. (중략) 인간들은 나를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봐요. 아무튼 나는 위험한 새요, 도둑이요, 까마귀예요. 그러나 가상에 불과하죠. 실제로 나는 빛나는 물건에 대한 감각이 없어요. 그래서 나는 번쩍이는 검은 날개를 가져본 적이 없어요. 나는 재처럼 회색이에요. 돌들 사이로 사라지기를 동경하는 한 마리 까마귀예요.” (구스타프 야누흐  『카프카와의 대화』중에서, 문학과 지성사, 49쪽)

 

카프카란 체코 말로 까마귀라는 뜻이다. 카프카는 자신을 날개가 위축된 고독한 까마귀요, 위험한 존재로 스스로 규정했다. 결국 자신이 가장 무서운 고독인 것이다. 군중들 한가운데서 불안에 벌벌 떠는 존재. 선천적으로 수동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인 데다 유태인의 피가 흐르고 있어 카프카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평생 동안 자기 속에 갇혀 있는 또 다른 카프카와 끊임없이 자기 부정과 싸워야 했다. 카프카는 짧은 생애 동안 아주 격정적이고 강렬하게 살다가 까마귀처럼 파란 하늘로 재빠르게 날아갔다.

 

카프카가 고독한 까마귀라면 보들레르는 그야말로 고독한 알바트로스다. 알바트로스의 날갯짓은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알바트로스에게 '신천옹'(信天翁)이라는 신선의 이름을 붙일 정도로 신성시한다. 새 중의 새, 창공의 왕자. 큰 날개와 몸통 때문에 높은 공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새.

 

날아오르지 못한 알바트로스는 지상에서는 우스꽝스러운 새로 전락하게 된다. 도움닫기를 하지 않으면 날아오를 수 없는데다 바람을 타지 않으면 비행할 수도 없다. 어부들이 항해 중에 알바트로스를 발견하면 곧 태풍이 올 것이라고 예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알바트로스는 거친 바다의 폭풍 속을 넘나들고, 그를 향해 총알을 날리는 사냥꾼을 우습게 생각한다. 그가 펼치는 하얀 날개는 순수함의 상징이었다. 보들레르는 이 알바트로스를 신비주의의 표상으로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창공의 왕자도 때론 뱃사람들에게 잡힐 때가 있었다.

 

 

 

 

 

 

 

 

 

 

 

 

 

흔히 뱃사람들이 재미 삼아
거대한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잡는다.
이 한가한 항해의 길동무는
깊은 바다 위를 미끄러져 가는 배를 따라간다.

 

갑판 위에 일단 잡아놓기만 하면,
이 창공의 왕자도 서툴고 수줍어
가엾게도 그 크고 흰 날개를
노처럼 옆구리에 질질 끄는구나.

 

날개 달린 이 나그네, 얼마나 서툴고 기가 죽었는가!
좀전만 해도 그렇게 멋있었던 것이, 어이 저리 우습고 흉한 꼴인가!
어떤 사람은 파이프로 부리를 건드려 약올리고,
어떤 사람은 절름절름 전에 하늘을 날던 병신을 흉내낸다!

 

시인도 이 구름의 왕자를 닮아,
폭풍 속을 넘나들고 사수(射手)를 비웃건만,
땅 위, 야유 속에 내몰리니,
그 거창한 날개도 걷는 데 방해가 될 뿐.

 

(보들레르, ‘알바트로스’)

 

 

 

 

 

들레르는 자신을 알바트로스에 비유했다. 그 또한 알바트로스처럼 폭풍 속을 넘나들고 싶었다. 폭풍은 시적 자유, 사상적 자유를 의미했다. 그러나 그의 시와 사상은 뱃사람들(지상의 무식한 대중)에 의해 이해받지 못하고 조롱당하고 말았다. 거대 알바트로스도 선원에게 잡힌 신세면 고역을 면치 못한다. 성치 못한 몸으로 거대 날개를 질질 끌어야 하고 선원들의 담뱃불에 부리 지짐을 당하기도 한다. 고매한 영혼인 알바트로스는 평범한 선원들 앞에서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오죽하면 알바트로스의 운명을 보들레르는 시인인 자신의 운명으로 치환했겠는가. 그래서 그는 불행했으며 단 하나의 시집만 남기고 지상에서 사라졌다.

