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박람회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3대 국제 행사로 꼽힌다. 세계박람회를 개최할 경우 국가 위상을 높일 뿐 아니라 경제적 파급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에 세계 각국이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인다. 흔히 엑스포(EXPO)라고 불리는 세계박람회는 세계박람회기구(BIE)가 공식 인정한 공인 엑스포와 비공인 엑스포로 나뉜다. 비공인 엑스포는 전시 수준이나 규모가 공인 엑스포에 비교해 훨씬 규모가 작은 편이다. 참가국의 국가 명칭이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지역 행사로 치러진다. 우리나라는 공인 엑스포를 두 차례 개최했다. 1993년 대전 엑스포, 2012년 여수 엑스포다.

 

 

 

 

 

 

 

 

 

 

 

 

 

 

 

 

 

* 안나 잭슨 《엑스포, 1851-2010년 세계박람회의 역사》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

* [절판] 오룡 《상상력의 전시장, 엑스포》 (다우출판사, 2012)

* 이민식 《세계박람회 100장면》 (이담북스, 2012)

 

 

 

근대적 의미에서 최초 엑스포는 1851년 영국 런던 박람회[1]이다. 산업 혁명 이후 기술과 산업 분야에서 급성장한 영국은 이 성과를 전 세계에 과시하고 싶었다. 유리와 철골로 만들어진 전시관인 수정궁(crystal palace)이 세워져 경탄을 자아냈다. 박람회는 최첨단 상품과 기술 외에 보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대중오락을 갖춘 전시행사다. 런던 박람회를 시작으로 대중들은 다양한 볼거리를 접하기 위해 지정된 장소로 옮겨 다니며 관람이란 문화를 즐기기 시작했다.

 

 

 

 

 

 

 

 

 

 

 

 

 

 

 

 

 

 

* [절판] 권혁희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민음사, 2005)

* [절판] 요시미 순야 《박람회 : 근대의 시선》 (논형, 2004)

 

 

 

그런데 근대 박람회는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야망과 우월감을 교묘히 드러내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모든 것이 돈으로 값이 매겨지는 자본주의 체제인 만큼 사람도 돈의 힘에 밀려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한다. 근대 박람회는 산업혁명의 성과물과 식민지에서 얻은 재화를 전시하고 여기에 새로운 상품과 소비, 오락을 더해 대중의 욕망을 재현한 ‘스펙터클한 공간’이었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박람회는 상품뿐만 아니라 인간도 전시했다. 1851년 런던 박람회에서 수정궁을 선보이자, 이에 질세라 프랑스는 1889년 파리 박람회에서 에펠탑을 공개했다. 당시 에펠탑이 세워졌을 때 이 건축물은 파리지앵의 혐오 대상이었다. 문화 · 예술계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은 에펠탑을 파리의 우아함을 헤치는 철골 덩어리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프랑스 지식인들은 ‘인종 전시장’을 만든 파리 박람회의 부끄러운 전시계획에 대해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파리 박람회는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식민지 원주민들을 모아놓고 전시했다. 가슴 아픈 일지만, 우리나라 사람도 세계박람회 전시대상이 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1889년 파리 박람회에 최초로 참가했다. 대한제국으로 국명이 바뀐 이후에도 박람회에 참가했으나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기면서 세계의 주변인으로 전락했다. 1907년 일본 도쿄에 열린 비공인 박람회(도쿄권업박람회)에서 조선인 남성과 여성 두 명이 유리관에 전시되었다.

 

 

 

 

 

 

 

 

 

 

 

 

 

 

 

 

 

* 마리아 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갈무리, 2014)

* 장 메이에 《흑인노예와 노예상인 : 인류 최초의 인종차별》 (시공사, 1998)

 

 

 

근대 박람회의 인종 전시장은 인종주의만 재생산되는 공간이 아니다. 그곳에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가 서로 맞물리면서 작동하는 복잡하고도 강력한 억압 이데올로기가 재현되어 왔다. 16~17세기에 유럽은 중간무역과 식민지 정복을 통해 자본을 축적했다(여성을 착취하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구조를 분석한 마리아 미즈는 이 시기를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노예무역 상인들은 아프리카 민족을 납치하여 노예로 만들었다. 마리아 미즈는 무역이 발전하면서 노예제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 남성이 가부장 권력과 무기를 독점하는 ‘전사-사냥꾼’이 되면서부터 이미 나타났다고 본다. 노예사냥꾼, 노예무역상인 그리고 노예를 사고파는 자본가들은 아프리카 여성(흑인여성)‘야만인’ 또는 ‘성적 동물’로 취급하여 착취했다.

