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성 동서 미스터리 북스 110
존 딕슨 카 지음, 전형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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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성』(Castle Skull)은 처녀작 『밤에 걷다』(로크미디어, 2009년)를 발표한 지 1년 뒤에 나온 존 딕슨 카의 두 번째 소설이다. 여기서도 『밤에 걷다』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파리 경시청 총감 앙리 방코랭(Henri Bencolin)과 그의 동료인 제프(Jeff Marle)가 사건을 해결한다. 『해골성』은 1989년에 일신서적, 1994년에 계림출판공사에서 아동용 버전으로 ‘해골성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 현재 구할 수 있는 정식판은 동서출판사가 1977년에 낸 것을 2003년에 동서미스터리북스 110번째로 재출간한 것이다.

 

『밤에 걷다』의 역자는 제프가 방코랭에게 존댓말을 쓰도록 대화체를 옮겼다. 방코랭은 제프를 조수처럼 대하는데 제프가 방코랭보다 나이가 어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반면에 『해골성』의 역자는 방코랭과 제프를 막역한 사이의 동료처럼 번역했다. 문득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궁금하다. 방코랭이 제프보다 나이가 많은 것인가, 아니면 두 사람은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 사이인가? 그리고 두 사람은 어떤 계기로 친하게 된 것일까? 『밤에 걷다』에서 화자인 제프는 방코랭의 생김새와 성격을 언급할 뿐, 자신이 방코랭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사실 제프의 성(姓)을 『해골성』에서 처음 알았다. Jeff Marle. 『해골성』에서 ‘제프리 마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소설의 주인공인 경시청 총감 이름은 ‘방코랑’으로 표기했다)그의 직업이 작가라는 사실이 소설에서 잠깐 언급되는데 그 외에는 더 자세한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어쩌다가 방코랭을 따라다니면서 그가 사건을 해결하도록 도울 뿐이다.

 

카는『해골성』으로 처녀작 『밤에 걷다』보다 괴기스러운 배경과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성공했다. 『해골성』을 읽어보면 해골성 주변 광경과 내부를 유령이 나올법한 공포 분위기로 조성하려는 작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카는 저 멀리서 보는 웅장한 옛 고성에서 거대한 해골 형상이 포착되는 것처럼 묘사했다.

 

 

“해골성이 눈에 띄었어요. 달이 높이 떠올라 해골성의 둥근 지붕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지요. 그 퀭한 눈, 뻥 뚫린 창문, 코처럼 기뿐 나쁘게 쑥 내밀어진 곳......” (41쪽)

 

 

해골성은 요기 서린 괴상한 마술을 선보였던 인기 마술사 메이르쟈(Maleger)가 소유한 고성이다. 그런데 메이르쟈는 불가사의한 죽음을 맞는다. 마인츠에서 코블렌츠로 가는 일등칸 기차에서 혼자 타고 있던 마술사는 순간 이동 마술을 한 것처럼 사라진다. 며칠 뒤에 라인 강에 변사체가 된 메이르쟈가 발견된다. 이 사건은 메이르쟈의 자살로 종결되었지만, 여전히 의문의 꼬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밀실 같은 일등칸에 혼자 있었던 메이르쟈가 어떻게 라인 강으로 나갈 수 있단 말인가. 달리는 기차 밖으로 나와 자살을 시도할 수도 없고, 심지어 일등칸에 들어올 수 있는 침입자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도 없다.

 

마술사의 죽음 이후로 그가 소유했던 해골성에서 기이한 사건이 발생한다. 메이르쟈의 유산 상속인 중 한 사람인 배우 마일런 아리슨이 온몸에 불이 붙은 채 해골성에서 떨어져 사망한다. 사람들은 마술사와 배우의 죽음이 해골성의 저주라고 여기기 시작한다. 15세기 때 세워진 해골성의 성주가 마술사였는데 그가 아리슨처럼 불에 타죽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성에 성주의 영혼이 돌아다닌다는 소문도 떠돌기도 한다. 이러한 소문과 전설은 해골성과 관련된 두 사람의 죽음을 불가사의한 힘이 개입된 미스터리한 범죄 사건으로 만들어 놓는다.

 

『해골성』의 또 다른 재미는 방코랭과 폰 아른하임 남작과의 추리 대결이다. 추리물에서 독자들이 제일 흥미진진하게 보는 것이 주인공인 탐정의 라이벌이 등장해 추리 솜씨를 뽐내는 대결 구도. 이런 이야기의 요소는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 몰입하게 만든다. 또 주인공 탐정을 정말 좋아하는 독자라면 주인공이 직접 사건을 해결하는 동시에 라이벌도 완벽하게 제압해버리는 속 시원한 해피엔딩을 원하기도 한다. 폰 아른하임 남작은 베를린 경찰국의 주임경장이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스파이전에서 적국이 내세운 방코랭과 자주 맞붙을 정도로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을 대표하는 머리 좋은 두 고위급 경찰이 해골성에서 만나 추리력이라는 지적인 무기로 대결을 펼친다. 두 사람은 성격이 다를 뿐만 아니라 사건을 푸는 과정도 약간에 차이가 있다.

 

남작은 해골성 살인 사건을 제 손으로 직접 해결하여 자신의 추리력이 방코랭보다 한 수 위임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어둡고 무시무시한 해골성 내부를 꼼꼼하게 살필 정도로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선다. 반면, 방코랭은 자신의 존재감을 최대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조용히 사건을 풀기 위한 단서를 찾는다. 그는 자신을 향한 남작의 질투심을 내심 알고 있다. 그러면서 남작이 사건을 푸는 과정을 쭉 지켜본다. 가끔 방코랭이 남작의 추리력에 태클을 걸면서 두 사람 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런데 냉철한 방코랭의 매력(?)에 빠진 독자라면 추리 대결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방코랭은 해골성 살인사건 해결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남작을 위해서 그의 추리력이 틀린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봐주는 아량을 베푼다. 『밤에 걷다』에서 깐깐하면서도 상대방 앞에서 약간 잘난 척하는 방코랭의 ‘까칠남’ 이미지가 한풀 꺾였다.

 

『해골성』의 역자는 해설에서 카의 작품 속에 볼 수 있는 신비적 취향이 마음 약한 독자가 정신을 잃을 정도라고 과장되게 표현했다. 카의 작품 속 오컬트적 분위기에 매료될 수는 있어도, 심신 노약자나 임산부의 정신 건강에 해칠 정도는 아니다. 사실 카의 처녀작을 읽어 본 독자로서 『해골성』은 전작보다 으스스한 분위기를 발산하는데 성공했다고 본다. 글을 쓰는 내내 커피를 연달아 마시고, 줄담배를 피우면서 고민했던 젊은 작가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데 카가 너무 배경에만 치중한 탓일까. 탐정으로서의 방코랭의 매력과 그 능력치가 떨어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두 번째로 나온 방코랭 시리즈라면 개성 있는 탐정의 성격을 좀 더 뚜렷하게 묘사했어야 한다.

 

 

 

 

 

※ 이 책에 동명의 작품인『해골성』뿐만 아니라 카의 단편 「뛰는 자와 나는 자」(Strictly Diplomatic)도 수록되었다. 이 단편소설은 1947년에 발표된 『Dr. Fell, Detective, and Other Stories』에 실려 있다. 사실 카의 단편은 장편에 비해 많이 소개되지 않아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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