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박물관 - 상상의 힘으로 서양미술사를 재구성하다
필리페 다베리오 지음, 윤병언 옮김 / 휴먼아트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Scene #1  싸구려 복제 그림에서 비롯된 명작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  「파리스의 심판」(라파엘로의 원작 모사)  1517~1520년경

 

 

15141518년경, 복제 전문가인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는 은밀히 그림 한 점을 복제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파리스의 심판을 묘사한 젊은 거장 라파엘로의 그림이다. 마르칸토니오는 이미 전과가 있었다. 1506년경, 뒤러의 판화 80여 점을 표절하여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림 전문 위조범죄자였다. 그럼에도 4년 뒤에 다시 라파엘로의 그림에 손을 댄 것이다.

그 중 한 점이 파리스의 심판이다. 하지만 그의 복제는 아이러니하게도 후대의 사람들을 위한 업적이 되었다. 현재 라파엘로가 그린 원작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르칸토니오가 복제한 판화를 통해서 라파엘로의 원작을 짐작해볼 수 있다. 마르칸토니오가 남긴 가짜그림 한 점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사건을 일으키게 만드는 시발점이 되는데 그로부터 350년이 지난 뒤에 일어난다.
 

1861년 어느 날, 마네는 오래된 판화 한 장을 손에 넣는다. 이 판화에 감동을 받은 마네는 그것을 수채화로 치밀하게 모사한다. 그런데 이 판화는 라파엘로의 그림을 마르칸토니오가 복제한 판화였다. 놀랍게도 대중의 기억 속에 묻힌 복제판화가 350년 뒤에 부활한 것이다.

 

 

 

 

 

조르조네  「전원의 합주」 1508~1509년경

 


이 판화에서 마네가 관심을 가진 인물은 따로 있었다. 화면의 오른쪽에 모여 앉은 남자 2명과 여자 1명이 그들이다. 모두들 신분이 바다의 신이다. 마네는 누드의 여인과 옷을 입은 남자가 어우러진 조르조네의 전원의 합주라는 그림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마네는 조르조네의 그림 속 배경에 복제 판화 속 바다의 신들만 모셔 와서 유화로 그린다. 원작과의 차이라면, 누드였던 2명의 남자에게 옷을 입힌 것뿐이다. 마네의 그림은 살롱에 출품하지만 낙선의 고배를 마신다. 그리고 관람객들로부터 심한 욕설과 함께 혹평을 받기도 했다.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  1863년

 

 

 

마네가 살롱에 출품한 그림은 「풀밭 위의 점심식사」. 그런데 제목처럼 한가롭게 점심을 먹는 장면이라고 하기에는 낯뜨겁다. 벌거벗은 여인들은 옷을 입은 남자들 사이에 누드로 태연히 앉아 있거나 물에서 하반신을 씻고 있다. 관람객들은 이 그림을 불경스럽게 생각했다. 여인을 누드로 그리되, 여신처럼 이상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림 내용뿐만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마네가 조르조네의 그림과 원작을 복제한 판화의 한 부분을 고스란히 가져온 제작 과정이었다. 구도와 설정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요즘 말로 하면 마네는 다른 화가의 그림을 표절한 것이다.

 

 

 

 

 Scene #2  어서 와~ 상상 박물관은 처음이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제작비화를 설명하면 꼬리표마냥 따라오는 것이 마르칸토니오와 조르조네의 그림이다. 서양미술에 무지한 사람이라면 마네의 그림 제작이 표절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미술 비평가들 어느 누구도 마네의 그림을 표절이라고 시비 걸지 않는다.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올랭피아」와 더불어 ‘인상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네는 선배 화가들의 작품을 그대로 베끼고 구도를 똑같이 흉내 내기만 하는 아마추어 화가가 아니다. 구도를 그대로 빌렸을 뿐 인물의 모습과 자세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원작을 표절한 것이 아니라 모방을 통한 변용을 시도한 것이다. 이런 창작을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원작의 이미지를 뛰어넘는 독창적인 상상력 때문이었다.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보면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분노를 삼키지 못했던 관람객들은 틀렸다. 아니, 그들은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마네의 작품 제작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당시 보수적인 관람객과 화가들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만이 창작이고, ‘유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은 진정한 창작이 아니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필리페 다베리오. 이탈리아의 유명한 예술 평론가인 그가 마네의 그림이 걸려 있는 1863년 살롱전에 있었다면 기발한 상상력으로 원작에 변용을 시도한 점에 대해서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자신이 만들려고 하는 ‘상상 박물관’에 전시하고픈 작품 1호일지도 모르겠다.

 

필리베 다베리오가 만든 ‘상상 박물관’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 박물관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수많은 그림들이 전시된 박물관에 가보면 연대기 순 혹은 작가별로 분류되어 있다. 관람객은 큐레이터의 안내에 따라 정해진 순서와 방법대로 그림을 감상한다. 르네상스 회화만 전시된 르네상스 관을 지나면 바로크, 로코코 순으로 전시된 그림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시간별로 전시된 그림을 본다면 방대한 미술사를 하루 만에 배울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그림을 본다면 정말 제대로 감상한 걸까? 일단 그림 한 점을 보려면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그림 속에는 화가가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압축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전시회에 관람객이 붐빈다면 그림 한 점을 1분 이상 보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다. 그렇다고 큐레이터나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오디오 북의 설명을 동시에 들으면서 그림을 보기에는 산만하다.