 

시인의 존재가 그런 게 아닐까. 늘 시를 쓰다 보니 뭔가 제가 속한 세계와 잘 안 맞는다고 생각하며 컸던 것 같다. 시인은 소수자라 할 수 있는데 소수자의 생각과 느낌으로 살다 보니까 아무래도 비극성을 늘 갖고 사는 것 같다. 어쩌면 보들레르는 카프카처럼 지상 생활의 어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실제로 시인은 언제나 사회의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보잘것없고 연약해요. 때문에 시인은 지상 생활의 어려움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느끼죠. 시인에게 시인의 노래는 개인적으로는 외침에 불과하죠. 예술가에게 예술은 고뇌예요. 이 고뇌를 통해서 예술가는 새로운 고뇌를 위해 자신을 해방하죠. 시인은 결코 거인이 아니고, 자신의 실존이라는 새장 속에 갇힌 약간 다양한 색깔을 지닌 새에 지나지 않아요.” (구스타프 야누흐  『카프카와의 대화』중에서, 문학과 지성사, 49쪽)

 

너무 남다르고 앞서가는 존재는 외롭고 고독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고독을 감당할 줄 알았다. 지상에 유배된 카프카와 보들레르는 끝없는 야유와 모멸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날개가 위축된 프라하의 까마귀, 하늘을 날지 못하는 지상의 알바트로스가 느껴야 할 고독은 이해 받지 못한 불길한 예언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문학으로써 현실을 감내해 보려는 것, 그것이 문학의 위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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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는 주인공이 동물이면서 글이 짧고 읽는 재미가 있다. 또한 삶에 대한 교훈도 들어 있어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까지 널리 사랑받고 있는 장르이다. 이야기 속 동물은 사람처럼, 혹은 사람보다 더 사람처럼 행동한다.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서는 인간 세상을 풍자한 주제가 많다. 우화는 그래서 오랫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만큼 글은 간결하고 소박하지만 문학성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우화하면 우선 떠오르는 이는 이솝이지만, 쇼펜하우어, 카프카 등 늘 ‘어려운 이야기’만 했을 법한 이들도 우화를 지었다. 특히 톨스토이는 자국인 러시아뿐 아니라 인도, 아랍 등에 전해 내려오는 각종 우화들을 엮어 우화집을 펴내기도 했다. 짧은 이야기 속에 인간에 대한 통찰력과 혜안, 풍자와 해학까지 녹아 들어있는 우화의 매력을 당대 석학들도 외면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 밖에 라 퐁텐 우화, 끄르일로프 우화도 알려졌는데 이 두 사람은 세계 각지에 흩어진 상태에서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이솝 우화를 집대성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이솝 우화와 중복된 내용이 꽤 있다.

 

 

 

 

 

 

 

 

 

 

 

 

 

 

 

 

라 퐁텐은 프랑스 고전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고대 로마 문예에서 발견되는 감수성과 문학적 취향을 존중했다. 그래서 라 퐁텐 우화는 소박하고 꾸밈없는 문체가 특징이며 교훈을 강조하는 우화의 기본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라 퐁텐 우화집은 총 12권 24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6권은 1668년에, 7~11권은 1687년, 마지막 12권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694년에 완성되었다. 이 정도 삶의 이력만 보면 라 퐁텐은 우화집을 완성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남의 집에서 빌붙어 밥을 얻어먹고 살았다. 생전 루이 14세의 은총을 받은 명사였고, 부유한 후원자들 덕분에 편안하게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어쩌면 12권으로 구성된 우화집이 탄생한 것도 그런 무위도식의 삶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의 묘비명은 라 퐁텐의 삶을 그대로 축약해서 보여준다.

 

장(드 라 퐁텐)은 그가 왔던 것처럼 가버렸다.
모든 재산을 다 탕진하고
많은 재물을 하찮게 여겼다.
시간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잘 쓸 줄 알았다.
시간을 절반으로 나누어서
반은 실컷 잠자는 데,
나머지 절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썼으므로.

 

그를 지켜 본 친구나 후원자가 썼을법한 묘비명이다. 그들에 눈에는 라 퐁텐이 방탕하고 게으른 인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라 퐁텐은 시간을 잘 쓸 줄 알았다. 시간의 반은 분명 우화집을 정리하는데 썼을 테니까.

 

 

 

 

 

 

 

 

 

 

 

 

 

 

 

 

 

 

 

끄르일로프는 이솝, 라 퐁텐에 비하면 생소한 이름의 작가이다. 그러나 끄르일로프가 우화를 정리하지 않았더라면 톨스토이의 우화가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18세기 말 부패로 물들인 관료 사회 속에 점점 외면 받는 민중의 비참한 삶을 목격한 끄르일로프는 당시 러시아의 부조리한 삶을 우화에 반영시켰다. 총 9권 198편으로 구성된 우화집은 교훈을 강조하기보다는 사회 비판 성향이 더욱 강하다.

 

 

 

 

 

 

 

 

 

 

 

 

 

 

 

라 퐁텐, 끄르일로프 이전에도 이솝 원작으로 알려진 우화는 15세기 인쇄술이 발달되면서 여러 가지 판본으로 만들어져 더욱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때 삽화가 등장한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에서 당시 출판된 우화들은 다양한 삽화가 곁들여졌다. 섬세한 풍경 묘사를 바탕으로 꼼꼼하게 그린 동물 모습을 비롯해 거친 밑그림 수준의 그림이나, 장식적 기교를 바탕으로 맵시 있게 그린 작품도 있다.

