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Dali 디스 이즈 달리 This is 시리즈
캐서린 잉그램 지음, 앤드류 레이 그림, 문희경 옮김 / 어젠다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Beenzino - Dalí Van Picasso (Youtube)

 


 

 

 

 Scene #1  "I am a genius artist"  

 

한 예술가에게 ‘천재’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다소 위험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 사람’만은 예외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에게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아니, 달리 본인은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했다. 달리는 자서전의 서문을 “나는 천재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전 방위 예술가. 현대예술의 혁명적 전환점이었던 초현실주의 운동을 시각언어로 구체화한 대표적 화가. 무의식의 세계를 회화에 도입하고 회화를 통해 정신분석학을 탐구한 미술의 프로이트. 보통 사람에게 서라면 곧장 광기로 치달았을 내밀한 정신적 모순들과 신경증을 예술로 승화시킨 미치광이. 순수미술에서부터 영화, 패션, 광고, 보석디자인, 심지어 전 세계인들의 혀에 추파를 던지는 추파춥스 사탕에 이르기까지 예술과 삶을 넘나든 창조적 광기가 그를 그렇게 불리도록 했다. (추파춥스 로고를 달리가 만들었다)

 

왜 달리는 뻔뻔할 정도로 자신을 천재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이 궁금증을 풀려면 특이한 천재의 삶과 미술 세계를 알아야 한다. 『This is Dali』는 달리에 대해 자상한 안내서 역할을 하는 책이다. 책표지에 두 눈을 부릅뜬 채 멋지게 말려 올라간 콧수염을 뽐내는 달리가 독자들을 노려본다. 달리의 눈동자에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뿜어내는 천재의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는 눈으로 우리에게 말한다. "This is Dali!". 이것이 바로 ‘천재’ 달리다! 그 자체가 'Paranoia'(편집증적 망상)다. 제정신이 아닌 듯한 달리의 표정 때문인지 책 제목이 도발적으로 다가온다.

 

 


 Scene #2  “죽은 형을 보며 난 자랐어.”

 

 

 

 

 

이 책은 우선 재미있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달리의 도발적인 행동과 기상천외한 일화들이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데다 그래픽 노블을 보는 느낌이 나는 일러스트가 정말 재미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초현실주의 화가, 혹은 자신이 ‘천재’라는 사실을 미술의 ‘미’ 자도 모르는 독자들에게 세뇌시키려는 달리의 표정에 기죽을 필요 없다.

 

어렸을 때부터 달리는 남달랐다. 그의 부모는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장남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슬픔을 잊기 위해 둘째 아들 달리를 귀하게 보살폈다. 그렇게 달리는 장남 아닌 장남처럼 키워졌다. 형은 죽어서 이 세상에 없었지만, 여전히 동생을 늘 괴롭히는 존재였다. 형의 그림자는 늘 달리 곁을 따라다녔다. 마치 두 사람이 한 몸으로 붙어 있는 샴쌍둥이처럼. 부모는 달리가 죽은 장남처럼 커 주길 바랐다. 어린 달리는 강제적으로 죽은 형 코스프레를 하는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부모님은 달리라는 이름의 나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무덤으로 들어가 영원히 잠들어 있는 형을 더 사랑하는 것일까? 그냥 형이 아닌 살바도르 달리, 오로지 ‘살바도르 달리’를 사랑해주면 안 될까?’ 이때부터 달리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 ‘살바도르 달리’가 되고 싶어 했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달리’라는 자신만을 바라보고, 사랑해주는 것. 달리는 ‘세상의 배꼽’(중심)이 되고 싶었다. 일단 달리는 집안의 왕이 되었다. 그는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했다.

 

달리는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고 느끼기 위해 온갖 기행을 일삼았다. 자기중심적이면서도 상대방을 향한 ‘돌직구’ 같은 독설도 서슴지 않았다. 프랑스 인상파를 강조하는 예술원의 교육에 반기를 들거나 자신을 가르치고 작품을 평가하는 신임 교수의 자질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예술원의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결국, 자신감이 충만하다 못해 넘칠 지경이었던 예술원의 시한폭탄은 자폭하고 말았다. 달리는 퇴학 처분을 받아 예술원에서 쫓겨나게 된다.

 

 


 Scene #3  “콧수염 한 올, 결국엔 이런 게 돈이 될지 몰라”
 
기묘하고 유별난 달리의 행동은 초현실주의 그룹에 가입하여 화가로서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할수록 점점 심해졌다. 특히 초현실주의 그룹의 우두머리이자 작가인 앙드레 브르통은 달리의 행보를 달갑게 보지 않았다. 브르통은 자신이 흠모하는 공산주의 지도자 레닌을 비하하고, 히틀러를 지지하는 그림을 그릴 정도로 파시스트에 가까운 가치관을 가진 달리를 무척 싫어했고, 정면으로 비난했다.

