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성 동서 미스터리 북스 110
존 딕슨 카 지음, 전형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골성』(Castle Skull)은 처녀작 『밤에 걷다』(로크미디어, 2009년)를 발표한 지 1년 뒤에 나온 존 딕슨 카의 두 번째 소설이다. 여기서도 『밤에 걷다』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파리 경시청 총감 앙리 방코랭(Henri Bencolin)과 그의 동료인 제프(Jeff Marle)가 사건을 해결한다. 『해골성』은 1989년에 일신서적, 1994년에 계림출판공사에서 아동용 버전으로 ‘해골성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 현재 구할 수 있는 정식판은 동서출판사가 1977년에 낸 것을 2003년에 동서미스터리북스 110번째로 재출간한 것이다.

 

『밤에 걷다』의 역자는 제프가 방코랭에게 존댓말을 쓰도록 대화체를 옮겼다. 방코랭은 제프를 조수처럼 대하는데 제프가 방코랭보다 나이가 어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반면에 『해골성』의 역자는 방코랭과 제프를 막역한 사이의 동료처럼 번역했다. 문득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궁금하다. 방코랭이 제프보다 나이가 많은 것인가, 아니면 두 사람은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 사이인가? 그리고 두 사람은 어떤 계기로 친하게 된 것일까? 『밤에 걷다』에서 화자인 제프는 방코랭의 생김새와 성격을 언급할 뿐, 자신이 방코랭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사실 제프의 성(姓)을 『해골성』에서 처음 알았다. Jeff Marle. 『해골성』에서 ‘제프리 마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소설의 주인공인 경시청 총감 이름은 ‘방코랑’으로 표기했다)그의 직업이 작가라는 사실이 소설에서 잠깐 언급되는데 그 외에는 더 자세한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어쩌다가 방코랭을 따라다니면서 그가 사건을 해결하도록 도울 뿐이다.

 

카는『해골성』으로 처녀작 『밤에 걷다』보다 괴기스러운 배경과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성공했다. 『해골성』을 읽어보면 해골성 주변 광경과 내부를 유령이 나올법한 공포 분위기로 조성하려는 작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카는 저 멀리서 보는 웅장한 옛 고성에서 거대한 해골 형상이 포착되는 것처럼 묘사했다.

 

 

“해골성이 눈에 띄었어요. 달이 높이 떠올라 해골성의 둥근 지붕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지요. 그 퀭한 눈, 뻥 뚫린 창문, 코처럼 기뿐 나쁘게 쑥 내밀어진 곳......” (41쪽)

 

 

해골성은 요기 서린 괴상한 마술을 선보였던 인기 마술사 메이르쟈(Maleger)가 소유한 고성이다. 그런데 메이르쟈는 불가사의한 죽음을 맞는다. 마인츠에서 코블렌츠로 가는 일등칸 기차에서 혼자 타고 있던 마술사는 순간 이동 마술을 한 것처럼 사라진다. 며칠 뒤에 라인 강에 변사체가 된 메이르쟈가 발견된다. 이 사건은 메이르쟈의 자살로 종결되었지만, 여전히 의문의 꼬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밀실 같은 일등칸에 혼자 있었던 메이르쟈가 어떻게 라인 강으로 나갈 수 있단 말인가. 달리는 기차 밖으로 나와 자살을 시도할 수도 없고, 심지어 일등칸에 들어올 수 있는 침입자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도 없다.

 

마술사의 죽음 이후로 그가 소유했던 해골성에서 기이한 사건이 발생한다. 메이르쟈의 유산 상속인 중 한 사람인 배우 마일런 아리슨이 온몸에 불이 붙은 채 해골성에서 떨어져 사망한다. 사람들은 마술사와 배우의 죽음이 해골성의 저주라고 여기기 시작한다. 15세기 때 세워진 해골성의 성주가 마술사였는데 그가 아리슨처럼 불에 타죽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성에 성주의 영혼이 돌아다닌다는 소문도 떠돌기도 한다. 이러한 소문과 전설은 해골성과 관련된 두 사람의 죽음을 불가사의한 힘이 개입된 미스터리한 범죄 사건으로 만들어 놓는다.

 

『해골성』의 또 다른 재미는 방코랭과 폰 아른하임 남작과의 추리 대결이다. 추리물에서 독자들이 제일 흥미진진하게 보는 것이 주인공인 탐정의 라이벌이 등장해 추리 솜씨를 뽐내는 대결 구도. 이런 이야기의 요소는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 몰입하게 만든다. 또 주인공 탐정을 정말 좋아하는 독자라면 주인공이 직접 사건을 해결하는 동시에 라이벌도 완벽하게 제압해버리는 속 시원한 해피엔딩을 원하기도 한다. 폰 아른하임 남작은 베를린 경찰국의 주임경장이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스파이전에서 적국이 내세운 방코랭과 자주 맞붙을 정도로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을 대표하는 머리 좋은 두 고위급 경찰이 해골성에서 만나 추리력이라는 지적인 무기로 대결을 펼친다. 두 사람은 성격이 다를 뿐만 아니라 사건을 푸는 과정도 약간에 차이가 있다.