 

 

 

 

 

 

 

 

 

 

 

 

 

 

 

 

 

 

 

 

 

 

 

 

 

 

 

 

 

유명한 화가들도 우화 삽화 제작에 참여했는데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판본이 귀스타브 도레와 마르크 샤갈, 그랑빌이 그린 것이다. 귀스타브 도레는 라 퐁텐 우화 이외에도 『신곡』『돈 키호테』『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등 수많은 문학가들의 작품에 삽화를 제작해 명성을 얻었다. 샤갈은 1926~1927년에 라 퐁텐 우화를 소재로 100점의 구아슈 작품을 제작했는데 현재 전시되어 소개된 것은 불과 43점에 불과하다. 나머지 작품은 세계 대전을 겪는 과정에서 소실되거나 행방이 묘연하다.

 

 

 

 

 

황금부엉이 출판사에서 2권으로 나온 라 퐁텐 우화집은 도레의 삽화를 실었다. 시공사 라 퐁텐 우화집의 삽화는 구제라는 판화가가 1834년에 그린 것이다. 샤갈의 삽화를 볼 수 있는 라 퐁텐 우화(출판사는 지엔씨미디어)는 품절되었다.

 

 

 

 

 

(위) 구제의 삽화 / (아래) 도레의 삽화

 

 

이솝 우화라면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가 바로 ‘개미와 베짱이’다. 이 이야기 덕분에 개미는 부지런한 곤충으로, 베짱이는 무위도식을 대표하는 곤충으로 이미지가 굳혀졌다. 그런데 원전은 베짱이가 아니라 매미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솝 우화가 전국 곳곳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이야기의 진행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이 구술자에 의해서 달라진다. 매미에서 베짱이로 언제 탈바꿈했는지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다.

 

1834년에 나온 라 퐁텐 우화에서 ‘매미와 개미’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그런데 구제의 삽화는 매미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베짱이(얼핏 보면 메뚜기처럼 보인다)를 그려 넣었다. 도레의 삽화는 아예 베짱이를 사실적으로 그렸다. 도레가 그린 ‘개미와 베짱이’ 삽화는 싸늘한 느낌이 감돈다. 베짱이는 개미에게 먹이를 달라고 애절하게 구걸한다기보다는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눈밭 위에서 쓸쓸하게 죽어가는 듯하다. 

 

도레와 구제의 삽화는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나 곤충의 형태를 세밀하게 묘사한 반면 샤갈은 화려한 색채와 과장된 형태로 그렸다. 그래서 샤갈의 라 퐁텐 우화집이 출판되었을 당시만 해도 일부 비평가들은 고전주의적이면서도 교훈을 강조하는 우화 형식에 어울리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 당시만 해도 텍스트와 삽화의 연관성을 중요시했으며 도레와 구제 또한 우화의 특성을 놓치지 않았다. ‘읽기’와 ‘보기’가 동시에 가능했다. 그러나 샤갈의 삽화는 ‘읽기’보다는 ‘보기’에 초점을 맞췄다. 그림은 교훈을 강조시키는 우화의 결말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특정 장면을 부각시켰다. 눈으로 읽는 우화가 아니라 눈으로 보는 우화로 변용시킨 것이다. 그래서 샤갈의 삽화는 텍스트만 떼어 놓고 보면 한 편의 멋진 그림이 된다.

 

 

 

 

 

 

(위) 구제의 삽화 / (아래) 샤갈의 삽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삽화가 ‘여자가 된 암고양이’다.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이렇다. 암고양이를 애지중지하게 키우던 남자는 그것의 매력에 사로잡혀 사랑에 빠지고 만다. 남자는 신에게 암고양이가 여자로 변신하기를 간절히 기도를 올렸는데 소원대로 이루어졌다. 고양이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여자로 변했다. 여자가 된 암고양이는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인간처럼 생활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와 고양이 여인은 잠결에 생쥐가 돗자리를 갉아먹는 소리를 들었다. 생쥐가 돌아다니는 것을 본 고양이 여인은 침대에 나와 바닥에 공격 자세를 취했다. 고양이가 생쥐를 공격하기 전에 잔뜩 웅크린 자세로 말이다. 아뿔사! 신은 실수했다. 몸은 변했으나 생쥐를 두려워하지 않는 고양이의 습성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몸에 밴 천성이나 습관을 강조하고 있다. 구제는 이야기의 진행 과정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삽화를 그렸다. 생쥐를 잡으려는 고양이 여인과 그 모습에 화들짝 놀라는 남자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샤갈은 여자로 변신한 고양이의 존재가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고양이 얼굴을 한 여인의 모습을 그렸다. 샤갈의 고양이 여인은 탁자에 앉아 팔을 기댄 채 요염한 눈빛으로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강렬한 붉은 색과 남색으로 그려진 고양이 여인의 치마는 숨기지 못한 암고양이의 야생적인 본능을 돋보이게 만든다.

