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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황금시대 / 제이 하먼 / 어크로스

 

 

벌집에서 영감을 받은 아파트의 발코니, 고래 지느러미를 그대로 베낀 풍력 터빈 회사의 터빈 날. 자연이 가진 놀라운 기술과 오늘의 첨단 과학을 비즈니스와 결합시킨 새로운 패러다임이 소개되어 있다. 자연의 탁월한 과학 원리를 모방한 생체 모방 기술이 기존의 산업에 어떤 자극을 주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기술들은 아직까지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할 정도로 신 분야지만 지구 곳곳에서 시작되는 골드러시를 밝히는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을 가능성이 높다.

 

 

 

 

 

 

 

 

 

 

 

 

 

 

 

 

 

 

* 인기 없는 에세이 / 버트런드 러셀 / 함께읽는책

 

 

‘20세기의 볼테르’로 불리는 버트런드 러셀의 이 에세이집은 인기 없는 책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예언과 달리 1950년 출간 즉시 러셀의 책들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힌 책이 됐다. 러셀은 그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몇 년 전부터 러셀의 책들이 많이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는데 그의 명성을 확고히 해준 대표작이 이제야 나오게 되었다. 반어적인 제목이 독자의 눈길을 끄게 만든다. 러셀의 글은 위트가 넘치지만 그 안에 철학이 담겨 있다. 그는 “엄숙하고 오만한 사람들과 제대로 싸우기 위해서는 엄숙과 오만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글을 ‘인기 없는 에세이’라고 정했을까? 이 글을 쓰기 전에 이미 가장 저명한 지식인으로 알려진 그는 반어적인 제목을 통해 오만을 스스로 버리고 여전히 엄숙하고 오만한 사람들과 대항하려는 지적 의지가 돋보인다.

 

 

 

 

 

 

 

 

 

 

 

 

 

 

 

 

 

 

 * 기술과 문명 / 루이스 멈퍼드 / 책세상

 

 

루이스 멈퍼드는 미국의 사회학자, 도시학자, 건축사가, 철학자, 문명비평가, 사회운동가로서 제도권의 학적 시스템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연구와 방대한 저작을 통해 독창적인 사상의 지도를 그린 인물이다. 기술의 역사를 문명사적 관점에서 고찰한 우리 시대의 고전이기도 한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기계에 대해 가지는 이 같은 물음에 훌륭한 통찰을 제공한다. ‘문명사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멈퍼드는 균형, 붕괴, 재생이라는 테마를 통해 원기술 시기, 구기술 시기, 신기술 시기로 재구성한 천 년의 역사를 훑어가면서 기계가 물리적 환경 속에서 빚어낸 물질적 변화보다 문화에 미친 정신적 영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옛 그림을 보는 법 / 허균 / 돌베개

 

 

우리 옛 그림을 모두 13장의 주제로 분류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대표작품을 선별하여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상징의 세계를 풀어냈다. 서점에서 직접 이 책을 훑어봤는데 도록이 꽤 많이 수록되어 있다. 그림에 담긴 ‘상징’을 매개로, 우리 옛 미술에 관심은 있으나 어떻게 보아야 할지 몰랐던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우리 그림의 특징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림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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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확증 편향

 

 

 

 

 

 

 

 

 

 

 

 

 

 

 

 

 

심리학 용어에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증거나 자료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선택하는 경향을 말한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는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지만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자신의 의견에 맞도록 왜곡하거나 무시해버린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보거나 듣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확증 편향의 원인은 자기논리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선입견 때문이다. 이러한 선입관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새로운 정보나 다른 의견은 틀린 정보로 인식하게 된다. 결국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보를 재해석(축소, 왜곡)하는 자기합리화가 발생, 자신의 편견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확증 편향의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하나의 거대한 집단 사고로 형성하게 되면 사회 갈등을 야기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확증 편향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사회적인 이슈를 하나를 꼽자면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와 인식이다.

 

 

 

 

 Scene #2  확증 편향의 함정에 빠진 역사관

 

 

 

 

 

 

 

 

 

 

 

 

 

 

 

 

한국사가 2017학년도부터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된다. 한국사가 대학입학 시험의 독립·필수과목이 되는 것은 24년 만이다. 한국사의 수능 필수화는 일본의 역사왜곡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의 역사인식 수준이 낮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한국인으로서 나라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교육이 필요한 건 자명하다.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에 총을 겨눈 안중근 의사를 병원에 일하는 의사로 안다거나 ‘3.1절’을 ‘삼점일절’로 읽는 중·고등학생들이 있다면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심각하다. 6.25 전쟁이 몇 년 몇 월 며칠에 발발하는지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대학생도 있다.