 

남작은 해골성 살인 사건을 제 손으로 직접 해결하여 자신의 추리력이 방코랭보다 한 수 위임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어둡고 무시무시한 해골성 내부를 꼼꼼하게 살필 정도로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선다. 반면, 방코랭은 자신의 존재감을 최대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조용히 사건을 풀기 위한 단서를 찾는다. 그는 자신을 향한 남작의 질투심을 내심 알고 있다. 그러면서 남작이 사건을 푸는 과정을 쭉 지켜본다. 가끔 방코랭이 남작의 추리력에 태클을 걸면서 두 사람 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런데 냉철한 방코랭의 매력(?)에 빠진 독자라면 추리 대결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방코랭은 해골성 살인사건 해결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남작을 위해서 그의 추리력이 틀린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봐주는 아량을 베푼다. 『밤에 걷다』에서 깐깐하면서도 상대방 앞에서 약간 잘난 척하는 방코랭의 ‘까칠남’ 이미지가 한풀 꺾였다.

 

『해골성』의 역자는 해설에서 카의 작품 속에 볼 수 있는 신비적 취향이 마음 약한 독자가 정신을 잃을 정도라고 과장되게 표현했다. 카의 작품 속 오컬트적 분위기에 매료될 수는 있어도, 심신 노약자나 임산부의 정신 건강에 해칠 정도는 아니다. 사실 카의 처녀작을 읽어 본 독자로서 『해골성』은 전작보다 으스스한 분위기를 발산하는데 성공했다고 본다. 글을 쓰는 내내 커피를 연달아 마시고, 줄담배를 피우면서 고민했던 젊은 작가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데 카가 너무 배경에만 치중한 탓일까. 탐정으로서의 방코랭의 매력과 그 능력치가 떨어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두 번째로 나온 방코랭 시리즈라면 개성 있는 탐정의 성격을 좀 더 뚜렷하게 묘사했어야 한다.

 

 

 

 

 

※ 이 책에 동명의 작품인『해골성』뿐만 아니라 카의 단편 「뛰는 자와 나는 자」(Strictly Diplomatic)도 수록되었다. 이 단편소설은 1947년에 발표된 『Dr. Fell, Detective, and Other Stories』에 실려 있다. 사실 카의 단편은 장편에 비해 많이 소개되지 않아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한궤도 -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Youtube)

 

 

 

책 한 권의 수명은 얼마일까? 내 서가에 마흔 살을 넘긴 큰형님이 잠을 자고 있다. 1970년대에 나온 세계 단편 문학 전집이다. 국한문 혼용에 세로쓰기로 되어 있어 1970년대의 출판 형식을 간직하고 있다. 책은 세월을 먹는다. 플라스틱 디스켓이나 항상 반짝이는 CD와 달리 오래된 책은 누렇게 변한다. 그 누런색의 정도가 책의 ‘나이’가 많고 적음을 뜻한다. 우리가 나이를 먹으면 흰머리가 듬성듬성 자라나고, 주름이 생기는 것과 비슷하다. 종이로 된 큰형님의 몸도 누렇게 변했고, 얼굴에 핀 검버섯처럼 곰팡이가 슬었다.

 

아버지가 총각 때 책을 파는 일을 잠깐 한 적이 있었다. 그중에 이 세계 단편 문학 전집도 원래 팔아야 하는 책인데 주인을 만나지 못해 우리 집 서가에 오랫동안 눌러앉게 되었다. 책을 잘 읽지 않은 아버지에게 외면을 받았다. 그러다가 책을 좋아하는 내가 먼지와 거미들이랑 놀고 있는 큰형님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세계 단편 문학 전집은 총 22권으로 구성되었다. 시중에 나오는 단편 문학 전집을 비교하면 꽤 많은 권수이다. 단순히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세계 유명 작가들의 단편소설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유럽, 미국,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등 각 대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단편소설을 엄선했다. 비록 나온 지 오래된 헌책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생소한 작가가 쓴 작품들도 꽤 있어서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 이 전집 덕분에 나는 세계문학의 창을 스스로 열어 눈앞에 펼쳐진 문학의 향연을 볼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오래된 책, 즉 헌책에 대한 애정도 싹 틔우게 되었다.

 

헌책을 찾는 사람들은 책 속에 남은 빛바랜 흔적도 소중하게 여긴다. 전 주인의 심중이 드러난 한 줄의 메모, 밑줄 긋기 그리고 소중한 사람에 대해 그리움과 안부를 종이책에 띄어 전하는 짧은 편지글까지. 이런 흔적들은 책과 독자들 간의 대화이다. 책의 고유한 고고학적 연대기 속에 그대로 남아있는 오래된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손자국 하나 없는 새 책에서는 찾을 수 없는 묘미다.

