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하면 흔히 대마초와 히로뽕 등을 떠올린다. 그만큼 많이 유통되기 때문일 것이다. 대마초는 마리화나, 해시시(하시시)라고도 불린다. 마리화나는 대마초의 잎을 말려 가루로 만든 것이고, 해시시는 말린 대마수지(꽃대 부분에 나오는 물질)를 반복 증류하여 용액 형태로 응축시켜 만든다. 해시시는 마리화나보다 환각성이 강하다.
* [절판] 샤를 보들레르, 테오필 고티에 외 《해시시 클럽》 (싸이북스, 2005)
* [절판] 조은섭 《포도주, 해시시 그리고 섹스》 (밝은세상, 2003)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마약 중독자였다. 그는 ‘해시시 클럽’의 회원이었다. 해시시 클럽에는 테오필 고티에, 빅토르 위고, 제라르 드 네르발 등 당대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가입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해시시를 즐겼고, 그 경험을 토대로 글을 남겼다. 《해시시 클럽》(싸이북스, 2005)에 수록된 보들레르의 글 『해시시의 시』는 1858년에 발표된 <인공 낙원>의 일부다. 이 책에서 보들레르는 해시시의 환각성을 ‘인공 낙원’으로 묘사했다. 그는 환각성 마약이 창작을 위한 삶의 질료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보들레르는 해시시 클럽의 회원이었으나 해시시를 즐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해시시가 주는 순간의 쾌락이 인간의 의지를 파괴한다고 생각했다.
중세 이슬람과 마약이 연결된 역사는 매우 길다. 암살자를 뜻하는 ‘assassin’은 아랍어 ‘하시신(hashishin)’에서 유래됐다. 하시신은 ‘해시시에 중독된 사람’이라는 뜻으로 악명 높은 이슬람 비밀 암살단의 별칭이다. 이 비밀 암살단 이름은 우리가 아는 영어 ‘assassin’과 동일하다. 아사신은 이슬람 시아파의 한 갈래인 이스마일파의 과격 분파인 니자리파로, 암살을 정치적 무기로 삼았다. 당시 이슬람 주류 세력이었던 아바스 왕조의 실력자들을 잇달아 암살했고, 심지어 과격하기로 유명한 시아파마저도 아사신을 몹시 싫어했다. 아사신은 과격파도 철저히 지키던 무슬림 율법을 무시하는 극단적인 행보를 보였다.
* 마르코 폴로 《마르코 폴록의 동방견문록》 (사계절, 2000)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상》 (열린책들, 2009)
니자리파는 깊은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 생활했으며 그들이 세운 알라무트(Alamoot)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알려졌다. 중세 학자들은 산에 은둔하는 니자리파의 우두머리를 ‘산중 노인(또는 산노인[*], The Old Man of the Mountain)’이라고 불렀다. 니자리파는 많은 군중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적을 처단했다. 적에 대한 징벌과 대중에 대한 교훈이라는 이중의 목적을 겨냥한 것이었다. 마르코 폴로는 13세기 후반 폐허가 된 알라무트를 방문했고, 자신의 책 《동방견문록》에 아사신을 언급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알라무트 요새 안에 ‘비밀스러운 쾌락의 정원’이 있다. 쾌락의 정원은 암살단원들의 훈련 장소이자 양성소다. 니자리파는 암살단원을 ‘살인 병기’로 세뇌하기 위해 마약성 약물을 이용했다. 폴로를 비롯한 유럽인들은 아사신의 전설과 신화를 믿었고, 이로 인해 아사신은 마약을 먹고 사람을 죽이는 잔인한 암살자의 대명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2009) 을 번역한 故 이윤기는 ‘산노인’을 설명한 역주에서 아사신을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공격한 자객’이라고 썼다.
레바논 산중을 근거지로 회교 테러리스트 자객을 조직한 하산 이븐알사바에게 붙은 칭호. <자객(hashishiyya)>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한다. 자객을 <하시시야>, 즉 <하시시 중독자>라고 부르는 까닭은 이 조직의 구성원들이 <하시시>라는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페르시아, 시리아, 소아시아 등지의 지배자들, 혹은 십자군 시대에는 기독교도들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장미의 이름》 구판 상권, 323쪽)
이윤기 선생이 지금도 살아계셨더라면 이 역주 설명을 고쳤을 것이고, 새로운 개정판이 나왔을 것이다. 아사신을 ‘마약에 중독된 암살 집단’으로 묘사한 설명이 반론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 버나드 루이스 《암살단 : 이슬람의 암살 전통》 (살림, 2007)
* 아빈 말루프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아침이슬, 2002)
* 유발 하라리 《대담한 작전》 (옥당, 2017)
아사신은 니자리파의 악명 높은 암살 공격에 두려움을 떨던 유럽인들이 붙인 별칭이다. 니자리파는 자신의 암살단을 ‘아사신’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니자리파 암살단의 정식 명칭은 ‘피다이(fidā’ī)’다. 암살단이 마약에 중독된 상태에서 공격을 감행했다는 확증은 없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니자리파 암살단은 공격 대상의 허를 찌를 정도로 치밀하고도 대담한 작전을 펼쳤다. 이런 그들이 마약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 암살을 감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암살을 시도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요새 안에 있다던 ‘쾌락의 정원’은 유럽인들의 과장된 상상이 만들어낸 가공 장소이다.
이미 오래전에 아사신의 신화가 허구임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사신이 ‘마약 중독’이 결합한 암살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아사신은 이슬람에 대한 서구의 편견이 반영된 단어다. 십자군 전쟁을 경험한 서구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에 향한 증오심을 잊지 못했고, 이슬람의 폭력성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아사신 신화’를 이용했다. 사실 아사신은 하시시와 전혀 관련이 없다. 아사신은 원래 이슬람권에서 상대를 경멸할 때 쓰는 단어였다. 아사신의 어원은 이슬람을 악의적으로 묘사한 서구의 기록에 의해 왜곡되어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과거를 고대, 중세, 근대로 나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중세시대와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예컨대 무슬림을 바라볼 때 이슬람 종교의 잔학성과 비인륜적 관습에 먼저 초점을 맞추곤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슬람의 실체는 과격하고 호전적인 이미지의 종교로 잘못 인식됐다. 모든 종류의 테러는 어떤 연유로 인해 그 누가 행하든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비윤리적 행위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적 · 문화적 배경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들의 무력 행위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이슬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이슬람교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이슬람문명과 그 역사를 두루 살펴야만 비로소 불식될 수 있다.
[*] 《장미의 이름》 구판 상권, 3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