 

 

 

 

 

 

 

 

 

 

 

 

 

 

 

 

 

 

 

* [절판] 레이철 홈스 《사르키 바트만》 (문학동네, 2011)

*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9)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지평을 연 패트리샤 힐 콜린스는 흑인여성의 몸이 포르노그래피적 취급을 받았다고 분석한다. 노예가 된 흑인여성은 백인 남성 노예주의 쾌락을 채워주는 성적 대상으로 취급받았다. 특히 흑인여성의 몸은 ‘관음의 대상’으로 전시 · 소비되었다. ‘호텐토트의 비너스’로 알려진 사르키 바트만(사라 바트만)[2]인종주의와 성차별이 만들어 낸 포르노그래피의 희생양이다. 그녀는 런던 피커딜리 거리에 전시되었다. 피커딜리 거리는 신체 이형을 가진 사람들을 전시하는 프릭 쇼(freak show)의 본거지였다. 호텐토트(Hottentot)는 남아프리카 코이코이 족을 경멸적으로 지칭하는 단어다. 사르키 바트만은 엄청나게 큰 가슴과 특이한 엉덩이를 드러낸 반나체로 프릭 쇼와 서커스에 끌려다녔다. 백인들은 사르키 바트만을 야만적이면서도 이국적인 섹슈얼리티를 가진 벌거벗은 동물로 취급했다.

 

사르키 바트만 쇼는 ‘관람하는 포르노그래피’이며 박람회 인종 전시장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인종적 · 문화적 우월감으로 무장한 유럽인들은 제국주의적 시선으로 식민지인들을 구경했다. ‘야만인’의 전시를 통해 식민지인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려 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근대 박람회는 인간의 과시욕과 무지, 편견, 그리고 차별이 뒤섞인 장소였다. 박람회를 개최한 제국주의 국가는 식민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여 그녀들을 ‘비인간화’시키고, 오직 성적 대상으로만 재현 · 소비했다. 근대 박람회 인종 전시장과 사르키 바트만 쇼는 여성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현대의 포르노그래피를 닮았다. 근대 박람회는 ‘EXPORNO’ 또는 ‘XXXPO’[3].

 

 

 

 

 

[1] 흔히 ‘런던 만국박람회’로 알려졌으나 ‘만국박람회’는 일본식 표현이다. ‘만국박람회’ 대신에 ‘세계박람회’ 또는 ‘엑스포’라고 쓰자.

 

[2] ‘사르키’는 크리올어(아프리카 원주민 언어) 이름으로 바트만을 자신의 이름을 ‘사르키’라고 칭했다. ‘사라’는 영국식 이름이다. (레이철 홈스 《사르키 바트만》 14~16쪽)

 

[3] ‘EXPORNO’는 ‘EXPO’와 ‘Porno’의 합성어다. ‘XXXPO’는 ‘XXX(포르노그래피 도메인)’와 ‘EXPO’의 합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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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전쟁 - 숨겨진 맛의 역사
톰 닐론 지음, 신유진 옮김 / 루아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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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교단의 회칙은, 수도사의 식사는 검약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수도사들에게 필요한 음식의 양을 원장이 정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우리 수도원에서도 수도사들은 식탁의 즐거움을, 탐닉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잖게 누리는 편이다. [중략] 참회와 덕행의 모범을 좇는 수도원들도 힘겨운 지적 노동을 하는 수도사들에게,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실질적인 식사를 제공한다. 그러나 수도원장의 식탁은 늘 기름지다. 귀한 손님이 거기에 앉기 때문인데, 원장은 이로써 수도원 땅의 소출과 요리사의 솜씨를 과시하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상권, 134쪽)

 

 

움베르토 에코의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2009) 중세 연구가들조차도 탄복할 정도로 시대 고증을 충실히 반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박학다식한 에코가 고증하지 못한 것 있다. 그것은 바로 수도사들이 식사하는 장면(소설 상권 134쪽 참조)이다. 소설 속 수도사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수도원장이 손님에게 자랑하는 ‘기름진 음식’의 정체도 궁금하다. 수도사들의 식탁을 묘사한 내용 중에 구체적으로 언급된 음식의 수는 단 두 가지뿐이다. 꼬챙이에 꿰어 구운 돼지고기와 닭 요리다.