 

정부의 한국사 수능 필수화 도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도 있는 반면에 부정적인 여론도 있다. 한국사는 암기해야 할 과목이라서 청소년의 학습 부담이 커져 오히려 흥미가 잃을까 우려되기도 하며 평가 위주의 입시 제도를 통한 역사 공부가 과연 역사인식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사 수능 필수화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신중한 논의가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청소년이 올바른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균형 있고 건전한 역사관이 들어있는 역사 교과서로 배워야 한다. 지난 8월 27일 한국사가 수능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고, 3일 뒤인 8월 31일에 교학사에서 출판한 역사 교과서가 검정을 합격했다. 하지만 야당 및 일부 학계에서는 해당 교과서의 역사 왜곡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이번 검정 합격을 취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친일파 인사들에 대한 미화, 군위안부 축소 기술, 식민지근대화론 일부 차용, 이승만 및 박정희 정권에 대한 미화 등으로 일각의 비판을 받고 있다.

 

교과서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적 내용 및 역사관은 뉴라이트의 역사관과 일치하다. 뉴라이트 소속 교과서포럼은 2008년에 기존 역사 교과서의 내용을 문제 삼아 중점적으로 수정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출간했다. 교과서 검정을 받지 않았으나 편향된 내용 때문에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식민지 근대화론 옹호는 물론이요, 일제 강점기 동안의 항일 운동이 우파 위주로 비중이 작게 서술했다. 이승만의 활동을 내세우기 때문에 우파 가운데서도 김구와 안창호를 소박하게 그리거나 일부 폄훼했다는 비판도 있다. 역사학계는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편집자 중, 한국사 전공자는 한명도 없으며 교과서포럼이 일본의 극우 단체인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과 유사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기협은 《뉴라이트 비판》에서 뉴라이트 역사관은 학문적으로 매우 부실하며 대안교과서 출판은 정치적 책략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책 제목처럼 김기협은 뉴라이트만 비판하고 있는 건 아니다. 뉴라이트 역사관이 등장하게 된 원인을 한국 사학계의 지배 담론인 ‘(식민지) 수탈론’에서 찾고 있다.

 

식민지 수탈론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 한 이후 일본이 조선에서 행한 경제관련 기반 시설이나 정책들은 조선의 행복증진을 위함이 아니라 조선을 키워서 수탈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반대 입장이라고 보면 된다. 이를 비판하기 위해 나온 역사론이 ‘근대화론’이다. 그러나 수탈론 역시 근대화론 못지않게 역사학계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민족주의적 사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의한 피해망상적 정서의 뒷받침도 받아왔다는 문제점이 있다. 김기협은 수탈론자들의 지나친 편향성에 대한 뉴라이트의 지적에 일부 공감하기도 한다. 결국 하나의 역사를 서로 상반된 입장으로 바라보는 뉴라이트와 주류 역사학계는 확증 편향이 만들어 낸 사고의 함정을 피할 수 없다. 편협된 사고의 함정에 빠진 이상 두 진영 간의 대립과 갈등은 장기화될 것이다. 자신에게 익숙하거나 오랫동안 믿고 있는 역사관과 조금 다른 내용에 반감을 형성하고 여기에 이념 대립 같이 더해진다면 ‘보수 대 진보’ 양상으로 싸움판이 더욱 커지게 된다.

 

 

 

 

 Scene #3  콤플렉스가 만든 확증 편향적 역사 인식

 

 

 

 

 

 

 

 

 

 

 

 

 

 

 

 

“일본인들은 고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은 근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문화를 무시한다.” (5쪽)

 

유홍준 교수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확증 편향적인 역사 인식의 문제점을 단 한 줄로 제대로 요약했다. 1981년 고고학자 후지마라 신이치가 일으킨 구석기 유물 조작은 일본보다 앞선 한반도 고대 문화에 대한 일종의 열등감이 만들어 낸 최악의 사건이다. 이 사건 또한 사실을 부정하고 자신(일본 역사학계)에게 유리한, 그것도 거짓된 정보를 자기 합리화하는 확증 편향이 원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일본, 특히 우익은 과거의 역사는 바뀌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자신의 눈을 스스로 가리고 왜곡을 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 역시 잘못된 역사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앞에서 말한 근대화 수탈론은 일본 강점기 때 받은 피해의식이 개입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근대사 콤플렉스’로 볼 수 있다. 일본의 고대사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으나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문호 개방 덕분에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빠른 근대화 발전을 이룩했다. 과거 일본이나 지금 역사를 왜곡하려는 오늘날 일본의 모습이 혐오스럽다고 해서 그들의 문화마저 무시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역사관이다.