 

 

 

 

 

외모의 결점을 외면하고 좋은 모습만 바라보려는 나르시시즘을 비판하는 ‘남자와 그의 모습’에서 샤갈은 물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르키소스의 익숙한 자세를 그대로 차용했다. 나르시스트의 얼굴은 누런 빛깔에 흉하게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전설 속에 나오는 괴물’과 같은 모습이다.

 

마지막에 소개할 샤갈의 삽화는 ‘개미와 베짱이’ 다음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우화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과연 어떤 우화를 묘사했는지 한 번 맞춰보시라.

 

 

 

 

 

우화는 어린이용 이야기가 아니다. 세월이 흘러도 바라지 않는 해학과 풍자는 어른 세계에서도 통용되고 있다. 도덕적 감화를 위한 우화의 시대는 지났다. 우화집의 삽화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기도 한다. 여러 양식과 분위기의 삽화를 보면 이솝 우화가 얼마나 다양하게 해석되고 표현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림 없는 우화는 허전해 보인다. 그런 황량하기 쉬운 짧은 글에 활력을 불어 넣는 것이 바로 삽화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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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꿈꾸는 마을의 화가 - 내 젊음의 자서전 다빈치 art 17
마르크 샤갈 지음, 최영숙 옮김 / 다빈치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마르크 샤갈   「나와 마을」 1911년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네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를 읊어보면 막연한 이국의 마을 풍경이 떠올린다. 김춘수의 시에 영감을 준 모티브는 1911년에 그려진 「나와 마을」이다.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화면 분할로 인한 시각적 분리가 아니다. 나와 마을의 거리를 친근하게 보여주는 그만의 독특한 예술적 질서일 것이다. 기억하는 것은 아름답다. 그래서 그에게 ’눈 내리는 마을‘은 그가 떠나온 고향이자, 아득한 희망이었으며 끝내 갖지 못한 낭만이 됐다. 재현불가능한 꿈을 샤갈의 그림에서 볼 수 있다.

 

 

 

 

 

 

마르크 샤갈 「마을 위로」  1915년

 

 

오늘이 바로 샤갈이 태어난 날이다. 7월 7일. 지금쯤 그는 벨라와 함께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비테프스크 위로 훨훨 날다가 파리의 에펠 탑 꼭대기에서 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을 것이다. 그와 벨라의 영혼은 지금도 그림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샤갈의 그림을 보면 행복해진다. 어둡고 무거운 느낌을 주는 그림들과 달리 샤갈은 원초적이고 감성적인 색체 그 자체로, 우리의 영혼을 파고든다. 달콤하고도 몽환적인 사랑의 꿈. 우리를 꿈꾸게 하는 이 행복한 그림들은, 이방의 삶을 살았던 샤갈의 어두운 현실에서 퍼 올린 것이다. 예술이 너무 안락한 삶속에서는 꽃 피우지 못한다는 새로울 것도 없는 진리가 샤갈의 경우에도 딱 맞아떨어진다.

 

샤갈은 전 세계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화가 중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샤갈은 한 번도 어떤 주의, 주장, 단체에 머문 적이 없다. 샤갈은 자신의 작품 세계를 분석하고 설명하기를 꺼렸다고 한다. 정규 교육도 별로 받지 않았고, 유대인이면서도 종교에 집착하지 않았고, 파리 뉴욕 등지에서 숱한 예술인들과 교류했지만 어느 유파에도 가담한 적이 없다. 이런 변경의 삶은 그의 작품 세계에 그대로 녹아 있다.

 

특이하게도 샤갈은 자서전을 이제 막 이름이 알리기 시작되는 젊은 시절에 자서전을 썼다. 제목도 거창하다. 나의 삶. 이 때 샤갈의 나이는 서른 초반이었다. 자서전은 1922년 모스크바에서 마무리된다. 샤갈은 98세로 장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후반기를 담을 수 있는 자서전 2부를 쓰지 않았다. 서른 초반에 자서전을 쓰기고 결심한 샤갈은 60년 인생 더 살 거라고 예상이나 했을까.

 

샤갈에 관한 책을 쓴 미술사가 모니카 봄 두첸은 자서전이 과장되고 거짓으로 가득한 과대망상증 환자의 작품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림에 비해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에 소개된 자서전의 제목은 사뭇 낭만적이다. ‘샤갈, 꿈꾸는 마을의 화가’, 부제는 ‘내 젊음의 자서전’  사실 인생 전반을 소개하는 자서전이라기보다는 유년 시절과 화가로 데뷔한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서전은 샤갈의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문헌이다.