 

소설을 쓸 때 고증이 어려운 묘사를 구상할 경우, 상상력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과거 사람들은 음식을 맛있게 먹느라 여념이 없어서 자신들이 뭘 먹었는지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독 먹는 모습과 장면을 집중해서 보는 ‘먹방’‘쿡방(요리 방송)에 환호한다. 음식 관련 방송에 열광하는 주요 원인이 심리적 공허함, 1인 가족화와 경기불황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현대인들은 먹는 것 또는 먹방을 시청함으로써 일종의 대리 만족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먹방과 쿡방은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하는 ‘푸드 포르노’의 사례로 비판받고 있지만,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반영한 영상 텍스트이다. 그러므로 먼 훗날에 먹방 및 쿡방 유행이 시들어져도(과연 이런 날이 올까?) 후세 사람들은 과거의 기록으로 남게 된 먹방을 보면서 당대 사람들이 선호했던 음식을 확인하면서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유튜브와 TV가 없었던 시대에 살았던 옛날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았다. 과거에 유행했던 숱한 요리법과 음식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모습을 감추었다.

 

음식 문화는 시대에 따라 주어진 재료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음식을 어떻게 만들고 어떤 재료를 사용하면 어떤 변화과정이 일어나는지 등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들은 많이 있다. 그러나 역사학적인 자료나 연구는 매우 미흡하다. 《음식과 전쟁》(루아크, 2018)은 거대 역사 속에 가려진 음식 문화를 복원한 책이다. 저자는 음식에 관한 희귀 고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저자는 고대 요리책, 고문서, 삽화 등 오래된 자료에 기록된 음식, 식사 장면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우리가 잊고 있었던 ‘맛의 역사’를 추적해나간다. 이 책에 수록된 그림들은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과거 식문화에 대한 훌륭한 단서가 되어준다.

 

맨발의 은자(隱者) 피에르는 당나귀를 타고 거리를 쏘다니며 이슬람과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에르는 1차 십자군 원정에 앞서 ‘민중 십자군’을 결성하여 원정길에 올랐다. 말이 십자군이었지 농민, 범죄자 등이 많이 섞인 오합지졸이었다. 민중 십자군의 패배가 눈앞에 드리우기 전에 피에르는 고향으로 피신했고, 그곳에 유대인의 잉어 양식 법을 전파했다. 전설에 따르면 예수가 피에르 앞에 나타나 두 가지 중대한 계시를 내렸다고 한다. 하나는 십자군 원정, 또 하나는 잉어 양식 법을 고향에 전파할 것.

 

유럽에 흑사병이 퍼지면서 프랑스 아미앵에서만 3만 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인근 도시에 발생한 엄청난 사망자에 비교해 프랑스의 수도 파리는 상대적으로 큰 화를 입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저자는 이에 대해 흑사병이 창궐할 시기에 유행했던 레모네이드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레모네이드는 세계 최초의 청량음료다. 레모네이드에 들어있는 구연산은 살균력을 지녔다. 레모네이드를 즐겨 마신 사람들도 모르는 사이 몸속으로 들어온 구연산이 잠복해 있던 전염병 세균을 없앴던 것으로 보인다.

 

루이 14세는 교활한 대식가였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다양한 연회를 열었는데, 당시에는 ‘무엇을 먹는가’보다 ‘많이 먹는 것’이 중요했다. 당시는 많이 먹는 것이 권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귀족들이 참석하는 루이 14세의 연회는 밤 10시에서 밤 10시 45분까지 정확히 45분 동안 진행되었다고 한다. 자신을 음해하는 귀족세력의 반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매일 저녁에 만찬을 열었다. 왕의 저녁 만찬에 참석한 귀족들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귀족들이 침묵하고 있을 때 루이 14세는 마음껏 많은 종류의 음식을 맛보면서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는 ‘식인(食人)이다. 식인 행위 자체를 금기로 여겼기 때문에 식인 풍습을 역사적이고 문화적으로 접근한 자료가 희박하다. 유럽인은 식인 풍습을 ‘야만적인 문화’라고 비판했고, 식인 행위를 정신병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조너선 스위프트, 대니얼 디포, 허먼 멜빌 등의 작가들은 식인 행위를 묘사한 작품을 썼다. 특히 찰스 디킨스의 작품에는 식인 행위를 암시하는 묘사가 많다. 저자는 디킨스가 인육을 먹고 싶어 하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음식과 전쟁》은 인류의 발전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먹고 마시는 일에 밀접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수천 년을 이어져 오며 많은 이의 피와 살이 됐던 음식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는 저자의 글쓰기는 인간에 대한 또 다른 통찰을 제공한다. 음식은 단순히 맛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 또는 역사로 남게 되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음식은 인간에게 필수적인 생존 수단일 뿐만 아니라, 본능적인 욕구를 채우는 것 이상의 큰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모르고 음식 문화를 이야기할 수 없고, 음식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음식의 가치를 설명할 수 없다. 음식이 어떤 역사적 배경 속에서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왔고, 그 속에 문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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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하면 흔히 대마초와 히로뽕 등을 떠올린다. 그만큼 많이 유통되기 때문일 것이다. 대마초는 마리화나, 해시시(하시시)라고도 불린다. 마리화나는 대마초의 잎을 말려 가루로 만든 것이고, 해시시는 말린 대마수지(꽃대 부분에 나오는 물질)를 반복 증류하여 용액 형태로 응축시켜 만든다. 해시시는 마리화나보다 환각성이 강하다.