 

한 때 국내 역사학계 내에서 고대 삼국이 일본을 지배했다거나 백제의 한 갈래가 일본을 건설했다는 주장이 주목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주장을 뒷받침만한 확실한 유물이나 사료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이러한 역사적 주장은 한반도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일본문화를 무시하는 확증 편향적인 태도로 빠질 우려가 있다. ‘일본의 고대문화는 우리가 만들어준 것’, ‘일본의 천황은 백제 왕의 후손이니까 결국 한반도 사람’이라는 일반화의 오류를 하나의 역사적 통념으로 인식하게 된다.

 

 

 

 Scene #4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확증 편향적 역사관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익숙한 역사만 알려고 하는 확증 편향적 태도는 단순히 편협적인 사고에 갇힌 채 비합리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것 자체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인간 자신은 스스로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결정을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 편향으로 가득 찬 결정을 선택하게 된다.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혼란을 주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오직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다. 자기 생각에 비판적 의견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회 집단에서 드러나는 확증 편향은 그냥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심각한 심리적 현상이다.

 

한국사가 필수 과목이 된 이상, 한동안 잠잠했던 역사 교과서 논란이 다시 한 번 점화될 가능성이 높다. 보수 성향의 여당이 집권하고 있는 지금, 뉴라이트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자신들이 만든 대안 교과서를 다시 한 번 강조하거나 자신들의 역사관과 일치한 교과서 검정 찬성에 동조할 것이다.

 

확증 편향의 함정에 빠진 역사 싸움에 가장 큰 피해자라면 수험생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수험생들은 공부해야 할 분량이 많아져서 부담스럽고, 교사들은 역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혼란스럽다. 한 쪽 이념에 치우친 역사를 가르치다가 학부모들로부터 비난의 뭇매를 맞기도 한다.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가나 역사를 가르치는 역사 선생님이나 신중의 자세를 취하기 위해서는 많이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확증 편향의 함정에 빠진 역사를 구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학과(행정학과) 2학년 2학기에 ‘근현대사와 한국정부론’이라는 과목이 개설되어 있는데 나랑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교수님이 강의를 맡게 되었다. 그러자 어제 교수님이 페이스북 메시지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근현대사와 한국정부론> 강의를 맡게 되었는데 현대사 중심으로 가르치면 문제가 될까요?“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입장에서 민감하게 걱정을 하신 거 같았다. 일부 대학 교수는 대놓고 편향적인 역사를 가르쳐서 문제가 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나는 소신 있게 대답했다. 나는 그 분의 지도 역량을 믿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칠 거라 믿고 있다. 확증 편향의 함정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교수님, 이번 학기에 2학년 과목인 ‘근현대사와 한국정부론’ 강의를 담당하시는군요. 저는 근현대사 중심으로 가르치는 쪽에 대해서 나쁘지 않게 봅니다. 우리나라 정부 수립 이후부터 현 정부까지를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는 근현대사의 범위라고 정한다면 이것 또한 대학생들이 배워야 할 역사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국사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됐다하더라도 과연 국사 교과서 뒷부분에 있는 현대사를 교사들이 충분히 그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내용 분량도 그리 많지 않은데다 학기 말 무렵에 배우기 때문에 현대사 학습을 소홀히 여기는 부분이 있거든요. 학습 진도 맞추기에 급급하다보면 그냥 수박 겉핥기식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현대사는 대학교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대 우리나라 정부의 정통성, 정부 활동의 업적과 과오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정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대학에서 근현대사를 가르치는 데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편향적인 역사관 한 쪽으로 기울어진 채 지도하는 것입니다. 좌우 균형 선상의 관점으로 현대사를 가르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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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박물관 - 상상의 힘으로 서양미술사를 재구성하다
필리페 다베리오 지음, 윤병언 옮김 / 휴먼아트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Scene #1  싸구려 복제 그림에서 비롯된 명작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  「파리스의 심판」(라파엘로의 원작 모사)  1517~1520년경

 

 

15141518년경, 복제 전문가인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는 은밀히 그림 한 점을 복제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파리스의 심판을 묘사한 젊은 거장 라파엘로의 그림이다. 마르칸토니오는 이미 전과가 있었다. 1506년경, 뒤러의 판화 80여 점을 표절하여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림 전문 위조범죄자였다. 그럼에도 4년 뒤에 다시 라파엘로의 그림에 손을 댄 것이다.

