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이 아닌 몸 - 미국 문화에서 장애는 어떻게 재현되었는가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 4
로즈메리 갈런드 톰슨 지음, 손홍일 옮김 / 그린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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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에 기형(畸形)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글에서 나는 기이한 몸을 떠올리는 기형대신 이형(異形)이라는 단어를 쓸려고 했다. 이형은 완전한 몸’, ‘건강한 몸’, ‘정상적인 몸을 뜻하는 전형(全形)의 반대말이다. 이형은 말 그대로 (전형과) 다른 몸이다. 그러나 이 단어도 만족스럽지 않다. 차이(다름)다양성이 아닌 차별과 같은 의미로 이해된다면 이형도 비정상적인 몸을 떠올리게 하는 기형의 의미로 수렴될 수 있다.

 

그렇다면 기형을 대체할만한 단어는 과연 있을까? 새로운 대안 언어에 한계가 있더라도 그 단어를 찾아내거나 만들어야 한다. 최근에 기형이형을 대신할 만한 단어를 발견했다. 장애학 이론으로 미국 문학을 분석하는 작업을 시도한 영문학과 교수 로즈마리 갈런드 톰슨(Rosemarie Garland Thomson)보통이 아닌 몸(extraordinary bodies)이다. 그녀가 쓴 보통이 아닌 몸장애학에 여성주의 이론을 접목한 책이다.

 

extraordinary’기이한’, ‘놀라운’, ‘보기 드문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extra’‘ordinary’의 합성어인데 ‘ordinary’보통’, ‘평범한을 뜻한다. ‘ordinary’평범하고 건강한 몸을 가진 비장애인을 지칭하는 개념이라면, extraordinary’는 기이한 몸을 가진 장애인을 지칭하는 개념이 된다. 그런데 ‘ordinary’의 반대말은 ‘unordinary’. 톰슨은 왜 ‘unordinary’ 대신에 ‘extraordinary’에 썼을까. 보통이 아닌 몸의 역자는 톰슨이 평범하지 않은(unordinary) 장애인의 몸에 함축된 부정적 의미를 극복하고, 장애인의 몸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단어‘extraordinary’을 선택했다고 추측한다. 그래서 역자는 저자의 의도가 독자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extraordinary’보통이 아닌 몸으로 의역했다. 보통이 아닌 몸기형의 몸’, ‘불구’, ‘결핍된 몸으로 보이고 설명되는 타자화된 몸이 아니다.

 

보통이 아닌 몸은 비장애인의 몸과 비교당하는 장애인의 몸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책이다. 프릭 쇼(freak show)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기형 인간 쇼는 1800년대부터 시작해서 20세기까지 이어져 왔다. 저자는 프릭 쇼를 장애인의 몸을 구경거리로 만든 문화 사업이라고 지적한다. 프릭 쇼는 사라졌지만, 지금도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몸을 열등한 상태 그리고 개인적인 불행으로 간주하면서도 그것을 신기한 몸으로 의식한다.

 

저자는 미국 문학작품 텍스트 속에 장애인의 몸과 삶이 어떻게 묘사되는지 분석한다. 그녀가 언급한 미국 문학작품에서 장애인은 주로 주변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이 역할 안에서 기이하면서도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타자로 그려졌다. 장애인을 문화적으로 또는 신체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만드는 내러티브(narrative)는 그들을 있지만 없는 존재로 타자화하고 배제하는 인식을 생산한다. 노예제의 비인간성을 고발한 해리엇 비처 스토(Harriet Beecher Stowe)의 대표작 엉클 톰스 캐빈(Uncle Tom’s Cabin)의 비장애인 여성은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는 주체적인 인물로 묘사되지만, 장애 여성은 무력하고 절망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특정한 정체성을 생각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전형적인 그림이 바로 고정관념이다. 합리적이지 못한 인간은 그 정체성에 대한 매우 제한된 정보만으로 그것을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정관념이 편견으로 굳어져 버리면 차별과 배제를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장애인은 건강하지 못해서 불행하다라든가 장애인은 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장애인의 삶을 축소하게 만드는 오래된 고정관념이다. 보통이 아닌 몸은 장애인의 몸과 삶에 투과되는 여러 가지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작업을 시도하면서 다양한 장애인들의 주체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긍정적인 장애 정체성을 강조한다. 이 책은 장애를 재현하는 사회적 인식과 문화의 시선, 그리고 장애를 간과해온 비장애인 중심의 여성주의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Trivia

