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이 더 힘들어

어떤 때는 자꾸만

패랭이꽃을 쳐다본다

한때는 많은 결심을 했었다

타인에 대해

또 나 자신에 대해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그런 결심들이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삶이란 것은

자꾸만 눈에 밟히는

패랭이꽃

누군가에게 무엇으로 남길 바라지만

한편으론 잊혀지지 않는게 두려워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

패랭이꽃

 

 

- 류시화, ‘패랭이꽃’ -

 

 

 

‘눈에 밟힌다'는 말이 있다. 발에 밟히듯 살에 닿아 사무친 것, 그래서 살에 박히듯 잊히지 않는다.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 지키지 않은 약속, 가지 않은 길. 시간이 약이라지만, 새 시간의 물살에도 지워지지 않고 어룽대는 저 강바닥의 밑그림에는 약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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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젠의 로마사 2 - 로마 왕정의 철폐에서 이탈리아 통일까지 몸젠의 로마사 2
테오도르 몸젠 지음, 김남우.김동훈.성중모 옮김 / 푸른역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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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로마가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는?

 

로마제국은 세계역사 중에서 가장 강하고 오랫동안 존속했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 탄생해 기원 후 476년 서로마가 멸망할 때까지 약 1200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존속했다. 동로마제국이 유지됐던 시기까지 포함하면 약 2200년 이상을 대제국으로 존재한 것이다.

 

기독교의 영향 때문인지 서구인들에게 로마의 역사는 그다지 호의적으로 비춰지지 않았다. “아우구스투스의 업적은 로마의 쇠망을 조금 더 늦췄을 뿐”이라고 폄하한 토인비를 비롯해 많은 서구 역사가들은 “공화정시대는 존경하지만 제국이 되자마자 로마의 타락이 시작됐다”는 식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로마처럼 당대 최강의 국력을 지니고서도 장기간 존속한 조직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로마’는 끊임없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로마 시내를 뒤덮고 있는 웅장한 건축물들이 가지는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열등한 민족인 로마인이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커다란 문명권을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이 바로 로마의 ‘생존과 성공 DNA’를 찾는 과정일 것이다.

 

이탈리아 로마의 테베라 강 유역에서 시작된 작은 공동체가 지중해는 물론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정확한 현실 인식과 그에 따른 적절한 대응, 즉 유연함이었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국가나 조직은 물론 개인 안에서도 갈등은 발생하게 마련이다. 그 갈등의 원인을 정확히 인식하고, 변화를 능동적으로 반영하는 체제를 준비하는 유연함, 그리고 그러한 유연함이 지배하는 문화의 필요성이 바로 로마가 공화정으로 전환하는 역사적 과정을 살펴야 하는 이유다.

 

 

 

 Scene #2  견제와 균형 시스템으로 발전
 
로마제국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시스템의 힘에 의해 성장했고 발전을 거듭했다는 점이다. 로마는 역사적으로 절대 권력을 지닌 한 사람에 의해 지배된 ‘전제군주 시대’도 경험했지만 많은 지도층과 시민에 의해 국가가 운영됐을 때 조직력은 더욱 충만했다. 장군 한 사람보다 수많은 시민군이, 군주 한 사람보다는 수많은 집정관들이 로마 힘의 원천이었다.

 

왕정, 귀족정, 민주정 원리가 혼합된 정치체제가 성공의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건국 초기에는 왕정으로 강력한 지도력을 통해 국가 기초를 만들어 나갔으며, 성장기에는 귀족과 평민이 끊임없는 긴장과 갈등 속에서 조화를 유지하면서 국가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1인 지배에 의해 정치적 균형이 무너지고 국가가 개인에 의존하게 되면서 로마는 발전의 에너지를 잃어갔다.

 

로마 정치체제는 집정관에 초점을 맞추면 왕정처럼 보이고 원로원 기능에만 주목하면 귀족정처럼 보인다. 또 민회를 중시하는 사람은 민주정이라고 평가한다. 수많은 집정관이 해마다 바뀌었는데도 계속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가 어느 한 부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체가 시스템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이 말해주고 있다.