 

 

 

 

 

 

 

 

 

 

 

 

 

 

 

 

 

* [절판] 샤를 보들레르, 테오필 고티에 외 《해시시 클럽》 (싸이북스, 2005)

* [절판] 조은섭 《포도주, 해시시 그리고 섹스》 (밝은세상, 2003)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마약 중독자였다. 그는 ‘해시시 클럽’의 회원이었다. 해시시 클럽에는 테오필 고티에, 빅토르 위고, 제라르 드 네르발 등 당대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가입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해시시를 즐겼고, 그 경험을 토대로 글을 남겼다. 《해시시 클럽》(싸이북스, 2005)에 수록된 보들레르의 글 『해시시의 시』는 1858년에 발표된 <인공 낙원>의 일부다. 이 책에서 보들레르는 해시시의 환각성을 ‘인공 낙원’으로 묘사했다. 그는 환각성 마약이 창작을 위한 삶의 질료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보들레르는 해시시 클럽의 회원이었으나 해시시를 즐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해시시가 주는 순간의 쾌락이 인간의 의지를 파괴한다고 생각했다.

 

중세 이슬람과 마약이 연결된 역사는 매우 길다. 암살자를 뜻하는 ‘assassin’은 아랍어 ‘하시신(hashishin)에서 유래됐다. 하시신은 ‘해시시에 중독된 사람’이라는 뜻으로 악명 높은 이슬람 비밀 암살단의 별칭이다. 이 비밀 암살단 이름은 우리가 아는 영어 ‘assassin’과 동일하다. 아사신은 이슬람 시아파의 한 갈래인 이스마일파의 과격 분파인 니자리파로, 암살을 정치적 무기로 삼았다. 당시 이슬람 주류 세력이었던 아바스 왕조의 실력자들을 잇달아 암살했고, 심지어 과격하기로 유명한 시아파마저도 아사신을 몹시 싫어했다. 아사신은 과격파도 철저히 지키던 무슬림 율법을 무시하는 극단적인 행보를 보였다.

 

 

 

 



 
















 

* 마르코 폴로 《마르코 폴록의 동방견문록》 (사계절, 2000)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상》 (열린책들, 2009)

 

 

 

니자리파는 깊은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 생활했으며 그들이 세운 알라무트(Alamoot)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알려졌다. 중세 학자들은 산에 은둔하는 니자리파의 우두머리를 산중 노인(또는 산노인[*], The Old Man of the Mountain)이라고 불렀다. 니자리파는 많은 군중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적을 처단했다. 적에 대한 징벌과 대중에 대한 교훈이라는 이중의 목적을 겨냥한 것이었다. 마르코 폴로는 13세기 후반 폐허가 된 알라무트를 방문했고, 자신의 책 《동방견문록》에 아사신을 언급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알라무트 요새 안에 ‘비밀스러운 쾌락의 정원’이 있다. 쾌락의 정원은 암살단원들의 훈련 장소이자 양성소다. 니자리파는 암살단원을 ‘살인 병기’로 세뇌하기 위해 마약성 약물을 이용했다. 폴로를 비롯한 유럽인들은 아사신의 전설과 신화를 믿었고, 이로 인해 아사신은 마약을 먹고 사람을 죽이는 잔인한 암살자의 대명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2009) 을 번역한  이윤기는 ‘산노인’을 설명한 역주에서 아사신을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공격한 자객’이라고 썼다.

 

 

  레바논 산중을 근거지로 회교 테러리스트 자객을 조직한 하산 이븐알사바에게 붙은 칭호. <자객(hashishiyya)>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한다. 자객을 <하시시야>, 즉 <하시시 중독자>라고 부르는 까닭은 이 조직의 구성원들이 <하시시>라는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페르시아, 시리아, 소아시아 등지의 지배자들, 혹은 십자군 시대에는 기독교도들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장미의 이름》 구판 상권, 323쪽)

 

 

이윤기 선생이 지금도 살아계셨더라면 이 역주 설명을 고쳤을 것이고, 새로운 개정판이 나왔을 것이다. 아사신을 ‘마약에 중독된 암살 집단’으로 묘사한 설명이 반론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 버나드 루이스 《암살단 : 이슬람의 암살 전통》 (살림, 2007)