 

수용의 논리는 장애란 그저 사람들 사이의 많은 다름 중의 하나일 뿐라고, 사회는 이 점을 인식하고 그에 맞게 환경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89)

 

뿐이라고의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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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9-09-21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푸코가 말했듯 모든 것을
정상/비정상으로 나누는 잘못된 에피스테메를 다시 심도있게 포스팅 해주셔서 배우고 갑니다^^

cyrus 2019-09-22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통이 아닌 몸」에 푸코의 이론이 나와요. 제가 리뷰에 그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는데도 쿠키님이 잘 파악하셨어요. 엄지 척 👍입니다! ^^
 
낙인찍힌 몸 - 흑인부터 난민까지, 인종화된 몸의 역사
염운옥 지음 / 돌베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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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자를 차별하는 것을 인종주의라고 한다면, 문화 · 종교 등을 이유로 삼아 타자를 차별하는 것은 변형된 인종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인종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시대를 막론하고 그 역사적 뿌리가 깊은 현안이다. 낙인찍힌 몸인간의 몸에 대한 위계적인 해석에서 시작된 인종주의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는 영국 우생학 운동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다. 우생학은 열등한 인종의 몸을 분리해내고 낙인찍는 학문이다. 우생학 열풍은 영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우생학은 제국주의 바람을 타고 미국으로 전파되었고, 흑인을 배제하는 인종주의는 지금도 백인들의 의식에 잠재되어 있다. 히틀러(Hitler)와 나치 독일(Nazi-Deutschland)이 자행한 유대인 학살은 난데없이 툭 튀어나온 사건이 아니다. 유대인 학살은 유럽의 오랜 반유대주의 전통에 기반을 둔 우생학이 초래한 끔찍한 결과다. 뾰족한 코를 가진 유대인은 열등 인종의 전형으로 정의되었고, 아리안인(Aryan)의 뛰어난 내적 자질은 출중한 외모를 통해 증명된다는 학설이 전파됐다.

 

과학적인 이론으로 뭉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우생학은 타자의 몸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 인종 차별과 다른 민족에 대한 침략 및 지배를 정당화해왔다. 인종주의는 외모, 피부색, 골격 등의 생물학적 속성을 기준으로 타자에게 우열을 매긴다. 저자는 인종주의를 인종적 타자의 몸을 먹고 자란 히드라(Hydra)로 비유한다. 히드라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물뱀이다. 히드라는 아홉 개의 머리를 가졌는데, 이 목을 잘라내면 베어진 자리에서 새로운 목이 생긴다. 히드라 같은 인종주의는 여전히 강력하다.

 

인종(raza)이라는 단어는 원래 동물의 품종을 뜻하는 스페인어다. 이 단어는 유럽으로 확산하면서 우리가 익숙한 인종(race)이 만들어졌다. 분류학이 발전하면서 동물의 품종을 의미하던 인종(raza)은 인간을 분류하는 개념(race)으로 자리 잡았다. 스위스의 박물학자 린네(Linne)는 동물과 식물의 범주를 나누고 속과 종을 분류하면서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이명법을 도입했다. 그는 인류의 피부색을 네 가지로 분류했다. 린네의 분류법에 따르면 유럽인은 백색, 아메리카인은 홍색, 아시아인은 갈색, 아프리카인은 흑색이다. 린네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인종을 공식적으로 정의한 학자이다. 고대 그리스 문화를 떠받들던 독일의 미술사학자 빙켈만(Winckelmann)은 고대 그리스 조각상을 아름다움의 척도로 삼았다. 저자는 린네의 분류학과 빙켈만의 미학을 인종주의 발전의 시작점으로 본다.

