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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 : 시간의 물리학 - 지금이란 무엇이고 시간은 왜 흐르는가
리처드 뮬러 지음, 장종훈.강형구 옮김, 이해심 감수 / 바다출판사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친구한테 문자 메시지가 왔다. “너 지금 뭐 하고 있어? 한가하면 술 한잔하자. ○○○ 앞에서 보자.” 나는 친구에게 답장 메시지를 바로 보낸다. “지금 내 방 청소하고 있어. 청소 끝내고 갈게.”
나와 친구는 평범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렇지만 내가 친구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잘 살펴보면 어색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나는 친구에게 답장 문자를 보내는 중인데, 왜 ‘지금’ 내 방을 청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을까? ‘지금’은 ‘말하는 바로 이 순간’을 의미한다. 내가 방을 청소한 행위는 과거의 일이다. ‘지금’의 본래 의미에 충실한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면 이렇게 써야 한다. “지금 너에게 보낼 문자 메시지를 쓰고 있어.”
우리는 말할 때 가끔 ‘지금’이라는 단어를 과거의 일을 포함해서 쓰는 경우가 있다. 문법에 맞지 않는 말이지만, 대부분 사람은 알아듣고 넘긴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된다. ‘현재’는 ‘지금’의 의미와 같다. 그러나 ‘현재’와 ‘지금’은 그야말로 찰나의 시간이다. ‘현재’와 ‘지금’은 순식간에 과거가 되어버린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른다.
실험 물리학자 리처드 뮬러(Richard Muller)는 ‘지금’이라는 단어가 무척 단순하면서도 신비한 개념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의 의미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옷깃을 살짝 스치듯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 ‘지금’은 ‘과거’가 된다. 그러므로 ‘지금’을 정의하는 일은 시간의 흐름을 연구한 이론물리학자들도 어려워한다. 뮬러는 《나우(Now): 시간의 물리학》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했던 ‘지금’과 시간의 흐름을 물리학적 관점으로 살펴보고, 수많은 물리학자들을 난감하게 만든 시간과 관련된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시간의 화살(arrow of time)’이라는 개념에 맞서고 있다. 시간의 화살은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방향을 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쏜살같이 시간이 지나갔다’고 말하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을 뜻하고 있기도 하다. 시간의 화살은 왜 미래로만 향할 수밖에 없는가. 열역학 제2 법칙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예외 없이 엔트로피(Entropy)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엔트로피는 변해버린 물질을 다시 원 상태로 만들 수 없게 되는 현상이다. 따라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온전한 형태의 물질과 질서 체계가 각각 무 형태와 무질서 체계로 가게 된다는 뜻이다. 노화는 열역학 제2 법칙과 시간의 화살에 의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스콧 피츠제럴드(Scott Fitzgerald)의 소설에 나오는 벤저민 버튼(Benjamin Button)처럼 시간이 거꾸로 가는 삶을 살 수 없다. ‘시간의 화살’을 처음으로 언급한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은 엔트로피가 시간을 앞으로 가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뮬러는 시간의 화살에 대한 에딩턴의 설명이 확실히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고전적인 ‘시간의 화살’의 결점을 보완해줄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첫 번째 대안은 양자물리학으로 시간의 화살을 설명하는 것, 두 번째 대안은 새로운 공간을 끊임없이 팽창하는 빅뱅(big bang)에 의해 시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간이 빅뱅과 더불어 태어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우주론에서는 시간의 기원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한다. 그렇다면 시간은 우주의 미래와 운명을 같이할 것이다. 뮬러는 두 가지 대안을 설명하면서 엔트로피 개념을 버리자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두 가지 대안에 각각 ‘양자 화살’, ‘우주론적 화살’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과거의 물리학자들은 예측 가능한 현상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것을 법칙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상대성이론을 발표하여 뉴턴(Newton)의 고전물리학을 뒤엎은 아인슈타인(Einstein)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결정론적 세계와 시간관념을 무용하게 하는 ‘불확정성 원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양자물리학자들은 불확정성 원리를 내세워서 과거가 미래를 결정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들은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시간의 화살을 부러뜨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간의 화살에 매달리는 노예가 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 뮬러는 ‘지금’이야말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있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아무도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양자역학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다면 아마도 ‘시간’과 ‘지금’이다. ‘시간’과 ‘지금’이라는 개념을 파악하기까지는 아직 많은 여정이 남아 있다. 과학자도 그렇고, 평범하게 살고 있는 우리도 시간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