 

 

시간이 그대로 멈춘 것 같은 책방은 지식의 보고가 숨겨져 있는 거대한 책의 광맥이다. 헌책 마니아들은 흔히 절판된 책을 구하거나 전집 1질을 모으는 도전을 한다. 크로스 워드 퍼즐을 풀듯 이 책방 저 책방에서 책을 사서 짜 맞추다 보면 대개 마지막 한두 권이 난관이다. 애초에 이 책방에 없었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경쟁자가 선수를 썼을 것이다. 끝내 찾지 못한 책은 영영 만나지 못하는 미지의 존재가 된다. 그렇지만, 발굴자는 포기하지 않는다. 지금도 책방이 밀집된 지역에 가면 세상에 잊힌 책을 찾으려는 애서가들을 만날 수 있다.

 

 

 

 

 

 

 

 

 

 

 

 

 

 

 

 

책 속에 담긴 지식은 흐르는 물과 같다. 전시품으로 서가에 꽂혀있을 때는 박제돼 있다가도 필요한 사람들 사이로 흐르면 다시 살아 숨을 쉬게 된다. 발터 벤야민은 모든 사물 속에 어떤 최고의 생(生)이 들어있다고 생각했다(『아케이드 프로젝트』 N 1a, 4). 그가 말하는 ‘어떤 최고의 생’이란 사물의 의미를 담고 있는 고유한 정체성을 뜻한다. 헌책도 마찬가지다. 그 속에 한때 흐르다가 멈추어버린 지식이 옹달샘처럼 고여 있다. 옹달샘이 너무 오래되면 사람이 마실 수 없는 썩은 물만 남는다. 헌책 또한 시대가 변화하면서 쓸모없어진 낡은 지식을 모아놓은 무용한 사물이 된다.

 

그렇지만 진정한 헌책 마니아 또는 헌책을 좋아하는 수집가는 시대가 외면한 지식이 나열된 활자 속에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줄 안다. 누군가에게는 쓸모없는 책이 헌책 마니아나 수집가에게는 새 책으로 보인다. 손으로 조심스럽게 오랜 세월동안 방치된 지식의 옹달샘에 적셔본다. 마실 수 있는지 직접 물 한 모금 목을 축인다. 식용이 가능하다면 지식에 목마른 헌책 마니아에게는 좋은 지식의 옹달샘을 발견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일은 새것을 갖는 게 아니라 오래된 것을 새롭게 만드는 일이다. 새 주인이 된 내가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버리면 아무리 오래된 것도 새것이 되었다. 내 서랍에 쌓여 있는 수집품들이 그것을 잘 보여주었다.

 

(벤야민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121쪽)

 

 

벤야민은 물건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 궁핍한 생활고를 겪어도 수집 취미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모은 수집품은 대부분 장난감, 그림엽서 그리고 책이었다. 오래된 것을 새것으로 만드는 것. 벤야민은 쓸모없는 사물 속에 ‘최고의 생’을 발견할 줄 알았고, 그것들과 진솔한 대화를 시도한다. 그는 수집품을 설명하는 간단한 내용을 캡션 형식으로 써붙이기도 했다. 그가 모은 수집품은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가치에만 중점을 둔 것이 아니다. 벤야민을 자신의 수집품을 ‘하나의 풍경이나 운명의 무대인양 연구하고 사랑’했다. (《Walter Benjamin's Archive》)

 

 

 

 

 

 

 

 

 

 

 

 

 

 

 

 

그는 수집품을 통해 자신만의 경험과 세계를 상기한다. 그 속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새로운‘하나의 풍경’이 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물 속에 그대로 간직한 지식의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벤야민은 자신을 사물 속으로 밀어 넣는 수집가다.

 

 

나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일들을 온통 물들이고 있는 우연과 운명은 바로 이러한 책들의 혼란 속에서 그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나의 서재 공개’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벤야민은 책 속에 자신이 필요한 지식만 발견한 것이 아니다. 책과 관련된 과거의 경험들과 추억들을 떠올린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어린 마르셀이 마들렌 한 조각을 입으로 베어 물자 우연하게 어린 시절의 추억에 빠지는 것처럼. 이렇듯 벤야민의 수집품은 이 고독한 수집가를 과거의 일들이 온통 물들인 하나의 풍경으로 초대해주는 타임머신이 된다.

 

안도현 시인은 손때를 묻힌 사람의 간절함이 묻어 있어 손때 묻은 물건들이 아름답다고 했다. 물건을 소중히 여길수록 손때가 많다. 벤야민이 평생 수집품을 모은 이유는 파편화된 소중한 추억을 모으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것들을 한 번에 모으면 세상의 풍경 전체를 완성한다. 자신만의 수집품 세계로 커다란 세계를 다시 만드는 것이다. 쓸모없는 물건에 대한 추억이나 향수는 이기심에 찌든 우리에게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감정을 갖게 한다. 잊힌 과거가 되살아나서 현실처럼 느껴지는 것. 이것이 바로 사물 속에 들어있는 최고의 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득 암울한 생각이 찬바람 한 줄기처럼 살짝 내 마음에 스친다. 세월이 흘러가고 내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내 앞에서 살아 숨 쉬던 수집품 속 최고의 생도 끝이 난다. 과연 내가 죽으면 누가 이 쓸모없는 사물들을 알아줄까? 망각과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종착점. 자꾸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이런 걱정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과연 그때까지 나는 책을 사고 모으는 동안 무엇을 찾게 될까? 벤야민처럼 나만의 세계를 찾고 싶다. 오랜 세월 동안 풍화되어 닳아 산산이 부서져 버린 내 생의 반쪽, 내 과거. 자꾸 무한궤도의 노랫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내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을까? 나는 책방에서 지나간 세월 속에 잃어버린 내 생의 반쪽을 찾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14-12-10 0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프로 공감가는 글이네요. 제가 요즘 느끼는 생각들과 비슷해요. 저도 오래되어 빛이 바랜 책을 갖고 싶어요. 가장 궁금한 것은 계몽사와 계림사에서 나왔던 어린이문고요. 그 책들을 다시 한번 보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 것 같아 그리워요.