 

낙인찍힌 몸은 인종주의의 역사는 서양에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흑인과 유대인, 무슬림 차별 담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은 서양의 인종주의 문제만을 분석하지 않는다. 저자는 히드라 같은 인종주의가 신인종주의(new racism)또는 문화적 인종주의(cultural racism)라는 이름으로 계속 자라고 있다고 말한다. 백인우월주의와 반유대주의가 생물학적 인종주의라면, 오늘날의 인종주의는 신인종주의다. 신인종주의는 타자의 정치적 성향, 종교, 문화에 우열을 매길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편견을 부여한다. 새로운 히드라의 머리는 다문화를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 자라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조선인은 생물학적 인종주의가 주목하는 실험 대상이었다. 외국에 있는 한국인도 종종 인종 차별을 당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 타자를 낙인찍고 배제하는 가해자의 위치에 선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민, 외국인노동자, 난민, 무슬림들에 가해지는 인종 차별은 새롭게 자라나고 있는 히드라의 머리다. 이제는 문화적 지표가 인종주의의 표적이 되고 있다. 생물학적 인종주의라는 이름이 붙여진 히드라의 머리를 자르면 그 자리에 신인종주의라고 불리는 새로운 머리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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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0 1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21 11:29   좋아요 0 | URL
저랑 같은 책을 읽는 분을 만나니 정말 반갑네요. 책에 제가 몰랐던 내용과 사례들이 많이 있어요. 책을 읽으면 생각거리가 많아질 거예요. ^^
 
나우 : 시간의 물리학 - 지금이란 무엇이고 시간은 왜 흐르는가
리처드 뮬러 지음, 장종훈.강형구 옮김, 이해심 감수 / 바다출판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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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한테 문자 메시지가 왔다. “지금 뭐 하고 있어? 한가하면 술 한잔하자. ○○○ 앞에서 보자.” 나는 친구에게 답장 메시지를 바로 보낸다. “지금 내 방 청소하고 있어. 청소 끝내고 갈게.”

 

나와 친구는 평범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렇지만 내가 친구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잘 살펴보면 어색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나는 친구에게 답장 문자를 보내는 중인데, 지금내 방을 청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을까? 지금말하는 바로 이 순간을 의미한다. 내가 방을 청소한 행위는 과거의 일이다. ‘지금의 본래 의미에 충실한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면 이렇게 써야 한다. “지금 너에게 보낼 문자 메시지를 쓰고 있어.”

 

우리는 말할 때 가끔 지금이라는 단어를 과거의 일을 포함해서 쓰는 경우가 있다. 문법에 맞지 않는 말이지만, 대부분 사람은 알아듣고 넘긴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된다. ‘현재지금의 의미와 같다. 그러나 현재지금은 그야말로 찰나의 시간이다. 현재 지금은 순식간에 과거가 되어버린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른다.

 