* 아빈 말루프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아침이슬, 2002)

* 유발 하라리 《대담한 작전》 (옥당, 2017)

 

 

 

아사신은 니자리파의 악명 높은 암살 공격에 두려움을 떨던 유럽인들이 붙인 별칭이다. 니자리파는 자신의 암살단을 ‘아사신’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니자리파 암살단의 정식 명칭은 ‘피다이(fidā’ī)다. 암살단이 마약에 중독된 상태에서 공격을 감행했다는 확증은 없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니자리파 암살단은 공격 대상의 허를 찌를 정도로 치밀하고도 대담한 작전을 펼쳤다. 이런 그들이 마약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 암살을 감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암살을 시도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요새 안에 있다던 ‘쾌락의 정원’은 유럽인들의 과장된 상상이 만들어낸 가공 장소이다.

 

이미 오래전에 아사신의 신화가 허구임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사신이 ‘마약 중독’이 결합한 암살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아사신은 이슬람에 대한 서구의 편견이 반영된 단어다. 십자군 전쟁을 경험한 서구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에 향한 증오심을 잊지 못했고, 이슬람의 폭력성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아사신 신화’를 이용했다. 사실 아사신은 하시시와 전혀 관련이 없다. 아사신은 원래 이슬람권에서 상대를 경멸할 때 쓰는 단어였다. 아사신의 어원은 이슬람을 악의적으로 묘사한 서구의 기록에 의해 왜곡되어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과거를 고대, 중세, 근대로 나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중세시대와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예컨대 무슬림을 바라볼 때 이슬람 종교의 잔학성과 비인륜적 관습에 먼저 초점을 맞추곤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슬람의 실체는 과격하고 호전적인 이미지의 종교로 잘못 인식됐다. 모든 종류의 테러는 어떤 연유로 인해 그 누가 행하든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비윤리적 행위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적 · 문화적 배경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들의 무력 행위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이슬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이슬람교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이슬람문명과 그 역사를 두루 살펴야만 비로소 불식될 수 있다.

 

 

 

 

[*] 《장미의 이름》 구판 상권, 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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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2 1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13 13:05   좋아요 0 | URL
남미 마피아 카르텔의 돈줄이 마약이죠. 특히 멕시코 마피아는 정말 악명 높은 범죄조직이예요. 멕시코 출신 유튜버가 마피아 두목을 조롱하는 방송을 촬영했다가 살해당했고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치인들이 암살당했어요.. ㄷㄷ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공감하는가 - 거울뉴런과 뇌 공감력의 메커니즘
크리스티안 케이서스 지음, 고은미.김잔디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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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운동선수가 정말 두려워하는 통증이 있다.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는,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남자에게 정말 아픈 부위. 고환은 외부의 충격과 자극에 아주 민감하다. 말 못 할 고통은 물론 파열 시 수술로 봉합한다고 해도 불임이 될 가능성이 있다. 야구, 이종격투기 선수는 급소 보호대를 차고 경기에 임한다. 그런데 100% 안전하지가 않다. 작년 로드FC 39 무제한급 경기는 급소 가격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경기는 시작 8초 만에 명현만의 로우 킥이 아오르꺼러의 급소를 정통으로 가격하며 중단됐다(경기는 무효로 처리됐다). 경기 시작과 함께 중계로도 ‘퍽’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으니 중계를 봤던 나도 아프게 느껴졌다.

 

과학적으로 보면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나는 급소에 맞아 고통을 호소하는 아오르꺼러를 보면서 내가 급소를 다친 것처럼 안타깝게 느껴지는 걸까. 내가 경기장에 있는 게 아니라 그저 TV로 중계 장면을 보기만 하는 데도 말이다. ‘과부 설움은 홀아비가 안다’고 처지가 비슷하거나 심정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더 신경이 쓰인다. 모르는 사람의 다리 골절보다 옆 사람의 손가락 상처가 더 안타까운 것도 물론이다. 기쁨과 즐거움도 마찬가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기쁘거나 즐거우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같은 현상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지켜볼 때, 스스로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활동을 같이하는 신경세포인 ‘거울뉴런(mirror neuron)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 뇌에는 거울뉴런이 활발히 작동한다. 이 세포는 타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마치 ‘거울’처럼 그대로 비춘다. 이 때문에 타인의 신체에 가해진 물리적 충격을 보는 것만으로 그 자극이 마치 자신의 몸에 가해진 것처럼 감각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거울뉴런은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감정이입을 하거나 공감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기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배우고 슬픈 영화를 보다가 눈물을 흘리는 등의 행위는 바로 거울뉴런 덕분에 가능하다.