 

그러나 필리베 다베리오의 ‘상상 박물관’은 굳이 연대기 순으로 그림을 볼 필요가 없다. 3층과 반 지하로 구성된 상상 박물관에는 ‘생각하는 방’, ‘도서관’, ‘점심식사 방’, ‘놀이방’, ‘침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독특한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방을 연상시키는 그림들이 전시관 한 곳에 모여져 있다. 시대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 필리베 다베리오의 개인적인 상상력으로 꾸몄다.

 

그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티치아노와 조르조네가 그린 비너스 두 점만 가지고 앵그르가 창조한 터키탕의 내부부터 시작해서 고야가 사랑했던 벌거벗은 마야 부인 그리고 마네가 그린 프랑스 매춘부 올랭피아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 모든 그림을 한 자리에 모아두고 전시한다. 벌거벗은 여체가 등장하는 공통점만 제외하면 그렇게 특별해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필리베의 시선은 여체 한 곳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그림 속 주변 대상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재미있는 상상력을 발동해서 그들을 하나의 연관성으로 엮어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한다.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1538년 / 페터 파울 루벤스 「거울을 보는 비너스」 1613년

 

디에고 벨라스케스 「거울을 보는 비너스」1650년경 / 프란시스코 고야 「벌거벗은 마야」 1797~1800년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발팽송의 목욕녀」 1808년 /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년

 

 

루벤스의 거울은 벨라스케스가 훔쳐 갑니다. 거울에다 티치아노의 모델까지 같이 훔쳐 가게 되죠. 그렇게 해서 그의 비너스가 탄생합니다. 단지 사실주의 화가라기보다는 현실적인 화가다 보니 모든 작품들 중에서 가장 섹시한 작품을 그리기로 작정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벌거벗은 마야>가 탄생하게 되고... (중략) 8년 뒤에는 청년 앵그르가 루벤스를 모델로 다시 그리게 됩니다. 앵그르는 라파엘로의 터번을 상당히 사랑했던 인물이죠. 그래서 모델에게 터번을 씌운 채 그림을 그립니다. (중략) 이듬해(1863년)에 파리의 살롱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일어납니다. 마네가 그의 올랭피아를 <우르비노의 비너스>처럼 누드로 그린 뒤에 루벤스의 흑인 시녀를 데려다가 손에 꽃다발을 쥐게 하고 티치아노의 강아지 대신 검은 고양이를 집어넣은 그림이 전시되었던 겁니다. (137~138쪽)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그림들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선으로 설명하는 필리체의 능청스러운 상상력은 상상 박물관에 입장한 관람객들을 웃음 짓게 만든다. 그의 그림을 보는 법은 우리가 전시회에서 보는 방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필리체는 그림은 아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림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봐야 한다. 오랫동안 고정된 형태로 이루어진 사유의 틀은 상상 박물관으로 들어오기 전에 미리 버려두고 와야 한다. 시대와 주제를 초월한 자유로운 상상력을 통해 그림을 보고 느끼는 것이다.

 

 

 

 

 Scene #3  미로와 같은 상상 박물관 즐기기

 

공짜로 전시한다고 해서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빈손으로 상상 박물관에 출입했다간 미로 속에 갇혀버린 신세가 될 수 있다. 상상 박물관에 한 번 들어간 이상 쉽게 나올 수 없다. 필리베의 방대한 상상력으로 구축된 미로를 즐기고 출구로 나오기 위해서는 복잡한 미로를 유연하게 헤쳐 나올 수 있는 실타래, 즉 무한한 생각을 자유롭게 술술 풀어 낼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 박물관은 필리페 개인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만들어진 일종의 미로 게임이다. 필리베는 미로와 같은 상상 박물관을 만들고 여기 들어온 독자와 관람객을 짓궂은 장난을 펼친다. 박물관 한 층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림을 먼저 제대로 알아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필리베가 큐레이터처럼 친절하면서도 상세하게 그림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냥 그림에 대한 설명을 잠깐 하고 나머진 개인적인 감상을 늘어놓을 뿐이다. 이제 막 서양미술에 입문한 독자나 관람객에게는 상상 박물관 출입을 권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면서 상상력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기에 ‘쏘우’ 필리베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미적 게임에 갇힐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매혹적인 이야기에 사로잡히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혼란스러워 질 수 있다.

 

이 혼란스러움을 극복하고 상상 박물관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쏘우’ 필리베의 상상력에 의존하지 않으면 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미로를 즐길 수 있는 자신만의 ‘상상력’ 실타래를 꼭 챙겨야 한다. 혹시 상상 박물관에 가보고 싶은 독자라면 꼭 ‘상상력’ 실타래를 챙기시길. 그런데 그 ‘상상력’ 실타래를 누구한테 받느냐고? 미술에 어느 정도 지식과 식견을 가진 아리아드네를 만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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