실험 물리학자 리처드 뮬러(Richard Muller)지금이라는 단어가 무척 단순하면서도 신비한 개념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의 의미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옷깃을 살짝 스치듯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 지금과거가 된다. 그러므로 지금을 정의하는 일은 시간의 흐름을 연구한 이론물리학자들도 어려워한다. 뮬러는 나우(Now): 시간의 물리학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했던 지금과 시간의 흐름을 물리학적 관점으로 살펴보고, 수많은 물리학자들을 난감하게 만든 시간과 관련된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시간의 화살(arrow of time)이라는 개념에 맞서고 있다. 시간의 화살은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방향을 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쏜살같이 시간이 지나갔다고 말하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을 뜻하고 있기도 하다. 시간의 화살은 왜 미래로만 향할 수밖에 없는가. 열역학 제2 법칙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예외 없이 엔트로피(Entropy)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엔트로피는 변해버린 물질을 다시 원 상태로 만들 수 없게 되는 현상이다. 따라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온전한 형태의 물질과 질서 체계가 각각 무 형태와 무질서 체계로 가게 된다는 뜻이다. 노화는 열역학 제2 법칙과 시간의 화살에 의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스콧 피츠제럴드(Scott Fitzgerald)의 소설에 나오는 벤저민 버튼(Benjamin Button)처럼 시간이 거꾸로 가는 삶을 살 수 없다. ‘시간의 화살을 처음으로 언급한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은 엔트로피가 시간을 앞으로 가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뮬러는 시간의 화살에 대한 에딩턴의 설명이 확실히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고전적인 시간의 화살의 결점을 보완해줄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첫 번째 대안은 양자물리학으로 시간의 화살을 설명하는 것, 두 번째 대안은 새로운 공간을 끊임없이 팽창하는 빅뱅(big bang)에 의해 시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간이 빅뱅과 더불어 태어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우주론에서는 시간의 기원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한다. 그렇다면 시간은 우주의 미래와 운명을 같이할 것이다. 뮬러는 두 가지 대안을 설명하면서 엔트로피 개념을 버리자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두 가지 대안에 각각 양자 화살’, ‘우주론적 화살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과거의 물리학자들은 예측 가능한 현상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것을 법칙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상대성이론을 발표하여 뉴턴(Newton)의 고전물리학을 뒤엎은 아인슈타인(Einstein)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결정론적 세계와 시간관념을 무용하게 하는 불확정성 원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양자물리학자들은 불확정성 원리를 내세워서 과거가 미래를 결정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들은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시간의 화살을 부러뜨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간의 화살에 매달리는 노예가 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 뮬러는 지금이야말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있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아무도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양자역학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다면 아마도 시간지금이다. ‘시간지금이라는 개념을 파악하기까지는 아직 많은 여정이 남아 있다. 과학자도 그렇고, 평범하게 살고 있는 우리도 시간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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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는 도서관에서 익숙한 책을 만났어요! :)

- 2019.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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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8 1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18 19:28   좋아요 1 | URL
제목을 안 적었네요.. ㅎㅎㅎ
<네 멋대로 읽어라>입니다. 알라디너 stella.k님이 쓴 책이에요. :)

2019-09-18 2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19 11:52   좋아요 0 | URL
책이 진열대 중앙에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띌 거예요. ^^

2019-09-18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19 11:54   좋아요 1 | URL
네, 책을 보자마자 기쁜 마음이 들었어요. ‘내가 아는 책’인데 이상하게도 ‘내가 쓴 책’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

얄라알라 2019-09-20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stella.K님의 책이라니, 모르고 휘릭 봤을 때랑...마음이 달라집니다. 다시 찾아 읽어야겟어요

cyrus 2019-09-21 11:32   좋아요 0 | URL
예전에 읽은 책이라서 그런지 보자마자 알아봤어요. 안 읽은 책이라면 대충 보고 지나쳤을 거예요.. ^^;;
 

 

 

살롱(salon)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단어다. 첫 번째 의미는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실이다. 두 번째 의미는 그곳에서 열리는 사교 모임이다. 세 번째 의미는 활동 중인 화가들의 그림들을 모아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전시회다.