cyrus 2014-12-10 13:05   좋아요 0 | URL
저는 계몽사에 나온 디즈니 만화책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어요. 가끔씩 읽어보면 디즈니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옛날에 읽은 책을 자주 보지 않지만,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창고 같은 방에 따로 보관합니다.

영양갱 2014-12-27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계몽사 어린이 문고..아..추억돋네요..
 
This is Dali 디스 이즈 달리 This is 시리즈
캐서린 잉그램 지음, 앤드류 레이 그림, 문희경 옮김 / 어젠다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Beenzino - Dalí Van Picasso (Youtube)

 


 

 

 

 Scene #1  "I am a genius artist"  

 

한 예술가에게 ‘천재’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다소 위험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 사람’만은 예외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에게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아니, 달리 본인은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했다. 달리는 자서전의 서문을 “나는 천재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전 방위 예술가. 현대예술의 혁명적 전환점이었던 초현실주의 운동을 시각언어로 구체화한 대표적 화가. 무의식의 세계를 회화에 도입하고 회화를 통해 정신분석학을 탐구한 미술의 프로이트. 보통 사람에게 서라면 곧장 광기로 치달았을 내밀한 정신적 모순들과 신경증을 예술로 승화시킨 미치광이. 순수미술에서부터 영화, 패션, 광고, 보석디자인, 심지어 전 세계인들의 혀에 추파를 던지는 추파춥스 사탕에 이르기까지 예술과 삶을 넘나든 창조적 광기가 그를 그렇게 불리도록 했다. (추파춥스 로고를 달리가 만들었다)

 

왜 달리는 뻔뻔할 정도로 자신을 천재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이 궁금증을 풀려면 특이한 천재의 삶과 미술 세계를 알아야 한다. 『This is Dali』는 달리에 대해 자상한 안내서 역할을 하는 책이다. 책표지에 두 눈을 부릅뜬 채 멋지게 말려 올라간 콧수염을 뽐내는 달리가 독자들을 노려본다. 달리의 눈동자에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뿜어내는 천재의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는 눈으로 우리에게 말한다. "This is Dali!". 이것이 바로 ‘천재’ 달리다! 그 자체가 'Paranoia'(편집증적 망상)다. 제정신이 아닌 듯한 달리의 표정 때문인지 책 제목이 도발적으로 다가온다.

 

 


 Scene #2  “죽은 형을 보며 난 자랐어.”

 

 

 

 

 

이 책은 우선 재미있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달리의 도발적인 행동과 기상천외한 일화들이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데다 그래픽 노블을 보는 느낌이 나는 일러스트가 정말 재미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초현실주의 화가, 혹은 자신이 ‘천재’라는 사실을 미술의 ‘미’ 자도 모르는 독자들에게 세뇌시키려는 달리의 표정에 기죽을 필요 없다.

 

어렸을 때부터 달리는 남달랐다. 그의 부모는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장남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슬픔을 잊기 위해 둘째 아들 달리를 귀하게 보살폈다. 그렇게 달리는 장남 아닌 장남처럼 키워졌다. 형은 죽어서 이 세상에 없었지만, 여전히 동생을 늘 괴롭히는 존재였다. 형의 그림자는 늘 달리 곁을 따라다녔다. 마치 두 사람이 한 몸으로 붙어 있는 샴쌍둥이처럼. 부모는 달리가 죽은 장남처럼 커 주길 바랐다. 어린 달리는 강제적으로 죽은 형 코스프레를 하는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부모님은 달리라는 이름의 나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무덤으로 들어가 영원히 잠들어 있는 형을 더 사랑하는 것일까? 그냥 형이 아닌 살바도르 달리, 오로지 ‘살바도르 달리’를 사랑해주면 안 될까?’ 이때부터 달리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 ‘살바도르 달리’가 되고 싶어 했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달리’라는 자신만을 바라보고, 사랑해주는 것. 달리는 ‘세상의 배꼽’(중심)이 되고 싶었다. 일단 달리는 집안의 왕이 되었다. 그는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했다.