그 중 한 점이 파리스의 심판이다. 하지만 그의 복제는 아이러니하게도 후대의 사람들을 위한 업적이 되었다. 현재 라파엘로가 그린 원작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르칸토니오가 복제한 판화를 통해서 라파엘로의 원작을 짐작해볼 수 있다. 마르칸토니오가 남긴 가짜그림 한 점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사건을 일으키게 만드는 시발점이 되는데 그로부터 350년이 지난 뒤에 일어난다.
 

1861년 어느 날, 마네는 오래된 판화 한 장을 손에 넣는다. 이 판화에 감동을 받은 마네는 그것을 수채화로 치밀하게 모사한다. 그런데 이 판화는 라파엘로의 그림을 마르칸토니오가 복제한 판화였다. 놀랍게도 대중의 기억 속에 묻힌 복제판화가 350년 뒤에 부활한 것이다.

 

 

 

 

 

조르조네  「전원의 합주」 1508~1509년경

 


이 판화에서 마네가 관심을 가진 인물은 따로 있었다. 화면의 오른쪽에 모여 앉은 남자 2명과 여자 1명이 그들이다. 모두들 신분이 바다의 신이다. 마네는 누드의 여인과 옷을 입은 남자가 어우러진 조르조네의 전원의 합주라는 그림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마네는 조르조네의 그림 속 배경에 복제 판화 속 바다의 신들만 모셔 와서 유화로 그린다. 원작과의 차이라면, 누드였던 2명의 남자에게 옷을 입힌 것뿐이다. 마네의 그림은 살롱에 출품하지만 낙선의 고배를 마신다. 그리고 관람객들로부터 심한 욕설과 함께 혹평을 받기도 했다.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  1863년

 

 

 

마네가 살롱에 출품한 그림은 「풀밭 위의 점심식사」. 그런데 제목처럼 한가롭게 점심을 먹는 장면이라고 하기에는 낯뜨겁다. 벌거벗은 여인들은 옷을 입은 남자들 사이에 누드로 태연히 앉아 있거나 물에서 하반신을 씻고 있다. 관람객들은 이 그림을 불경스럽게 생각했다. 여인을 누드로 그리되, 여신처럼 이상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림 내용뿐만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마네가 조르조네의 그림과 원작을 복제한 판화의 한 부분을 고스란히 가져온 제작 과정이었다. 구도와 설정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요즘 말로 하면 마네는 다른 화가의 그림을 표절한 것이다.

 

 

 

 

 Scene #2  어서 와~ 상상 박물관은 처음이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제작비화를 설명하면 꼬리표마냥 따라오는 것이 마르칸토니오와 조르조네의 그림이다. 서양미술에 무지한 사람이라면 마네의 그림 제작이 표절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미술 비평가들 어느 누구도 마네의 그림을 표절이라고 시비 걸지 않는다.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올랭피아」와 더불어 ‘인상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네는 선배 화가들의 작품을 그대로 베끼고 구도를 똑같이 흉내 내기만 하는 아마추어 화가가 아니다. 구도를 그대로 빌렸을 뿐 인물의 모습과 자세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원작을 표절한 것이 아니라 모방을 통한 변용을 시도한 것이다. 이런 창작을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원작의 이미지를 뛰어넘는 독창적인 상상력 때문이었다.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보면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분노를 삼키지 못했던 관람객들은 틀렸다. 아니, 그들은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마네의 작품 제작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당시 보수적인 관람객과 화가들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만이 창작이고, ‘유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은 진정한 창작이 아니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필리페 다베리오. 이탈리아의 유명한 예술 평론가인 그가 마네의 그림이 걸려 있는 1863년 살롱전에 있었다면 기발한 상상력으로 원작에 변용을 시도한 점에 대해서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자신이 만들려고 하는 ‘상상 박물관’에 전시하고픈 작품 1호일지도 모르겠다.