 

 

 

 

 

 

 

 

 

 

 

 

 

 

 

 

 

 

* 강준만 룸살롱 공화국(인물과사상사, 2011)

 

 

 

우리나라에 알려진 살롱의 의미는 앞에 언급한 것들과 다르다. 여종업원이 술 시중을 들어주는 유흥주점을 룸살롱이라고 부른다. 이곳에 칸막이가 있는 방들이 있다. 우리 사회의 오래된 폐부인 접대 문화를 분석한 강준만은 한국을 룸살롱 공화국’, ‘칸막이 공화국이라고 지적했다. 은밀한 접대는 칸막이를 해야 하고, 칸막이를 우아하게 만들어놓은 곳이 바로 룸살롱이다. 룸살롱의 전신은 요정(料亭)이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를 통치한 미군정에 빌붙으려는 세력들은 요정에서 미군정의 주요 인사들을 접대했다. 요정은 권력을 차지하고 싶은 자들이 늘 드나들었고, 밀실 접대를 통해 권력의 한 축이 된 사람들은 룸살롱의 고객이 되었다.

 

 

 

 

 

 

 

 

 

 

 

 

 

 

 

 

* [절판] 하이덴-린쉬 유럽의 살롱들(민음사, 1999)

* 서정복 살롱 문화(살림, 2003)

* 메릴린 옐롬, 테리사 도너번 브라운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책과함께, 2016)

 

 

 

이제부터 진짜로 살롱에 대해서 살펴보자. 17~18세기 유럽의 귀족과 지식인들은 응접실에 모여 찻잔을 기울이며 과학과 문학, 예술과 정치 등을 논했다. 허영에 찬 상류층의 모임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살롱에서 이뤄진 방대한 정보와 지식의 교류는 프랑스 대혁명과 계몽주의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살롱은 여성해방의 공간이기도 했다.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살롱의 여주인들은 재기와 언변을 바탕으로 유명 인사들을 끌어들이려 각축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녀들의 삶과 전설은 유럽의 살롱들(민음사)이라는 책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지금은 몰락한 여성 문화의 황금기. 유럽의 살롱들은 프랑스, 독일, 영국의 살롱 문화의 특징과 각국의 살롱 문화를 대표하는 여성들의 주요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20세기까지 이어진 살롱은 정숙한 여성의 역할을 강요해온 가부장적 사회 규범을 타파하는 여성 해방의 자유로운 무대였다. 유럽의 살롱들은 절판되었는데, 이 책의 빈자리를 살롱 문화(살림)가 대신하고 있다.

 

남성 중심의 문화와 역사 기록에 가려진 여성의 다양한 우정과 연대 방식을 주목한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책과함께)도 여성의 살롱 문화를 비중 있게 언급한 책이다. 살롱 문화를 이끌어간 영국 여성들은 블루스타킹(bluestocking)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1750년대는 영국의 살롱 문화가 활발히 이루어진 시기였다. 이 시기에 가장 주목받은 살롱의 여주인은 엘리자베스 몬터규(Elizabeth Montagu). 그녀의 모임에 자주 참석한 식물학자 벤저민 스틸링플릿(Benjamin Stillingfleet)는 블루스타킹을 착용했다. 그가 모임에 불참하게 되자 몬터규는 벤저민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그 후로 몬터규의 살롱 회원들은 블루스타킹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블루스타킹을 신은 사람은 모임에 열심히 활동하는 똑똑한 사람을 상징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지적인 살롱 회원을 의미하는 별명으로 남게 됐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 중심 사회에 개입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일부 사람들은 살롱에 참석하는 여성들을 가리켜 블루스타킹이라고 불렀다. 이때부터 블루스타킹은 유식한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 됐고, 19세기 초에는 여성 참정권 운동에 뛰어든 여성을 조롱하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 한일근대여성문학회 옮김 세이토(어문학사, 2007)

* 정애영 히라쓰카 라이초(살림, 2019)

 

 

 

미국과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에 영향을 받은 일본의 여성주의자들은 19119월에 <세이토(靑鞜, 청탑)>라는 여성문예 잡지를 창간했다. 세이토는 블루스타킹을 한자어로 바꾼 단어이다. 이 잡지 창간 및 편집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히라쓰카 라이초(平塚雷鳥)천재적인 여성의 등장을 역설한 글 원래 여성은 태양이었다<세이토> 창간호에 게재했다. 원래 여성은 태양이었다는 처음에 이렇게 시작한다.