 

달리는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고 느끼기 위해 온갖 기행을 일삼았다. 자기중심적이면서도 상대방을 향한 ‘돌직구’ 같은 독설도 서슴지 않았다. 프랑스 인상파를 강조하는 예술원의 교육에 반기를 들거나 자신을 가르치고 작품을 평가하는 신임 교수의 자질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예술원의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결국, 자신감이 충만하다 못해 넘칠 지경이었던 예술원의 시한폭탄은 자폭하고 말았다. 달리는 퇴학 처분을 받아 예술원에서 쫓겨나게 된다.

 

 


 Scene #3  “콧수염 한 올, 결국엔 이런 게 돈이 될지 몰라”
 
기묘하고 유별난 달리의 행동은 초현실주의 그룹에 가입하여 화가로서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할수록 점점 심해졌다. 특히 초현실주의 그룹의 우두머리이자 작가인 앙드레 브르통은 달리의 행보를 달갑게 보지 않았다. 브르통은 자신이 흠모하는 공산주의 지도자 레닌을 비하하고, 히틀러를 지지하는 그림을 그릴 정도로 파시스트에 가까운 가치관을 가진 달리를 무척 싫어했고, 정면으로 비난했다.

 

 

 

 

 

살바도르 달리  「삶은 콩으로 만든 부드러운 구조물 : 내전의 고통」 1936년

 

 

달리가 1936년에 완성한 「삶은 콩으로 만든 부드러운 구조물 : 내전의 고통」은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더불어 스페인 내전의 공포와 비극을 묘사한 작품으로 알려졌다. 달리는 이미 스페인 내전을 예감하고 「내전의 고통」을 그리기 시작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스페인은 달리의 작품 설명대로 ‘괴기스러운 혹 모양의 팔다리로 제 목을 졸라 죽이는 망상에 빠져 서로를 잡아 뜯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이런 비극적인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달리가 스페인을 잡아 뜯는 파시스트 정권에 저항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스페인 내전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기회주의자였다. 처음에 혁명군을 옹호했지만, 돌연 파시스트 정권 편으로 돌아섰다. 이런 달리의 태도는 스페인 미술계와 초현실주의 그룹 동료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세상의 왕답지 않은 달리의 굴복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세상의 왕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의 곁에는 자신의 천재성을 알아본 갈라가 있었다. 달리가 ‘세상의 왕’이라면 갈라는 여왕이다. 아니, 그 누구도 감당하기 힘들다는 이 괴짜 왕을 자신의 손바닥 안에 가지고 노는 ‘킹왕짱’이다. 달리보다 열 살 연상인 갈라는 그를 어린애 취급했고, 마치 어린 아들을 키우는 것처럼 대해줬다. 그러면서도 세상의 왕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했다. 갈라는 달리의 상징인 콧수염 한 올을 30만 달러(우리 돈으로 3억 3450만 원 정도)로 책정하기도 했다. 달리 못지않게 돈을 엄청 밝혔다. 달리는 자신의 작품으로 얻은 수익을 무조건 갈라에게 바쳤다. 달리는 갈라를 위해 성(城)을 사주었는데 갈라가 이곳에서 마음껏 애인을 만날 수 있었다. 반면 달리는 함부로 갈라가 사는 성에 방문할 수 없었다. 여왕님의 초대장을 받아야 했다. 또 달리는 매번 성에 찾아가면 갈라를 위한 선물을 챙겼다. 

 

 


 Scene #4  "아마 누군간 나를 미쳤다고 보겠지만

                  난 그런 걸 상관 안 하는 성격이지." 

 

 

 

 

 

 

달리가 고안한 초현실주의적 물건

 

달리는 자신이야말로 ‘초현실주의자’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정의내리기는 엄청 좋아하는 것 같다) 달리 자신이 직접 내린 정의인 ‘나는 천재다’, ‘나는 세상의 배꼽이다’와 함께 ‘망언 3종 세트’를 이룬다. 궤변으로 들리지만, 정말 달리는 초현실주의 화가였고, 살아가는 방식 또한 초현실주의였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거짓(과대망상)인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살았다. 달리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달리는 무의식과 의식세계의 육체적 장벽을 허물었다. 말(馬)이 여인의 나체로 보인다든가, 하나의 풍경이 여러 개의 얼굴로 비친다든가 하는 기상천외한 다중 이미지를 좋아했다.

 

『This is Dali』는 독자들에게 그동안 달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여러 단편 지식과 다양한 이미지들이 완전히 틀렸음을 보여준다. 책에 달러의 전반적인 삶에 대한 내용이 작품 설명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달리의 단점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제목이 『This is Dali』가 아니라 달리를 은근히 비판하는 ‘Diss(디스) is Dali’가 어울린다. 예컨대 열정적인 예술가적 기질의 사랑으로 이어진 달리와 갈라의 관계는 낭만과 거리가 멀다. 두 사람 다 정상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연애를 했다. 그냥 아예 대놓고 바람을 피운다. 그들은 ‘예술’이라는 이름 앞에서만 연인이었을 뿐이다. 틀에 박힌 달리의 그림 서명처럼(달리는 항상 작품에 ‘갈라 살바도르 달리’라고 서명했다) 말이다.