 

필리베 다베리오가 만든 ‘상상 박물관’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 박물관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수많은 그림들이 전시된 박물관에 가보면 연대기 순 혹은 작가별로 분류되어 있다. 관람객은 큐레이터의 안내에 따라 정해진 순서와 방법대로 그림을 감상한다. 르네상스 회화만 전시된 르네상스 관을 지나면 바로크, 로코코 순으로 전시된 그림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시간별로 전시된 그림을 본다면 방대한 미술사를 하루 만에 배울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그림을 본다면 정말 제대로 감상한 걸까? 일단 그림 한 점을 보려면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그림 속에는 화가가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압축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전시회에 관람객이 붐빈다면 그림 한 점을 1분 이상 보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다. 그렇다고 큐레이터나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오디오 북의 설명을 동시에 들으면서 그림을 보기에는 산만하다.

 

그러나 필리베 다베리오의 ‘상상 박물관’은 굳이 연대기 순으로 그림을 볼 필요가 없다. 3층과 반 지하로 구성된 상상 박물관에는 ‘생각하는 방’, ‘도서관’, ‘점심식사 방’, ‘놀이방’, ‘침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독특한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방을 연상시키는 그림들이 전시관 한 곳에 모여져 있다. 시대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 필리베 다베리오의 개인적인 상상력으로 꾸몄다.

 

그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티치아노와 조르조네가 그린 비너스 두 점만 가지고 앵그르가 창조한 터키탕의 내부부터 시작해서 고야가 사랑했던 벌거벗은 마야 부인 그리고 마네가 그린 프랑스 매춘부 올랭피아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 모든 그림을 한 자리에 모아두고 전시한다. 벌거벗은 여체가 등장하는 공통점만 제외하면 그렇게 특별해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필리베의 시선은 여체 한 곳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그림 속 주변 대상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재미있는 상상력을 발동해서 그들을 하나의 연관성으로 엮어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한다.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1538년 / 페터 파울 루벤스 「거울을 보는 비너스」 1613년

 

디에고 벨라스케스 「거울을 보는 비너스」1650년경 / 프란시스코 고야 「벌거벗은 마야」 1797~1800년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발팽송의 목욕녀」 1808년 /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년

 

 

루벤스의 거울은 벨라스케스가 훔쳐 갑니다. 거울에다 티치아노의 모델까지 같이 훔쳐 가게 되죠. 그렇게 해서 그의 비너스가 탄생합니다. 단지 사실주의 화가라기보다는 현실적인 화가다 보니 모든 작품들 중에서 가장 섹시한 작품을 그리기로 작정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벌거벗은 마야>가 탄생하게 되고... (중략) 8년 뒤에는 청년 앵그르가 루벤스를 모델로 다시 그리게 됩니다. 앵그르는 라파엘로의 터번을 상당히 사랑했던 인물이죠. 그래서 모델에게 터번을 씌운 채 그림을 그립니다. (중략) 이듬해(1863년)에 파리의 살롱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일어납니다. 마네가 그의 올랭피아를 <우르비노의 비너스>처럼 누드로 그린 뒤에 루벤스의 흑인 시녀를 데려다가 손에 꽃다발을 쥐게 하고 티치아노의 강아지 대신 검은 고양이를 집어넣은 그림이 전시되었던 겁니다. (137~138쪽)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그림들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선으로 설명하는 필리체의 능청스러운 상상력은 상상 박물관에 입장한 관람객들을 웃음 짓게 만든다. 그의 그림을 보는 법은 우리가 전시회에서 보는 방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필리체는 그림은 아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림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봐야 한다. 오랫동안 고정된 형태로 이루어진 사유의 틀은 상상 박물관으로 들어오기 전에 미리 버려두고 와야 한다. 시대와 주제를 초월한 자유로운 상상력을 통해 그림을 보고 느끼는 것이다.

 

 

 

 

 Scene #3  미로와 같은 상상 박물관 즐기기

 

공짜로 전시한다고 해서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빈손으로 상상 박물관에 출입했다간 미로 속에 갇혀버린 신세가 될 수 있다. 상상 박물관에 한 번 들어간 이상 쉽게 나올 수 없다. 필리베의 방대한 상상력으로 구축된 미로를 즐기고 출구로 나오기 위해서는 복잡한 미로를 유연하게 헤쳐 나올 수 있는 실타래, 즉 무한한 생각을 자유롭게 술술 풀어 낼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 박물관은 필리페 개인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만들어진 일종의 미로 게임이다. 필리베는 미로와 같은 상상 박물관을 만들고 여기 들어온 독자와 관람객을 짓궂은 장난을 펼친다. 박물관 한 층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림을 먼저 제대로 알아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필리베가 큐레이터처럼 친절하면서도 상세하게 그림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냥 그림에 대한 설명을 잠깐 하고 나머진 개인적인 감상을 늘어놓을 뿐이다. 이제 막 서양미술에 입문한 독자나 관람객에게는 상상 박물관 출입을 권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면서 상상력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기에 ‘쏘우’ 필리베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미적 게임에 갇힐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매혹적인 이야기에 사로잡히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혼란스러워 질 수 있다.

