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소송』에 나오는 주인공 요제프 K ‘고소왕’이다. 이 소설에서 K는 특이하게 자신을 거짓 명예훼손죄로 소송을 제기한다. 본인이 자신을 고소한다? 원래 고소왕은 강변(강용석 변호사)의 별명이었다. 강변은 개그맨 최효종을 집단모욕죄로 고소하는 것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소송에 휘말리게 되면서 ‘고소왕’이라는 캐릭터를 얻게 되었다.

 

K는 아무런 죄도 없는데도 갑작스럽게 체포당한다. 자신이 체포되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상한 소송 때문에 K는 자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쳐진다. 결국 K는 처음부터 법원으로부터 고소를 당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생생활을 미룰 정도로 소송에 집착한다.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한 K의 투쟁은 법원에 출두하여 자신이 고소되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K는 ‘무죄방면’이라는 불가능한 목표를 향한 갖가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뷔르스트너 양에게 자신을 폭행죄로 허위 고소하라고 제안을 하며 변호사 홀트의 간병인인 레니를 자신의 조력자로 나서도록 하는 데 성공한다. 

 

 

 

 

 

 

 

 

 

 

 

 

 

 

 

 

 

조르조 아감벤은 K가 ‘거짓 고발자’를 뜻하는 'Kalumniator'의 첫 글자라고 해석한다. K를 고발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K 자신이었다. 처음부터 K에게 죄는 없었다. 그런데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려는 1년간의 투쟁은 반대로 법적 처벌을 받을만한 죄를 양산했을 뿐이다. K는 주변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회유하고, 뇌물로 법조인들을 매수한다. 이러한 K의 부정적인 행동은 자신을 스스로 모함하는 꼴이 된다. 무죄인 상태에서 거짓으로 자신을 고소하는 K는 점점 소송에 집착할수록 고소 받을만한 죄를 하나씩 저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죄를 증명할 수 있는 판결을 회피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K는 떳떳하다. 자신의 무죄를 확신한다. 교도소의 신부 앞에서 자신은 완전히 결백하다고 주장한다.

 

 

"당신은 죄가 없나요?"
"네."
K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는 게 정말 기뻤다. 특히 그것이 사적인 개인을 상대로 하는, 그러니까 어떠한 책임도 뒤따르지 않는 것이라서 더욱 기뻤다. 그에게 그렇게 노골적으로 물어본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이 기쁨을 만끽하려고 그는 덧붙여 말했다.
"나는 완전히 결백해요." (『소송』, 191~192쪽)

 

 

아감벤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죄인 자신을 스스로 고소하는 K는 희극적이다. 이것이 바로 카프카적 상황(Kafkaesk)이다.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해 K가 선택한 방법은 자기를 고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K는 결백한 인물이 아니었고, 결백함을 증명하는 데 실패했다. 처음부터 허위로 자기 고소를 시도했고, 이러한 투쟁의 과정 속에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죄를 저지른 K의 판결은 법원이 아닌 채석장에서 진행된 ‘개 같은’ 처형이다.

 

 

 

 

 

 

 

 

 

 

 

 

 

 

 

 

막스 브로트는 K를 카프카를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카프카가 살아있다면,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브로트의 관점을 의아하게 생각하거나 반박했을 것이다. 카프카에게 브로트는 애증의 관계이다. 자신의 유고들을 불태워 없애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데다가 작품을 엉뚱하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카프카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눌 정도로 친분이 깊었던 구스타브 야누흐는 카프카에게 죄의 본질이 무엇인지 질문을 한다. 여기서 『소송』에서 K가 저지른 죄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당신은 무엇을 죄라고 부릅니까?”
“죄는 자신의 사명을 피하는 거예요. 오해, 초조 그리고 게으름 등이 죄예요.”

(『카프카와의 대화』(문학과지성사), 390쪽)

 

 

K는 무죄임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서 ‘일상’이라는 삶의 보편적인 사명을 피한다. 바쁜 은행 업무 때문에 소송 처리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 K는 초조해 한다. 어떻게든 휴가를 신청해서라도 소송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

 

 

지금 이런 상황에 은행 일을 보아야만 한단 말인가? - 그는 책상 위를 쳐다보았다. - 고객들을 들어오게 해 상담을 해야만 할까? 소송은 계속 진행되는 중이고, 저 위 다락방에선 법원 관리들이 그의 소송 서류들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는 이렇게 은행 업무나 처리해야 하는가? (『소송』, 170쪽)

 

 

K는 법과의 투쟁을 통해서 자신의 무죄, 즉 결백함을 증명하려 했으나 무의미한 싸움에서 패배한 인물 또는 거대한 법 체제에 의해 희생된 인물로 해석되었다. 이러한 일반적인 해석은 K의 무죄를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K의 ‘셀프 고소’는 진실 규명을 통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쓸데없이 소송에 집착하고, 거기에 얽매여 저지른 부정행위들을 묵인하기 위한 방어적 수단에 불과하다. 그는 법과 투쟁했던 것이 아니라 애초에 없던 죄를 증명하기 위해 일부러 법 앞에 투항한 것이다.

 

K는 결백하지 않았다. 그는 죄를 저질렀으며, 누구도 K가 결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신부의 말처럼 법원은 K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K 혼자서 자신을 비방함으로써 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원조 고소왕은 강용석은 고소의 아이콘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세탁하는 데 성공했지만, 다른 고소왕 K는 법에 저항을 하다가 끝내 무릎을 꿇은 고독한 고소의 아이콘으로 결백함을 증명하는 척하는데 성공했다. 과연 우리는 『소송』을 읽을 때 법의 권위에 희생된 인물의 비극에만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을까? 당신이 책에서 만났던 K가 여전히 결백한 인물로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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