 

 

 

 

 

살바도르 달리  「삶은 콩으로 만든 부드러운 구조물 : 내전의 고통」 1936년

 

 

달리가 1936년에 완성한 「삶은 콩으로 만든 부드러운 구조물 : 내전의 고통」은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더불어 스페인 내전의 공포와 비극을 묘사한 작품으로 알려졌다. 달리는 이미 스페인 내전을 예감하고 「내전의 고통」을 그리기 시작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스페인은 달리의 작품 설명대로 ‘괴기스러운 혹 모양의 팔다리로 제 목을 졸라 죽이는 망상에 빠져 서로를 잡아 뜯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이런 비극적인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달리가 스페인을 잡아 뜯는 파시스트 정권에 저항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스페인 내전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기회주의자였다. 처음에 혁명군을 옹호했지만, 돌연 파시스트 정권 편으로 돌아섰다. 이런 달리의 태도는 스페인 미술계와 초현실주의 그룹 동료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세상의 왕답지 않은 달리의 굴복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세상의 왕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의 곁에는 자신의 천재성을 알아본 갈라가 있었다. 달리가 ‘세상의 왕’이라면 갈라는 여왕이다. 아니, 그 누구도 감당하기 힘들다는 이 괴짜 왕을 자신의 손바닥 안에 가지고 노는 ‘킹왕짱’이다. 달리보다 열 살 연상인 갈라는 그를 어린애 취급했고, 마치 어린 아들을 키우는 것처럼 대해줬다. 그러면서도 세상의 왕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했다. 갈라는 달리의 상징인 콧수염 한 올을 30만 달러(우리 돈으로 3억 3450만 원 정도)로 책정하기도 했다. 달리 못지않게 돈을 엄청 밝혔다. 달리는 자신의 작품으로 얻은 수익을 무조건 갈라에게 바쳤다. 달리는 갈라를 위해 성(城)을 사주었는데 갈라가 이곳에서 마음껏 애인을 만날 수 있었다. 반면 달리는 함부로 갈라가 사는 성에 방문할 수 없었다. 여왕님의 초대장을 받아야 했다. 또 달리는 매번 성에 찾아가면 갈라를 위한 선물을 챙겼다. 

 

 


 Scene #4  "아마 누군간 나를 미쳤다고 보겠지만

                  난 그런 걸 상관 안 하는 성격이지." 

 

 

 

 

 

 

달리가 고안한 초현실주의적 물건

 

달리는 자신이야말로 ‘초현실주의자’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정의내리기는 엄청 좋아하는 것 같다) 달리 자신이 직접 내린 정의인 ‘나는 천재다’, ‘나는 세상의 배꼽이다’와 함께 ‘망언 3종 세트’를 이룬다. 궤변으로 들리지만, 정말 달리는 초현실주의 화가였고, 살아가는 방식 또한 초현실주의였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거짓(과대망상)인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살았다. 달리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달리는 무의식과 의식세계의 육체적 장벽을 허물었다. 말(馬)이 여인의 나체로 보인다든가, 하나의 풍경이 여러 개의 얼굴로 비친다든가 하는 기상천외한 다중 이미지를 좋아했다.

 

『This is Dali』는 독자들에게 그동안 달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여러 단편 지식과 다양한 이미지들이 완전히 틀렸음을 보여준다. 책에 달러의 전반적인 삶에 대한 내용이 작품 설명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달리의 단점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제목이 『This is Dali』가 아니라 달리를 은근히 비판하는 ‘Diss(디스) is Dali’가 어울린다. 예컨대 열정적인 예술가적 기질의 사랑으로 이어진 달리와 갈라의 관계는 낭만과 거리가 멀다. 두 사람 다 정상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연애를 했다. 그냥 아예 대놓고 바람을 피운다. 그들은 ‘예술’이라는 이름 앞에서만 연인이었을 뿐이다. 틀에 박힌 달리의 그림 서명처럼(달리는 항상 작품에 ‘갈라 살바도르 달리’라고 서명했다) 말이다.

 

달리는 그림으로 세상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세상은 그를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와 더불어 ‘20세기의 천재’로 인정했다. 달리는 특이한 천재이다. 괴팍한 취향과 자유분방한 사고를 지닌 ‘20세기의 돌아이’다. 자신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이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해줄 것을 원했다. 달리는 ‘Famous artist’이자 ‘Fuckin artist’였다. 당신은 이 괴짜 예술가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누구든 『This is Dali』을 읽는다면 놀라겠지. 흠칫

 

 

 

 

 

※ 「삶은 콩으로 만든 부드러운 구조물 : 내전의 고통」의 영문 원어명은 ‘Soft Construction with Boiled Beans: Premonition of Civil War’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작품은 원어명을 그대로 번역한 ‘내전의 예감’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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