 

공감은 어떤 행위나 말에 대해 상대방의 마음에 동조하는 긍정적인 감정 상태이다. 나는 흔히 타인의 상황이나 감정에 대해 ‘공감한다’는 단어를 쉽게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사용해 온 ‘공감’이란 단어가 많이 과장돼 있었다는 반성이 잦아졌다. 가슴이 아닌 입으로만 쉽게 하는 위로를 공감이라고 착각했다. 악의도 없었고 위선도 아니었지만 진짜 공감이 아니었던 건 분명하다.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이 어려워지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 이 책을 고르게 됐다.

 

거울뉴런을 연구한 과학자 크리스티안 케이서스는 거울뉴런이 ‘공감’의 신경학적 기초를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라고 말한다. 그는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공감하는가》(바다출판사, 2018)을 통해 거울뉴런을 운 좋게 발견해낸 일화와 20년 사이 거울뉴런 연구 분야와 관련된 주목할 만한 발견, 세계 각지 실험실에서 지금도 진행 중인 독창적인 실험들을 흥미롭게 들려준다. 거울뉴런의 존재가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1990년.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 연구팀은 원숭이 뇌에 전극을 이식하고 땅콩을 집어 입으로 가져갈 때의 반응을 관찰했다. 그 결과 특이하게도 원숭이가 스스로 이 행동을 할 때와 사람이나 다른 원숭이가 이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 같은 부위의 신경세포들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뇌가 ‘보는 것’을 ‘똑같이 받아들이게 하는 거울뉴런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우리는 언어나 음악, 춤 등을 처음 배울 때는 상대방을 그대로 따라 한다. 거울뉴런 체계에 의해 우리는 모방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타인의 행동을 이해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뛰어난 사회적 동물로 진화한 이유도 거울뉴런이 더 발달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거울뉴런의 활동을 극대화하는 복잡한 메커니즘, 즉 ‘공유회로’를 갖추고 있다. 이 공유회로는 언어 학습과 문화의 전달을 위해 인간의 모방 행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거울 뉴런은 단순한 모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표정 및 행동에 숨어있는 의도를 파악하는 데도 관여한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알게 해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 즉 관계를 형성하는 역할도 한다.

 

거울뉴런의 활동이 적을수록 어린아이는 사회 활동을 하는 데 지장을 느낀다. 심할 경우 대인관계를 꺼리고 외부 환경과 접촉을 꺼리는 자폐증으로 발전한다. 그렇지만 일반인은 나이가 들수록 공유회로의 활동이 줄어드는 데 비해, 자폐증 환자의 공유회로는 점점 정상화되었다. 따라서 자폐증은 거울뉴런과 공유회로가 결핍되어 있거나 손상되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자폐증의 거울뉴런과 공유회로가 일반인보다 좀 늦게 작동되었을 뿐이다. 사이코패스에게도 공감 능력이 있다. 사이코패스는 공감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스스로 활용하지 않는다. 이처럼 거울뉴런은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작동하는 게 아니다.

 

저자는 거울뉴런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거울 뉴런이 있기 때문에 우린 타인의 마음에 감정 이입하여 공감할 수 있다. 저자는 거울뉴런을 인간이 사회적 존재가 되게 하는 필수요건으로 꼽는다. 다만, 저자의 거울뉴런 만능론을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거울 뉴런이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줄 정도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확실한 증거가 밝혀지지 않았다. 앞으로 좀 더 연구해야 할 부분이 많다. 거울뉴런 만능론을 비판하는 신경과학자들의 반박도 적지 않다.

 

우리의 뇌와 마음속에는 ‘거울’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상을 제대로 비추지 못하는 지저분한 거울이 많다. 그런 거울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타인과 더 가깝게 지내는 것을 꺼린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은 세상살이의 기본이다. 윤동주 시인은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을 밤이면 밤마다 닦았다. 혹여 내 주변의 다른 사람을 헤아리지 못하고 ‘가짜 공감’을 하는 건 아닌지 각자 내면의 거울을 열심히 닦아보자.