 

샤갈의 마을, 그리스 정교회당과 유대교 예배당이 자리한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비테프스크. 유대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그 마을은 샤갈의 기억 중추에 굳게 자리하며 평생의 테마가 된다.

 

샤갈은 러시아 초등학교로 편입하여, 반유대주의에 시달리면서 상처를 받아 말더듬이가 될 정도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화가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가수, 바이올리니스트, 무용수, 시인이 되고 싶은 꿈 많은 아이였지만, 샤갈은 자신의 그림 실력을 의심치 않았다. 그 아이는 자라서 파리로 가 화가가 되어, 버리고 온 초라한 마을 비테프스크를 떠올린다. 그의 마음 한 켠에 따뜻하게 자리 잡은 그곳의 풍경을 잊지 못한다.

 

중력을 무시하고 우주 유영을 하듯 날아다니는 꽃, 사람, 동물, 집들은 ‘떠나 있지만, 매이지 않는, 그러기에 떠돌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외국인으로, 유대인으로, 방랑자로 신산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그림에는 분노가 없다. 삶의 즐거움과 행복한 꿈이 가득하다.

 

 

 

 

 

 

마르크 샤갈 「비테프스크 위로」  1914년

 

가엾은 고향 마을이여, 나를 용서해 다오. 현기증이 날만큼 그토록 높은 곳에 나는 너를 혼자 남겨 두었구나. 슬프고 기쁜 내 고향 마을이여! (10쪽)

 

눈이 하얗게 비테프스크를 덮고 있는 황량한 겨울, 어깨에 자루를 메고 손에는 지팡이를 쥔 남자가 허공을 날고 있다. 「비테프스크 위로」는 ‘아이의 눈’으로 비테프스크를 바라봤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샤갈이 환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어린 샤갈은 자신의 집 다락방에 엎드려서 마을 풍경을 바라봤다. 창문으로 보이지 않으면 할아버지와 함께 지붕 위로 올라가 마을 풍경을 바라보곤 했다. 그 곳에 가면 사랑스러운 하늘과 별들이 호기심 많은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림에서 하늘을 둥둥 나는 노인은 ‘아이의 눈’을 가진 샤갈 본인 혹은 그의 할아버지일 것이다. 

 

샤갈에게서 비테프스크와 그의 뮤즈 벨라를 빼버린다면 무엇이 남을까. 자서전에 샤갈과 벨라의 운명적인 만남이 묘사되어 있다. 샤갈은 벨라의 친구 테아라는 여자와 사귀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의사인데 샤갈은 진찰실에 있는 긴 의자에 누워서 테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누군가가 진찰실에 들어왔다. 그런데 테아가 아닌 벨라였다. 샤갈은 그녀의 방문에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샤갈의 심장은 벨라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뜀박질하고 있었다. 그리고 심장이 샤갈에게 말한다. 저 여자가 바로 너의 아내라고. 친구의 친구를 사랑한 샤갈의 예언은 적중했다.

 

 

 

 

 

나는 그녀가 바로 나의 아내임을 예감했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과 눈. 그녀의 검은 눈은 얼마나 둥글고 큰가! 그것이 바로 나의 눈, 나의 영혼이다. (71쪽)

 

샤갈을 색채의 마술사라기보다는 ‘꿈의 마술사’라는 별명이 더 어울린다. 우리는 꿈을 꾸면 형상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흐릿한 형체만 느낄 뿐이다. 꿈의 장면을 컬러 TV를 보는 것처럼 볼 수 없다. 그래서 꿈을 묘사한 샤갈의 색채는 강렬하다. 그것은 샤갈 고유의 색이라기보다는 유대교의 영향에서 받은 강렬한 빨강, 깊은 심연의 파랑, 3월의 보리밭처럼 짙푸른 초록으로 자기화하고 형상화된 색채다. 파랗게 물든 파리의 하늘에서 꿈꾸는 암소를 통해서 샤갈은 시적 감성으로 자신이 꿈 꾼 세상으로 우리를 부른다. 샤갈의 그림은 양식과 유파를 뛰어넘어 세계인들에게 서정과 꿈, 순수성과 영적인 감동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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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4-07-08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오래 전, 강남역에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란
카페가 있던 기억이나. 이름이 특이해서 친구들이랑 몇 번 다녔었지.
커피맛도 괜찮았고. 결국 그것도 세월 속에 묻히고 말았지만.
10년 전쯤엔 샤갈전도 보러간 기억도 나네. 그림이 몽환적이고, 독특하지만
참 괜찮은데 말야. 책은 또 그렇지 않는가 보군.^^

cyrus 2014-07-09 15:18   좋아요 0 | URL
샤갈의 자서전이라고 해서 특별할 줄 알았는데 특별하기보다는 특이했어요. 자서전이 자신의 삶을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글쓰기라고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을 편집 없이 나열한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간혹 샤갈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었고요.. ^^;;
 