 

달리는 그림으로 세상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세상은 그를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와 더불어 ‘20세기의 천재’로 인정했다. 달리는 특이한 천재이다. 괴팍한 취향과 자유분방한 사고를 지닌 ‘20세기의 돌아이’다. 자신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이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해줄 것을 원했다. 달리는 ‘Famous artist’이자 ‘Fuckin artist’였다. 당신은 이 괴짜 예술가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누구든 『This is Dali』을 읽는다면 놀라겠지. 흠칫

 

 

 

 

 

※ 「삶은 콩으로 만든 부드러운 구조물 : 내전의 고통」의 영문 원어명은 ‘Soft Construction with Boiled Beans: Premonition of Civil War’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작품은 원어명을 그대로 번역한 ‘내전의 예감’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프카의 『소송』에 나오는 주인공 요제프 K ‘고소왕’이다. 이 소설에서 K는 특이하게 자신을 거짓 명예훼손죄로 소송을 제기한다. 본인이 자신을 고소한다? 원래 고소왕은 강변(강용석 변호사)의 별명이었다. 강변은 개그맨 최효종을 집단모욕죄로 고소하는 것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소송에 휘말리게 되면서 ‘고소왕’이라는 캐릭터를 얻게 되었다.

 

K는 아무런 죄도 없는데도 갑작스럽게 체포당한다. 자신이 체포되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상한 소송 때문에 K는 자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쳐진다. 결국 K는 처음부터 법원으로부터 고소를 당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생생활을 미룰 정도로 소송에 집착한다.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한 K의 투쟁은 법원에 출두하여 자신이 고소되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K는 ‘무죄방면’이라는 불가능한 목표를 향한 갖가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뷔르스트너 양에게 자신을 폭행죄로 허위 고소하라고 제안을 하며 변호사 홀트의 간병인인 레니를 자신의 조력자로 나서도록 하는 데 성공한다. 

 

 

 

 

 

 

 

 

 

 

 

 

 

 

 

 

 

조르조 아감벤은 K가 ‘거짓 고발자’를 뜻하는 'Kalumniator'의 첫 글자라고 해석한다. K를 고발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K 자신이었다. 처음부터 K에게 죄는 없었다. 그런데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려는 1년간의 투쟁은 반대로 법적 처벌을 받을만한 죄를 양산했을 뿐이다. K는 주변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회유하고, 뇌물로 법조인들을 매수한다. 이러한 K의 부정적인 행동은 자신을 스스로 모함하는 꼴이 된다. 무죄인 상태에서 거짓으로 자신을 고소하는 K는 점점 소송에 집착할수록 고소 받을만한 죄를 하나씩 저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죄를 증명할 수 있는 판결을 회피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K는 떳떳하다. 자신의 무죄를 확신한다. 교도소의 신부 앞에서 자신은 완전히 결백하다고 주장한다.

 

 

"당신은 죄가 없나요?"
"네."
K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는 게 정말 기뻤다. 특히 그것이 사적인 개인을 상대로 하는, 그러니까 어떠한 책임도 뒤따르지 않는 것이라서 더욱 기뻤다. 그에게 그렇게 노골적으로 물어본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이 기쁨을 만끽하려고 그는 덧붙여 말했다.
"나는 완전히 결백해요." (『소송』, 191~192쪽)

 

 

아감벤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죄인 자신을 스스로 고소하는 K는 희극적이다. 이것이 바로 카프카적 상황(Kafkaesk)이다.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해 K가 선택한 방법은 자기를 고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K는 결백한 인물이 아니었고, 결백함을 증명하는 데 실패했다. 처음부터 허위로 자기 고소를 시도했고, 이러한 투쟁의 과정 속에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죄를 저지른 K의 판결은 법원이 아닌 채석장에서 진행된 ‘개 같은’ 처형이다.

 

 

 

 

 

 

 

 

 

 

 

 

 

 

 

 

막스 브로트는 K를 카프카를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카프카가 살아있다면,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브로트의 관점을 의아하게 생각하거나 반박했을 것이다. 카프카에게 브로트는 애증의 관계이다. 자신의 유고들을 불태워 없애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데다가 작품을 엉뚱하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카프카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눌 정도로 친분이 깊었던 구스타브 야누흐는 카프카에게 죄의 본질이 무엇인지 질문을 한다. 여기서 『소송』에서 K가 저지른 죄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당신은 무엇을 죄라고 부릅니까?”
“죄는 자신의 사명을 피하는 거예요. 오해, 초조 그리고 게으름 등이 죄예요.”