 

이 혼란스러움을 극복하고 상상 박물관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쏘우’ 필리베의 상상력에 의존하지 않으면 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미로를 즐길 수 있는 자신만의 ‘상상력’ 실타래를 꼭 챙겨야 한다. 혹시 상상 박물관에 가보고 싶은 독자라면 꼭 ‘상상력’ 실타래를 챙기시길. 그런데 그 ‘상상력’ 실타래를 누구한테 받느냐고? 미술에 어느 정도 지식과 식견을 가진 아리아드네를 만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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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공문이 왔습니다. 이 몇 줄 안되는 공문을 받기까지 적잖이 고생은 했습니다만, 받고 보니 스무 살 안토니오처럼 날아오르는 기분이네요.

정식으로 알려드립니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19세 미만 구독 불가'도 아니고 '청소년 유해매체'도 아닙니다.

 

아직 몇가지 절차가 남아있긴 합니다만, 곧 성인 인증도 빨간 딱지 붙은 책 산다는 민망함도 없이 이 작품을 만나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심의 결정 변경을 여성가족부가 고시하면, 그때부터 행정적으로 완전히 심의 사건 이전으로 돌아갑니다. 아마 1주일 이내로 고시될 것 같습니다.

제작과 유통상의 절차에도 시간이 조금 걸릴 예정입니다.

1쇄는 이미 사건 전에 거의 소진되었고, 사건이 터진 뒤로 저희가 일시품절을 걸고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에 반품을 부탁했지만, 그사이에 거의 다 팔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건 터진 게 2쇄 들어가려던 시점이었는데 심의로 인해 늦춰졌다가 이제야 2쇄가 인쇄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해금 기념 특별 선물을 제작해서 구입하신 분들이 함께 받아보실 수 있도록 하려다 보니, 출고는 빠르면 금요일이나 다음주 초가 될 것 같네요.

정확한 일정은 아니지만, 책을 구입하실 수 있는 시점은 다음 주 중이 될 것 같다는 점 알려드립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고 앞으로도 계속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을 사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Sync와 색깔있는책들' 출판사 공식 페이스북에 공지한 내용을 스크랩했습니다, 출판사 홍보와 무관한 스크랩임을 밝힙니다)

 

 

 

 

정말 잘됐다!  19금 판정 논란이 아니었다면 13기 신간도서로 읽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의외로 이 책을 추천한 신간평가단이 많았다) 그래도 성인만화 딱지를 받지 않고 다시 출간한다니 구입해서 읽고 싶다. 지금 알라딘으로 검색하면 책표지에 '19금 표시'가 나오지 않지만 아직은 일시 품절 상태다. 출판사 공지대로라면 다음주에 판매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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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09-04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교보에서 건졌습니다.

cyrus 2013-09-04 20:38   좋아요 0 | URL
여기 대구 교보는 아직 재고가 들어오지 않았어요. 19금 처분 받기 전에 미리 구입할 껄 그랬어요
 

 

 

 Scene #1  욕망과 영혼의 만남

 

 

 

 

 

 

 

 

 

 

 

 

 

 

 

 

 

 

 

 

 

 

 

 

 

 

 

 

 

 

 

 

 

 

 

인간의 ‘영혼’ 또는 ‘정신’을 뜻하는 영어 단어 Psyche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 프시케에서 유래한다. 프시케는 인간으로서 유일하게 신과 결혼해 불멸을 얻었다. 그녀는 뼈아픈 고난을 통해 이런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프랑수아 제라르  「프시케와 에로스」 1798년  

 

 

원래 프시케는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그녀를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 정도로 천하절색이었다. 그 바람에 정작 아프로디테의 신전에는 인적이 드물 정도였다. 여신의 미모에 필적하는 한 여성의 운명은 무서운 형벌로 이어졌다.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에게 ‘프시케가 비천한 사내와 사랑하게 만들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게 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혈기왕성한 에로스의 마음에는 이름 그대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두 글자가 자라고 있다. 훌륭한 미모 앞에 에로스 또한 그녀에게 쉽게 반하고 마는 남자였다. 프시케를 보고 사랑에 빠진 에로스는 자신의 화살에 찔리는 실수를 범해 그 자신이 ‘비천한 사내’가 되고 만다.