센세이션 - 결심을 조롱하는 감각의 비밀
살마 로벨 지음, 오공훈 옮김 / 시공사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 중에는 물리적인 개념을 묘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속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무겁다’를 ‘마음이 무겁다’ 또는 ‘입이 무겁다’와 같이 표현한다. 범죄 집단의 굴레에서 빠져나오면 ‘손을 씻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물리적 상태를 나타내는 낱말로 추상적 개념을 묘사하는 표현은 한둘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따뜻하게’ 느껴진다고 표현한다. 이런 사례는 마음이 존경이나 애정 같은 추상적 개념을 이해할 때 몸의 도움을 받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비교적 획득하기 쉬운 신체적 혹은 물리적인 개념으로부터 추상적인 또는 심리적인 개념을 체득하는 사회적 인지의 과정은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감각이나 움직임이 인지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상관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체화된 인지' 이론에 집중조명하고 있다. 감각은 신체와 외부 환경 사이의 연관성을 전제로 하여 신체 반응과 행동을 통해 심리적 정보를 밝히는 것이다. 

 

감정이 신체반응을 야기하고 이 신체반응이 행동을 만들어 내며 상대방이 그 행동을 통해 심리적 정보를 해석한다. 손이나 다른 신체 부위를 이용해 접촉했을 때 느끼게 되는 촉각은 사람들이 물리적인 세상을 경험하는 기본적이고 매우 중요한 통로 중의 하나이다. 유아기에서부터 사람들은 손을 이용해서 외부의 대상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고 외부 대상의 실체에 대한 느낌을 획득한다. 따라서 물리적, 환경적 요소가 우리의 행동이나 기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뜻한 물체를 만졌을 때 함께 있던 상대방에 대해 더 너그럽고 이해하고 다정하게 대하게 된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다. 추운 날에 뜨거운 찻잔을 손에 쥐면 손뿐만 아니라 마음도 따뜻하게 하는 심리적 효과를 증명했다.

 

윌리엄스 박사팀은 대학생 41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뜨거운 커피가 든 컵을, 다른 그룹에는 차가운 커피가 든 컵을 일정 시간 들고 있게 했다. 그런 다음 가상의 인물을 설정해 성격적 특징에 대한 정보를 학생들에게 주고 각자 그 인물의 성격 각 요소에 대해 평가해 보게 했다.

 

실험 결과, 따뜻한 컵을 들고 있었던 학생 그룹은 차가운 컵을 들고 있었던 학생 그룹보다 가상의 인물을 더 너그럽고 사교적이고 성품이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성격적 특징은 심리학적으로 따뜻한 성격의 특징으로 간주되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성품의 따뜻함과 큰 상관관계가 없는 정직성, 매력도, 힘 등에 대한 평가는 두 그룹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체화된 인지' 이론은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접촉이 우리의 감각을 조절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어릴 적에 엄마의 약손으로 배앓이가 치유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뒷목이 아프면 자연스레 손을 얹듯 아픈 곳을 어루만지는 것은 치유를 위한 인간의 본능이다. 접촉은 말보다 따뜻한 몸의 언어다. 태어나자마자 충분한 접촉을 받은 아이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안정된 애착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자신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인간은 건강할 때는 보살핌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독한 고독에 빠지거나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소진되어 혼자 힘으로 일어서기 어려울 때 비로소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이때 누군가가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고 일어나게 된다.

 

몸은 해결되지 않은 감정 응어리를 담아 두는 저장소다. 응어리를 제때 풀지 않으면 몸속 어딘가에 쌓여 있다가 신체 통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좋지 않은 감정은 바로 풀어 버려야 한다. 신체 감각은 은유적 표현을 구체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화가 나서 마음으로 억누르다"라는 문장처럼 우리는 실제로 좋지 않은 감정을 마음으로 조절하고, 그것을 담아둔다. 이런 과정이 반복이 되면 화병이 생길 수 있다. 정신 건강뿐만 아니라 몸 건강도 해로워진다. 유대교 전통 중에 새해를 맞이할 때 작년에 지은 죄나 안 좋은 감정, 기억과 관련된 물건이나 그것을 상징하는 음식 조각을 주머니에 담아 물속으로 던져버리는 것이 있다. 실제로 부정적인 감정을 글로 기록하여 편지 봉투에 밀봉하거나 그것을 밖으로 내다버리면 부담감을 덜 수 있다. 은유적 표현을 구체화시킨다면 안 좋았던 기분이 풀리는 것이다.