(『카프카와의 대화』(문학과지성사), 390쪽)

 

 

K는 무죄임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서 ‘일상’이라는 삶의 보편적인 사명을 피한다. 바쁜 은행 업무 때문에 소송 처리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 K는 초조해 한다. 어떻게든 휴가를 신청해서라도 소송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

 

 

지금 이런 상황에 은행 일을 보아야만 한단 말인가? - 그는 책상 위를 쳐다보았다. - 고객들을 들어오게 해 상담을 해야만 할까? 소송은 계속 진행되는 중이고, 저 위 다락방에선 법원 관리들이 그의 소송 서류들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는 이렇게 은행 업무나 처리해야 하는가? (『소송』, 170쪽)

 

 

K는 법과의 투쟁을 통해서 자신의 무죄, 즉 결백함을 증명하려 했으나 무의미한 싸움에서 패배한 인물 또는 거대한 법 체제에 의해 희생된 인물로 해석되었다. 이러한 일반적인 해석은 K의 무죄를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K의 ‘셀프 고소’는 진실 규명을 통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쓸데없이 소송에 집착하고, 거기에 얽매여 저지른 부정행위들을 묵인하기 위한 방어적 수단에 불과하다. 그는 법과 투쟁했던 것이 아니라 애초에 없던 죄를 증명하기 위해 일부러 법 앞에 투항한 것이다.

 

K는 결백하지 않았다. 그는 죄를 저질렀으며, 누구도 K가 결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신부의 말처럼 법원은 K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K 혼자서 자신을 비방함으로써 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원조 고소왕은 강용석은 고소의 아이콘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세탁하는 데 성공했지만, 다른 고소왕 K는 법에 저항을 하다가 끝내 무릎을 꿇은 고독한 고소의 아이콘으로 결백함을 증명하는 척하는데 성공했다. 과연 우리는 『소송』을 읽을 때 법의 권위에 희생된 인물의 비극에만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을까? 당신이 책에서 만났던 K가 여전히 결백한 인물로 보이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에 걷다 노블우드 클럽 4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 / 로크미디어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초등학생 때 수업이 끝나면 항상 학교 도서실에 갔다. 친구들이랑 뛰어놀면서 어울리는 것보다는 혼자 도서실에서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학교 도서실에 가면 무조건 한 권씩 꼭 읽는 책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동용 추리소설전집이었다. 책을 펼치면 눅눅한 곰팡내가 내 코를 먼저 반겨준다. 누렇게 변색한 종이, 잉크가 희미하게 사라지려고 하는 활자. 책의 보존 상태를 보면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왔음을 짐작할 수 있는 책이었다. 오래 읽으면 눈이 침침하게 느껴질 정도로 피로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절대로 책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여태까지 즐겨 읽었던 셜록 홈즈 시리즈를 잊게 하였다. 개성 있는 탐정의 매력에 푹 빠졌고, 예상하지 못한 트릭에 감탄하면서 읽었다. 한 권을 다 읽는데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다 읽으면 다른 소설도 읽고 싶어졌다. 학교에 너무 오래 남아 있어서 경비 아저씨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추리소설전집은 한 권당 유명 추리 소설가들의 대표작 두 편씩 실려 있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코난 도일의 홈즈 시리즈 중 한 편과 애거서 크리스티의 포아로 시리즈 중 한 편이 같이 실려 있다고 보면 된다. 한 권으로 서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두 편이나 읽을 수 있다. 이 추리소설전집 덕분에 새로운 추리작가들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에 가장 기억남은 작가가 존 딕슨 카였다. 그가 쓴 작품이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과 함께 수록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작가의 이름이 기억이 난다. 유독 소설 제목은 기억나지 않은데 아마도 ‘유령성의 비밀’이었을 것이다. 먼저 나온 포의 작품을 인상 깊게 읽은 탓에 그 뒤에 있는 존 딕슨 카의 작품을 잊지 않고 있었다.

 

카의 소설은 일단 음산한 고딕 분위기로 시작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다음에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마술 같은 사건이 벌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독서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특히 카는 밀실 추리의 대가이다. 밀실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는 ‘긴다이치 코스케’를 창조한 요코미조 세이시에게 큰 영감을 주었으며 더 나아가 소년 탐정 긴다이치 하지메(김전일)이 태어날 수 있었다. 하지메가 나오는 만화 원작을 보게 되면, 밀실 살인 사건이 제일 많이 나온다. 할아버지인 코스케의 명예를 거는 소년 탐정은 카의 명예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1930년에 발표한 『밤에 걷다』(It Walks By Night)는 밀실 추리의 유행을 알린 카의 처녀작이다. 사교계에 이름을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유명한 라울 드 살리니 공작과 결혼을 앞둔 루이즈 부인은 페넬리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여는 화려한 파티를 즐긴다. 그런데 즐거워해야 할 파티에 루이즈 부인은 무언가에 쫓기는 듯 두려워한다. 그것은 전남편 로랑의 협박편지 때문이었다. 로랑은 루이즈 부인을 면도칼로 공격할 정도로 극심한 정신병 증세가 있었다. 병원에서 격리 생활을 하게 되면서 부인은 로랑의 곁을 떠났고, 공작과 재혼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로랑은 정신 병원을 탈출하여 전 부인의 재혼 소식을 알게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의 결혼을 막기 위해 로랑은 협박편지를 보낸 것이다. 공작은 언제 습격할지 모르는 로랑의 등장을 방지하기 위해서 파리 경시청 총감 앙리 방코랭에게 자신들의 신변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정신병자는 공작의 요청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행복한 결혼식 전야제의 흥을 깨뜨린다. 시끌벅적한 파티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 루이즈 부인은 키라르 부인의 방 창문 밖에 서서 기분 나쁘게 웃는 로랑의 눈을 마주친다. 불쾌한 소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페넬리 가게의 카드룸에 공작이 목이 잘린 주검으로 발견된다. 방코랭은 로랑이 공작을 살해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를 범인으로 단정하기에는 이 사건에 의문점이 많다. 두 개의 문이 있는 카드룸 밖에 방코랭의 부하 경관들이 지키고 있었다. 이들의 감시망을 교묘하게 피한 범인은 카드룸에 혼자 있는 공작을 살해한 것이다. 과연 범인은 어떻게 카드룸을 유유히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카는 방코랭이 밀실 사건의 수사를 진행하는 이야기 속에 독자에게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는 단서를 넌지시 제시하거나 그 열쇠를 쥐고 있을 것 같은 뜻밖의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러한 소재들은 사건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공작이 카드룸에 죽어가고 있을 때 흡연실에서 누군가가 놓고 간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고 있었던 공작의 친구 보트렐리. 루이즈 부인 몰래 공작과 밀애를 즐기던 샤론 그레이. 공작의 복잡한 관계까지 밝혀지게 되면서 사건의 수사는 여러 가닥의 실이 한꺼번에 뭉쳐져서 꼬이듯이 엉뚱하게 전개된다.