 

 

 

 

[*] 윤동주의 시 『참회록』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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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2 1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12 16:53   좋아요 0 | URL
거울뉴런이 작동하는 과정이 복잡하지만, 대단히 정교하게 짜여져 있어요. 이렇게 진화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습니다. ^^

북깨비 2018-06-13 0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급소얘기에 확 이끌려서 ㅎㅎ 살다보니 어쩌다가 가짜 공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하더라고요. ㅠㅠ 처지는 딱한데 왜 그런 처지가 되었는가를 따져보면 가끔 원인이 본인한테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는 차마 바른 말을 못해주고 (관계가 틀어질까) 그냥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마는 경우가 있어요. 특히 부모님한테는... ^^;; 그래도 공감을 먼저 해주면 대개는 스스로 답을 찾는 것 같아요. 상처를 보듬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면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가 봅니다. 그런데 공감과 위로에도 엄청난 에너지가 쓰인다는 건데요. 감정이입을 100프로 해버리면 에너지 소모가 너무 커서 너무 감정적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요.

cyrus 2018-06-13 13:09   좋아요 1 | URL
상대방의 감정에 너무 이입(몰입)하면 정신적 소모가 너무 클 때가 있어요. 제가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 이후로 저와 상대방의 감정이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공감하는 법에 대해 관심이 있어요. 공감한다는 말은 쉽지만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어려워요.
 
평균의 종말 -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교육을 속여왔나
토드 로즈 지음, 정미나 옮김, 이우일 감수 / 21세기북스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고등학교 중퇴가 최종 학력인 서태지는 노래 『교실 이데아』에서 대입 중심의 교육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그 후 이십여 년이 흘러간 오늘의 교실은 어떤가. 등교 시간은 달라졌어도 고등학교의 교실 이데아는 그때 그 시절과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수능은 전국의 학생을 단일한 시험으로 줄 세우는 획일적인 입시제도이다.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고민한다. 하지만 진로에 대한 고민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교육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전부 똑같은 EBS 문제집을 풀고, 똑같은 내용을 같은 기간에 이수하고 있다. 학생들의 꿈을 판가름하는 것은 수능 점수다. 어른들은 진로 고민을 제쳐두고 ‘일단 대학부터 가서 고민하라’고 강요한다.

 

우리 삶에서 ‘자유로운 선택’은 굉장히 중요하다. 어느 대학에 진학할 것인지, 어느 회사의 물건을 구매할 것인지, 어떤 사람과 결혼할 것인지 등 작은 일상에서부터 인간의 삶 전체는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누리기 위해, 우리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지를 고른다. 즉 자유롭고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개인의 선택에 대한 독립성을 보장받고, 그러한 자유로운 선택 자체가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평균의 종말》(21세기북스, 2018)을 쓴 교육신경과학 분야의 권위자 토드 로즈는 이러한 개인의 선택에 대해 진정 자유로운 선택이었는가를 묻고 있다.

 

 

 평균주의는 우리에게 대가를 치르게 했다. 사회는 우리 모두에게 학교와 직장생활과 삶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정의 편협한 기대치를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모두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되려고 기를 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우리 모두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되되 더 뛰어나려고 기를 쓴다. (93쪽)

 

 

직업을 선택할 때 우리는 나의 행복을 위해, 자아실현을 위해 직업을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평균의 시대’ 속에 살고 있다. 평균 점수, 평균 몸무게, 평균 연봉 등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평균이란 단어를 자주 접한다. 국어사전에서는 평균을 ‘여러 사물의 질이나 양 따위를 통일적으로 고르게 한 것’이라고 나와 있다. 말 그대로 평균이란 각 개체의 특성이 획일화 또는 표준화된 형태로 수렴되는 상태이다. ‘평균의 시대’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오래 됐다.

 

19세기 과학자 아돌프 케틀레는 스코틀랜드 군인들의 가슴둘레를 측정한 뒤 평균 가슴둘레 치수를 계산했다. 그는 평균 가슴둘레 치수에 가장 근접한 군인이 완벽한 신체를 갖춘 ‘참된 군인’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인간의 특성이 정확히 평균을 따른다고 주장할 논거가 부족했으나 케틀레가 제시한 ‘평균적 인간’은 완벽한 사람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케틀러의 ‘평균적 인간’ 이론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수많은 연구가 뒤를 이었다.

 

영국의 유전학자 프랜시스 골턴은 케틀레의 ‘평균’ 개념을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으나 일부 그의 이론을 수용하여 평균으로 계층을 구분하려고 했다. 이렇게 되자 ‘평균적 인간’은 객관적이고 표준적인 기준이 되었고, ‘정상’을 판단하기 위해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나올 수 있었다. 골턴이 창시한 우생학은 ‘인종 청소’의 이론적 틀로 발전되었다.

 

1940년대 미국 클리블랜드에서는 이상적 신체 치수를 가진 여성을 뽑는 대회가 개최되었다. 여성의 이상적 신체 치수는 1만 5,000명의 젊은 성인 여성들로부터 수집한 신체 치수를 계산해서 나온 ‘평균값’이었다. 대회 주최 측 관계자는 완벽한 신체를 가진 여성에게 ‘노르마(Norma: ‘정상’을 뜻하는 ‘normal’에서 따온 이름)라는 별칭을 붙였으며 클리블랜드 박물관에 ‘노르마’ 조각상이 전시되었다.