 

심리학을 인간의 마음이나 성격을 규명하는 학문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심리학 실험사례가 일상에 적용한다고 해서 100% 결과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신력 있는 실험기관에서 증명된 실험사례도 재연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실험 과정에 다양한 변수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체화된 인지에 관한 연구는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분야다. 몸과 감각 사이의 상호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심화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지금까지 소개된 실험사례들은 우리 인간의 일상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내용으로 설명하는데 용이하다. 심리학은 단지 과학적 연구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현상들을 설명하고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행동들 안에, 흔히 듣고 넘기는 말들 속에도 심리적 기제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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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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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상이다. 동시에 희망이며 미래이다. 그것에 동의반복이거나 비슷한 말은 바로, ‘청춘’이다. 20대 청춘은 빛나는 시절이라지만 사실 모든 것이 명확하지 않는 안개의 시기다. 가능성이라는 희망의 언어가 청춘을 감싸지만 정작 그 가능성보다 불확실한 미래와 변화하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도 고민과 방황은 젊은 날의 특권이자 족쇄다. 청춘들은 자신이 세상에 나온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남들과 다르게 살 수 있는지, 부조리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되묻는다. 녹록치 않은 세상과 부딪치고 깨지면서 열정은 사그라지고 어느 날엔가 현실과 타협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의 청춘이나 젊음은 이유 없는-기성세대들의 몰이해에서 나온 단순한 평가가 대부분인-반항이거나, 방황하고 불안전하며, 치유 극복 불가능한 쾌락의 모습들로 그려진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자.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자신의 나이에서 완전하고 만족스런 삶의 모습을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더군다나 스스로의 날개를 달지도 못하고, 또는 방향성을 깨닫지 못한 그들의 삶에 대해 어떤 근거로 방황이나 반항이나 불안정이란 단어를 붙일 수 있겠는가? 중요한 건 우리는 누구나 그 시기를 거쳤으며, 또 누구나 그 시기를 거쳐 우리가 된다는 것.

 

“청춘은 아름답다”는 식의 청춘예찬은 결코 식상해질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어떤 낯두껍을 하고 있어도 청춘은 한없이 투명에 가깝다. 누가 청춘을 비하해도 그건 진심이 아니다. 청춘은 그 이름만으로 가슴을 설레게 한다, 머리끝까지 피를 역류시키게 만든다, 식은 심장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것이 바로 청춘이라는 이유밖에 없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통해 숱한 경구로 장식된 ‘청춘’의 이름은 시대와 사회상을 반영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 일정 시기의 청춘을 특정한 말로 규정하고픈 욕망이 꿈틀거렸다. X세대, N세대, W세대, 등등 청춘은 시시각각 다른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무한한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각종 문구는 카멜레온처럼 수시로 바뀌는 청춘의 빛깔을 대변한다.

 

그런데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든 규정짓거나 정의하는 것과 별개로 정체성은 청춘의 한 페이지에 빼곡하게 들어찬 화두다. 끊임없이 자신과 주변을 되묻는 과정은 통과의례이며 위태로운 외줄타기 또한 타당한 수순이다.

 

"여전히 삶이란 내게 정답표가 뜯겨나간 문제집과 비슷하다.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게 정말 맞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151쪽)

 

나는 정답 비슷한 것도 본적이 없다. 사실은 그런 비슷한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듯하다. 부끄럽지만 먼 앞날이나, 뭔가 대단한 것들을 고민하면서 살지 않았던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해서 첫 학기 중간고사를 볼 때였다. 당시 나는 장학금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좋은 성적이 필요했다. 논술형 필기시험에 자신이 있던 나였기에 첫 시험의 결과에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교수님께 직접 찾아가 채점 결과 반영이 궁금해서 정중하게 질문했다. 확인한 결과, 나의 답안지가 논리성이 떨어지고, 독창적인 나만의 생각이 아닌 전공 책에 있는 내용 위주로 써서 감점 처리가 되었던 것이었다. 답은 맞으나 그것을 도출하는 과정이 틀린 것이었다. 그 때에야 처음 알았다. 정답만 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 새삼스러운 진리를 나의 장학금과 바꾸고서야 알게 되었다.

 

사실 결과보다 그 과정이 기억에 더 뚜렷한 경우가 의외로 꽤 많다. 얼굴과 이름은 희미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며 숨 막히게 애틋했던 순간들의 기억들과 수고들은 여전히 뚜렷할 수 있다. 무언가를 이루려 쏟아 부었던 어느 순간들이 사실은 삶의 거의 모두일 수 있다.

 

추억되지 않으면 청춘이 아니다. 청춘에 관한 이야기가 열에 아홉, 아련한 후일담의 형식을 입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랑이 진행된 시점과 추억되는 시점 사이, 그 시간적 이격에 의해 불처럼 뜨거웠던 감정은 무심히 휘발되고, 의식의 인화지에 남는 건 기갈난 현실에 의해 윤색된 과거의 빛나는 잔해들이다.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우는” 바로 그 청춘이 회고를 통해서만 존재하는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이상은도 노래하지 않았나.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아마도 청춘의 흔적이 점점 희미해지고 직장인이 되었을 때 진짜 어른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어른이 되었고 어느 날 자신이 자라는 만큼 이 세상 어딘가에는 허물어지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아무리 단단한 것이라도, 제 아무리 견고한 것이거나 무거운 것이라도 모두 부서지거나 녹아내리거나 혹은 산산이 흩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이 시간의 침식 작용 앞에서 망연자실하거나 과거에 대한 그리움에 허기를 느낄 때, 우리는 그 때를 어른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른’은 무엇으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이미 청춘의 꿈과 희망은 다 사라지고 그 어느 것에도 우리의 열정을 퍼부을 수 없는데 이제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나? 믿는 것이야말로 어리석다고 믿으며 그것도 아니면 여전히 돌이킬 수 없는 청춘의 열병에 몸살을 앓으면서 김연수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란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고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는 존재다.”