 

공화정 시기 집정관은 왕을 대신했는데 민회에서 선출돼 원로원 승인을 얻어 취임했다. 그 절차는 왕과 마찬가지였지만 종신제였던 왕에 비해 임기가 1년밖에 안됐다. 다만 재선은 허용됐고 연령은 40세 이상으로 제한됐다. 게다가 정원이 두 명이었고 동료 집정관 생각이나 방식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집정관이 동의하지 않는 한 정책은 집행되지 않을 정도로 견제와 균형 원리에 충실했다.

 

로마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제도가 호민관이다. 로마는 공화정 초기인 BC 494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호민관은 평민으로 이뤄진 민회에서 선출했으며 민회 의장으로 민회를 소집하고 주재했다. 호민관은 민회에서 독점적으로 법률을 발의할 수 있는 권리와 때에 따라 원로원을 소집하고 청원할 권리가 있었다. 또 집정관 및 정무관의 결정이나 다른 동료 호민관의 결정이 평민의 권익에 배치될 때에는 거부권을 행사해 무효화하거나 중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호민관의 중요한 역할은 평민의 요구를 대변하고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이었다. 집정관이나 정무관의 전횡을 막아달라고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든 평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평민이 언제든 찾아와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호민관은 밤낮 자기 집 문을 열어 놓아야 했고 도시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했다. 호민관은 위협을 받지 않고 의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그의 신체는 신성불가침으로 선포됐다. 그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의무 수행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자는 사형에 처해졌다.

 

로마는 호민관을 매년 선출해 평민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계급 간 갈등을 봉합할 수 있었다. 로마가 국가 운영의 묘를 살리면서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호민관이 평민과 귀족의 완충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Scene #3  서두르지도 멈추지도 않으며 꾸준히 로마는 이루었다

 

우리는 흔히 “로마의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경구를 자주 인용하곤 한다. 천년이 넘는 역사에서 로마는 계속 성공만 해왔을까.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쪽이다.

 

로마도 인간이 만든 제국인 이상 실패가 없을 수 없다. 오히려 성공보다는 실패와 좌절의 역사가 길었다. 하지만 그들이 짧게 성공했다 멸망한 동시대 다른 민족이나 국가와 다른 점은, 스스로의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주저 없이 개혁을 단행하는 용기를 잃지 않았던 데 있다.

로마가 천년 이상 존속한 이유는 결코 운이 좋아서도 아니고 그들의 자질이 특별히 우수해서도 아니다. 다만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한걸음 한걸음 개선해왔기에 번영을 오래 지속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노블레스 오블리제’ 미덕을 로마의 역사에서 찾고 있다. 초기 로마의 왕과 귀족들은 평민보다 앞서 솔선수범과 절제된 행동으로 국가의 초석을 다졌다. 그러나 로마의 모든 사회지도층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 보수와 진보가 벽을 쌓고 살듯이 초기 로마도 귀족과 평민의 갈등이 심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권력에 눈이 먼 일부 혈통귀족들은 평민의 생활에 관심이 없었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신경 썼을 뿐이다.

 

그러다가 기원전 367년 리키니우스-섹스티우스 법이 제정됨으로서 귀족과 평민의 대립을 완화시키는데 성공했다. 당시 귀족과 평민의 갈등은 로마 사회의 일치를 해치는 주범이었다. 리키니우스법에 따라 평민도 원로원 의원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어 모든 국가 요직도 평민에게 개방됐다. 귀족. 평민 간 결혼도 합법화했다.

 