 

평균의 시대 속에서 ‘평균’은 ‘정상’ 또는 ‘우수함’의 의미로 혼동된 채 사용되었고, ‘평균’은 인간을 평가하는 하나의 준거가 되었다. 평균주의는 표준화된 교육 과정 안에서 똑같은 교재로 학습하는 공교육이 형성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교육이 획일적으로 이뤄지면 학생 개인마다 취향을 살릴 기회가 부족해진다. 그리고 교육 과정에 따라가지 못한 학생은 학습 의욕이 떨어진 ‘열등한 학생’으로 평가받는다. 저자는 평균 점수로 학생의 성적 성취도를 평가하는 방식이 학생 개인의 소질 및 적성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저자는 ‘평균주의 교육’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중학생 시절 그는 ADHD 장애 판정을 받아 평균 점수를 받지 못한 ‘학습지진아’였고 성적 미달로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중퇴 이후 그는 대학입학자격 검정시험을 통과해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평균의 종말》은 저자의 경험과 ‘평균의 허상’을 증명해주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면서 개인 고유의 재능과 취향을 외면하는 평균주의 교육을 비판한다.

 

저자는 평균주의 교육 또는 시스템을 탈피하고 주체적인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 ‘개개인학(science of the individual)이라는 학문을 만들었다. 그는 평균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세 가지 개개인성의 원칙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들쭉날쭉의 원칙, 두 번째는 ‘맥락의 원칙’, 그리고 마지막은 ‘경로의 원칙’이다. 각 개인의 특성은 같을 수 없다.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인간의 특성을 ‘평균’에 근접한 기대치에 맞출 수 없다. 인간의 성격은 하나로 똑 부러지게 규정하기 어렵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외향적인 행동을 할 수 있고, 또 내향적인 행동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적절한 상황과 맥락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본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성공한 사람이 걸어갔던 삶의 경로를 똑같이 따를 필요가 없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각자에게 적합한 삶의 경로가 있다.

 

저자는 학생 개인의 능력을 부각하는 새로운 대안 교육 방식들을 제시하는데, 그중 하나가 자격증을 수여하는 교육제도이다. 저자는 학생의 실력이 검증된다면 학위 대신에 자격증을 수여하자고 주장한다. 이게 과연 우리나라 교육 실정을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자격증은 취업을 위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스펙 중 하나다. 자격증은 일정한 실력을 인정하여 주는 증서인데, 우리나라의 자격증은 취업을 위해 반드시 따야하는 가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자격증을 많이 딴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재능이 뛰어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기업들은 직원을 채용할 때 (기업이 요구한) 자격증을 소유한 지원자를 우대한다. 결국, 자격증도 획일화된 평균주의 교육의 수단으로 변질할 수 있다. 저자의 말대로 평균주의가 망친 교육을 개선하려면 먼저 기업부터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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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1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12 11:47   좋아요 0 | URL
문제 많은 낡은 사회제도를 고수할수록 그 제도에 유리한 소수 특권층만 유리해져요. 그들은 변화를 두려워해요. 오랫동안 누려온 특권들을 포기해야 되니까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낡은 사회제도에 손해를 보는 다수 사람들도 변화를 두려워해요. 왜냐하면, 변화하는 과정에 겪게 될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피하고 싶어 해요.

레삭매냐 2018-06-11 1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느 신문 칼럼인가 기사를 보니,
지금 21세기 한국의 노동상황이 기원전 로마의
노예들이 처해 있던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는
글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교육제도와 시스템으로 노동을 기업/재벌에
예속된 현재가 서글퍼지네요.

cyrus 2018-06-12 11:51   좋아요 1 | URL
네, 슬프지만 현대판 노예가 많습니다.. ^^;;

책읽기는즐거움 2019-10-13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시지만 이제 수능으로 대학가는 친구들은 전체의 반의 반도 안됩니다. 시대가 변했는데 교육은 그대로 라는 말씀을 하시려면 변화된 부분은 반영하시는게 더 완벽한 글이 될 거 같아요. 물론 전체적인 논지는 공감합니다. 제가 평가할 수준은 아니지만요^^;

cyrus 2019-10-14 07:42   좋아요 0 | URL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미혼이라서 최근 입시 현황을 잘 몰랐습니다.. ㅎㅎㅎ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3년이나 지났는데 그 사이에 많이 변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