 

이후 프시케는 아폴론의 신탁으로 바위산 위의 궁전에서 살게 된다. 그 곁에는 한없이 자신을 사랑하며 모든 소원을 들어주지만 ‘얼굴만은 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남편이 함께한다. 그러나 남편의 얼굴이 궁금한 데다 프시케의 삶을 질투한 두 언니가 ‘남편이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불어넣는다. 프시케는 등잔불과 칼을 잠든 남편의 얼굴에 들이댄다.

 

 

 

 

 

페터 파울 루벤스  「프시케와 에로스」 17세기경

 

 

등잔불에 비친 남편은 다름 아닌 아름다운 에로스. 프시케는 남편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 놀란 나머지 그만 칼을 떨어뜨리고 만다. 이때 실수로 에로스의 화살을 건드려 자신이 상처를 입는다. 그 순간 사랑에 깊이 빠진 자는 바로 그녀다. 그러나 언니들의 질투로 인해 저지른 프시케의 행동은 에로스의 믿음을 저버리게 되었다. 게다가 급히 등불을 치우다가 그만 기름 한 방울이 에로스의 오른쪽 어깨에 떨어진다. 자고 있던 에로스는 잠에서 깨고 만다. 신과 인간의 사랑이기에 아내를 위해 자신의 얼굴을 감춰왔던 에로스는 아내의 행동에 실망해 멀리 떠나게 된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프시케는 에로스와 재결합하기 위해 아프로디테가 내린 네 가지 과제를 수행했다. 여기서부터 지옥까지 다녀오는 고난과 역경을 통한 프시케의 '사랑 되찾기' 여정은 시작된다.

 

 

 

 

 Scene #2  험난한 '사랑 되찾기' 여정

 

 

 

 

 

 

 

 

 

 

 

 

 

 

 

 

아프로디테가 프시케에게 부여한 네 가지 과제는 에로스와 프시케가 극적으로 헤어지는 장면에 비하면 많이 언급되지 않은데다가 장면을 묘사한 그림도 적은 편이다. 프시케의 여정은 인간이 개발해야 하는 능력을 상징한다. 프시케는 힘겹게 과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이전에 갖지 못했던 능력을 얻는다.

 

첫 번째 과제는 여러 종류의 곡류가 섞인 곡식더미를 분류하는 것이었다. 프시케가 산더미처럼 쌓인 곡식 앞에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그녀 앞에 한 무리의 개미들이 나타나 곡식을 분류해주었다. 이 과제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갈등을 일으키는 감정들을 우선순위를 정해 분류할 필요가 있음을 말해준다. 프시케는 이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감정, 가치, 동기를 잘 걸러서 중요한 것을 구별해내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

 

프시케가 받은 두 번째 과제는 숫양으로부터 황금 양털을 얻어오는 것이었다. 그 양은 누군가 털을 깎으려 하면 그 사람의 뼈를 부러뜨리거나 짓밟을 정도로 거칠었다. 이 과제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녀의 처지를 안 갈대는, 숫양들이 털을 고르기 위해 등을 문지른 가시나무에서 안전하게 황금 양털을 구해주었다. 여기에서 황금 양털은 권력을 상징한다. 경쟁적인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곳곳에 내재한 위험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스스로 상처를 입거나 세상에 환멸을 느껴 마음을 닫고 냉소적인 태도를 갖기 쉽다. 그녀는 이 과제를 통해 원하는 것을 획득하면서도 자비로운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아프로디테는 두 개의 과제를 통과한 프시케의 손에 작은 크리스털 병을 쥐어주면서 금단의 시냇가에서 물을 가득 채우라고 명령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독수리가 그녀를 돕기 위해 나타난다. 독수리는 멀리서 전체를 보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재빨리 낚아채는 능력을 상징한다. 이는 개인적인 판단에 지나치게 치중해,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잘못을 막는 것을 의미한다.

