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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공감하는가 - 거울뉴런과 뇌 공감력의 메커니즘
크리스티안 케이서스 지음, 고은미.김잔디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남자 운동선수가 정말 두려워하는 통증이 있다.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는,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남자에게 정말 아픈 부위. 고환은 외부의 충격과 자극에 아주 민감하다. 말 못 할 고통은 물론 파열 시 수술로 봉합한다고 해도 불임이 될 가능성이 있다. 야구, 이종격투기 선수는 급소 보호대를 차고 경기에 임한다. 그런데 100% 안전하지가 않다. 작년 로드FC 39 무제한급 경기는 급소 가격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경기는 시작 8초 만에 명현만의 로우 킥이 아오르꺼러의 급소를 정통으로 가격하며 중단됐다(경기는 무효로 처리됐다). 경기 시작과 함께 중계로도 ‘퍽’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으니 중계를 봤던 나도 아프게 느껴졌다.
과학적으로 보면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나는 급소에 맞아 고통을 호소하는 아오르꺼러를 보면서 내가 급소를 다친 것처럼 안타깝게 느껴지는 걸까. 내가 경기장에 있는 게 아니라 그저 TV로 중계 장면을 보기만 하는 데도 말이다. ‘과부 설움은 홀아비가 안다’고 처지가 비슷하거나 심정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더 신경이 쓰인다. 모르는 사람의 다리 골절보다 옆 사람의 손가락 상처가 더 안타까운 것도 물론이다. 기쁨과 즐거움도 마찬가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기쁘거나 즐거우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같은 현상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지켜볼 때, 스스로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활동을 같이하는 신경세포인 ‘거울뉴런(mirror neuron)’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 뇌에는 거울뉴런이 활발히 작동한다. 이 세포는 타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마치 ‘거울’처럼 그대로 비춘다. 이 때문에 타인의 신체에 가해진 물리적 충격을 보는 것만으로 그 자극이 마치 자신의 몸에 가해진 것처럼 감각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거울뉴런은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감정이입을 하거나 공감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기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배우고 슬픈 영화를 보다가 눈물을 흘리는 등의 행위는 바로 거울뉴런 덕분에 가능하다.
공감은 어떤 행위나 말에 대해 상대방의 마음에 동조하는 긍정적인 감정 상태이다. 나는 흔히 타인의 상황이나 감정에 대해 ‘공감한다’는 단어를 쉽게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사용해 온 ‘공감’이란 단어가 많이 과장돼 있었다는 반성이 잦아졌다. 가슴이 아닌 입으로만 쉽게 하는 위로를 공감이라고 착각했다. 악의도 없었고 위선도 아니었지만 진짜 공감이 아니었던 건 분명하다.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이 어려워지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 이 책을 고르게 됐다.
거울뉴런을 연구한 과학자 크리스티안 케이서스는 거울뉴런이 ‘공감’의 신경학적 기초를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라고 말한다. 그는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공감하는가》(바다출판사, 2018)을 통해 거울뉴런을 운 좋게 발견해낸 일화와 20년 사이 거울뉴런 연구 분야와 관련된 주목할 만한 발견, 세계 각지 실험실에서 지금도 진행 중인 독창적인 실험들을 흥미롭게 들려준다. 거울뉴런의 존재가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1990년.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 연구팀은 원숭이 뇌에 전극을 이식하고 땅콩을 집어 입으로 가져갈 때의 반응을 관찰했다. 그 결과 특이하게도 원숭이가 스스로 이 행동을 할 때와 사람이나 다른 원숭이가 이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 같은 부위의 신경세포들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뇌가 ‘보는 것’을 ‘똑같이 받아들이게 하는 거울뉴런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우리는 언어나 음악, 춤 등을 처음 배울 때는 상대방을 그대로 따라 한다. 거울뉴런 체계에 의해 우리는 모방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타인의 행동을 이해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뛰어난 사회적 동물로 진화한 이유도 거울뉴런이 더 발달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거울뉴런의 활동을 극대화하는 복잡한 메커니즘, 즉 ‘공유회로’를 갖추고 있다. 이 공유회로는 언어 학습과 문화의 전달을 위해 인간의 모방 행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거울 뉴런은 단순한 모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표정 및 행동에 숨어있는 의도를 파악하는 데도 관여한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알게 해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 즉 관계를 형성하는 역할도 한다.
거울뉴런의 활동이 적을수록 어린아이는 사회 활동을 하는 데 지장을 느낀다. 심할 경우 대인관계를 꺼리고 외부 환경과 접촉을 꺼리는 자폐증으로 발전한다. 그렇지만 일반인은 나이가 들수록 공유회로의 활동이 줄어드는 데 비해, 자폐증 환자의 공유회로는 점점 정상화되었다. 따라서 자폐증은 거울뉴런과 공유회로가 결핍되어 있거나 손상되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자폐증의 거울뉴런과 공유회로가 일반인보다 좀 늦게 작동되었을 뿐이다. 사이코패스에게도 공감 능력이 있다. 사이코패스는 공감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스스로 활용하지 않는다. 이처럼 거울뉴런은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작동하는 게 아니다.
저자는 거울뉴런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거울 뉴런이 있기 때문에 우린 타인의 마음에 감정 이입하여 공감할 수 있다. 저자는 거울뉴런을 인간이 사회적 존재가 되게 하는 필수요건으로 꼽는다. 다만, 저자의 거울뉴런 만능론을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거울 뉴런이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줄 정도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확실한 증거가 밝혀지지 않았다. 앞으로 좀 더 연구해야 할 부분이 많다. 거울뉴런 만능론을 비판하는 신경과학자들의 반박도 적지 않다.
우리의 뇌와 마음속에는 ‘거울’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상을 제대로 비추지 못하는 지저분한 거울이 많다. 그런 거울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타인과 더 가깝게 지내는 것을 꺼린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은 세상살이의 기본이다. 윤동주 시인은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을 밤이면 밤마다 닦았다. 혹여 내 주변의 다른 사람을 헤아리지 못하고 ‘가짜 공감’을 하는 건 아닌지 각자 내면의 거울을 열심히 닦아보자.
[*] 윤동주의 시 『참회록』 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