개혁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개혁은 반드시 기득권자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사람이 찬성하는 개혁이란 어느 시대에도 존재하기 어렵다. 진정한 의미의 개혁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 역사상 수많은 민족이나 국가, 집단이 등장했지만 그러한 노력을 꺼려 쇠퇴해갔고 그 노력을 아끼지 않은 소수만이 미래를 개척했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인들은 구조조정의 달인들이었다. 어떤 정치시스템이나 조직시스템이든 처음부터 국민이나 조직 구성원을 불행에 빠뜨리려고 생각하면서 만들어진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기가 ‘선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거나 시행되는 과정에서 ‘악한 것’으로 바뀔 수 있다. 만든 자의 의지대로만 되는 세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원인은 시스템 자체에 있다기보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 있다. 왕정, 귀족정, 민주정, 독재정으로 과격하고 급진적으로 변화한 그리스와 비교하면 오랜 기간 동안 왕정, 공화정, 제정으로 바뀐 로마의 정체(政體) 변화는 둔한 소처럼 답답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테오도르 몸젠은 로마 정체의 변화를 ‘로마 혁명의 보수성’이라는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한번 개혁의지를 다지면 흔들림 없이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기원전 4세기 7개월간 켈트족의 침략을 받아 최대의 위기를 맞았던 로마가 이를 극복해간 과정이 좋은 예다. 20년 만에 로마의 복구가 어느 정도 끝났지만, 조금만 회복되면 반성의 자세를 금방 잊는 다른 민족과 달리 로마인들은 로마 부흥-방위체제 확립-내정 개혁 이라는 개혁 프로세스를 단호하게 밀고 나갔다.

 

Festina lente(서두르지도 멈추지도 않으며 다만 꾸준히). 로마는 그렇게 내부 갈등을 극복하고 변화를 이루었다. 로마와 같은 노력과 시간과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로마의 본받을 점은 본받되 로마를 모방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융화와 접점이지만,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서두르지도 멈추지도 않고 꾸준히’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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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알베르토 자코메티」

 

 

거의 철사처럼 된 자코메티의 조각을 보면, 마른 나무 막대기 하나로도 인간을 말할 수 있는 그 소통의 힘과 명쾌한 시각적 표현에 마음이 와 닿는다. 부피도 무게도 없는 유령 같은 그의 조각에서 진정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다.

 

 

 

 

 

 

 

 

 

 

 

 

 

 

 

 

1901년 스위스의 유명한 화가 아들로 태어난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2차세계대전 전후의 정신적 위기상황에서 희망을 잃고 망연자실해 있던 인간의 고뇌와 불안을 그만의 섬세한 감각과 통찰력으로 표현해 낸 20세기 조형미술의 대가이다.

 

또한 그의 작품들은 종종 실존주의 문학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특히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유명한 철학적 명제를 들고 나온 사르트르는 자코메티의 작품을 ‘부정의 시작이며 무(無)로 가는 여정'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굳이 실존주의 운운하지 않더라도 수척한 자코메티의 인물조각을 한번쯤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볼륨을 상실한 그 기묘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서 상처받고 부서지기 쉬운 우리 모두의 자화상을 쉽게 겹쳐 볼 수 있게 된다.

 

자코메티는 말했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무게가 없다. 어떤 경우든 그들은 죽은 사람보다도, 의식이 없는 사람보다도 가볍다. 내가 부지불식간에 가는 실루엣처럼 다듬어 보여 주려는 것이 그것이다. 그 가벼움 말이다.'라고. 모든 사물이 지니고 있는 덩어리(Mass)와 양감(volume)에서 존재의 무게감을 덜어내 버린 유령과도 같은 그의 조각들은 존재의 가벼움’이며 ‘소통의 부재’에 관한 것이다. 예술을 통한 작가의 시선은 종종 우리를 재구성해주고 비밀스러운 상처를 찾아서 아물게 해준다.

 

만약 삶이 어느 날 쓸쓸함과 덧없음에 절망하고 있다면, 불안과 고독을 시각적인 비움과 절제로 해석해낸 자코메티처럼 한번쯤은 인생의 해묵고 질펀한 부분들을 과감히 잘라 무게감을 덜어본다.

 

“아! 우리의 존재는 아주 가볍구나“ 낮은 한숨과 함께 새털같이 날아가 버릴 우리 존재의 우연성을 실감할 때 우리는 어쩌면 기대하지 않았던 진정한 희망을 불현듯 감각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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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들어 있다. 어릴 때부터 별에 관심이 많던 그는 도서관에서 사서에게 별(star)에 관한 책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한참 후 사서는 한 권의 책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그의 손에 들려진 책은 클라크 케이블, 진 하로 등 당대 최고의 스타(star) 사진이 실린 책이었다. 하늘의 스타가 아닌 땅의 스타를 갖고 온 것이다.

 

밤에는 별이 빛난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공해로 찌든 도시에서는 별이 안 보인다고 하지만 지금도 우리들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다.