 

샤론은 방코랭의 조수나 다름없는 작품 속 화자 ‘나’(이름은 제프)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매력적인 팜 파탈로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반대로 너무 불필요하게 묘사된 장면이 제프와 샤론이 ‘썸’ 타는 장면일 것이다. 제프는 복잡한 연애관을 가진 샤론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내적 갈등에 빠진다. 자신은 샤론을 좋아하지만, 공작과 보트렐리와 이미 정분을 나눈 그녀의 마음을 믿지 못한다. 제프와 샤론은 단둘이서 정원에 식사할 정도로 관계가 깊어졌는데, 여기서부터 카는 두 사람의 썸을 지루하게 지켜보던 독자들에게 깜짝 놀랄만한 반전을 선사한다. 이 반전은 ‘그 인물’을 범인이라고 예상했던 독자들의 추리를 단번에 뒤집어엎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서 화자와 샤론의 관계를 지나치게 묘사한 장면은 신인작가 카의 미흡한 이야기 설정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카의 작품을 꽤 읽어 본 추리소설 마니아라면 『밤에 걷다』에 선배 추리 작가들의 장점을 답습하려는 신인 작가 카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이 마무리를 향해가면서 밝혀지는 살인사건의 전모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아몬틸라도 술통’ 결말과 흡사하다. 논리적인 범죄 수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자신의 추리를 반박하는 그라펜슈타인 박사를 무시하는 방코랭에서 차갑고 쿨내(쿨한 느낌이) 나는 ‘까도남’ 홈즈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사건 해결의 단서를 제대로 찾지 못한 채 짝사랑에 빠진 소심한 사내처럼 샤론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제프의 모습에 방코랭은 따끔하게 일갈한다.

 

“이보게, 난 중매쟁이가 아니라 경찰이라네. 오늘 저녁에 들은 그런 유치한 재잘거림 속에서 내가 뭘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나? 사랑이라는 감정이란 얼마나 어리석은지!” (145쪽)

 

“당신이 존 딕슨 카를 안다면 당연히 이 책을 읽을 것이다.” 출판사는 띠지에 위대한 작가의 처녀작을 이렇게 홍보한다. 나는 어렸을 때 카를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그가 처음으로 펜을 쥐고 써내려간 처녀작을 읽었다. 이미 카의 원숙한 작품들을 읽어 봤을 정도로 카를 잘 아는 독자도 당연히 이 책을 읽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만큼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최상의 레벨을 자랑하는 작가의 전성기 작품을 계속 읽어오다가 레벨 초기화에 가까운 처녀작을 읽어 보라. 명성 있는 작가의 처녀작에도 어설픈 티가 눈에 보인다. 이래서 어떤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으려면 집필, 발표 연도순으로 읽어야 한다. 그래야 작가의 문학적 레벨과 성숙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카의 이름만 알고, 작품을 단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독자가 있다면, 처녀작 『밤에 걷다』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14-12-09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 진진한 추리소설 한 권 추천 부탁드립니다. <13번째 마을>정도의 포쓰가 되는 추리소설이요~^^ 엄청나게 재밌게 마지막으로 읽은 추리소설이 바로 13번째마을 이거든요..ㅎ

cyrus 2014-12-05 21:26   좋아요 0 | URL
야무님~ 제가 이제 막 추리소설을 읽기 시작하는 입문자라서 감히 소설을 추천할 수준은 아니에요. 사실 <여섯번째 마을>도 아직 안 읽었어요.. ㅠㅠ 저보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으신 블로거들이 많습니다. 그중에 제가 아는 분은 카스피님이에요. 추리, SF 장르 소설을 즐겨 읽었고, 많이 알고 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