 

 

 원래, 여성은 태양이었다. 진정한 인간이었다.

 지금, 여성은 달이다. 타인에 의해 살아가고 타인의 빛에 의해 빛나는 병자와 같은 창백한 얼굴의 달이다.

 지금 세이토는 태어났다.

 현재 일본 여성의 두뇌와 손에 의해 세이토는 처음 태어났다.

 

 

(히라쓰카 라이초, 원래 여성은 태양이었다중에서, 세이토39)

 

 

 

 

여성은 태양이었다가부장제 사회 한가운데에 근대 일본 여성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이다. 라이초는 이 글에서 대지를 비추는 태양처럼 빛나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 [우주지감 9월의 책] 나혜석, 장영은 엮음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민음사, 2018)

* [절판] 이상경 나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한길사, 2009)

 

 

 

라이초와 <세이토>는 각각 일본의 신여성 운동을 대표하는 인물과 매체로 되었고, 일본에 유학한 조선의 여성주의자들은 이 잡지를 통해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여성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조선보다 한 발 앞선 일본의 여성해방 운동에 영향을 받은 여자 유학생들은 여자유학생친목회라는 이름의 단체를 만들어 19176[]<여자계(女子界)>를 발간했다. 여자유학생친목회 회원 중에 그 유명한 나혜석도 포함되어 있다. <여자계>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잡지 혹은 학술지로 평가받는다. 나혜석은 이 잡지를 통해 여성을 순종적으로 만드는 현실(결혼)과 여성해방의 이상 사이에 고뇌하는 신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 경희를 발표한다. 나혜석은 자신의 글 이상적 부인에 라이초를 간접적으로 언급할 정도로 그녀를 신여성 운동의 본보기로 삼았다.

 

 

 

 

 

 

 

 

 

 

 

 

 

 

 

 

* [절판] 박노자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한겨레출판, 2007)

 

 

 

그러나 라이초는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들어온 우생학을 옹호했으며 일본의 파시즘에 협조하는 행보를 보였다. 그녀는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해서 국가에 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모습은 일본의 아시아 침략과 일본의 조선 지배를 옹호한 조선의 신여성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신여성의 태양라이초는 1930년대부터 신여성의 욱일(旭日)이 되기 시작했다. 종전 이후에 라이초는 반전 운동가로 활동했다. 그러나 그녀가 반전 운동을 했다고 해서 신여성 운동의 한계가 잊히는 건 아니다.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한겨레출판)에 수록된 신여성의 명암, 히라쓰카 라이초는 단순히 일본 신여성 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는 글이 아니라 그녀들에게 영향을 받은 조선 신여성 운동의 한계까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글이다.

 

몇 년 전부터 나혜석을 필두로 해서 신여성을 조명한 책들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책은 신여성의 ()만 소개하는 데 그친다. 시대를 앞서간 선배라고 해서 너무 띄워주면 곤란하다. 태양 빛을 너무 많이 쬐면 암(癌)이 생긴다. 훌륭한 선배가 있다면 그와 정반대로 살아가는 불량한 선배도 있기 마련이다. 불량한 선배들의 과거 행적은 여성 운동의 오점이자 흑역사로 남게 되지만, 이와 같은 일이 재현되지 않으려면 그것을 밟고넘어야 한다. ‘신여성의 암(暗)은 그냥 건너뛸 수 없는 페미니즘의 문제이다.

 

 

 

 

[] 안타깝게도 <여자계>의 창간호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현재 남아있는 <여자계> 원본은 2호와 6호 뿐이다. 그래서 <여자계> 창간호 발행연도가 정확하게 언제인지 분명하지 않다. 나혜석의 일대기를 정리한 나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한길사)의 저자 이상경<여자계>의 창간호 발행연도를 ‘19177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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