 

별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일반적인 의미의 별과 학문적인 의미의 별이 그것이다. 보통 밤하늘에 빛나는 것, 모두를 별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일반적인(또는 넓은) 의미의 별이다.

 

그러나 밤하늘에 빛나는 것 모두 별은 아니다. 학문적인(또는 좁은) 의미의 별은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만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별이 다름 아닌 우리가 365일 대하는 태양이다. 태양은 지구로부터 1억5천만㎞ 떨어진 곳에 있는 별이다. 밤에는 희미하게, 낮에는 눈이 부셔서 제대로 쳐다볼 수 없도록 빛나는 태양이지만 수십, 수백 광년 거리에 가져다 놓으면 그저 평범한 밤하늘의 별에 불과하다.

 

밤하늘에 빛나는 것은 거의 대부분이 별이지만 아닌 것도 있다.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은 밤하늘에서 상대적인 위치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성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들 항성 사이를 떠돌아다니는 별이 있다. 바로 행성이다. 태양계에는 지구를 포함해 9개의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돌고 있으며, 지구에서 보면 마치 별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 행성은 항성처럼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 채 항성인 태양의 빛을 반사하여 빛날 뿐이다.

 

‘별부스러기’라는 말이 있다. 사실 우주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이나 구리 등의 원소는 거의 없고, 대부분 수소와 헬륨뿐이다. 그렇다면 수소와 헬륨을 제외한 나머지 원소들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철이나 구리 같은 무거운 원소들이 만들어지는 곳은 단 한곳, 별 내부밖에는 없다.

 

별이 폭발하며 최후를 맞을 때, 별의 잔해들이 우주 공간에 뿌려진다. 그리고 이렇게 뿌려진 별부스러기는 다시 모여 태양을, 지구를, 그리고 사람을 만들었다. 즉 우리 몸은 별부스러기인 셈이다. 옛날부터 인간이 별을 보며, 별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오늘밤에 고개를 들어 별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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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이유 없는 반항 : 리마스터링 - 아웃케이스 없음
니콜라스 레이 감독, 나탈리 우드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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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3편의 영화만 남겼음에도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넘은 지금까지 제임스 딘은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다. 좌절하고 반항하는 청춘의 표상으로서. 그 같은 딘의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확고부동하게 만들어 준 작품이 <이유 없는 반항>이다.

 

‘이유 없는 반항’이라지만 물론 이유는 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즉 영화에서 딘이 보여주는 반항은 오로지 권위적이며 고루한 의식에 사로잡혀 젊은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철저한 공처가로서 어머니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밤늦게 귀가한 아들에게 밥을 차려주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도 있다. 가부장의 권위를 상실한 아버지에 대한 실망이 반항의 또 한 축이다. 그럴 것이 영화가 제작된 1950년대만 해도 미국에는 청교도적 관습에 의해 가장으로서 아버지의 권위가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우리 가정과 마찬가지로.

 

“자동차도 사 주고 네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줬는데….” “10년쯤 뒤면 너도 다 알게 될 텐데….” “너를 위해 날마다 기도했는데….” 영화에서 고등학생 짐(제임스 딘 분)의 부모가 개탄하는 내용들이다. 부모로서는 아들에게 해줄 만큼 해 줬는데 뭐가 불만이어서 허구한 날 사고만 치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부모가 보기엔 겁쟁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쯤 아무것도 아닌데,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 무사히 넘길 수 있는 일인데,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수 있는 일인데, 그처럼 하찮은 것들에 인생을 거는 아들의 행동은 그야말로 ‘이유 없는 반항’일 뿐이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겁쟁이 소리를 듣느니 죽는 게 나으며, 10년 뒤가 아니라 당장 해답이 필요하기 때문에 고민하고 반항하는 것이다. 모두가 널 위해서라는 부모의 일방적 사랑마저도 아들에겐 속박일 뿐이다.

