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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이션 - 결심을 조롱하는 감각의 비밀
살마 로벨 지음, 오공훈 옮김 / 시공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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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 중에는 물리적인 개념을 묘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속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무겁다’를 ‘마음이 무겁다’ 또는 ‘입이 무겁다’와 같이 표현한다. 범죄 집단의 굴레에서 빠져나오면 ‘손을 씻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물리적 상태를 나타내는 낱말로 추상적 개념을 묘사하는 표현은 한둘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따뜻하게’ 느껴진다고 표현한다. 이런 사례는 마음이 존경이나 애정 같은 추상적 개념을 이해할 때 몸의 도움을 받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비교적 획득하기 쉬운 신체적 혹은 물리적인 개념으로부터 추상적인 또는 심리적인 개념을 체득하는 사회적 인지의 과정은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감각이나 움직임이 인지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상관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체화된 인지' 이론에 집중조명하고 있다. 감각은 신체와 외부 환경 사이의 연관성을 전제로 하여 신체 반응과 행동을 통해 심리적 정보를 밝히는 것이다.
감정이 신체반응을 야기하고 이 신체반응이 행동을 만들어 내며 상대방이 그 행동을 통해 심리적 정보를 해석한다. 손이나 다른 신체 부위를 이용해 접촉했을 때 느끼게 되는 촉각은 사람들이 물리적인 세상을 경험하는 기본적이고 매우 중요한 통로 중의 하나이다. 유아기에서부터 사람들은 손을 이용해서 외부의 대상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고 외부 대상의 실체에 대한 느낌을 획득한다. 따라서 물리적, 환경적 요소가 우리의 행동이나 기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뜻한 물체를 만졌을 때 함께 있던 상대방에 대해 더 너그럽고 이해하고 다정하게 대하게 된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다. 추운 날에 뜨거운 찻잔을 손에 쥐면 손뿐만 아니라 마음도 따뜻하게 하는 심리적 효과를 증명했다.
윌리엄스 박사팀은 대학생 41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뜨거운 커피가 든 컵을, 다른 그룹에는 차가운 커피가 든 컵을 일정 시간 들고 있게 했다. 그런 다음 가상의 인물을 설정해 성격적 특징에 대한 정보를 학생들에게 주고 각자 그 인물의 성격 각 요소에 대해 평가해 보게 했다.
실험 결과, 따뜻한 컵을 들고 있었던 학생 그룹은 차가운 컵을 들고 있었던 학생 그룹보다 가상의 인물을 더 너그럽고 사교적이고 성품이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성격적 특징은 심리학적으로 따뜻한 성격의 특징으로 간주되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성품의 따뜻함과 큰 상관관계가 없는 정직성, 매력도, 힘 등에 대한 평가는 두 그룹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체화된 인지' 이론은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접촉이 우리의 감각을 조절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어릴 적에 엄마의 약손으로 배앓이가 치유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뒷목이 아프면 자연스레 손을 얹듯 아픈 곳을 어루만지는 것은 치유를 위한 인간의 본능이다. 접촉은 말보다 따뜻한 몸의 언어다. 태어나자마자 충분한 접촉을 받은 아이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안정된 애착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자신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인간은 건강할 때는 보살핌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독한 고독에 빠지거나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소진되어 혼자 힘으로 일어서기 어려울 때 비로소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이때 누군가가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고 일어나게 된다.
몸은 해결되지 않은 감정 응어리를 담아 두는 저장소다. 응어리를 제때 풀지 않으면 몸속 어딘가에 쌓여 있다가 신체 통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좋지 않은 감정은 바로 풀어 버려야 한다. 신체 감각은 은유적 표현을 구체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화가 나서 마음으로 억누르다"라는 문장처럼 우리는 실제로 좋지 않은 감정을 마음으로 조절하고, 그것을 담아둔다. 이런 과정이 반복이 되면 화병이 생길 수 있다. 정신 건강뿐만 아니라 몸 건강도 해로워진다. 유대교 전통 중에 새해를 맞이할 때 작년에 지은 죄나 안 좋은 감정, 기억과 관련된 물건이나 그것을 상징하는 음식 조각을 주머니에 담아 물속으로 던져버리는 것이 있다. 실제로 부정적인 감정을 글로 기록하여 편지 봉투에 밀봉하거나 그것을 밖으로 내다버리면 부담감을 덜 수 있다. 은유적 표현을 구체화시킨다면 안 좋았던 기분이 풀리는 것이다.
심리학을 인간의 마음이나 성격을 규명하는 학문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심리학 실험사례가 일상에 적용한다고 해서 100% 결과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신력 있는 실험기관에서 증명된 실험사례도 재연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실험 과정에 다양한 변수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체화된 인지에 관한 연구는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분야다. 몸과 감각 사이의 상호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심화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지금까지 소개된 실험사례들은 우리 인간의 일상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내용으로 설명하는데 용이하다. 심리학은 단지 과학적 연구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현상들을 설명하고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행동들 안에, 흔히 듣고 넘기는 말들 속에도 심리적 기제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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