 

프시케의 마지막 과제는 지하세계의 페르세포네에게 내려가 작은 상자에 화장수를 담아오는 것이었다. 도중에 도움을 청하는 불쌍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절대 돕지 말아야 한다는 단서가 있었다. 만일 이것을 어기면 영원히 지하세계에 남게 된다. “안돼요!”라고 세 번 거절함으로써 프시케는 마지막 과제를 마쳤다. 단호하게 거절하는 법은 자신의 목표나 중요한 일을 완수하는 데 꼭 필요한 선택의 힘이다.

 

 

 

 Scene #3  사랑의 교훈

 

 

 

 

 

 

 

 

 

 

 

 

 

 

프시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언니들의 유혹에 넘어가 그것을 잘 유지하지 못했다. 사실 그녀는 네 가지 과제를 다 수행하고도 에로스를 만나지 못할 뻔 했다. 페르세포네에게 받은 화장수가 보관된 작은 상자를 열지 말라는 충고를 어기고 호기심으로 그만 열고 만 것이다. 상자 속에서 나오는 화장수는 마취제가 되어 그녀를 깊은 수면으로 빠지게 만들었다. 마침 잠에서 깨어난 에로스가 그녀를 발견하게 되어 두 사람을 드디어 재회하게 된다. 프시케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두 번의 위기를 겪었지만 잃어버린 사랑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고 네 가지 과제를 수행해 잃었던 것을 다시 얻었다. 또한 용기와 결단력을 시험했던 과제를 통해 프시케는 크게 성장하고 새로운 능력과 힘을 갖게 되었다.

 

반면 에로스는 마마보이다. 에로스는 프시케와 떠들썩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더니, 프시케가 저지른 잘못된 행동 하나 때문에 크게 실망한 나머지 그녀를 방치하고 아프로디테로 가게 된다. 자신의 엄마가 아내에게 부여한 과제를 힘겹게 완수하고 있을 때 아들은 엄마의 보호 아래 오랫동안 깊은 수면에 빠졌다. 아프로디테가 자신의 임무를 어긴 죄로 에로스를 잠들게 만들었지만 그 와중에 과제 때문에 생고생하는 프시케의 모습은 흡사 ‘시월드’를 보는 듯하다.

 

서양미술사에서 아프로디테를 그린 그림에는 어김없이 아들 에로스가 함께 등장한다. 에로스가 없으면 아프로디테임을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아프로디테의 존재는 에로스가 완성하는 것이다. 엄친아가 엄마의 존재를 완성시켜주듯이 말이다. 아프로디테와 함께 있는 에로스를 보면, 엄마 곁에 ‘영원한 아기’로 머물고 싶은 남성들의 심정이 읽혀진다. 반면 에로스를 다그치는 아프로디테를 본다면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무대독자(?)를 과잉보호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아프로디테와 에로스의 관계는 화가들마다 다르게 해석될 정도로 인기 있는 주제다. 어떤 그림에선 너그러운 엄마를 가진 화가의 모습이 읽혀지고, 무심하다 못해 자기 욕망에만 사로잡혀 있는 팜 파탈 같은 엄마의 모습도 엿보인다. 또 어떤 그림에서는 늘 야단만 치는 엄마의 모습도 보인다.

 

 

 

 

 

요한 루카스 크라나흐  「아프로디테에게 불평하는 에로스」  1525년경

 

 

 

에로스가 꿀을 훔쳐 먹으려고 그랬는지, 여하튼 벌집을 쑤셔놓아 벌에 쏘이고 있는 장면이다. 엄마는 벌침처럼 화살로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에로스를 꾸짖고 있다. 엄마의 지시를 어기고 프시케를 사랑하게 된 에로스는 아마도 이런 모습으로 꾸중을 들었을 것이다. 을 훔치다가 벌에 쏘이는 에로스와 그것을 지켜보는 아프로디테는 무절제한 욕정이 초래할 파탄을 경고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만약에 에로스가 사랑의 화살을 맞지 않은 프시케를 떠났더라면 사랑의 불장난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화가들이 에로스와 프시케 또는 에로스와 아프로디테가 있는 장면에 매료되었던 이유는 인간이 지켜야 할 사랑의 덕목 즉 "무절제하고 신뢰가 없는 곳에 사랑이 머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미모로 여러 남자 마음을 불태운 경험이 많은 아프로디테가 에로스에게 향하는 꾸중과 충고는 귀 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결국 좋은 여자 만나려면 프시케처럼 지고지순한 영혼을 가졌고 아프로디테처럼 아름다워야 한다. 아, 물론 뜨겁게 연인을 사랑할 줄 아는 욕망도 적당히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디 내 주변에 이런 여자 어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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