 

영화로서 각별한 기술적 우수성이나 특성을 지닌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60년대의 청춘 반란을 선취하고 있는 예고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겨우 세 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요절하고 만 제임스 딘은 스크린 위에서나 사회사적으로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딘이 분한 주인공 짐은 말수가 적고 섬세하며 내향적인 성격이다. 이를 보상이나 하려는 듯 때로 난폭해지는 수가 있다. 새로 온 전학생은 어디에서나 집단적 골탕 먹이기나 ‘왕따’의 대상이 되기가 쉽다. 전학생인 그에게 불량학생의 우두머리가 싸움을 건다. 두 학생은 칼부림 대결을 하지만 마침 경관이 발견하고 이들을 제지한다. 그 결과 두 학생은 ‘간 크기 시합’을 하게 된다. 차를 몰고 벼랑을 향해 달리다가 차에서 뛰어내리는데 먼저 뛰어내린 쪽이 패배 판정을 받는 시합이다. 불량학생들의 언동이나 이 ‘간 크기 시합’은 그 박진감 때문에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결국 불량학생두목이 탈출에 실패해서 벼랑에서 떨어져 죽는다. 다 잊어버려도 이 장면만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이 광경을 목도한 나탈리 우드가 실신할 판국이어서 제임스 딘이 그녀를 잡아준다. 나탈리 우드는 불량학생 두목과 가까운 처지였다. 그날 밤 제임스 딘은 경찰에 자수하러 가지만 자신을 돌봐주는 선도계원이 부재중이어서 그냥 나오다가 불량학생들의 눈에 띄고 이 때문에 경찰에 밀고했다는 의심을 받게 된다. 불량학생들의 살기등등한 기세에 몰리어 제임스 딘과 나탈리 우드는 빈집으로 도망친다. 딘의 친구가 도움을 주기 위해 불량소년들에게 권총을 난사하고 세 학생은 한곳에 모여 있다. 공포 분위기의 하룻밤이 지나자 경찰이 주위를 에워싼다. 딘은 권총에서 탄환을 빼버리지만 공포에 질린 나머지 이성을 잃은 그의 친구는 경찰에게 덤벼들다 사살되고 만다. 딘은 처음으로 자기를 이해해주는 부친의 품에 안기어 울음보를 터뜨린다.

 

문제 학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 부모와 문제 가정이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의 수용도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딘의 집안에서는 부친이 도무지 영이 서지 않는다. 앞치마를 두른 채 바닥에 꿇어앉아 떨어진 음식을 주워 담는 부친을 아들은 민망한 낯빛으로 바라본다. 모친은 조부와 늘 신경전이다. 집안에서 그의 심정이 편안할 리 없다. 한편 나탈리 우드 집안에서는 부친이 폭군이다. 부활절 파티에 참석했다가 늦게 들어왔다고 ‘더러운 바람둥이’라 딸을 몰아붙인다. 안녕히 주무시라고 볼에 입맞춤을 하자 딸의 따귀를 갈겨 결국 가출하게 한다. 거기 등장하는 불량학생들은 더욱 문제 많은 집안의 자녀일 것이다.

 

고소공포증 소유자는 그랜드 캐니언 벼랑 끝에 서 있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사진만 보아도 아찔한 생각이 드는 법이다. 영화에 나오는 불량학생들의 섬뜩한 언동은 심약한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한다. 그런 상황에서 마음 여린 영혼이 온전하게 성장하기는 어렵다. 사춘기의 위기를 다룬 이 영화는 <이유 없는 반항>이 그 뒤에 전개되는 ‘대의(大義) 있는 반란’의 선구임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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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4-03-26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얼마전에 ebs에서 이 영화 해 주더라고요. 나탈리 우드 참 예쁘죠. 저는 그 절벽신만 좀 보다 다 못 봤어요. 제대로 봤다면 아주 재미있었겠어요. 이러한 내용의 영화였군요!

cyrus 2014-03-26 12:01   좋아요 1 | URL
요즘 금요일 밤에 하는 EBS 고전영화극장을 즐겨 보고 있어요. 하필 그 시간대에 KBS 1TV에서 명화극장을 하는데 가끔 한 편만 선택해서 봐야하는 고민이 올 때가 있답니다. 지난 주에 명화극장에서는 '병 속에 담긴 편지'를 보여주더군요. 그래서 고민 끝에 요즘 보기 힘든 제임스 딘의 영화를 보게 됐어요.