 

김연수가 모은 청춘의 문장들은 청춘에 관한 예찬인지,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아쉬움 섞인 푸념인지 모호하다. 만듦새는 나쁘지 않다. 빛나는 청춘의 잔유물을 맹렬하게 기억하고 채워 넣는 김연수의 노력이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나고 보면 그때가 ‘푸르고 싱싱한 순간’이었음을 안다. 그러나 젊음의 한때는 대부분 고통스럽다. 슬픔을 발로 차며 거리를 쏘다니고 저녁이면 쓸쓸한 어둠뿐이어서 늘 괴롭다. 아, 한심한 내 청춘. 세상은 절벽처럼 버티고 서 있는데 욕망은 웃자라서 갈 곳 몰라 서성인다.

 

그러나 김연수가 풀어낸 청춘의 다채로운 모습은 우리의 과거진행형이며 현재진행형이고 미래진행형이다. 청춘 특유의 설렘이 잊히는 순간은 가장 고통스럽다. 『청춘의 문장들』은 그 설렘을 일깨워준다. 그 젊음을 한없이 부러워하는 이들이 많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1968년 프랑스에서 학생운동이 극에 달했을 때, 학생들이 시가에 쳐놓은 바리케이드 안쪽에는 여러 낙서가 씌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Ten Days of Happiness’라는 글귀도 있었던 모양이다. 열흘 동안의 행복.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살아가거나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청춘의 세월은 행복하다. 청나라 사람 장호도 비슷한 글을 남겼다.

 

“꽃에 나비가 없을 수 없고, 산에 샘이 없어서는 안 된다. 돌에는 이끼가 있어야 제격이고, 물에는 물풀이 없을 수 없다. 교목엔 덩굴이 없어서는 안 되고 사람은 벽이 없어서는 안 된다.” (花不可以無蝶 山不可以無泉 石不可以無苔 水不可以無藻 喬木不可以無藤蘿 人不可以癖, 68쪽)

 

이때 ‘벽(癖)’이란 병적으로 어떤 대상에만 빠져 사는 것, 소위 ‘열흘 동안의 행복’을 구가하기 위해 어떠한 고통과 희생도 감수하는 것. 알고 보면 세상은 다 살게 되어 있다. ‘어른’들이 하는 말처럼 죽으란 법은 없다. 부와 명예도, 지복과 희망도 모두 한순간이지만 ‘벽’이 남아 그래도 이 세상을 살만하게 만든다.

 

우리는 안다. 비바람이 있기에 나무는 땅을 향해 뿌리를 더 깊이 박고, 가지는 태양을 향해 더 높이 뻗는다는 사실을. 힘든 방황일수록 그 끝에 깊은 통찰과 지혜가 따라온다는 진리를. 방황은 방황으로 끝이 아니라 성숙한 나 자신과의 만남으로 가는 과정이다.

 

‘내’가 ‘나’라는 사실조차 낯설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청춘의 그림을 그리는 시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내가 내 꿈을 꾸는 것이 비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 청춘은 여러 빛깔의 홍역을 치르면서도 질긴 생명력을 보유한 채 여러 굴레를 넘나든다.

 

스무 살 즈음에 겪은 그 모든 것들이 화인처럼 맘속에 새겨져 있기에 스물에 모든 삶을 살았다고 우리는 믿게 된다. 그렇지만 삶은 스물 이후로도 한참 계속되었고, 여전히 그 삶은 진행 중이다. 스물에 겪었던 모든 일들이 되풀이 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그 시절에 느꼈던 그대로의 삶이 지속되는 건 아니다. 더 깊어지고, 더 관대해졌으며, 더 충만해졌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것은 증명된다. 인생 스무 살은 계속되지만 결코 그때의 스무 살과 같을 수는 없다.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청춘의 시기에도 꿈, 이상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팍팍한 일상의 굴레가 수시로 젊음을 몰아세우는 한이 있어도 스스로 선택한 꿈의 색깔 앞에 꼬꾸라질 이유는 없어야 할 터이니. 이럴 때 공자의 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즐거워하되 음란하지 말며 슬프되 상심에 이르지 말자.” (樂而不淫 哀而不傷,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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